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의 뒷골목

미국 역사의 뒷골목 (1): 린칭, 그 잔인한 죽음의 축제

-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뉴욕이타카)

1. 연재를 시작하며

그늘을 만들지 않는 빛은 없다. 빛은 밝게 비춤과 동시에 그 밝음을 드러내는 어둠도 만들어 낸다. ‘역사의 빛’도 마찬가지다. ‘근대’는 빛으로 다가왔다. 근대를 대표하는 ‘계몽(啓蒙 enlightment)’이란 말은 ‘밝음을 여는 것’(啓明)이었고 빛의 은유는 자신의 어둠을 과거의 어둠으로 감추고 (중세 ‘암흑’시대!) 자신을 빛으로 그리고 자신의 빛으로 형상화된 역사의 모습을 역사의 총체로 강요하는 것으로, 어둠과 벗하며 그 안에서 신음하며 살아온 이들의 삶과 기억을 부정하는 근대의 폭력기제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이 빛의 자식들인 서구의 지식인 일부가 집요하게 계몽주의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여 근대를 넘어서려는 학술적 노력이 이만큼 자리 잡게 된 것도 이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20세기의 빛을 상징하는 역사의 패자는 미국이다. 최근에는 뉴욕 중심부에서 시작되어 전국 방방곡곡에서 못살겠다는 민초들의 아우성이 메아리치고 있지만 자신이 찍어내는 화폐가 곧 세계의 표준화폐가 되고 자신들의 언어가 세계의 표준어로 통용되는 나라, 전 세계 곳곳에 자신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원하면 누구를 상대로든 전쟁을 일으키고 누구든 마구잡이로 잡아 무한정 잡아가두고 외국에 머무는 적은 그냥 특공대를 보내거나 무인기로 공격해 없애버릴 수 있는 나라, 이런 나라를 미국 말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20세기 미국의 찬란한 빛은 그 찬란한 만큼 크고 짙은 어두움이기도 하며 이 어두움과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근대를 성찰하는 하나의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역사의 음지, 그 뒷골목을 들여다보는 시리즈를 연재하려 한다. 몇 번이 될지는 얼마나 연속적으로 실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정리되는 대로 올려볼 생각이다. 뒷골목이 상류층 주택가처럼 산뜻하고 청결할 수는 없다. 뒷골목이란 눈에 잘 띄지 않는, 빛이 잘 비추이지 않는 곳이기에 온갖 추잡한 일들이 벌어지고 더러운 쓰레기가 나뒹굴며 악취가 진동하는 곳이다. 이런 곳의 이야기가 상식의 규범, 도덕의 규범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이 연재는 많은 독자들의 비위를 거스르는 것을 넘어 심한 혐오감을 유발할지도 모르겠다. 이점에서 미리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끔찍하고 혐오스런 사건들도 우리 인간 역사의 부정할 수 없는 일부분이며 귀 기울여 들어볼 가치가 있는 역사의 작은 그러나 큰 울림을 가진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사 뒷골목의 추악함은 한때 존재했다 사라진 역사의 유물이 아니라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의 유산이기도 하다.

