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이제 얽매임에서 풀리려나… 공연 연습에 지쳤다

- 김융희

자정이 임박해서야 마지막 연습을 끝내고 헐떡거리며 집에 돌아오는 길이다. 원고 독촉을 비롯한 여러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동안 밀린 일들이 첩첩이지만, 지금은 모두가 관심도 의욕도 없다. 아직도 머리에선 ‘다이네자우버빈덴비데 바스디모데… 디젠쿠스데간젠밸트….. 블위더위베음스터넨젤트무스아인.. 바테르보넨.. 멘센알레 멘센알레…. 합창곡들이 계속 떠오르며, 입술이 중얼거려지고, 귀속에서는 환청이다. “환희의 노래”인 사중주 합창곡이 즐겁기는커녕, 때로는 지겨워 짜증스럽다. 그리도 지겨운 연습이 끝나서 이제 공연만 남았다.

 

오산문화재단과 코리안체임버오페라단 주최, 경기예술진흥원 주관으로 오산예술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한일 친선 음악회 & 베토벤 합창 교향곡” 음악회가 2013. 12월 7일에 열린다.

참가 팀은 내가 소속된 “노아남성콰이어”, 일본에서 “나리타악우협회합창단” “프로이데 JAL 항공합창단” 그리고 “오산청소년합창단” “오산시민합창단”으로 반주는 코리안체임버오페라 하이브리드오케스트라이다. 참석 인원만 150명이 훨씬 넘어 거의 200여 명이 참가해, 베토벤의 심포니 9번 4악장인 ‘합창’을 부르는 대공연이다.

레퍼토리도 매우 다양해 ‘오산청소년합창단’의 ‘River(영화 미션ost)’, ‘Manger Song(뮤지컬 구유의 신비)‘, ‘나눔‘, ‘다시 일어나요‘, ‘샹젤리제‘. 그리고 ‘노아남성콰이어’의 ‘꽃 파는 아가씨’, ‘하나님께 영광’,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부른다.

일본팀 ‘나리타악우합창단과 잘항공합창단’의 ‘날개가 있다면…’, ‘So~Ran’, ‘세상에서 하나뿐인 꽃‘, 그리고 ‘노아’와 ‘일본팀’이 ‘한일 합동곡’으로 ‘고향의 봄’과 ‘Hu ru Sato’를 부르며, 끝으로 ‘코리안체임버오페라단’ ‘코리안체임버오페라 하이브리드오케스트라’ ‘노아남성콰이어‘ ’일본 나라타악우협회합창단과 잘항공합창단‘ ’오산청소년합창단‘ ’오산시민합창단‘이 함께 참가하며, ‘베토벤의 No9 합창 교향곡 4악장’을 함께한다.

“심포니 9번”은 기획에서 작곡까지 30여 년의 오랜 기간 동안 정성을 드려 완성된 베토벤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곡이다. 심포니 9번의 4악장인 “사랑의 송가”를 참가 여섯 팀이 한 번의 면식도 없이 독자적 연습만으로 함께 원어로 부르는 것이다. 특히 4중주의 합창곡은 고저음과 템포의 변화무쌍으로 프로들도 부르기가 매우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까다로운 곡을 순수 아마들인 우리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연습을 마쳤지만, 우려의 불안감을 결코 지울 수 없다.

 

공연 준비로 정신 없이 보내다 보니 벌써 12월이다. 한 해가 이렇게 또 가고 있다. 그동안 기회를 놓쳐 못내 아쉬운 일들이 많았다. 특히 내가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좋은 연주를 놓쳤다. “요한 세바스챤 바흐” 작곡의 250곡 전곡을 연주하는 “펠릭스 헬 파이프오르간 독주회”를 꼭 들으려 했는데 놓치고 말았다. 내게 행운처럼 주어졌던 우연의 기회를 놓친 상실감은 지금도 여전해, 그 아쉬움이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늦게나마 그 연주 소식을 소개하여, 아쉬운 나의 마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 작곡인 250곡 전곡의 연주가 한 천재 오르간이스트에 의해 서울에서 있다. 2013년은 한독 수교 1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 깊은 해를 기념하는 행사로 독일이 낳은 천재 오르가니스트 “펠릭스 헬”의 연주를, 주한 독일 대사관의 주최로 열린 것이다. 지난 11월 16일부터 12월 7일까지 장장 10일 동안 20시간의 방대하고 힘든 연주이다. 연주회는 오산에서 우리 공연이 있는 날 함께 모두 끝난다. 나는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삼 일간의 연주 중 딱 한 번, 12월 23일의 공연을 들을 수 있었다.

