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성범죄 전과자들에 대해 야수가 될 것인가, 새로운 통치자가 될 것인가?

- 박정수(수유너머R)

우리 동네에 성범죄자, 아니 성범죄 전과자가 살고 있습니다. 13세 미만의 여자 아이를 강제 성추행한 사람입니다. 이름도 알고, 얼굴도 알고, 어디 사는지 정확한 주소도 압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법무부가 알려 줬습니다. 우편으로 선명한 칼라 명함판 사진과 범죄 내역, 주소지까지 상세히 알려 줬습니다. 최근 언론에서 성범죄 전과자의 성폭력, 살해 기사가 연달아 나오면서 신상공개 여론이 들끓은 덕분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여섯살 딸아이의 아비로서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한참동안 그 사람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얼굴을 기억해 둬야 하니까요. 사진 속 그 사람의 시선과 마주치자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벌써 이런데 동네에서 그 사람을 마주치면 어떤 마음이 들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가짐은 물론 어떤 눈빛과 표정을 지을지, 어떤 행동으로 그를 대해야 할지 당최 모르겠습니다. 법무부는 그 사람이 실제로 거기 거주하지 않으면 신고하라고만 알려줬지 동네에서 만나면 어떻게 대하라는 건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알아서 하라는 것이겠죠? 그런데 정말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아직 물어보지 못했는데, 사진 속 그 사람을 쳐다보며 잠시 끔찍한 상상에 빠졌습니다. 그 사람 옆집이나 윗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를 대할까요? 다행히 아파트 단지가 없는 동네라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일은 없을 텐데, 동네 식당이나 마트에서 만나면 젊은 여성이나 애기 엄마는 어떻게 대할까요? 대놓고 뭐라 하지는 못해도 의혹과 공포의 시선을 보내며 슬금슬금 자리를 비키지나 않을까요? 그걸 본 가게 주인은 또 그를 어떤 낯으로 대할까요? 아내의 단골 미용실 주인처럼 동네의 크고 작은 일을 죄다 꿰고 있는 분들 덕에 사진 속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금방 알려질텐데, 낯에 돌아다니면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고, 밤에 돌아다니면 또 무슨 짓 하려고 저러나 수군댈텐데, 사진 속 그 사람은 언제,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닐까요?

자기를 향한 수군거림과 의혹의 눈길에 화가 나서 행여 대거리라도 할라치면 그 소문도 금새 퍼질텐데 혹시, 제가 아는 ‘쫌 노는’ 중고딩 청소년들이 치기어린 의협심으로 그 사람 집에 돌멩이라도 던지지 않을까요? 악에 받친 그 사람이 더 은밀하게, 더 치밀하게, 더 잔혹하게 성 폭력을 모의하지는 않을까요? 이런 저런 소문이 퍼지면 당장 집주인이 나가라고 할 텐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자가 소유자라도 다른 사람들 눈이 무서워, 저 같으면 이사하고 말 것 같은데 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동네로 이사 가면 우리야 시원하겠지만 그 동네 사람들은 또 어떨는지, 다행히(?)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살 곳이라도 생기면 모르겠지만, 결국 감옥보다 더 철저하고 살벌한 시민들의 감시와 이지메를 피해 더욱 더 비가시적인 위험 지대를 어슬렁거리지나 않을까요?

이런 끔찍한 상상을 하다 보니 은근히 법무부가 원망스러워집니다. 이토록 자세한 신상 정보를 알려주면서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일언반구도 않는 게 야속하다 못해 의구심까지 듭니다. 당신네들이 알려 달라고 아우성 쳐서 알려 줬으니 자기네들은 할 일 다 했다는 심사일까요? 구워 먹든 삶아먹든 당신네들이 알아서 하라는 걸까요? 법적으로는 더 이상 처벌할 수 없으니 더 하고 싶으면 당신네들이 알아서 안 보이게 하라는 걸까요? 이런 얼토당토 않은 의구심에 사로잡히다 보니 혹시 법무부는 우리 선량한 시민들을 ‘야수’로 만들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치닫습니다. 아무런 죄책감이나 거리낌도 가질 필요 없이 충동적 공격욕과 편집증적 공포에 휩쓸려 먹이감을 기다리는 야수의 무리 속으로 한 마리 짐승을 던져 놓는 쾌감을 맛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당치 않은 생각까지 듭니다. 법적으로는 아무 잘못 없다는 로마 총독부의 손아귀에서 예수를 빼앗아 공개처형장으로 내몬 유대인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우리가 처리할 테니 죄수를 내 놓으라’며 죄수 호송차 주위로 몰려든 고전적인 군중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혹시 법무부는 성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우리 시민들을 그런 야수의 모습으로 상상하지는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립니다.

설마 그럴 리 있겠습니까? 법부무로부터 성범죄자들을 넘겨받은 우리 시민들을 야수 취급한 저의 발칙한 상상력을 저 스스로 꾸짖습니다. 법무부가 포기한 성 범죄 전과자에 대한 ‘통치’(gouvernment: 인간의 생명과 영혼과 일상의 품행을 지도하는 일)를 이제 시민사회가 떠 안게 되었는데 설마 동물적인 공포와 복수심에 사로잡히거나 교과서에서 배웠던 북한의 ‘5호 담당제’처럼 ‘간수’ 노릇이나 하고 말겠습니까? 정부가 포기한 성 범죄 전과자에 대한 새로운 통치능력과 기술을 멋지게 창안해 내지 않겠습니까? 설마 정부와 황색저널리즘에 사로잡힌 언론이 조장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야수로 전락하기야 하겠습니까? 항상 그래 왔듯이 국가가 통치를 포기할 때 민중들 스스로 새로운 통치력을 발휘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호 <위클리 수유너머>에서 다룬 ‘새로운 현장활동가, 지킴이’들처럼 말입니다. 정부가 포기한, 아니 정부가 방치한, 아니 정부가 법적 보호권 바깥으로 추방한 삶의 현장에서 새로운 삶의 통치력과 통치기술을 발명해낸 지킴이들처럼. 그들이 항상 그렇게 해 온 것처럼 무언의 장벽을 허물고 각자의 마음을 서로에게 터놓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응답 1개

  1. […] | 편집실에서 | 성범죄 전과자들에 대해 야수가 될 것인가, 새로운 통치자가 될 것인가?_박정수(수유너머R)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