2. ‘린칭’의 기원과 실상

미국 역사에서 백인들이 원주민과 흑인 그리고 이민자들에게 행해온 온갖 형태의 패악질 가운데 아마도 가장 덜 알려진 악행이 ‘린칭(Lynching)’이 아닐까 한다. “공권력 밖에서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사적 폭력”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말로 쓰이는 린칭의 기원은 18세기 말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버지니아 주에서 자경단(Vigilance Committee)을 조직해 반란이 의심되는 영국 지지자(Tory나 Loyalist라 불림)들이나 범죄자들을 즉결재판하고 형벌을 내렸던 찰스 린치(Charles Lynch)의 이름에서 기원하는데 Lynch Law라고도 불렸다. (동시대 같은 버지니아에 살았던 William Lynch라는 사람이 나중에 자신이 그 말의 기원이라는 주장을 했는데 신빙성이 떨어진다.) 남북전쟁 (1861-1865)이 끝나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남부의 주들이 연방정부에 포섭되는 ‘재건기’(The Reconstruction Era 1865-1877)에 시작되어 1960년대 후반 민권운동으로 흑인들이 동등한 법적권력을 획득할 때까지 근 일세기를 관통해 이어져 약 6천명에서 만 명이 린칭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린칭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끔찍하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인간의 잔인성의 극단을 보여준다. 살인, 강간, 절도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거나 백인에게 불손하거나 백인 여성에게 집적대었다는 사소한 이유로 그리고 그 밖에 특별한 이유 없이 백인집단의 눈 밖에 난 이들-주로 흑인 그리고 드물게는 유태인과 백인 이민자들을 집단으로 구타하고 신체를 채찍, 칼, 총 등으로 난도질하여 죽은 채로 아니면 산 채로 나무나 다리, 전봇대, 건물 등에 목을 매달아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통이고 산 채로 불태우기도 했다. (화형은 중세 마녀사냥에서나 있었던 일이 아니다.) 때론 흑인들의 투표를 막기 위한 위협으로 때론 그들의 재산을 빼앗기 위한 핑계로도 실행되었는데 린칭 후에 죽어가는 피해자나 시신을 흑인 거주지역이나 흑인 학교에 데리고 다니며 공포를 조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종종 그들의 신체-귀나 머리카락, 손가락, 발가락, 성기 등을 절단하여 “기념품”으로 가져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더 끔찍한 것은 이런 살해행위가 비밀리에 조용히 행해진 것이 아니라 “공공연히” 행해졌다는 사실인데 단순히 숨기지 않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종종 기념사진까지 찍어대며 자랑스럽게 이런 만행을 자행한 것이다.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민권운동 단체인 <NAACP 유색인 지위향상을 위한 전국연합>의 20세기 초 린칭 고발 포스터.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에 신음하며 문명의 부재를 한탄하고 있을 때 “문명국” ‘아름다운 나라’에서는 중세식 화형이 자행되고 있었고 의식 있는 이들은 자신의 나라를 부끄러워하며 야만에 위협받고 있는 자국 문명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민권운동 단체인 <NAACP 유색인 지위향상을 위한 전국연합>의 20세기 초 린칭 고발 포스터.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에 신음하며 문명의 부재를 한탄하고 있을 때 “문명국” ‘아름다운 나라’에서는 중세식 화형이 자행되고 있었고 의식 있는 이들은 자신의 나라를 부끄러워하며 야만에 위협받고 있는 자국 문명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실은 린칭은 많은 목격자, 참관자, 실행자들의 기억과 사진 기록 외에 많은 사적, 공적 기록이 남아있다. 신문이 대표적인 예인데 린칭에 대한 보도기사는 물론, 언제 어디서 린칭 행사가 있을 것이니 많이 와서 구경하라는 광고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큰 행사가 벌어지는 경우에는 대대적 광고는 물론 멀리서 구경 오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특별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관람티켓이 팔리고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여성들은 한껏 치장하고 아이들은 재잘대며 엄마 손잡고 나들이 오듯이 모여 이 죽음의 광란에 참여하고 매달려 있거나 불에 탄 시신과 사진도 찍고 운이 좋으면 앞서 얘기한 “기념품”까지 챙기는 “축제”였다. 이렇게 인기를 끌다보니 린칭 후에 찍은 많은 사진들이 상업적으로 엽서로 만들어져 팔리고 실제로 널리 유통되었다.

3. 기억과 망각 그리고 역사의 연속과 단절

전쟁을 제외하고는 아마도 가장 공공연히 행해져온 살상행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최근까지 미국역사에서 가장 “잊혀진” 기억의 하나로 남아있던 린칭은 역사의 기억과 망각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실례로서도 훌륭한 역할을 한다. 신문기사 말고도 린칭을 다룬 문학작품들 그리고 비교적 근년의 일이긴 하지만 관련 자료집, 학술연구서들도 적지 않게 나왔고 인터넷에도 많은 자료들이 있다. 따라서 린칭이 잊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억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공공연히 근 일세기를 이어 행해진 린칭이 역사의 망각 속에 묻혀있다시피 한 것일까?

