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 일지 11. 봄을 맞는 길목에서..

- 김융희

지난 겨울 내내 스스로 지친 혹한이 잠깐 숨돌리는 기미를 몰랐던 나였다. 느슨해진 기온에
날씨가 많이 풀린줄 알고 수도를 방치했다가 지금 혹독한 고통을 겪고 있다.
두어 달 동안을 계속 영하 20도를 밑도는 혹한이 반짝 풀려, 영상의 화창한 날씨였었다.
그동안 계속 흘려 보낸 물이며, 모터를 돌리는 전기 료금에 신경이 쓰였다. 또한 겨우네 계속
흐르는 물소리가 지겹기도 했다. 느슨해진 기온에, 나는 행여 얼까봐 열어놓았던 수도를
틀어 잠궜다. 그런데 반짝 풀렸던 날씨가 다시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면서 계속된 추위에
방심했던 수도가 꽁꽁 얼어 물길이 꽉 막혀버린 것이다.

속담에 ‘굿 구경 하려면 계면떡이 나올 때까지 하라’ 했거늘, 약빠른 고양이 앞을 못본 꼴의
우둔함이 한없이 원망스럽다. 벌써 입춘을 보내고 우수를 맞았으니 이젠 봄이란 설레임으로,
봄맞이 준비를 서둘렀던 것이 잘못이었다. 떡방아 소리 들린다고 김치국을 찾는, 삼 년
겨룬 노망태기를 이 어쩌겠는가. 헛 욕심을 켜도 유분수이지… 글쎄 어쩌자고 이리도 경망
스레 수선부림인가 싶다..

영하 8도의 아침 날씨가 한 낮엔 영상 8도로 올라와 있다. 양지 바른 곳엔 봄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오후이다. 마침 허드렛물이라도 길러 써야겠다며, 겨울동안을 줄곧 외면해 왔던
앞개울로 내려갔다. 마치 썰지 않은 두부모처럼, 강바닥이 온통 두터운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 물을 뜰 곳이 없었다. 양지 바른 둑 아래 얼음 밑에서 맑은 물이 계속 흐르고 있는,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물길을 찾았다.

맑은 물밑에 흰 물체들이 흩어져 있어 자세히 보니 어린 물고기들이 죽어 있었다. 지난
겨울의 혹한을 견디지 못해 이처럼 얼어 죽었나 보다. 듬성 듬성, 개구리들도 함께 죽어 있
었다. 전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경험의 충격이다. 혹한에 물고기들의 떼죽음으로 가두리
어장에서도 큰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는 들었다. 기온차에 관계없이 비교적 따뜻한 바닷물
에서도 때죽음의 혹한이었으니, 졸졸 흐르는 얕은 냇물에서의 고기들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
싶어, 짠한 마음에 양지바른 따뜻한 곳에 모두 옮겨 묻어주기라도 했음 싶다.
그러고 보니 눈이 녹은 장포에 한창 기를 펴 봄준비를 해야할 냉이나 망초, 꽃바지나
쑥부쟁이 같은 봄나물들이 검불처럼 바짝 마른 꼴 들이다.
하늘을 나는 철새들도 추위에 굶주림으로 떼죽음이 발견된다고 했던 뉴스도 생각났다.
구제역과 A1바이러스로 인한 상상을 초월한 가축들의 재난, 엄청난 강설로 인한 폭설의
피해. 지구 곳곳에 화산과 지진의 참혹한 피해가 유난히도 많았던 한 해였다. 이같은
자연에 의한 재앙은 끊일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자연의 재앙에 이어, 이제는 인재인가? 에집트에서 시작된 반독제 시위가 성공을 걷우면서,
지금은 이웃 리비아, 이란을 비롯한 중동지역을 휩쓸고 있다. 석유자원이 풍부한 리비아에
서는 공방이 치열한 내전의 위기로 번지고 있어 많은 인명 피해로 심각한 우려와 함께,
전 세계가 치솟는 유가로 들썩거리고 있다. 여러 위기의 조짐들로 지구촌 곳곳이 매우 어수
선한 상황이다.

天地 同根, 萬物 一體, 하늘과 땅은 한 뿌리요, 세상 만물이 다 한 몸인 것을, 자연이
순탄치 못해 자연스럽지 않으면, 인위 또한 같이 인위롭지 못해, 자연도 인위도 결코 순탄
치 않은 법이다. 천지와 만물이 함께 일신동체를 이룰 때, 萬事 一華, 세상사 모두가 하나의
꽃이 되는 것. 매사를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애써 보지만, 뒤틀린 자연의 재해로의 가위
눌림에 자꾸만 방정맞는 생각들이 마음을 맴돌며 떠나지를 않는다.

줄곧 우리는 자연을 배반했지만, 자연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 말이 없는 자연은 결코
우리를 불평하지도 않는다. 앞으로도 이같은 자연의 본심은 언제까지나 변치 않을 것이다.
속깊은 자연은 계속해 우리와 함께 하려고 해도, 천지를 주관하시는 창조주는 언제까지나
지켜보며 가만히 계시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알아야 한다. 자연의 혜택을 알고,
고마움을 느끼며, 함께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음 결코 우리가 무사치 못할 것이다.

양지녁 햇빛이 봄날처럼 포근하다. 먼 산의 아른거림이 마치 아지랑이처럼 일렁인다.
두붓모보다 두터운 얼음짱 밑을 흐르는 물이 수정보다 더 맑고 차다. 물속의 개구리도
바위밑에서 엉금거리며 기어나오고, 살아남는 물고기들이 졸졸 흐르는 물과 더불어 놀고
있다. 양지 바른 곳의 배나무 가지에도, 앞 뜰에 매화나무에서도 꽃망울의 징후가 뚜렷하다.
여기 저기에서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한낮이다. 겨우내 적막했던 뒷산에서도 모처럼의
뻐구기 소리도 들린다.

창조주께서는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는 분이시다. 인간을 제일 사랑하시지만, 자연도 주관하
시는 창조주이심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가장 사랑하는 인간이기에 우리를 계속 지켜보며,
또한 우리에게 경고를 계속하고 계신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의 재앙의
경고를 바로 읽고 자성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하다. 창조주는 절대 공정하
심을 알고 명심해야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

봄의 길목에서, 올 농사도 자연의 많은 도움을 기대한다.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자연과
더불어 함께 하자”. 이것이 오늘날 지구촌을 지키는 모든 이들의 가장 요긴한 화두임을
알자. 그리고 몸소 실천하자.

응답 1개

  1. tibayo85말하길

    두부모처럼 얼어붓은 강바닥이란 표현이 색다르면서도 와 닿네요. 물고기도 물에서 얼어 죽기도 하는군요. 몰랐어요. 하긴, 사람은 공기 중에서 얼어죽기도 하니까. 올 겨울 정말 살인적인 추위였습니다. 빈곤이 죽음의 공포로 느껴지게 만드는 그런 추위였어요. 정치, 경제, 날씨가 어디 따로 떨어져 있던 적이 있었을까요. 자연 바깥에 어디 사람이 사는 땅 한 뼘이 있을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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