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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댓글 :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19 &#8211; 점거와 철거 -운동의 물리적 장소를 둘러싼 싸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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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182호</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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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명호이(가) 만듦</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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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현명호]]></dc:creator>
		<pubDate>Wed, 14 Dec 2011 04:16:55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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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아 맞다. 전 NYU 동아시아과 대학생입니다. 안그래도 금요일날 선생님하시는 세미나에 꼭 갈 생각입니다.^^ 들뢰즈 카타리의 책은 전부터도 읽고 싶었는데, 포인트를 집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페이퍼 다 쓰고 꼭 읽어봐야 겠어요!]]></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아 맞다. 전 NYU 동아시아과 대학생입니다. 안그래도 금요일날 선생님하시는 세미나에 꼭 갈 생각입니다.^^ 들뢰즈 카타리의 책은 전부터도 읽고 싶었는데, 포인트를 집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페이퍼 다 쓰고 꼭 읽어봐야 겠어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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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추장이(가) 만듦</title>
		<link>http://suyunomo.jinbo.net/?p=9025&#038;cpage=1#comment-3386</link>
		<dc:creator><![CDATA[고추장]]></dc:creator>
		<pubDate>Wed, 14 Dec 2011 03:50:38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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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제가 ‘결핍’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은연중에 ‘충족’, 즉 어떤 ‘완성’을 상정하기 때문입니다.(들뢰즈/가타리가 쓴 [안티오이디푸스]에서 욕망을 ‘결핍’으로 볼 것인가, ‘생산’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요 참고가 될 듯 합니다.) 저는 이번 OWS 운동이 결핍을 채우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완성’이나 ‘충족’을 재는 기존의 잣대 자체, 삶의 기본 모델 자체를 이동시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버티스퀘어에서 제가 받은 인상도, 그들이 새로운 삶의 형식을 실험해보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결핍의 충족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삶의 생산, 말 그대로 삶의 &#039;이동&#039;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본 구호 중 가장 맘에 드는 게 이겁니다. This is not a protest but a movement! 
그나저나 현명호님 뉴욕에 계시는가 봅니다. 혹시 이번 금요일 오후(1-4pm)에 시간되세요? NYU에 오시면 한 번 뵐 수도^^; (Conference Room, 7th Floor, 41 East 11th St)]]></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제가 ‘결핍’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은연중에 ‘충족’, 즉 어떤 ‘완성’을 상정하기 때문입니다.(들뢰즈/가타리가 쓴 [안티오이디푸스]에서 욕망을 ‘결핍’으로 볼 것인가, ‘생산’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요 참고가 될 듯 합니다.) 저는 이번 OWS 운동이 결핍을 채우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완성’이나 ‘충족’을 재는 기존의 잣대 자체, 삶의 기본 모델 자체를 이동시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버티스퀘어에서 제가 받은 인상도, 그들이 새로운 삶의 형식을 실험해보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결핍의 충족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삶의 생산, 말 그대로 삶의 &#8216;이동&#8217;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본 구호 중 가장 맘에 드는 게 이겁니다. This is not a protest but a movement!<br />
그나저나 현명호님 뉴욕에 계시는가 봅니다. 혹시 이번 금요일 오후(1-4pm)에 시간되세요? NYU에 오시면 한 번 뵐 수도^^; (Conference Room, 7th Floor, 41 East 11th S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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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명호이(가) 만듦</title>
