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잡민(雜民)”들의 메이데이 – 2012년 자유와 생존의 메이데이 –

- 신지영

* ‘쉰다’는 것의 소중함.

“노동반대!” “일 안 해!” “돈을 달라” “우산을 달라” “스시를 달라”

사운드 카 - 세금은 부자한테 받아라!

사운드 카 - 세금은 부자한테 받아라!

웬 놀부 심보냐구 하겠지만, 이 말들은 내 가슴을 쳤다. 자유와 생존의 메이데이 데모에서 이 말을 반복해서 외치자, 어쩐지 왈칵! 눈물이 나며, 가슴 속 깊은 빗장이 스스르 풀리는 듯 했으며, 땀과 비로 범벅이 된 옆 사람에게 진심을 다해 우산을 씌어주고 싶어졌으며…. 자유와 생존의 맛은 임금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이런 게으름뱅이의 맛,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맛, 그 순간 생기는 외부로 열리는 어떤 교감들은 아닐까? 성실하고 열심히 일해도 늘 가난한 흥부가 이제부터 자신이 놀부가(그것도 남을 착취하지도 자신의 욕망을 누르지도 않는) 되겠노라고 선언하는 순간, 우리 잡민들(雜民) 마음 속 깊은 빗장이 풀리고 내 마음 속 빗장도 풀리고 우리들의 온갖 노동경험이 이야기로 풀려 나왔다. 아마미야 카린은 2006년의 자유와 생존의 메이데이에 참여했던 경험을 이렇게 말한다. “뭔가 인생이 변했다! 그 날 하루로!” 이 느낌은 자유와 생존의 메이데이 데모의 전통이 된 사운드 데모(사이키델릭한 노래와 온갖 악기와 춤과 술과 변장술이 함께하는 행진)의 축제적인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폐부 깊숙이 치고 들어오는 생생한 구호들, 그 구호를 만들어낸 매일매일의 노동, 그 고통과 슬픔과 그럼에도 결코 놓을 수 없는 희망과 존엄 때문이 아닐까? 절실히, 성실히, 우리는 쉬고 싶다!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돈을 음식을 공간을 시간을 달라!

* “잡음”의 메이데이

2012년 자유와 생존의 메이데이는 ‘잡민(雜民들의 메이데이’였다. 사운드카에 둘러쳐진 프랜카드에는 “잡민 주권”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 밑에는 정체 불명의 잡민들이 그려져 있었다. 로봇과 사이보그, 자연물들이 인간과 뒤섞여 있었다. 메이데이 팜플렛에 씌어 있듯이 원전 사고 및 츠나미 피해 이후, 일본 국내에서는 “키즈나(絆, 연대, 유대)”의 합주를 강조하며 “부흥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잡민들은 동참할 수 없었다. 3월 28일에는 파견법이 개악(改惡)되고 현재는 노동법도 개정안이 논의중이어서 쓰고 버리는 일회용 저임금 노동이 강화될 위험이 있다1. 이처럼 복지사회 밖으로 배제당하고 소비세가 오르곤 해도 “이를 두려워하며 부들부들 떨며 답을 요구하는 것은 불안정을 사는 일에 익숙해질 수 없는” 잡민들 뿐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 두려워하는 자들은 거리로 나와 외친다. “잡민들의 계약기간을 얕보지 말라!” “주주 자본주의의 무책임한 재해 편승이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리기 전에 각자 소리를 높이자!” “정제되지 않고 조화되지 않는 소리, 그것이 희망이다!”

