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떠나온 자와 떠나는 자들 2

- 신지영

– 3월 11일 일본 대참사, 그리고 이동과 만남의 문제-

# 지속되는 불안과 확산되는 루머

불안과 긴장은 일상 곳곳에서 느껴진다. 정전으로 전철운행은 더디고, 전철 가로등은 절반만 켜 놓아 컴컴하며, 에스컬레이터는 중요한 역을 제외하곤 운행을 정지한 상태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들을 긴장시킨 것은 흔적도 없이 퍼지고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모르며, 인간 수명보다 더 오래 영향을 미치는 방사능 물질이다. 22일과 23일에는 동북지방과 도쿄에 비가 내렸다. 비를 한방울도 맞지 않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23일에는 수돗물에서 유아 기준치 두 배의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되었다. 슈퍼마켓으로 뛰어갔지만, 물은 동이 난 상태였다. 사다놓은 게 몇 병 있었지만, 다음날에는 도쿄에서 재배한 채소에서 세슘이 검출되었다. 공기, 물, 먹거리가 불안해지자 심리적 한계치를 느꼈다. 정부발표에 대한 불신이 퍼지면서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보도와 소문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도쿄 전력은 2호기 물웅덩이의 방사능이 기준치의 천만배라고 발표한 뒤 하루 만에 십만배라고 뒤집었다. 방사능 물질이 흘러나오는 상황을 개선하는 게 우선임에도 방사성 물질의 기준치를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원자력 사고에 대한 기억들도 새롭게 부각되었다. 1999년 도카이무라(東海村)에서 핵연료 재처리 과정에서 피폭당했던 오우치 히사시는 처음엔 “문제없다”판정을 받았지만 괴사한 세포들에서는 다량의 체액이 스며나왔고 목과 장에서는 출혈이 계속되었으며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로 죽었다. 죽은 후에도 방사능 오염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납관에 보관되었다. 매일 10 리터 이상의 수액을 투여해 83일 간 고통스런 생명을 유지시켰던 것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관련 NHK다큐멘터리는 다음을 참조. http://www.youtube.com/watch?v=wg8qzdmA1Ew&feature=player_embedded#at=256).
불안이 가중되자 간 나오토 총리는 국민담화를 갖고 도쿄도 지사는 스스로 수돗물을 마셔보였으나, 찡그린 도쿄도 지사의 얼굴은 모두의 조롱거리가 되었을 뿐이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 정부는 흉흉해진 민심을 관리하고 3.1운동이 일본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회주의자, 재일조선인 등이 약탈을 일삼고 폭동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 소문은 일본대중에 의해 확산되어 재일조선인 6600여명이 학살당했다. 소문은 왜 대중들에 의해 더 과격한 형태로 확산되었던 것일까? 이번 대참사의 민감한 상황들을 겪으면서 민족적인 갈등이 확산되는 순간이 언제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개개인의 민족성, 국적, 고향이 노출되고, 무형의 공포가 지속되면서, 생필품의 불안감이 가중되자, 일본 천황은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침착한 대응을 호소했다. 뉴스에서는 피폭의 위험에도 원전 복구 작업을 하는 소방대원과 자위대, 도쿄 전력 직원들을 영웅시하며 비참한 피난소의 실정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이와 동시에 외국인들이 약탈과 강간을 일삼는다거나 일본의 불행을 기뻐한다는 식의 소문이 돌았다. 이번 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나라에서 개발한 신무기 공격이라는 소문까지도 있었다. 천황의 당부와 위기극복을 위한 국민적 영웅 만들기는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 소문과 함께 확산되어 가는 듯했다. 장기간 지속되는 대중의 불안과 공포는 그것을 잊기 위해 집중할 대상을 원하며, 대중의 슬픔과 고통은 그 책임을 돌릴 적을 원한다. 타민족에게 배타적인 소문들은 일본의 공동체, 마을, 코뮨이 붕괴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었다.

