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치명적 오독

- 고병권(수유너머R)

두물머리밭전위원회. 정부의 ‘4대강개발’로 경작권을 박탈당한 두물머리(양수리) 농민들과 농사를 함께 지으며 싸우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을 처음 본 이들 중 상당수가 무심코 ‘밭전’을 ‘발전’으로 읽습니다.‘개발’이나 ‘성장’, ‘발전’ 같은 말들이 오랜 세월 우리 눈에 씌여 있어서 일 겁니다. 뭔가 눈에 씌이면 바로 보고도 잘못 읽게 됩니다. 제 생각에 ‘두물머리밭전위원회’라는 이름 속 ‘밭전’이라는 말은 우리의 어떤 치명적인 오독을 지적하기 위해 그렇게 있는 것 같습니다.

이름 그대로, 한강을 이루는 두 물이 만나는 삼각형 모양의 땅에 생겨난 작은 밭들. 지난 주 <위클리수유너머> 편집진은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어느 젊은 농부로부터 그 밭들이 만들어진 역사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 근처에 팔당댐이 만들어지면서 당시 많은 토지들이 강제수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댐이 만들어지고나자 지금의 자리에 새로운 땅이 생겨난 겁니다. 물론 소유관계로만 따지면 하천에 생겨난 그 땅은 국유지가 분명합니다. 당시 강제수용으로 땅을 넘겼던 농부들은 새로 생겨난 땅에서 농사를 짓게해달라고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땅을 경작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답니다.

그 말을 들으니 그 땅과 거기서 다시 경작권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주 다르게 들렸습니다. 댐으로 상징되는 개발이 덮친 자리, 거기서 또 다시 생겨난 농지, 국가를 상대로 한 경작권 싸움. 대지를 둘러싼 ‘발전’과 ‘밭전’의 어떤 싸움이 정부와 농부들 사이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정부는 이 땅은 ‘당신들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니 ‘나가라’고 말합니다. 농부들은 이 땅은 ‘내 것이 아니’지만, ‘국가의 것이니’, 다시 말해 ‘우리 모두의 것’이니 ‘함께 농사짓자’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네 것이 아닌데 누구 맘대로 농사짓냐’고말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에 어떻게 이 땅을 이용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해 좋은지를 말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거기에 운동기구를 갖다 놓고 자전거 도로를 내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수십년 간 이어오던 유기농 농사를 이어가고 오히려 생태농업의 중요성을 알리는 시설을 만드는 게 나은지.

2006년에 화성시에 갔을 때 ‘화성호’가 만들어지던 이야기를 어민들에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천과 마찬가지로 갯벌도 공유수면법상 국유지에 속합니다. 어민들은 거기서 어업을 할 수 있는 면허로서 ‘어업권’을 갖고 있을 뿐이지요. 정부가 어업권 갱신을 불허하고 어민들 모두를 쫓아내면서 내세운 원리와 방식도 이번 경우와 같았습니다. 그때 들었던 한 어민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공무원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지금까지 국가의 것에 빌붙어서 그만큼 먹고 살았으면 됐지, 뭘 더 해달라는 거냐”고. 마치 국가가 자기 바깥에 있는 제3자처럼 느껴졌답니다. 국민이 국가에 빌붙어 먹었다는 말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국유 내지 공유는 사적독점을 막고 공적인 이용을 위해 정부가 관리하는 자원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국유는 종종, 요즘에 특히, 행정부의 소유, 그것도 그것을 장악한 일파의 소유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들이 ‘민영화(사유화)’의 이름으로 많은 공공재산을 개인에게 팔어넘겨버립니다. 마치 국가가 사적 개인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벗어났습니다만, 두물머리 농민들은 단지 법을 어겨가며 공공재산을 사적 이득을 위해 탈취하고 있는 이들이 아닙니다.이들이 경작권을 승계해서 농사를 지으며 문제를 제기하는 건 오히려 이 땅의 공공성을 함께 생각해보자는 겁니다.어쩌면 많은 공공재산, 국가재산을 팔아치우고 사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정부를 장악한 일군의 사람들과 그들과 결탁한 개발업자와 투기업자들입니다. KTX민영화나 인천공항 민영화와 같은 직접적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4대강개발처럼 여러 공적 자원들이 개발이나 투자에 대한 참여 형태로 민간 건설자본이나 부동산투기자본의 사적 이익을 위해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두물머리 농민들의 농사짓기 투쟁은 우리에게 ‘공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발전’이 아니라 ‘밭전’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보입니다. 정부는 친환경농업육성법까지 재정해가며 한때 생태농업의 모범처럼 치켜세웠던 두물머리 유기농업단지를 한강오염의 원천이라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공공재산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무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두물머리의 밭들은 오염과 욕심의 상징처럼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밭들은 지난 수십년 간 이 나라를 지배해온 발전주의 세력(우리를 만난 농부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나라가 농부들을 탄압하는 걸 보면 농업에 무슨 원한이 있는 사람들 같다”고)들의 눈에는 낙후 산업으로서 농업이 갖는 상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두물머리 농부들에게 “관광농업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의 눈꺼풀에서 ‘발전’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가 강을 마구 파헤치면서도 ‘친환경녹색개발’, ‘친수’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은 ‘밭전’을 ‘발전’이라고 읽는 우리의 체계적 ‘오독’ 때문일 겁니다.

두물머리에 운동기구를 갖다 놓고 자전거 길을 놓으면 ‘친환경’이고 거기서 농작물이 자라면 ‘반환경’이라는 그 무서운 오독에 반대하기 위해, 두물머리에서는 지금 네 농가가 필사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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