		<link>http://suyunomo.jinbo.net/?p=9025&#038;cpage=1#comment-3385</link>
		<dc:creator><![CDATA[현명호]]></dc:creator>
		<pubDate>Wed, 14 Dec 2011 03:21:56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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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quot;결핍&quot;이 운동을 가지고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만 결핍 (저는 필요와 동의어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어떤 방법으로 생산되었으면 그 과정을 어떻게 말로 풀어내서 설명할 것인지는 운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고 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quot;어떠한 상황에서 그 때를 맞느냐&quot;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볼 때, 결핍과 대립되는, 혹은 결핍을 초월한, 혹은 결핍에 근거하지 않는, 노동/생산이란 개념이 잘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에 OWS 를 연결하는 문제도 그렇고요. 동시에 OWS 에서 참여하는 클래스메이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people 이 무언가를 시도하고 하는 것이 반드시 결핍에서 온 것 같지도 않고요. 근데 사실 결핍에 근거하지 않는 생산개념을 이해하기는 역시 어렵습니다ㅠㅠ

정신없은 질문에 문맥을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추장 선생님 짱!]]></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8220;결핍&#8221;이 운동을 가지고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만 결핍 (저는 필요와 동의어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어떤 방법으로 생산되었으면 그 과정을 어떻게 말로 풀어내서 설명할 것인지는 운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고 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8220;어떠한 상황에서 그 때를 맞느냐&#8221;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볼 때, 결핍과 대립되는, 혹은 결핍을 초월한, 혹은 결핍에 근거하지 않는, 노동/생산이란 개념이 잘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에 OWS 를 연결하는 문제도 그렇고요. 동시에 OWS 에서 참여하는 클래스메이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people 이 무언가를 시도하고 하는 것이 반드시 결핍에서 온 것 같지도 않고요. 근데 사실 결핍에 근거하지 않는 생산개념을 이해하기는 역시 어렵습니다ㅠㅠ</p>
<p>정신없은 질문에 문맥을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추장 선생님 짱!</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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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추장이(가) 만듦</title>
		<link>http://suyunomo.jinbo.net/?p=9025&#038;cpage=1#comment-3375</link>
		<dc:creator><![CDATA[고추장]]></dc:creator>
		<pubDate>Mon, 12 Dec 2011 01:08:42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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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정말 긴 물음이네요^^ 물음이라기보다는 현명호님의 생각이 잘 개진된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잘 아시겠지만 답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에요. 물음에 걸맞는 긴 답변 씁니다^^ 
먼저 미국 사회에 &#039;결핍&#039;이 있는가. 미국 전체로는 답하기 어렵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인들이 미국을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보는 게, 양극화 때문에 힘들어진 면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온지 이제 겨우 1년이 되어가니 잘 모릅니다만, 적어도 미들클래스(여기서는 우리의 중산층이라는 뜻보다는 보통 서민 정도의 뜻인 듯 합니다)의 몰락은 분명해보입니다. 월가 점거를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눈물겨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 많아요. 뿐만 아니라 ‘결핍’(글쎄 이런 말을 써야하는지 모르겠지만)에 대한 정신적 충격은 다른 사회보다 더 클지도 모릅니다. 어느 상원의원은 부모세대보다 못 살게 되는 역사상의 첫 세대라고 부르더군요. 우리 부모세대들이 보통 그러잖아요, 젊은애들은 고생을 모른다고. 그런데 제가 어느 영국학생 글을 읽었는데, 이런 말을 하더군요. 부모들은 너무 편하게 살아서(대학도 거의 무상으로 다니고 취직도 잘 되고) 자신들 처지를 모른다고. 우리는 아주 다른 사람들이라고. 그러나 사실 저는 ‘결핍’이 운동을 불러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라캉 읽은 사람들과는 생각이 다르지요. 현재 여기서 벌어지는 다양한 운동들(민중대학, 홈리스들의 스쾃, 대안마련을 위한 오픈포럼 등)을 보면, 결핍보다는 생산을, 무기력보다는 능력을 떠올립니다. 정말, 지금 굉장히 많은 위원회들이 생겨나서 다양한 분야에서 대안적 실험을 하고 있어요.
