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민주, 통합, 진보,

- 백납(수유너머R)

저는 통합진보당이라는 당명을 처음 들었을 때, 진보에 어떻게 통합이라는 수사가 붙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저의 머릿속에 있는 진보라는 것의 상은 통합보다는 분열에 가깝습니다. 여러 정당이 모여 하나의 정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그들의 논의를 통해 새로운 이념과 정책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정당에 이름을 붙일 때, 그 새로운 이념과 정책으로 당명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통합이라는 수사를 붙인다는 것은 어쩌면, 그 새로운 이념과 정책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니 혹여 그러한 새로운 이념과 정책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방하지 못하고 통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그 구성원들이 그 새로운 이념과 정책에 대해서 충분한 토론을 통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 통합은 진정한 통합도, 진정한 새로움도, 진보도 아닙니다. 진보대통합이 미래에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표면적 통합에 방점을 찍을 것이 아니라, 그 새로움의 내용에 방점을 찍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 민주주의의 상 또한 통합 보다는 분열에 가깝습니다.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 보다, 저마다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내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민주통합당이라는 당명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느낌은 통합진보당의 당명을 처음 들었을 때의 그것과 비슷했습니다. 그들의 야권연대를 볼 때, 통합당 둘이 통합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만 같았고, 그들은 민주도 진보도 아니고 그냥 뭔가 통합당 같은 느낌만 강렬하게 들었습니다.

통합진보당에서 당권파가 그들의 조직력을 과시하며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고 합니다. 혹자는 폭력에 집중하는가 하면, 혹자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결여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지적은 아무래도 뭔가 엇나간 느낌입니다. 현재의 정당정치에서 폭력은 일상이고, 당권파는 오히려 절차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자신의 전략을 관철시키려 합니다. 저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그 생명력을 제거시키고 박제화 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민주주의가 법칙과 절차로 표현될 때, 그러한 민주주의는 포착되고 지배되는 대상이 되어 정치엘리트들에게 이용되는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민주주의의 문제는 우리의 삶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집단 의사결정을 계속해서 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떠한 것이 민주적인 것인지에 대해서 묻게 됩니다. 그것은 그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문제를 직면하는 힘이 없을 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문제가 덮어지고, 적당한 즐거움으로 가장됩니다. 공동체에 대한 사유는 몇몇의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한 의사결정은 그것의 외피는 민주적이라고 할지라도, 그 실질은 분명 민주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정당이나 당파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 위클리 수유너머는 진보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통합이라는 이름뿐인 정치공학 속에는 진보도 민주도 없습니다. 내용도 없이 쉽게 이루어지는 통합, 문제를 문제로 드러내지 못하고 덮어두는 통합, 그런 통합은 아마도 진정한 통합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그 진정한 통합은, 민주도 진보도 함께 이뤄지는 통합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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