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 일지, (아홉 번째) -고마운 밤(栗) 이야기

- 김융희

이상 기후로 요동을 쳤던, 참으로 가혹하리만큼 기상 변화가 심했던 지난 한 해였다. 그럼에도 잘 극복하며 쑤욱 자란 작물들의 영근 결실로 가을이 한창 무르익고 있다. 옷나무, 가죽나무, 그리고 밤나무, 벚나무, 느티나무 등의 우리집 가목들로부터 시작된 단풍이, 이제는 앞산 뒷산을 온통 곱게 물들이고 있다. 작파까지 생각했던 농사의 작물도 이제는 알뜰한 결실로 수확이 한창이다. 그동안 지나쳤던 불평 불만의 날씨 투정에 대한 염치가 밝은 햇살에 푸른 가을 하늘을 우러러 보기조차도 민망하다. 이 모두가 자연의 순리인 것을, 조급함으로 서둘러 애닯고 안달이었던 것이다. 특히 뒤안의 밤나무를 쳐다보기가 여간 쑥스럽다.

좁살스러운 나의 시시껄렁한 잔말을 또 지껄어야 할 것 같다. 금년 “밤 줍기”로 부터 시작된 나의 ‘밤 이야기’이다. 나는 새삼 밤으로 인한 그의 은덕으로 금년의 가을이 매우 흐뭇하다. 그 사연인즉, 얼마 전부터 나의 아내가 입맛이 떨어져 몹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집 햇밤으로 구미를 돋아서 건강을 회복한 것이다. 입맛을 잃어 매사에 짜증을 부렸던 아내였다. 이런 그가 지금은 웃음을 되찾고, 매사에 감사하며 지낸다. 활력도 되살아났고, 탄탄한 근육으로 건강해 보인다. 열심히 밤을 공급해 준 내게 고마운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이 모두가 밤의 은덕에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우리집 뒤안에는 ‘토종밤’으로 일컫는 고목의 큰 밤나무 세 그루가 있다. 그리고 그가 새끼를 쳐, 갓 열매를 맺기 시작한 몇 그루가 더 있다. 토종밤은 알이 잘고 밤알의 표면도 광택이 없어 볼품이 없다. 그러나 그 맛은 고소하고 포근포근하여 매우 감칠맛이 있다. 개량종과는 맛의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밤나무들은 우리집만이 아닌 우리 마을의 주위에도 있어, 해마다 밤이 익기 시작하면 밤을 주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외지에서 몰려온다. 집을 비우기 일수인 우리집은 수시로 그들에게 밤도둑을 맞는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 나는 밤 줍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생각나면 조금씩 주어오곤 했을 뿐이다. 식구들이나 가까운 이들께 권하지만, 그것도 잘 안 통했다. 그동안 떨어진 밤을 거의 방치했던 것이다.

그런데 금년엔 달랐다. 지난 여름 호우로 밤나무 밑에 약간의 사태가 났다. 복구를 했더니 풀 없는 나지위에 쏟아진 밤알들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엄벙 땡 눈에 띈 밤을 대충 주웠는데도 통이 넘칠 듯 하게 가득 주웠다. 나는 얼른 아내와 자식들에게 탁송을 했다. 그것이 계기였다. 다음 날 ‘밤을 더 보내 달라’는 전화가 왔다. 이번엔 샅샅이 찾아가며 밤을 주웠더니 금방 통에 가득 찼다. 두 통이 넘게 주웠다. 제법 큰 박스에 가득이다. 독촉 전화까지 받았으니 당장 또 탁송했다. 예년 같으면 일 년을 두고 먹을 양이었는데, 계속 ‘밤을 보내라’는 전화질이다. 단순한 주문만이 아니다. 놓치지 말고 모두 주워서 남에게 주지도 말라는 평소의 그답지 않는 당부까지 한다.

아내는 잔 일을 싫어하는 나를 알기에, 밤을 맛보라며 찔 줄을 모른 나를 위해 찐 밤을 보내 왔다. 한 입 깨물어 본 밤 맛이 참 좋왔다. 그러나 그동안 몇 차례씩이나 보내준 꽤 많은 양의 밤을 그만 달라는 응답은 커녕, 계속해 밤타령이었다. 더구나 무엇이나 주기를 일삼는 그가, 남에게 밤을 주는 것까지 말리면서 밤 탐을 계속하는 그의 속내가 궁금하다. 어떻든 이처럼 한동안 나의 바깥 일은, 날이 밝으면서 밤 줍기로 일과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이런 밤 줍기에 재미도 붙었고, 줍는 여러 이력도 생겨 ‘밤 줍는 달인’이 되었다.