미국 주류세력의 철저한 부인과 무시가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다. 민권운동의 여파로 자신들의 역사적 치부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실제 인정한 것은 그저 막연히 “노예제의 비인간성” 따위의 별 부담이 없이 얘기할 수 있는 ‘추상적 과거’이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미국이라는 성공과 영광을 기리는 승리의 거대서사를 뒤흔들 수 있는 끔찍한 사안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여기에 끊임없이 “불쌍한 노예의 후손”이라는 부정적 정체성에 불편을 느끼는 영향력 있는 일부 흑인들의 역할도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흑인들이 이런 사진에 백인들 못지않은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린칭의 이런 극단적 잔혹성과 연속성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17살의 지적 장애가 있는 제시 워싱턴 (Jesse Washington)은 삽과 벽돌로 구타를 당한 뒤 귀와 손가락, 성기가 절단된 채 산 채로 불 태워졌다. 이 엽서의 뒷면에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전하는“어젯밤 우리가 했던 바비큐 파티 사진입니다. 사진 왼쪽에 X표 한 것이 접니다. 당신의 아들 조”라는 글이 쓰여 있다. (1916년 텍사스)

17살의 지적 장애가 있는 제시 워싱턴 (Jesse Washington)은 삽과 벽돌로 구타를 당한 뒤 귀와 손가락, 성기가 절단된 채 산 채로 불 태워졌다. 이 엽서의 뒷면에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전하는“어젯밤 우리가 했던 바비큐 파티 사진입니다. 사진 왼쪽에 X표 한 것이 접니다. 당신의 아들 조”라는 글이 쓰여 있다. (1916년 텍사스)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이런 극악무도한 행위를 공공연히 자랑스럽게 행하며 어린 아이들까지 이런 끔찍한 폭력에 의도적으로 노출시킬 수 있는가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다른 인간에게 가해지는 이런 극단적 폭력에 대한 무감각 나아가 칭송에는 노예제라는 또 다른 역사의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 실제 린칭은 노예들에게 행해졌던 폭력의 반복에 다름 아니다. 공식적으로야 전쟁에서 졌으니 연방의 법률을 따라야 하지만 비공식적, 실제적으로는 과거에 행했던 패악질을 반복하며 공포를 조장하여 자신들의 위상을 확인하고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노예에게 가했던 억압과 폭력이 린칭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회적 타자들-부랑자, 범죄자, 일탈자 가해졌던 억압과 폭력의 형식으로 바뀐 것이다.

어차피 주정부와 이하의 공권력은 자신들 편이니 신경 쓸 것 없으며 (경찰이 린칭에 직접 가담하기도 했다) 아주 드물게 일이 꼬여 기소가 된다 해도 같은 패거리들로 이루어진 배심원들에 의해 무죄방면 될 것이니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 패악질을 계속해온 것이다. 연방정부가 있긴 하지만 연방의 공권력이 잘 미치지도 않았고 린칭의 이미지가 엽서로 전국에 퍼지는 것을 오래 방치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하지도 않았다. 린칭이 상당히 줄어든 1946년에서야 연방정부가 처음으로 린칭 가해자를 처벌했으니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반린칭 법안을 만들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모두 남부를 대표하는 상원의원들의 반대로 실패했다.)

1916년 텍사스 와코(Waco)에 벌어진 린칭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군중. 사진 가운데 나무에 시신이 매어져 있다.

1916년 텍사스 와코(Waco)에 벌어진 린칭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군중. 사진 가운데 나무에 시신이 매어져 있다.

그럼 린칭은 비록 끔찍했지만 과거의 일로 치부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린칭은 잘 인지되지 않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여 민권운동의 다른 지류를 만드는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지아 주에 살던 에리자 풀(Elijah Poole)이라는 15세의 소년은 1912년 가장 친한 친구가 백인여성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나무에 매달린 채 300발이 넘은 탄환이 그의 몸을 파고드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이 일로 디트로이트로 가서 이름을 무하메드(Muhammad)로 바꾸고 <Nation of Islam>이라는 이슬람 교단을 만들어 민권운동의 좌파세력의 바탕을 마련한다. 그가 행했던 “사악한 백인”들을 규탄하는 설교는 많은 흑인들의 호응과 백인들의 비난을 이끌어 내며 상당한 주목을 끌었다.