일 안해!  - 후세씨

일 안해! - 후세씨

사실 앞서 든 구호들에는 수식어가 필요하다. 피폭노동이나 저임금 쓰고 버리는 노동 더 나아가 임금노동 전체 반대!, 착취당하고 누군가를 착취해야 하는 일 안 해!, 노동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돈을 달라!, 방사능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달라!, 방사능으로 오염되지 않은 스시를 달라!. 이처럼 2012년의 메이데이는 하나로 뭉쳐질 수 없는 빗발치는 요구와 함께였다. 0회를 맞이한 트위터 탈원전 데모(4월 29일), 쓰기나미구 탈원전 집회(5월 6일), 장애인 연속기획강좌(마가야신 이치로熊谷晋一郎 주최, 4월 29일부터 매달 1회씩)등이 기획되어 있었다. 이른바 눈에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작년의 원전 사고 및 쓰나미 이후 비명을 내지르며 등장했다. 수많은 비명들 눈물들 외침들이 범벅이 된 잡음 속에는, 그 소리가 담고 있는 염원과 희망과 함께 거리감, 분열, 연대의 불가능성이 함께 존재한다. 2012년의 자유와 생존의 메이데이는 이 통합될 수 없는 잡민들의 소리를 들리게 하려는 시도였다.

엄청나게 많은 경관과 몸씨름 반 데모 반,

엄청나게 많은 경관과 몸씨름 반 데모 반,

탈원전 집회가 조명되면서 반빈곤 문제나 반기지 오키나와 문제(심지어 올해는 오키나와 복귀 40주년임에도)가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고 있으며, 그런 이유로 이번 메이데이의 참여자는 작년에 비해 적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이유로 그 어느 때보다 전국 각지의 반빈곤에 대한 열망은 절실했고, 그 열망이 다른 요구들과 경쟁하거나 다른 요구들과 똑같은 것으로 유야무야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고 울려 퍼져야 한다는 의지도 강했다. “잡민의 메이데이”라는 이름에는, 각각이 더욱 더 다른 소리를 지를 수 있도록 서로 복돋움으로써, 각각의 소리가 살아서 강렬한 잡음이 되길 바라는 열망이 담겨 있었다.

* ‘잡민(雜民)’들의 메이데이.

잡음에 대한 미식가들인 우리 잡민들은 모두를 밋밋하고 편편한 한 덩어리로만 치부하려는 모든 “키즈나(연, 유대) 합주”과 “부흥 행진곡”에 반대했다. 그들은 끼기긱 쿠구궁 울려퍼지는 강력한 잡음처럼, “우리들은 ‘우리’와 ‘들’사이에 있는 심연을 보지 않고 ‘우리들’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외친다. 따라서 자신들은 “항상 한 박자 늦은 양, 울타리에서 벗어나 똑똑한 양을 팔짱을 끼고 보고 있는 양, 혈통도 육질도 변변치 못해서, 늘 목동을 기가 질리게 만드는 잡민-양의 자율적 무리의 생성을 시도한다”고 외친다. “키즈나”와 “부흥”이라는 말이 국가 캠페인에 등장한 이후, “마을”이라는 말도 “우리”라는 말을 다시 우리 잡민들의 것으로 되찾아 와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이때 경계해야 할 것은 ‘둔화’이다. 자유와 생존의 메이데이 데모 이후에 벌어진 집단 토론과 대화는 잡민들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둔감해져가는 세상의 침묵을 깨는 잡다한 일격이었다. 잔향이 오래 남는 일격.

