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총파업 이후의 총파업

- 유일환(수유너머N 회원)

지난 메이데이 총파업은 정말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거리를 멈추고, 도시로 나가자!”라는 슬로건 아래 이질적인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의 목소리를 마음껏 내고, 또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누구는 거기서 수백 명에게서 수만 명 이상의 힘을 보았다고 했고, 누구는 기존의 감각과 사고를 전환케 하는 새로운 힘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쯤 되면 총파업 현장에서 도래한 새로운 힘에 대한 간증은 충분히 이루어진 듯싶습니다. 이제 궁금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우리는 늘 그 다음을 질문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이란 “그래서 총파업으로 뭐가 변했는데?”식의 수동적인 평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다음은 “총파업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능동적 기대를 담고 있습니다. <위클리 수유너머> 이번 호에는 총파업 이후 움직임을 담아봤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총파업을 위해 다 시 모인 사람들. 그들은 무슨 고민을 하면서, 또 어떤 일을 저지르고 있을까요?

지난 메이데이 총파업 이후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총파업 참가자들은 워킹그룹을 중심으로 몇 번의 회의를 거쳐 총파업 전시를 열었고(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6/9 ~ 6/18), 지금은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시와 토론회도 나름의 의미를 갖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제가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것은 전시와 토론회 그 자체보다 그걸 하게 만든 어떠한 힘입니다. 실제로 얘기를 들어보니, 전시와 토론회를 기획한 이유는 총파업 참가자들의 아주 단순한 고민에서 나온 거랍니다. 총파업 이후 뭐라도 하고 싶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냐, 라는 고민 속에서요. 저는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 총파업 이후에도 이들을 자꾸 모이게 하는 어떤 힘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계속해서 이들에게 다음을 준비하게 하는 것일까요? 각기 다른 영역에서 다른 활동을 하며, 다른 요구를 하고 있는 이들이(그렇기에 어떤 면에서 별로 상관없이 살아왔던 이들이) 왜 뭐라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대체 어떠한 힘이 각자 다른 요구와 다른 지반에 서있는 이들을 하나의 일관성의 평면으로 구성하게 하는 것일까요?

그 힘은 현 체제를 견딜 수 없으며, 중단시켜야만 한다는 분노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혹은 장 뤽 낭시의 말처럼 존재론적으로 “하나의 신체, 하나의 얼굴, 하나의 목소리”를 지향하는 우리 안의 잠재적인 힘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 체제를 중단시키고 새로운 요구를 주장하기 위해서, 혹은 존재론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함께 함’을 현행화하기 위해서 두 번째, 세 번째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만, 제 생각에 우리를 또 다시 총파업으로 달려가게 하는 보다 실재적인 동력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동력을 지난 경험,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 총파업에서 경험한 ‘함께 함’의 희열과 희망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이질적인 존재들이 하나의 신체로써 마주할 수 있었던 그 순간의 묘한 희열과 희망이 우리를 ‘그 다음’으로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난번에 경험한 희열과 희망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하지만 그것을 n승의 역량으로 고양시킨 보다 강한 ‘함께 함’의 희열과 희망으로 불러오기 위해 이렇게 두 번째, 세 번째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다시 함께 모여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서로에게 귀 기울여줄 그런 만남을 기다립니다. 총파업 ‘그 다음’을.

응답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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