후에 세계적 박서인 케이어스 클레이(후에 무하메드 알리로 개명)와 흑인 카리스마의 정수 말콤 X가 신자가 되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무하메드 알리는 “난 베트콩과 싸울 이유가 없다. 그들 누구도 나를 깜둥이 새끼라 조롱한 적이 없다”며 월남전 징집을 거부했고 말콤 X는 린칭과 같은 정말로 심각한 백인의 사악함은 건드리지 않은 채 “사랑과 화해”를 들먹이며 “저는 꿈이 있습니다!” 따위의 백인이 듣기 좋은 얘기만 외쳐대던 흑인 민권 운동의 기수 마틴 루터 킹은 “백인들의 어릿광대”이고 그가 이끄는 민권운동은 “뻘짓”이라고 조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둘에 대한 평가는 간단치 않다. 여기서는 말콤 X의 시각만을 반영한 것이다.) 말콤 X가 눈에서 불을 뿜으며 “허연 악마 새끼들! (White devils)”이라고 외칠 때 백인들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구속(救贖)될 수 없는 그들의 죄를 무의식에서 끄집어 올리며 절망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Nation of Islam>과 말콤 X는 증오에 가득 찬 위험한 인물, 무조건 백인을 증오하는 인물로 낙인찍혀 미국 주류 담론과 역사서사에 포함된 민권운동의 비주류로 밀려났지만 그들의 정당한 도덕적 분노는 오랫동안 미국의 그늘을 상기시키는 계기로 남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알리는 파킨스씨 병으로 무력해지자 다시 미국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말콤 X. 자신이 속했던 교단 <Nation of Islam>의 문양이 든 반지를 끼고 있다.

말콤 X. 자신이 속했던 교단 <Nation of Islam>의 문양이 든 반지를 끼고 있다.

민주주의 보루이자 다수의 미국인들이 세계 최상의 제도라 생각하는 미국의 사법제도의 문제도 린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최근 Occupy Wall Street 운동의 참가자들도 제기한 트로이 데이비스(Troy Davis)라는 흑인 사형수에 대한 사형집행에서 드러나듯 미국 사법제도는 비백인과 가난한 이들에게 지극히 차별적일 뿐이다. 세계적으로 사형을 가장 많이 집행하는 나라의 순위의 상위를 점하고 있고 인구당 가장 많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있는 아주 폭력적이고 잔인한 시스템이 바로 미국의 사법제도다. (수감자 가운데 흑인은 약 40% 히스패닉은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노예제가 성했던 지역과 린칭이 가장 많이 일어난 지역은 거의 완벽하게 겹치고 이들 지역과 사형집행을 가장 많이 하는 지역도 상당부분 일치한다. (사형집행이 다시 시작된 1976년부터 2008년까지의 통계에 의하면 사형집행 상위 11개 주 가운데 10개 주가 노예제와 린칭이 성행하던 지역이다.) 그리고 이 지역들은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의 본산이자 보수정치의 보루인 소위 ‘바이블 벨트(Bible Belt)’라 불리는 지역이기도 하고 지금 ‘티 파티(Tea Party)’라는 이름으로 온갖 행패를 부리는 집단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붉은 색으로 표시된 곳이 ‘바이블 벨트’ 지역.

붉은 색으로 표시된 곳이 ‘바이블 벨트’ 지역.


남북전쟁 직전 1861년 지도. 회색은 노예제 시행 주이고 분홍선은 ‘남부 연방’ (Confederacy 혹은 Confederate States) 경계선.

남북전쟁 직전 1861년 지도. 회색은 노예제 시행 주이고 분홍선은 ‘남부 연방’ (Confederacy 혹은 Confederate States) 경계선.

린칭을 모르면 미국사회가 얼마나 폭력이 그 기저에 깔려있고 그 폭력의 공포가 무의식을 짓누르는 지를 이해할 수 없다. 미국에서 경찰이 걸핏하면 총질을 해대고 전쟁을 일으키고 고문과 학살을 서슴없이 해대는 것도 노예제와 린칭으로 이어지는 폭력의 순환고리와 깊은 연관이 있다. 미국의 경찰과 군대는 과거 폭력의 화신 자경단의 진화 내지는 변이로 볼 수 있고 이 점에서 이 역사의 어두움을 직시하고 거기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미국은 국내외적으로 폭력의 저지가 아닌 확산에 계속 기여하게 될 것이다.