동북 지방의 기민들을 잊지 말라! 우에마츠씨와 아마미야씨

동북 지방의 기민들을 잊지 말라! 우에마츠씨와 아마미야씨

보고는 세가지 섹션으로 이루어졌다. 첫 섹션에서는 재해 이후 동북 지방의 부흥 정책이 지닌 문제점을 보고했다. 발표자는 “부흥 빈부차”라는 말을 쓰면서 현재 동북 지방에 동북 지방의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게 아니라 대기업이 일회용 일자리를 양산하며 침투하는 형태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전체 토론 시간에 재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비판의 요지는 빈부차를 메우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부흥’이라는 경제논리가 지닌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거나 간과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동북지방의 내부 식민지로서의 상황을 식민지기 조선의 상황과 바로 연결시키는 담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에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발표는 동북 지방에서 버려진 주민들의 상황과 그곳 농업이 늘 착취의 구조 속에 있었음을 드러내고 ‘棄民’과 ‘雜民’ 사이의 연결관계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두 번째 섹션은 현재 심의중에 있는 노동법에 개정안2에 대한 반박으로 눈길을 끌었다. 보고자는 두 명으로 한분은 경비 노동자였고 다른 한분은 케어노동을 하는 분이었다. 경비 노동자는 최근의 노동계약 개정안을 ‘개악’이자 ‘저임금을 주면서 멋대로 마음껏 사용하는 것(低額つかわれ放題)’을 제도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상 유기고용(有期雇用)이란 노동자 측에서는 아무런 이득이 없는 제도다. 업무가 축소되었다거나 실력이 없다는 이유로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해고권이 달린 고용계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을 보면 유기계약을 통상적인 계약으로 격상시켰다. 이는 ‘저임금을 주면서 멋대로 마음껏 사용하는 것(低額つかわれ放題)’을 제도화한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첫째로 인구규제(人口規制)가 없다. 본래 유기노동은 업무의 특성상 기간을 정해야만 하는 바닷가 각종 업무, 스키장, 이벤트 스텝 등에 한정해야 하는데, 현 상황에서는 일상적 업무로 그 범위가 확대되어 있다. 둘째는 “통상 5년이 되면 무기 계약으로 전환한다”는 법안이다. 기존의 노동 기본법은 3년 이상 유기 계약이 지속되는 걸 금하고 있음에도! 더구나 중간에 공백기간이 생기면 처음부터 다시 연수를 계산한다. 불 보듯 뻔한 일은 기업측에서 4년 11개월로 고용을 끝낼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로 개정안에 따르면 갱신 신청, 혹은 기간만료 후 지체없이 갱신신청을 하지 않으면 고용중지 해고(雇い止め解雇)가 된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무기고용처럼 일하는 유기고용의 경우 신청기간을 놓치기 쉽다. 특히 직접 해고를 당한 경우에는 정신적 심리적 데미지를 회복하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체 없는 신청’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케어 노동을 하는 분은 케어 노동이 저임금에 24시간 쉴 수 없는 노동으로 계속되어 온 현실을 설명했다. 특히 케어 노동은 인간의 신체리듬에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휴식’이 불가능하다. 장애인이나 노인, 병자들이 언제 화장실이 가고 싶을지 언제 아플지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일을 하는 동안은 24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즉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임에도 둘이 투입되지 않으며 낮은 대우를 감내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좋은 케어노동이 불가능하며 케어를 받는 상대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 ‘임금노동이 아닌 노동’만이, 우리 잡년들/잡놈들의 희망이다.

세 번째 섹션은 젊은 여성 두 분의 보고였다. 프리타 노조에서 활동하는 그녀는 노동에는 ‘착취하는 노동, 착취당하는 노동, 착취 없는 노동’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옆에 있는 친구는 음식점 매니저인데 다른 비정규직에게 잔업을 시키거나 지시를 해야 하며,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나쁜 평가를 받거나 정사원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그녀는 그러한 자신의 노동을 조금이라도 보상하기 위해서, 쉬는 시간의 대부분을 탈원전 텐트를 지키거나 프리타 노조 일에 참여하거나 한다고 말한다. 그녀들은 말했다. 혹시 임금 노동이 아닌 그녀의 이러한 활동들이 우리 잡년들/잡놈들의 희망이 되지 않을까?

착취당하는 노동도 착취하도록 강요당하는 노동도 거부한다!

착취당하는 노동도 착취하도록 강요당하는 노동도 거부한다!