밤 줍기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알겠지만, 줍고 돌아서면 또 금방 발견되는 것이 밤줍기의 묘미이다. 왔던 길을 다시 살핀다. 제법 주의 깊게 샅샅이 주웠다고 생각하며 돌아서 다시 보면 밤이 새롭게 나타난다. 또 돌아서며 살피면 이번엔 장애물에 살짝 가린 밤알이 눈에 띤다. 다시 돌아서며 밤송이가 있어 걷어찼더니 밤송이엔 밤 알이 세 개나 들어있다. 이제는 정말 다 주었으려니 하며 여차 돌아섰는데 머리를 땅에 박고 밑을 치켜든 밤알이 또 있다. 정말 그만이라며 돌아서려는 찰라, 요란하게 나무에서 밤알이 떨어진다. 참아 더는 없으리라 단정하면서 보면 반드시 또 나타난다. 꼭 나를 놀리는 것 같다. 이처럼 밤 줍기는 종일을 계속할 수 있다.

여름 맨 나중에 비릿한 향과 더불어 밤꽃이 피어서, 추석 무렵이면 여름 내내 키워온 밤은 결국 열매가 익어 벌어지며 알밤이 쏟아진다. 자기 열매에 애착이 강한 밤나무는 열매가 염려되어 가시 밤송이를 만들고, 또 단단한 외피에 두터운 속옷까지 입혔다. 어떤 조건에도 어김없이 적정 절기인 추석상에 맞춰 열매를 제공한다. 그래서 추석 무렵이면 밤나무 밑은 종일 밤 줍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성급한 이는 밤이 익기도 전부터이다. 모여든 인파는 동도 트기 전부터 해가 서산을 넘어 어두워질 때까지 시도 때도 없이 북적인다. 조용한 산촌의 우리 동네는, 말소리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 때가 이때인 것이다.

밤나무는 이때가 괴롭고 슬프다. 익기도 전, 떨어지지 않는 밤을 따려고 나뭇가지에 올라 사정없이 흔들고 장대로 들이쳐서 가지가 꺾기고 요동친다. 충분히 익으면 아낌없이 내어 준 열매를 기다리며 지켜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밑둥을 발로 차고, 큰 돌맹이를 들어 내리친 것이 부지기수로 거의 다인 것이다. 마지막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모두 내어줬다. 우리집 밤나무는 이번 사태로 뿌리가 잘리고 노출이 심하다. 오히려 햇빛을 막는 잣나무 숲으로 가지가 말라 죽었고, 수족인 잎이 썩어 스스로 양분을 제공한다.

혜택을 받기 보담 자기를 내어주고 희생함으로 남을 돕는 밤나무는 참 고마운 이웃이다.
탐스레 익어 활짝 벌어진 밤송이를 보면 우리는 풍만한 희열을 느낀다. 꽃이 피면 양봉업자는 아예 벌통을 나무 아래 옮겨와 꿀을 딴다. 그 유명한 밤꿀이다. 밤은 영양이 풍부해 근육을 탄탄하게 하며, 밥맛을 돋운다. 밤벌레는 몸집이 꼭 잘 여문 콩알 같다. 나의 아내도 밤이 제공한 특혜를 톡톡히 본 것이다. 이처럼 고마운 밤나무를 나는 그동안 너무 외면하며 살았다. 여름 내내 결실을 위해 모진 삶에도 유유자적한 척, 우리에게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며 든든한 이웃이 되어준 밤나무이다. 내가 그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은 무었일까? 이제부터 관심을 갖고 고민해 보고 싶다.

응답 2개

  1. 콩콩말하길

    끝없는 밤줍기 대목에서는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어요.
    눈앞에 선한 장면 때문에요^^
    잘 읽었습니다~

  2. 말하길

    밤이 입맛을 돋구고 기력을 회복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엄방 땡 눈”이라는 토속적인 표현도 재밌어요. 밤 줍기의 묘미가 그런 거였군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해서…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