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우백당 식구들(2) 건우의 애정 행각

- 김융희

‘우백당 식구들’ 두 번째 이야기는, 우리 집 지킴이 견공들, 특히 동내 건달꾼으로 통하는 “건우”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백당”은 당호이며, “건우”는 우리 집 최고령 수캐의 이름이다. 우백당처럼 산중에 있어 인적이 드문 외딴 집에선 낯선 인기척을 비롯한, 멧짐승들의 집 밖 동태에 여간 민감하다. 외딴 산촌의 생활에선, 사람과 작물의 보호, 안전은 물론 심심풀이 말벗으로 통하는 개들의 도움이 여러 곳에서 꼭 필요하다.

 

특히 건우와 같은 명견의 쓰임이란, 흔히 있을 법한 우리 집 일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정성 드려 가꾼 농작물을 마구 먹고 짓밟아 버린 사나운 동물들이 수시로 접근해 온다. 노루, 고라니, 산토끼들은 물론, 사나운 멧돼지, 산고양이, 족제비, 살쾡이들도 늘상 나타난다. 인명 피해도 우려되며, 가끔씩 집짐승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피해의 우려를 우리 지킴이들이 잘 감당해 주고 있는 것이다. 건우는 아예 밤이면 밤을 새우며 밭을 지키고 있다.

 

시골에선 예삿일이며 우리 동내에서도 흔히 겪는 일로, 한 번은, 한 낮인데도, 겁도 없이 고라니가 집 안까지 들어왔었다. 물론 고라니는 금방 건우에게 발각되어 여지없이 물려 죽었다. 벌써 멧짐승들에겐 건우의 소문이 쫙 퍼졌을 법한데, 아마도 이 고라니는 건우의 존재를 전혀 몰랐었나 보다. 때때로 상처투성이인 채 만신창이의 건우를 보게 된다. 멧돼지 같은 맹수와 겨루면서 당한 상처일 것이다. 건우에게는 이런 일들이 쉴 새 없이 수시로 있는 일이다. 때로는 그의 처절한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건우는 어려서 사냥개로 훈련을 받은 흰색의 진돗개이다. 매우 영리하고 용감한 명견이다. 강원도 평창의 어느 애견가가 십여 년을 기르다가 암캐인 ‘분이’와 함께 한 쌍을 내게 물려줘 우백당 식구가 됐다. 황갈색의 분이도 아주 잘생긴 진돗개로 건우와도 잘 어울리는 금실지락의 내외간이다. 사납기로는 내외지간의 두 놈이 상통이되, 주인을 대함은 상반이다. 십여 년을 함께 지내면서 매일 끼니를 제공하는 내게, 분이는 고분고분히 주인을 반기며 따른 데 비해, 건우는 지금까지 마음을 주지 않은 채, 아직도 손에 전혀 잡히질 않는다.

 

원래 진돗개는 「강아지 때부터 길러야지, 성개가 되면 주인을 잘 따르지 않고 절대로 손에 잡히질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 보면 분이보담 건우가 더 혈통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사실은 건우가 천방지축으로 동네 건달이 됨도 그의 혈통의 속성 때문이겠다. 손에 잡히지 않아 자유의 몸이 되면서 비롯됨일 터이다. 암캐는 일 년에 두어 번의 발정기를 갖는데, 수캐는 멀리서도 암캐의 발정 낌새를 용케도 알아챈다. 듣는 말로는 그들이 십 리 밖에서도 발정 정보를 훤히 안다고 한다. 부근엔 건우처럼 자유의 탕자는 거의 없다. 동내 개들은 암캐, 수캐 모두를 메달아 기른다. 그러니 건장한 건우 놈이 유혹을 물리칠 수가 없을 것이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당한 것은 우리 집이다. 바람이 나면 이 놈이 집에 붙어 있지를 않는다. 더러 어쩔 땐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한다. 건우의 애정 행각은 때도 곳도 없어, 그만큼 지킴이 노릇에 소홀한 것이다.