그녀들은 다양한 노동 경험에 대한 앙케이트를 공개했다. 어떤 일을 했는지, 몇 살 때 몇시간 일했는지,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인지, 현 시점에서 그 시절의 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러자 정말 천차만별의 직종들이 등장했다. 뮤지션 스텝, 폐품 수집, 폐지업계의 생산관리, IT업계엔지니어, 스파의 발마사지사, 학원강사, 꽃꽂이, 이사짐센터, 주차장 감시, 캬바쿠라 종업원, 야쿠자 심부름, 동네 파출소 털이, 승려, 대출업, 마사지사, 가정주부, 노동조합 조합원, 학생자치회 간부, 인도카레점, 라면집(가업) 도우미, 철도 혼잡시 길안내 아르바이트, 마사지사, 주유소…. 하나의 직종으로 모을 수 없는 온갖 종류의 불안정 노동, ‘잡민들’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직업을 통해서 잃은 것과 얻은 것 그리고 소감이나 평가를 보면, 돈의 액수에 대한 평가는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이 그 일을 통해 얻은 인간관계, 친밀감, 자존감의 증감, 사회적 승인, 몸과 마음의 건강 등을 주로 말했다. 즉 임금은 ‘노동력’에 대한 것만을 지불하지만, 실제로 우리들의 노동은 우리의 삶 전체와 관련되고, 신체와 감정 전체를 쓰는 것이었다.

뮤지션의 스텝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한 응답자는 자세한 내용은 없지만 그 일로 증오와 살의를 얻었다고 답하며 젊은이의 꿈을 빼앗고 약자를 짓밟는 사람에 대한 분노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쓴다. 폐지업계의 생산관리를 했던 사람은 자신의 의사와 다른 부서로 옮겨져 실질적인 해고라고 느꼈다고 한다. 학생자치회의 간부였던 사람은 인간관계와 교류의 힘을 느꼈고 삐라를 작성하며 아침까지 회의를 하거나 했다. 수업을 안 들어가고 했던 이야기들이 뭔가 의미있는 게 되었을까…라고 쓴다. 어떤 NPO 단체의 연수회에서 알바를 했던 사람은 시급 850엔을 받았는데 “보람의 착취”를 느꼈다고도 쓴다. 대출업을 하는 사람은 돈의 더러움을 알았고 거짓말을 간파하는 법, 그리고 전 지방의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지방마다의 특성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직업은 변호사와 반대된다고 생각하지만, 약하고 돈 없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돈을 받아내는 점은 같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토목 건설업에서 일용노동을 했던 사람은 그 일이 정말 싫어서 이대로 일생을 지속해야 한다면 형무소에 가는 편이 낫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야쿠자 심부름꾼이었던 한 남자는 우월감을 느꼈지만 어머니에게 너무나 죄송하다고 쓰며, 승려를 10년 이상하고 있는 사람은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은 시간이라고 쓴다. 인도카레 알바를 했던 30대는 주인의 기분에 따라 휘둘려서 남 밑에서 일하는 건 정말 어렵다고 느꼈다고 쓴다. 발 마사지사는 시각 장애인들의 남다른 재능을 알았고, 손님들로부터 세간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의학적 지식이 늘었다고 쓴다. 캬바쿠라(캬바레식 클럽으로 일본 신조어 cabaret+club) 종업원은 건강한 정신을 잃었다. 이곳은 세상의 이미지와는 다른 세계라고 말한다. 노동조합에서 교섭과 쟁의를 맡아온 사람은 기쁜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지만, 시간과 돈과 체력을 잃었다고 쓴다. 어떤 주부는 가사노동이란 하려면 몇시간이든 지속되고 안 하려면 얼마든지 줄어든다고 하면서 쾌적한 생활과 가사 스킬을 얻었지만, 자신의 인생을 이 노동에 얼마나 허비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쓴다. 주차장 감시원은 일을 통해 자기 성취를 한다는 건 기대할 수 없다고 쓴다 등.

노동반대! 아마미야씨

노동반대! 아마미야씨

이들이 겪고 보고 느끼고 쓰고 토로했듯, 노동의 댓가로 받는다고 일컬어져 온 ‘임금’ 그리고 ‘돈’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노동을 하면서 얻은 관계성, 신뢰, 만족감, 사회적 인정과 승인, 지식, 몸과 마음의 건강, 자존감과 성취감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일생의 어느 순간은 늘 잡민이었고, 늘 잡일을 한다는 점에서 일생의 어느 부분은 늘 잡민이다. 먹고살기 위한 주된 일이 될 때도 있지만, 가사노동을 하며, 감정노동을 하며, 사회적 활동이나 운동에도 참여한다. 그 가치들은 왜 임금으로 계산되지 않는가? 아니, 우리의 그 가치는 과연 임금으로 계산될 수 있는가? 프리타 노조 사무실에 모인 잡민, 즉 잡년/잡놈들이 외친다. “임금노동이 아닌 일만이 우리 잡민의 희망이 아닐까?” 프리타 노조의 야마구치씨는 말한다. “노동조합은 최대한 노동을 하지 않도록 해주는 곳이 아닐까?”