4. 글을 마치며

이글을 쓰면서 내내 불편했다. 인간의 그 추악한 밑바닥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어떤 이유로든 역겨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홀가분하다. 린칭에 대해 알게 된 이래로 오랫동안 이 비밀 아닌 비밀을 속 시원히 얘기해보고 싶었다. 미국은 한국 근대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거니와 미국의 어둠은 한국에서 증폭된 형태로 드러나곤 했기에 미국의 얘기는 결국 남 얘기가 아니다. 서양문명을 무슨 하늘이 내린 축복인양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지식인들의 한심한 담론을 접할 때마다, 미국을 ‘하나님의 나라’,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로 여기며 값싼 자기 확신에 차서 남의 생각과 신념을 바꾸려 드는 이들을 접할 때마다, 생각이 다른 이들을 ‘빨갱이’ 따위의 저질 언어폭력을 가하는 이들의 빛발 선 눈을 마주 할 때마다, 그리고 “흑인은 천성이 폭력적이야!” 따위의 소리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해대는 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린칭 사진과 엽서에 찍힌 벌거벗은 폭력성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그 잘난 “선진국”, 그 위대한 “문명국가”의 ‘허연 짐승’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도 이 사진엽서들에서 악마의 모습들을 보았다. 흰둥이 악마들, 기독교도 악마들. 악마의 모습은 그들이 악마라 비난하는 밖에 있지 않고 바로 그들이 악마였다. 그리고 그들은 멀리 있지 않았다.

미국 역사에서 난 ‘파산한 역사’, ‘파산한 근대’를 본다. 파산한 역사를 승리의 역사, 영광의 역사로 오도하지 마라. 역사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다수의 힘으로 소수자의 삶과 기억을 소거하려 들지 마라. 인간과 악마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이런 얘기들을 해보고 싶었다. ‘강대국’, ‘선진국’, ‘문명’, ‘경제 발전’ 이런 것 따위에 대한 기대나 희망을 접은 지는 오래다. 도리어 그런 이름 아래 고통 받았고 고통 받고 있는 이들, 그러면서도 새로운 삶의 모습을 가꾸려 애쓰는 이들, 이들과의 연대 외에 다른 것들은 사소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난 고통스러운 과거의 어둠들 속에서 역설적으로 희망을 본다.


시각 자료를 여기에 싣는 것에 대해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희생자들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기에. 그러나 선정주의나 엿보기가 아닌 역사의 어둠과의 대면이란 의미에서 또 불행한 영혼들에 대한 추모로서 자료들을 여기 올린다. (이런 이유로 알려진 모든 희생자들의 이름과 관련정보를 명기했다.) 사진자료들은 린칭 엽서를 수집해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수집가 제임스 앨런의 웹싸이트 Without Sanctuary에서 온 것임을 밝힌다. (http://withoutsanctuary.org/)

1911년 오클라호마 주에서 있었던 린칭의 희생자 로라 넬슨과 그녀의 14살 난 아들. 그녀는 아들을 보호하려다 백인들에게 집단으로 강간을 당하고 아들은 성기가 절단된 채 같이 다리에서 목매달려 죽음을 맞았다. 넬슨의 부분만 확대되어 다음과 같은 또 하나의 엽서로 만들어졌다. 천국을 믿는 이들에게 처절하게 희생당한 그들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1911년 오클라호마 주에서 있었던 린칭의 희생자 로라 넬슨과 그녀의 14살 난 아들. 그녀는 아들을 보호하려다 백인들에게 집단으로 강간을 당하고 아들은 성기가 절단된 채 같이 다리에서 목매달려 죽음을 맞았다. 넬슨의 부분만 확대되어 다음과 같은 또 하나의 엽서로 만들어졌다. 천국을 믿는 이들에게 처절하게 희생당한 그들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로라 넬슨.

로라 넬슨.

희생자 베니 시몬스(Bennie Simmons)는 온 몸에 석유를 뒤집어쓰고 불 태워졌다. (1913년 오클라호마).

희생자 베니 시몬스(Bennie Simmons)는 온 몸에 석유를 뒤집어쓰고 불 태워졌다. (1913년 오클라호마).