# 일본 내부의 피난 행렬과 정부의 관료성

16일부터 야마가타(山形)현, 니가타(新潟)현, 미야기(宮城)현, 도치기(茨城)현, 이바라키(茨城)현 등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는 인파가 급증했다. 방송에는 주로 버스를 통한 이동행렬이 보도되었으나, 급격히 추워진 날씨 속에서 가솔린 부족 등으로 대피 행렬은 어려움을 겪었고, 피난소에서 사망하는 사람도 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20~30km지역의 주민들에게 “집안 대피” 혹은 “자발적 피난”을 지시했다. 그곳 주민들은 떠날수도 머물수도 없는 애매한 상태에서 방사능 피폭의 위험에 노출되었고, 피폭의 공포 때문에 물자나 가솔린의 공급이 원활하게 되지 못했음은 물론, 자원봉사자나 의료진도 들어가길 꺼렸다.

주민들의 원활한 이동에 걸림돌이 되는 정부 지시나 정책은 ‘자원봉사자’, ‘구호물품’을 각국 및 각지에서 받아들일 때에도 확연히 드러났다. 피해지역으로 자원봉사 차량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통행증이 필요했으며, 자원봉사자에게는 이력서가 요구되었다. 3월 28일자 한국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일본을 향한 지원과 구호 물품이 쇄도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쌀을 지원하는 태국 정부에게 “국내에 300만톤의 쌀 재고가 있다”고 거절하거나, 남미 일부 국가로부터의 식료품과 음료수 제공제의를 사양하는 등, 식료품 지원에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정부는 “식품 안전성이 일본 기준에 맞는지를 분석해야하고 배포해봤자 수요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관료적 구호 정책은 세계에서 피해지로 수없이 불어나는 샛길들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었다.

오히려 피해지로 길을 내고 있는 것은 메일, 트위터 등을 통한 작은 집단들의 연락망이다. 방사능의 위험을 실감한 것은 원자력 발전 반대 활동을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찍어왔던 사람의 ‘피난 권고’ 메일을 통해서였다. 이어 대피 혹은 이동을 결심한 사람들의 사연 및 피난 경로, 가족과 친지의 생사확인이나 지원금 협력 요청, 정보제공과 모금에 대한 감사, 외국 기사나 피해마을 기사의 링크모음 등이 도착했다. 20~30km의 주민들이 가솔린과 물자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이 그곳 활동가의 트위터를 통해 직접 전달되어 또 다른 메일 리스트로 확산되어 갔다. <여성과 빈곤 네트워크>에서는 가난한 여성들이 재난 시 당할 수 있는 성적 물리적 피해에 대한 대응책을 보내준다. 이러한 메일 중에는 다소 입증되지 않은 정보들도 섞여 있다. 그러나 그 불확실성까지 포함하여 진심어린 호소, 일상생활에서 활용 가능한 방법, 정부에 대한 가감 없는 비판, 구체적인 지원방법, 마을의 실제상황 등을 접할 수 있었다. 이 메일들은 관료적인 대응책 사이로 무수하고 다채로운 샛길을 내고 있었다.

# 피해마을로 연결되는 샛길들.

일본 국내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인구, 정보, 물자의 이동은 하나의 마을이 다른 마을을 인식하는 태도에 큰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식품 안정성 등을 들면서 원조를 사양하는 이유에는, 일본 정부의 잘못 뿐 아니라 일본 국민들이 타국에 대해 지닌 편견도 반영된 것이지 않았을까? 슈퍼마켓 긴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면 다양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어떤 부부의 대화는 이러했다. “중국도 원조를 해준다던데?” “중국이…?!” 몇 년 전 중국 만두 사건 이후 일본에는 중국음식에 대한 불신감이 있다. 그러나 이번 일본의 대참사를 계기로 일본보다 경제력이 약한 수많은 국가에서 너도나도 일본에 원조를 해주고 있다. 그것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다곤 하더라도 원조를 제의받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일본인의 편견은 바뀔 수 있다. 친구들 중 몇 명은 일본이 식민지배를 한 중국, 한국, 대만 등에서 자원봉사 및 구호 물품, 성금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자, 자신들이 잘못을 했음에도 지원해 주는 것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일본에게 그리고 동아시아에 이것은 아프지만 새로운 경험이다. 파키스탄 카레를 지원받아 먹은 피난소의 한 어린 아이는 이렇게 외쳤다. “좀 맵다. 그렇지만 맛있어!”