* 잡년들/잡놈들의 깊어가는 대화와 나가노 우동.

잡민-잡년들/잡놈들, 우리 게으름의 신봉자들, 그러나 창조적이고 자신과 세계를 아름답게 하는 일에는 철야를 불사하는 우리/들의 대화에 음식이 빠질 수는 없었다. 프리타 노조의 대표 요리사인 듯한 그는 나가노식 우동을 선보였고, 다양한 술과 마른 안주가 돌았다. 돌면 돌수록 우리의 발언도 돌고 돌며 또다시 누군가의 발화를 이끌어냈다. 마치 그날 하룻밤 사이에 잡민들의 독립국가를 세우려는 듯이 이어졌다.

나가노 우동집

나가노 우동집

솔직히 파견 노동이 없다고 우리가 불리할 건 없어. 파견이든 뭐든 그만큼의 노동력이 필요한 거니까. 그러니까 파견은 사라져야 해. 대체 등록형 파견은 왜 남겨둔 거야?3 우선수위에서 밀렸으니까. 더구나 개악이 있기 직전에 젠센(어용 노동조합)에서 등록형 파견은 남겨두자는 서명도 모았고. 오사카에서 왔는데 다른 노동조합에 가면 무조건 일해야 한다고 하는데 여긴 그런 게 아니라서 좋아.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경제부흥은 필요없어요. 슬슬 우리 독립국가를 만들어도 좋지 않은가!(박수) 경제 성장은 그만해도 좋지 않은가? 우리 그만 성장하자! (박수) 우리가 대체 왜 노동을 해야 하는 거지? 경제성장으로 이루어진 그 엄청난 생산력은 다 어디로 간 거야? 도쿄전력은 원전이 움직이지 않아서 3조원의 경제손실이 났다고 하는데, 그 3조원을 만든 게 누구야? 우리잖아. 3조원을 생산한 우리가 괜찮다는데, 왜 원전을 멈추면 안되는 거야? (박수) 근데 왜 ‘잡민’이야? 정말 너무 다양한 일들을 하더라고. 전형적 노동자는 한명도 없어. 모두 잡초같은 거야. 그리고 우리들 데모 행진은 소음에 가깝고. 노이즈 마이너리티(noise minority)인거지. 혹시 그 얘기는 얼마 전에 죽은 토고 켄(東郷健, 일본의 사회 활동가로 잡민당雑民党을 만들었다. 올해 4월 1일에 사망했다)을 염두에 둔 거야? 아니 그건 우연인데 나중에 생각나서 보고서 맨 앞에 “Looking up to T.K”라고 썼지. T.K가 토고의 약자야.(웃음) (미국에서 온 참여자가) 시카고에서는 이주 노동자들의 메이데이가 열렸어요. 인간은 위법이 아니다고 외쳤죠. (이주 노동자가 이어받아) 저는 이란 출신으로 독재 파시즘 정권을 피해서 일본으로 왔어요. 10년째 망명 신청을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요. 23살에 와서 3년간 연수생으로 지내면서 계급차별 인종차별 많이 받았어요. 1년간 살 곳도 없을 때도 있었고, 이바라키현 수용소에 있었던 것은 정말…. 농업일을 1년간 했는데 무랑 고구마를 캐면 씻어야 해요. 그 중노동을 11~12시간씩 하고 700엔 받았는데, 외국인 노동자의 과로사가 인정받은 적도 있어요. 일본에서 과로사가 인정된 건 처음이죠. 그만큼 열악해요. 시급 300엔 400엔도 많아요. 사실 내가 여기에 있는 것도 불법이죠. 해고당해도 다시 일을 찾으러 노동 직업 알선소에 갈 수 없어요. 불법이니까. 숨겨진 모든 노동들이 있어, 정말. 들은 얘긴데 편의점 알바를 하다가 갑자기 다른 알바가 그만둬 자리가 비니까, 이틀을 무료로 일하러 갔다는 거야. 직장 귀속 본능, 즉 직장 내셔널리즘이 발동한 거지. 이런 건 어떤 거지? 우린 일하고 회식도 하잖아. 노동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관계를 잘 유지해야 노동할 수 있으니까 생존과 깊이 관련되어 버리곤 하지. 노동만이 아닌 거야.