둘째, 때가 무르익는다는 것. 여기도 역사적 논쟁의 오랜 전통이 있죠?^^ 맑스 이야기를 하셨으니 거기에 기초해서 말해볼게요.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 논법 중 흥미로운 것은, ‘자본주의는 항상 더 큰 위기를 낳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위기를 극복합니다, 하지만 더 큰 위기를 낳습니다. 자, 그럼 언제가 혁명의 때일까요? 맑스의 논법을 빌자면, 자본주의는 가장 잘 나갈 때가 가장 위험할 때이기도 합니다. 가장 강할 때와 가장 약할 때가 함께 있다는 거지요. 그럼 그때는 혁명하기 좋은가요, 나쁜가요? 사실 어느 때라고 혁명이 보장되지도 않고 언제라고 배제되지도 않지요. 때는 항상 옵니다. 다만 그 때가 어떤 상황에서 오냐는 거지요. 우리는 ‘때’에 관여한다기보다 ‘상황’에 관여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 그 때를 맞느냐에 따라 혁명이 일어나기도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냥 지나가기도 하지요. ‘나꼼수’에 대한 현명호님의 엄청나게 긍정적인 평가를 따른다면, ‘나꼼수’가 있을 때 그 ‘때’가 오는 것과 그것이 없을 ‘때’ 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답이 되셨기를...(사실 답이 없죠^^)]]></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정말 긴 물음이네요^^ 물음이라기보다는 현명호님의 생각이 잘 개진된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잘 아시겠지만 답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에요. 물음에 걸맞는 긴 답변 씁니다^^<br />
먼저 미국 사회에 &#8216;결핍&#8217;이 있는가. 미국 전체로는 답하기 어렵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인들이 미국을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보는 게, 양극화 때문에 힘들어진 면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온지 이제 겨우 1년이 되어가니 잘 모릅니다만, 적어도 미들클래스(여기서는 우리의 중산층이라는 뜻보다는 보통 서민 정도의 뜻인 듯 합니다)의 몰락은 분명해보입니다. 월가 점거를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눈물겨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 많아요. 뿐만 아니라 ‘결핍’(글쎄 이런 말을 써야하는지 모르겠지만)에 대한 정신적 충격은 다른 사회보다 더 클지도 모릅니다. 어느 상원의원은 부모세대보다 못 살게 되는 역사상의 첫 세대라고 부르더군요. 우리 부모세대들이 보통 그러잖아요, 젊은애들은 고생을 모른다고. 그런데 제가 어느 영국학생 글을 읽었는데, 이런 말을 하더군요. 부모들은 너무 편하게 살아서(대학도 거의 무상으로 다니고 취직도 잘 되고) 자신들 처지를 모른다고. 우리는 아주 다른 사람들이라고. 그러나 사실 저는 ‘결핍’이 운동을 불러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라캉 읽은 사람들과는 생각이 다르지요. 현재 여기서 벌어지는 다양한 운동들(민중대학, 홈리스들의 스쾃, 대안마련을 위한 오픈포럼 등)을 보면, 결핍보다는 생산을, 무기력보다는 능력을 떠올립니다. 정말, 지금 굉장히 많은 위원회들이 생겨나서 다양한 분야에서 대안적 실험을 하고 있어요.<br />
둘째, 때가 무르익는다는 것. 여기도 역사적 논쟁의 오랜 전통이 있죠?^^ 맑스 이야기를 하셨으니 거기에 기초해서 말해볼게요.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 논법 중 흥미로운 것은, ‘자본주의는 항상 더 큰 위기를 낳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위기를 극복합니다, 하지만 더 큰 위기를 낳습니다. 자, 그럼 언제가 혁명의 때일까요? 맑스의 논법을 빌자면, 자본주의는 가장 잘 나갈 때가 가장 위험할 때이기도 합니다. 가장 강할 때와 가장 약할 때가 함께 있다는 거지요. 그럼 그때는 혁명하기 좋은가요, 나쁜가요? 사실 어느 때라고 혁명이 보장되지도 않고 언제라고 배제되지도 않지요. 때는 항상 옵니다. 다만 그 때가 어떤 상황에서 오냐는 거지요. 우리는 ‘때’에 관여한다기보다 ‘상황’에 관여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 그 때를 맞느냐에 따라 혁명이 일어나기도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냥 지나가기도 하지요. ‘나꼼수’에 대한 현명호님의 엄청나게 긍정적인 평가를 따른다면, ‘나꼼수’가 있을 때 그 ‘때’가 오는 것과 그것이 없을 ‘때’ 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답이 되셨기를&#8230;(사실 답이 없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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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명호이(가) 만듦</title>
		<link>http://suyunomo.jinbo.net/?p=9025&#038;cpage=1#comment-3371</link>
		<dc:creator><![CDATA[현명호]]></dc:creator>