 

바흐는 개혁 성향의 독실한 루터파 크리스챤으로 예배용 음악을 주로 작곡했지만, 대중을 위한 콘서트 음악도 다양하게 작곡했다. 가능한 잔잔하고 심플한 예배용 음악을 바라는 당시 교계에서는 그를 세속적이고 번잡한 음악으로 치부해 오해와 견제가 심했었다. 오르간 음악에 대한 편견은 우리에게도 아직 있는 것 같다. 물론 오르간 음악이 예배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백그라운드 뮤직인 교회 음악과 쎈터에서 연주하는 콘서트 사운드는 전혀 다른 것이다. 생상스가 오르간 이상의 음악은 없다고 극찬한 것이 파이프 오르간 음악이다.

바흐는 세계 음악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그의 작품은 음악사를 변화시켜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그의 음악은 그 어떤 작곡가도 미치지 못한 영역까지 확장한 그 자체로써 모든 음악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콘서트 음악은 정열이 넘쳐 익사이팅하고 열정적이다. 혁신과 창조적 천재가 되려면 바흐 음악을 들으란 말도 있다. 음악 자체에 몰입케 하는 열정이 깃들어 있어 영혼과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정신적 체험 음악이 바흐의 음악이다.

우리는 지난 해 7월에 바흐가 평생을 봉직하며 활동했던 독일 라히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초청을 받아 공연을 다녀왔다. 바흐가 25년 이상을 사용했던 파이프 오르간이 아직도 보존돼 있어서 볼 수 있었고, 우리는 예배당에 안치되어 있는 묘지 곁에서 공연을 했다. 그 여운은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이런 인연의 바흐 음악을 천재 오르간이스트 “펠릭스 헬”의 이번 연주로 전곡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펠릭스 헬”은 독일 Pfalz에서 났다. 그는 7살에 피아노를 배웠고, 아버지의 권유로 오르간을 시작했다. 오르간 입문 3개월 만에 그는 작곡을 했고, 9살에는 벌써 오르간 독주를 했다. 이후 그는 연주를 위해 전 세계를 순회하며 년 50회를 넘게 연주했고, 최근에는 년 90회까지도 소화한다고 한다. 그는 21세라는 나이로 J. S. Bach의 250곡에 달하는 풀 사이클 솔로 오르간 작품을 20시간에 걸쳐 완주했고, 지금까지 250곡 전곡을 세 번씩이나 연주 기록을 세웠다. 2007년 연주 때에 그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인 2017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완주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다짐을 깨고 한국에서 꼭 한 번 더하고 싶다는 소원으로 이번 연주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의 연주회는 11월 16일 영산 아트홀에서 시작해, 11월 18일 장로회 신학대학 한경직 홀, 11월 21일, 22일, 23일, 경동교회 본당, 11월 28일, 29일, 30일 서울 신학대 대강당, 그리고 12월 6일 이화여대 김영의홀, 12월 7일 다시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250곡 전곡이 차례로 나뉘어 모두 끝난다. 음악이 인생을 바꾼다는 말을 구두선이 아니라 직접 체험했기에 누구보다 절실하게 말할 수 있다는 “펠릭스 헬”이다. 연주회가 끝나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직장이 힘들거나 가정 문제로 머리가 아팠는데 연주회를 듣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는 말을 청중들로부터 많이 들어 왔다고 한다. 이번 연주회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기를 바란다는 그가, 아무리 초보자라도 파이프 오르간 음악은 누구나 감상할 수 있으니 클래식 음악이라 어렵다고 외면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그는 우리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함께했고 인사도 나눴다. 해맑은 모습에 젊음과 열정이 넘치는 그의 외모에서 느끼는 따뜻함은, 열 번의 연주 중 단 한 번의 공연을 들었지만 그의 말을 충분히 나는 이해할 것 같았다. 꼭 연주에 참석하여 더 많이 듣고 싶었던 공연을 놓친 섭섭함은 아마도 나만이 아닐 듯싶다. 좀 더 빨리, 그리고 미리 알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공연 연습 후유증을 말하려 했던 것이 엉뚱하게도 다른 공연의 소식으로 끝냈다.

일모도궁(日暮途窮 늙은이 처지)의 망령이란 자괴감에 몹시 민망스럽다.

 

응답 1개

  1. 말하길

    한글로 적은 ‘합창’ 가사가 마치 마법의 주문 같아요^^ 고생하셨겠지만,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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