이날 나카노 우동과 돌려지는 술 속에서 깊어졌던 잡민들의 대화는, 경제성장에 대한 신화적 믿음을 거스르고 보이지 않던 노동들을 말하고, 왜 우리가 노동을 하고 있는가를 질문하고, 우리 주변에 있는 경찰권력을 고발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잡음을 막으려는 모든 힘에 맞서서 제각각의 잡음, 노이즈 마이너리티의 삶을 풀어냈다.

* ‘임금 노동인 아닌 노동’의 가치와 표현을 위해.

왜 노동을 하는가? 무엇이 노동인가? 노동은 어떻게 노동으로 인정되는가? 이날의 메이데이는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 더 나아가, “노동”에 대한 이미지의 전환, ‘노동’에 대한 상상력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가노 우동과 함께 울려 퍼진 이날의 대화는 고정된 노동의 이미지를 깨고 ‘노동-임금’과는 다른 상상력을 발동시키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우동 한그릇 이야기하 하나.

우동 한그릇 이야기하 하나.

그런 점에서 ‘‘노동(勞動)’이라는 말을 ‘働く’이라는 말로 살짝 바꾸었던 것은 명민하고 민첩했다. ‘働く’는 ‘일하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움직이다 활동하다는 뜻도 담고 있으며 ‘명사’가 아닌 ‘동사’다. 다양하게 움직이는 현재의 일하는 환경을 담기에 적절한 말이 아닐까 싶다. 노동법이나 임금노동이 규정한 ‘노동’의 기준에 들어가지 않는 잡년들/잡놈들의 오만가지 에너지의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노동은 노동 그 자체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먹고 싸고, 문화를 소비하고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모든 삶이 돈이 된다. 아니 애초에 노동력만을 산다고 하는 것은 임금노동의 사기극이었던 게 아닐까? 따라서 우리는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이 삶을 영위할 돈과 시간과 공간을 달라고.

주권잡민!

주권잡민!

한발 더 나아가, 나는 단순히 “임금노동이 아닌 노동” 그 자체가 잡놈/잡년들의 희망이 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느낀다. “임금노동이 아닌 노동”이 갖는 가치를 어떻게 하면 돈과는 다른 형태로 표현하고, 임금과는 다른 형태로 기릴 수 있을까? 내 주변에는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의 이야기는 나를 늘 즐겁게 한다. 동시에 나를 정말 슬프게 할 때도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대개 애매한 기준과 보상체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철야나 끝없는 노동에 지치고 돈도 없어지고 스스로를 개발할 시간조차 없었던 그들은, 너덜너덜해져 돈을 벌기 위해 다시 임금노동을 한다. 너 자신을 위한 활동이니까 어떤 댓가도 바라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이러한 활동이야말로 “돈”과는 다른 형태로 인정되어야 하며 이런 활동의 가치를 표현할 방법이 많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임금을 받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 활동하는 것’ 그 자체가 갖는 ‘감정’이 중요하다. 함께 해서 즐거웠고 관계가 깊어졌는가 보람을 느꼈는가 스스로의 자존감이 높아졌는가 사회적인 승인은 이루어졌는가, 어떤 지식(신체적이든 감정적이든 인지적이든)을 얻었는가 등.

우리, 잡민들!

우리, 잡민들!