1935년 플로리다에서 살해당한 루빈 스테이시(Rubin Stacy). 일설에 의하면 그의 성기가 절단되어 던져졌고 그것을 서로 차지하려고 구경하던 여자들 사이에서 법석이 벌어졌다고 한다.

1935년 플로리다에서 살해당한 루빈 스테이시(Rubin Stacy). 일설에 의하면 그의 성기가 절단되어 던져졌고 그것을 서로 차지하려고 구경하던 여자들 사이에서 법석이 벌어졌다고 한다.

1919년 네브래스카에서 있었던 린치의 희생자 윌리엄 브라운(William Brown)의 불에 타고 있는 사체. 그리고 구경꾼들.

1919년 네브래스카에서 있었던 린치의 희생자 윌리엄 브라운(William Brown)의 불에 타고 있는 사체. 그리고 구경꾼들.

1920년 텍사스에서 벌어진 린칭. 희생자는 리쥐 다니엘스 (Lige Daniels)

1920년 텍사스에서 벌어진 린칭. 희생자는 리쥐 다니엘스 (Lige Daniels)

1930년 인디애나 주에서 린칭을 당한 토마스 쉽(Thomas Shipp)과 에이브라함 스미스(Abraham Smith).

1930년 인디애나 주에서 린칭을 당한 토마스 쉽(Thomas Shipp)과 에이브라함 스미스(Abraham Smith).

린칭에 참가했던 KKK 단원이 보관하고 있던 토마스 쉽(Thomas Shipp)과 에이브라함 스미스(Abraham Smith) 린칭 사진 액자. 희생자의 머리카락을 기념으로 사진과 같이 끼워 보관하고 있었다.

린칭에 참가했던 KKK 단원이 보관하고 있던 토마스 쉽(Thomas Shipp)과 에이브라함 스미스(Abraham Smith) 린칭 사진 액자. 희생자의 머리카락을 기념으로 사진과 같이 끼워 보관하고 있었다.

린칭 반대 운동의 기수 아이다 웰스 (Ida B. Wells-Barnett 1862-1931) 흑인 민권운동, 여성운동의 선구자라 불려 마땅한 인물.

린칭 반대 운동의 기수 아이다 웰스 (Ida B. Wells-Barnett 1862-1931) 흑인 민권운동, 여성운동의 선구자라 불려 마땅한 인물.

나이 든 아이다 웰스

나이 든 아이다 웰스

윌 제임스(Will James)의 린칭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군중. 1909 일리노이.

윌 제임스(Will James)의 린칭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군중. 1909 일리노이.

잭 홀름스(Jack Holms)와 토마스 써몬드의 린칭 “공식 사진 모음.” (1933년 캘리포니아) 부유층 자재의 납치와 살해혐의로 수감되어 있던 그들을 감옥문을 부수고 (오른쪽 아래 사진) 끌어내어 감옥 건너편에서 린칭를 가했다. 만 오천의 자경단원(vigilante)과 육천 명의 구경꾼이 모여 들었다고 한다. 엽서의 안내문에는 주지사의 “법이 규정대로 집행되었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행동으로 캘리포니아에서 납치가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알려줬다”는 말이 인쇄되어 있다. (왼쪽 윗 사진)

잭 홀름스(Jack Holms)와 토마스 써몬드의 린칭 “공식 사진 모음.” (1933년 캘리포니아) 부유층 자재의 납치와 살해혐의로 수감되어 있던 그들을 감옥문을 부수고 (오른쪽 아래 사진) 끌어내어 감옥 건너편에서 린칭를 가했다. 만 오천의 자경단원(vigilante)과 육천 명의 구경꾼이 모여 들었다고 한다. 엽서의 안내문에는 주지사의 “법이 규정대로 집행되었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행동으로 캘리포니아에서 납치가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알려줬다”는 말이 인쇄되어 있다. (왼쪽 윗 사진)

장소, 시기, 희생자 불명. 특별히 많이 팔린 엽서.

장소, 시기, 희생자 불명. 특별히 많이 팔린 엽서.

응답 2개

  1. ㄴㅁ말하길

    충격

    이게 뭔가요
    이게 뭔가요

    으와

    이제야 봅니다. 고맙습니다.
    (대 충격 감당 안 되고 있음)

  2. tibayo85말하길

    잘 담아두겠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