도쿄사람들은 자신들이 쓰는 전기가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온 것임을 자각하고 이번 사고에 대한 공동책임을 통감하면서 에너지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2차 오염의 위험성 때문에 가족에게 인도될 수도 땅에 묻힐 수도 없는 방사능에 오염된 1000구의 시체 앞에서, 원자력 발전을 그만두고 대체 에너지를 모색하자는 소리가 전세계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중국은 푸젠, 후베이성의 신규 원전 중단을 선언하면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축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원전에 대한 안정성 여부도 도마 위에 올라 있다. 미국에서는 새로운 원전 건설이 며칠 전 통과되었으나 여론조사에 따르면 53%가 신규원전에 반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원자력 발전소 반대 시위가 확산되어 가고 있다. 27일에는 도쿄 전력 본사 주변에는 시민단체 회원 약 1200명이 모여 일본 전국의 원자력 발전소 운영 중단을 요구하는 거리행진이 있었다. 독일에서는 25만명이 모여 격렬한 원전 반대 시위를 벌였고 원전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한 녹색당의 득표율이 두배로 상승했다. 며칠 전 서울에서도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원전확대 정책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자국과 타국을 인식하는 감각의 변화는 구호 손길과 집회 등의 ‘이동’과 ‘만남’을 통해서 확산되고 있다. 물론 이런 경험들은 다시금 내셔널리즘의 틀에 갇힐 위험성도 있다. 일본이 역사 교과서에서 위안부 언급을 삭제하고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발언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은 한국인들이 일본의 고통에 공감했던 것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대참사는 원자력 발전 사고의 고통과 비참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국경을 넘어서는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일본이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어거지를 부린다면, 우리는 일본정부에 의해 점점 더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후쿠시마의 주민들을 우리의 민족이라고 말하고, 미군기지로 고통받는 오키나와를 우리 영토라고 말하는, 그러한 멋진 어거지를 부려 보면 어떨까? 우리의 샛길을 통한 연대는 “안전”을 외치는 정부와 도쿄전력이 위험으로 내몬 “후쿠시마의 피난민들”과 방사능의 위험에 방치된 “대다수의 일본인들”을, 우리의 친구(민족)이라고 부르는, 우주적 차원의 공감과 관용에 입각해 있다. 우리의 샛길-인터내셔널이 갖는 의미는 건강하게 분노하면서 역사와 자연을 존중할 줄 아는 피난민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왜곡된 교과서와 원자로를 만들어 우리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자들을 고립시키는 데 있다. 관동 대지진에서 민족학살을 일으켰던 소문은, 지진의 고통으로 분노한 일본 대중들과 3.1운동을 일으킨 조선대중들이 서로 연대할까봐 두려웠던 일본정부가 퍼뜨린 이간질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인터내셔널한 샛길-연대가 “그들”이 두려워할 정도의 힘을 지녔다는 것을 잊지 말자.

작은 샛길들이 만들어내는 인터내셔널한 연대의 필연성 앞에서 후쿠시마는, 20~30km 의 주민들은, 도쿄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은, 세계의 어떤 마을사람들은 새로운 이동과 만남의 경험을 하고 있다. 이는 “다른” 마을에 대한 감각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 변화가 어디로 흘러갈는지는 아직 모른다. 단지 통행증, 이력서, 식품안전기준, 배타적 루머를 넘어서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작은 샛길들과 진심이 담긴 소문들이 무한히 증식되길, 그것이 피해지역을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시키길,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힘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응답 4개

  1. cman말하길

    좋은일보다는 흉한일을 통하여 진보하고 소통하게 되는 것이 우리들의 한계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 시간을 한국이 아닌 곳에서 보내는 입장에서 조국의 안전보장보다 지구촌 전체에 대한 안전보장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됩니다. 일본의 아픔이 일본만의 아픔으로 한정지어지는 우매함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 낙타말하길

      cman님, 한국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시면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많으시겠어요! 이번 일본 재난 특히 방사능 문제는 말씀하신 것처럼 지구 전체 우주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일본, 중국, 등 국경을 넘어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반대목소리를 높일 때인 것 같습니다. 늘 깊이 있는 코멘트를 해 주셔서 반갑고 큰 공부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2. 낙타말하길

    옐, 오랜만이다! 읽어줘서 고맙고 답글도 고마워. 무엇보다 늘 건강하고 좋은 공부 많이 많이 하구!

  3. 말하길

    오랜만이네. 생생한 소식 고마워. 지금껏 읽은 일본 소식들 중 제일 실감이 나네. 조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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