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누가 기타의 주인인가

- 주노정

저 요즘 기타줄 좀 튕깁니다. 작년 연말 아는 친구로부터 기타를 한동안 배운 이후로, 요즘은 혼자서 주구장창 한 곡만 매일 연습합니다. 그 친구에겐 일주일에 한번씩 3개월 배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겨우내 연습을 잘 하지 못하다가 날이 풀린 요즘 다시 기타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연습은 더도 덜도 아닌 매일 딱 10분정도만 합니다. 감을 잊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반복되는 일이지만 새로운 곳에서 ‘틀리는’ 재미가 있습니다. 기타 잘 치는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처음 기타를 칠 때는 기타줄을 누르는 왼손가락이 ‘아려서’ 애를 먹었습니다.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배기는 과정이죠.

작년 10월, 제 기타 선생은 저와 단둘이 벌이는 ‘연말 합동 공연’을 야심차게 제안했습니다. 처음 한 달은 기타의 기본적인 이론과 기술들을 배우고, 나중 두 달은 가요 4곡을 카피, ‘마스터’해서 발표하자는 계획과 함께 말입니다. 기타 초보자로서, 공연이라기보다는 학예회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부담이 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면, 평소에 더 열심히 연습하고 실력도 금방 더 좋아질수 있을거란 꿈에 부푼 생각에 넙죽 ‘오케이’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흐는지.. 하고 싶은 곡은 왜 이리 많은지. 갈팡질팡 하다가 어느날 눈을 떠보니 공연이 3주 남아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한 달 남겨놓고 계획했던 4곡 중 두 곡은 포기. 일단 “나머지 잘할 수 있는 2곡만 열심히 연습해서 공연 잘 해보자” 기타 선생과 서로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공연 일주일 앞두고, 홀로 남겨져 불굴의 의지로 연습을 해야하는 시점에서, 잠시 좌절하여 나름의 ‘객관적 시각’으로 스스로의 기량을 반성해보았습니다. ‘2곡도 벅차다. 한 곡만 연습했어야 했는데…’ 울고싶었습니다. 애시당초 초보의 실력으로는 그 모든 것이, 무리한 계획이었습니다. ‘의욕 과잉’이었죠.

공연이 몇 일 남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한 지인이 제게 직접 말을 걸더군요. “너, 기타 왜 치냐”. 저는 의아했습니다. 아무리 내가 아무리 기타를 서툴게 쳐도 그렇지, 모욕감을 주듯한 뉘앙스로 말하는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 사람 역시 기타를 나름 잘 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아니면 실력자여서 할 수 있는 말이었을까요? 그런 그가 여기에 한마디 덧붙입니다. “가난한 애들이나 기타치는 거야”.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매일 할 일 없이 빈둥대는 듯 보이는 백수 친구가 돈 안되는, ‘되도 않는’ 기타만 치고 ‘자빠져’ 있으니 불쌍해 보일 법도 합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아주 ‘후달리게’ 연습 했습니다. ‘분노의 연습’이라고나 할까요. 드디어 공연 당일. ‘연습을 공연하듯, 공연을 연습하듯 하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저 같은 ‘초심자’에겐 되뇌이고 되뇌어도 느낄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긴장해서 공연을 망쳐버리고 말았죠. 나름 열심히 준비한다고는 했는데, 누구 말대로 모두의 공연장을 저의 연습 공간으로 만들어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씁쓸했습니다.

충분히 연습을 하고나서 공연에 임하는 것이 듣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건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이지요. 그런면에서 저에게 청중의 귀를 어지럽힌 ‘죄’를 적어 넣은 ‘반성문’을 걸어놓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마디 변명하자면, 초보자로서 비록 실패에 가까운 성과였지만, 지금까지 나름 열심히 연습한 결과를 내놓고 당당한 태도를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겠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너무 뻔뻔한가요?

저는 기타를 배우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름의 ‘예술’ 작업을 체험했다고 자부합니다. 악기를 다루며 사람들과 대화하며 관계 맺고, 늘 변하는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증폭되는 고민에 귀를 기울이며, 흔들리는 믿음의 문제에 봉착하고, 한계에 도달한 상황을 온 몸으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 상황, 고민, 가치, 한계 그 어떤 것이라도 자기만의 것을 가지고 드러낼 수 있다면, 꼭 악기나 미술을 다루지 않더라도 그 모든 이들이 다 예술가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들까지 말이죠.

이번 위클리 수유너머 157호는 기타 만들‘던’ 사람들, 콜트콜텍에 대한 두가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지난 4월 수유너머N에서 열린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과 예술가들의 화요토론회, 그리고 해고노동자들과 연극만들기를 시도하는 진동젤리의 제안이 있습니다. 조만간 이어지는 콜트콜텍 2탄도 기대해주세요^^

응답 1개

  1. 서촌댁말하길

    듣고 싶네요, 다 잘됐다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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