임금노동이 아닌 일에도 해고는 있다. 심각한 경우 그 해고는 코뮨으로부터의 추방을 의미한다. 반면 가벼운 정도의 해고, 혹은 일의 전환은 일상다반사다. 정치적 활동은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다른 활동을 하거나 더 하고 싶은 일로 옮겨가는 해고는 기쁨이기도 하다. 반면 외부의 상황이나 코뮨을 유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개개인의 사정과는 무관하게 활동을 그만둬야 할 때도 있다. 이러한 해고는 꽤 치명적이다. 임금노동에서의 해고는 돈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고통이지만, 임금노동이 아닌 활동에서의 해고는 스스로의 자질, 인간성, 관계성을 고민하면서 항의도 못하고 속으로만 앓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속앓이를 단지 일에 대한 소유욕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활동가들이 자신이 하는 일과 맺는 끈끈하고 강렬한 관계성과 에너지를 소홀히 취급한다면, 과연 이러한 활동이 일회용 임금노동과 과연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 모든 개별적인 활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가치를 표현하는 방식이, 그 활동가가 속한 코뮨이 지닌 가치의 다양성이나 능력과 깊이 관련된다. 코뮨의 가치들은 이 개개의 활동 속에서 새로운 가치와 표현방법을 더해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점에서, 임금노동이 아닌 노동만이 잡놈/잡년들의 희망이며, 또한 그러한 활동이 지닌 가치를 표현하고 승인하는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이 여태까지 없었던 노이즈 마이너리티의 가치를 상상하게 하고, 노이즈 마이너리티의 정체성을 형성하지 않을까?
다시 한번 눈물 나게 잡음을 내보자. 그 앞의 수식어를 어떻게 부치면 좋을지 각자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노동반대!” “일 안 해!” “돈을 달라” “우산을 달라” “스시를 달라”

  1. 2012년 3월 28일에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 <노동자 파견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4월 6일에 공포되었고, 6개월 뒤부터 시행된다. 개정된 파견법은 ‘파견노동자의 보호’를 명시하고 있고 ‘파견노동자의 보호와 고용안정’을 목적규정에 명기하고 있지만, 등록형파견(26개 업무 제외)의 원칙금지와 제조업 파견금지(1년 초과 상시고용 업무 예외) 가 제외되었다. 이 두 가지 파견은 개정안에서 핵심적인 과제였음에도 파견 노동으로 남게 된 것이다. 또한 현재 3월 23일에 각의 결정이 된 <노동계약법의 일부 개정안(労働契約法の一部を改正する法律案)>이 심의중인데, 이것이 유기노동을 제도화할 가능성이 커서 반발이 일고 있다. – 필자. []
  2. 앞서 설명한 3월 23일에 각의 결정된 <노동계약법의 일부 개정안>은 유기고용 5년 이상의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으로 전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발표자가 지적하듯이 6개월 이상의 공백 기간아 있을 경우, 이전의 유기계약 기간이 합산되지 못하며, 더구나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되더라도, 노동조약은 유기계약 때와 동일하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크다. – 필자. []
  3. 3월 28일에 발표된 <파견법 개정안>은 <제조업 파견>과 <등록형 파견(26개 직종 제외)>을 파견노동으로 남겨두었다는 점이 큰 반발을 불러 왔다. 일본의 파견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상용형 파견>은 파견회사가 노동자를 고용해 파견하므로 파견이 성사되지 않았을 경우에도 파견회사가 임금, 사회보장, 유급휴가를 보장한다. 이에 해당되는 것은 대개 고소득 전문직으로 <특정 노동자 파견사업>으로 분류된다. 반면 대다수의 불안정 노동자들은 <등록형 파견>이다. 노동자가 등록한 파견회사는 직업 알선소일 뿐이며, 파견이 안 되도 파견회사는 아무런 임금부담의 의무가 없다. 이를 <일반노동자파견사업>으로 불린다. 이른바 쓰고 버리는 한시적 고용계약이 이러한 등록형 파견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이번 <파견법 개정안>에서는 파견법 개정의 핵심이었던 이 등록형 파견이 아무런 조치 없이 남게 되었다. –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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