		<pubDate>Sat, 10 Dec 2011 18:11:59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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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지젝이 말한 것 처럼, 월가점거 운동은 우리의 부자유를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언어를 매개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주코티 파크에서 리버티 스퀘어로의 비물리적 변형이 일어났다고도 생각하고요. 하지만 궁금한 점은 지금 미국의 시대에 이 언어를 &#039;욕망&#039; 할 정도의 &#039;결핍&#039;이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한나 아렌트 말은, 전체주의 운동이 어마어마한 침묵의 다수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도, 극도로 원자화된 당시 독일 사회에서 개인의 불안한 심리상태에서 오는 정신적 안정의 결핍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중심에 나치의 유명한 선동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 나꼼수의 김어준이 말하는 바도, &#039;가카 덕분에&#039; 시대의 &#039;거대한 결핍&#039;이 생겨났다는 것이라는 데, 저는 나꼼수 현상은 바로 그 결핍을 충족 시켜줄 수 있는 언어를 바로 나꼼수가 제공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 시대적 결핍이라는 것이 꼭 &#039;가카&#039;가 등장하기 기다려야 하는 건지, 적이 제 무덤을 파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지,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붕괴하는 틀을 만들어 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막스랑 그람시가 공통적으로, 한 시대가 무르익을 때로 익으면 시대변화의 답이 저절로 나온다, 라고 이야기하는데, 좀 막막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부시가 퇴진하고 오마바가 집권한 것은 그 자체로 월가점렴 운동의 한계를 보여주는 걸까요? (물론 오바마가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부시보단 낫고, 그보단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는 다는 가정입니다.)

선생님 글 정말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 지난 번 답글도 감사합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지젝이 말한 것 처럼, 월가점거 운동은 우리의 부자유를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언어를 매개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주코티 파크에서 리버티 스퀘어로의 비물리적 변형이 일어났다고도 생각하고요. 하지만 궁금한 점은 지금 미국의 시대에 이 언어를 &#8216;욕망&#8217; 할 정도의 &#8216;결핍&#8217;이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한나 아렌트 말은, 전체주의 운동이 어마어마한 침묵의 다수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도, 극도로 원자화된 당시 독일 사회에서 개인의 불안한 심리상태에서 오는 정신적 안정의 결핍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중심에 나치의 유명한 선동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 나꼼수의 김어준이 말하는 바도, &#8216;가카 덕분에&#8217; 시대의 &#8216;거대한 결핍&#8217;이 생겨났다는 것이라는 데, 저는 나꼼수 현상은 바로 그 결핍을 충족 시켜줄 수 있는 언어를 바로 나꼼수가 제공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br />
근데, 이 시대적 결핍이라는 것이 꼭 &#8216;가카&#8217;가 등장하기 기다려야 하는 건지, 적이 제 무덤을 파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지,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붕괴하는 틀을 만들어 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막스랑 그람시가 공통적으로, 한 시대가 무르익을 때로 익으면 시대변화의 답이 저절로 나온다, 라고 이야기하는데, 좀 막막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부시가 퇴진하고 오마바가 집권한 것은 그 자체로 월가점렴 운동의 한계를 보여주는 걸까요? (물론 오바마가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부시보단 낫고, 그보단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는 다는 가정입니다.)</p>
<p>선생님 글 정말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 지난 번 답글도 감사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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