 

다행히 외도 바람을 피우면서도 건우의 제 짝을 챙기는 것은 여지가 없다. 그동안 분이의 발정기를 놓친 적은 거의 없었다. 고맙게도 가끔은 건우로 인해 뜻밖의 식구가 늘기도 한다. 종잣턱이라며 생각지도 않은 강아지를 한 마리씩 보내준 집도 더러 있었다. 강아지를 갖게 해 준 건우의 공로에 대한 보답인 것이다. 그런 건우가 언제부턴가 행동이 처지면서 외출도 삼가며 분이 곁에 머물러 지내는 것이다. 노쇠기에다 기력이 떨어져 암캐의 요구를 감당하기가 어렵나 보다. 그러데 이놈 행동거지가 또 가관이다. 자기 집이 있는데도, 아닌 짝궁 집에서 분이와 함께 기거하며 지내는 것이다. 마치 고향에서 바람둥이 할아버지가 늘그막에 본처의 곁에 붙어사는 것을 봤던 옛적 일을 다시 본 것 같아, 나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건우의 가족은 분이를 말고도 살살이와 야들이가 있다. 건우와 분이의 자식들로 암캐인 살살이는 눈치가 빨라 살살거리기에 붙은 이름이고, 야들이는 수캐답지 않게 보드레해 얻어진 이름이다. 외모도 성깔도 부모를 닮아 살살이는 분이와 치정 싸움이 붙었을 때면, 엄마도 몰라보며 말리지 않음 끝장이 없다. 야들이는 애비인 건우와 공동 사냥 때면, 역시 애비를 닮은 수캐답다. 이들의 활동으로 우리 집 경비는 그야말로 완벽하여 든든했다.

 

그런데 건우 가족에게 불운이 닥쳤다. 너무 갑작스런 어이없는 불운이 참으로 당혹스러웠다. 땡볕 더위의 한여름, 상한 음식을 잘못 먹은 분이가 손쓸 틈도 없이 식중독으로 죽었다. 며칠 사이를 두고 살살이는 집 앞에서 차에 치여 죽었고, 야들이는 갑자기 종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같은 날 동내에선 두 마리의 개가 더 없어졌었다. 개 도둑놈에게 감쪽같이 잡혀갔을 것이다. 정말 한 달 사이에 너무도 어이없는 재앙이었다. 늙어 빠져 기력 없는 건우의 모습이 너무도 쓸쓸해 보였다. 너무 측은해 보여 달래어보려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다. 건우는 다시 밖으로 쏘다니면서 집에는 잘 붙어 있지를 않았다.

 

사람 속성을 가장 많이 닮은 동물이 견공이다. 개를 기르다 보면 쉽게 정이 들면서 관계를 끊기가 쉽지를 않았던 경험자가 많다. 이것이 싫어서 다시는 개를 기르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도 자주 보게 된다. 나 역시 더 이상 견공 식구를 맞고 싶지를 않았다. 맥없는 건우를 보면서 많이 속상했다. 그렁저렁, 이렁 일이 벌써 일 년도 넘었다. 어떻든 우리 집 지킴이는 있어야 한다. ‘삼 일째인데도, 집 나간 건우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며 아내가 걱정을 했다.

 

건우를 위해서도, 집 지킴이로서, 견공 식구를 들여야겠다는 작심을 했다. “우백당”엔 다시 새 식구로 귀여운 “황주” “백주” “흑주”가 늠름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황갈색의 황주는 족보 있는 진돗수캐이며, 백구인 백주는 역시 진돗암캐이다. 흑주는 검정색 몸통에 발목이 호랑이 얼룩이다. 아직도 건우는 안정이 안된 듯 방황의 계속이지만, 두어 달이 넘어서면서 견공의 가족 구성을 마친 우백당엔 다시 생기가 넘치고 있다.

응답 1개

  1. 말하길

    재밌어요. 샘. 한편의 소설을 보는 것 같아요. 이 떠오르기도 하고…유머와 감동을 실어나르는 샘의 문장력이 날로 빛을 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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