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베리, 매우 VIP들과 함께…

- 김융희

금년 겨울방학도 한창 지나고 있다. 이 번에도 우리 손주(자)들과의 해후는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손주들, 지척에 있으면서도 긴 방학중 단 하루도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에게 찾아오는 일이 아직 없었다. 이건 아닌데… 나의 안되겠다는 생각이 이제는 차고 넘쳤다. 나의 비장한 각오이다. 이 방학이 가기 전에 아이들이 잠시라도 꼭 집에 다녀가는 기회를 만들라고, 자식들에게 강경 주문을 했다. 이런 비장의 각오가 통했다.

보내겠다는(지난 1월 18일) 연락이 왔다. 새벽부터 서울에서 집까지 나의 육상수송이 진행됐다. 내 손주는 모두 여섯이다. 큰 놈인 외손녀가 올 해 중학생이 되고, 두 째는 유치원에 간다. 친손녀는 4학년이 되며, 아랫 동생인 손자가 초등학생이 된다. 두 째의 아들엔 세 살백이가 되는 쌍손녀가 있는데, 아직은 어리고 너무 까다롭게 자라서 제외를 시켰다. 그러니까 네 손주들이 집에를 오는 것이다. 물론 부모들은 바쁘다며 모두 제외된 채이다. 그들만으로도 다행으로 만족이다. 조심 조심 달래며 까다로운 손님을 집까지 잘 대려왔다.

물론 집에 도착하면 들 수 있는 먹거리를 미리 충분하게 마련해 두었다. 차에 내려 짐 정리가 끝나기도 전부터 과일등, 먹거리를 권했지만, 전혀 내 말에 무반응이요, 안중에도 없다. 옥외로 불이나케 튀쳐 나가 버린다. ‘자연과 더불어 자기들끼리 마음데로 지내는’ 그래! 바로 이것을 내가 바랐던 것이다. 지금부터는 저들로부터 내 관심을 끊자. 그래서 구애 받지 않고, 그들이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자. 해가 지는데도 돌아올 줄을 잊은 채 놀고 있는 그들이 다소 불안했지만, 그냥 지켜보며 기다렸다.

어둑해서야 돌아온 그들에게 씻고 정성껏 차린 저녁을 들게 했다. 아내가 미리 마련해 둔 음식들은 내가 보아도 진수성찬이다. 찬 기온을 무릅쓰고 정신없이 놀았으니 저녁 밥맛도 꿀맛이겠거니, 그들이 맛있게 먹을 식사 모습에 잔뜩 기대를 했다. 그런데 그들이 전혀 밥 먹는 태도가 아니다. 언제 TV를 켰는지, 손자와 막내는 화면에 몰두해 있고, 큰 놈들도 먹는둥 만둥, 밥보다는 텔레비전에 더 마음과 눈이 가있다. 나의 성화에도 식탁의 매너가 엉망이다. 심기가 껶인 나만 마음이 불편할 뿐, 그들은 전혀 태평이다.

계속 불편한 심기를 참으며 나는 그들을 지켜본다. 난잡스럽긴 했지만, 그들 나름의 식사를 잘 챙겼다. 시키지도 않았지만, 이를 닦고 잠옷을 챙겨 잠자리를 드는 그들이 대견스러웠다. 녹아 떨어져 천진스럽게 자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려니, ‘대견스러움’과 ‘아랑곳 없음’인 애증의 갈등이, 봄볕에 눈녹 듯, 마음이 평온해 진다. 그래, 저들의 순수와 천진스러움은 모른 채, 타성과 의도, 술수로 채워진 노회의 함부로 노갑이을의 유분수려니! 다만 유(幼)와 노(老)의, 순수와 타성의, 문화의 차이인 것을….

손주놈들은 어제의 놀이가 피곤했던지, 아침 늦도록 곤히 잤다. 이후 매 끼니의 밥을 먹는 태도는 여전, 산만 무례의 반복이었다. 나의 말에는 관심 밖, 무 반응, 화가 나도록 도대체 대꾸가 없다. 자기 뜻데로 오직 자기들만 있을 뿐이다. 슬슬 달래면서 아부하며 관심을 끌어 보지만 효과가 별무이다. 나의 지혜가 모자란 것 같아 속상하다. 애잇! 나도 저들처럼 그들을 잊자, 그리고 포기하자. 저들의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행동처럼, 모두 잊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 내 일에 매달리자. 그것만이 마음 편한 길일 것 같다.

사실 그 방법은, 나에게 편한 길일 뿐더러 그들에게도 적합한, 함께 통하는 옳바른 해답이다.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그들은 나를 자기화하려 하지 않는데, 나는 계속 그들에게 나를 따르라며 한사코 지배하려 든다. 그럼으로 우리는 껄끄러운 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과 마주치지 않아야 할 것 같아 나는 방문을 닫아버렸다. 장난치는 소리로 거실이 쿵덕거리며, 물건이 넘어지고 깨뜨리는 소리도 들린다. 내 가슴은 쿵쾅거린다. 단단히 마음다짐을 했지만 실행에는 결코 쉽지를 않다. 그렇지만 나는 참아야 한다. 참자.

그들을 피해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잠시 뿐이다. 뜬금없이 막내놈이 방문을 열고 할아버지! 하면서 달겨들어 함께 놀자며 막무가내로 나를 이끌고 나간다. 끌려나온 나를 모두가 애워싸며 환호와 주문을 해덴다. 완전히 내가 놈들의 먹이사슬이 되어버렸다. 주문도 다양하다. 썰매장에 가자, 짜장면이 먹고 싶다. 스키장에 가자, 낚시질 가자…. 어쩔봐 몰라 어정뜬 나의 답변도 대응도 별로여서 인지, 들뜸이 좀 누그러든다.

그런데 이번엔 손자놈이 깨임을 하겠다며 컴퓨터를 찾는다. 이놈들이 올 때마다 컴퓨터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도대체 컴퓨터에 지극히 서툰 내가 프로그램도 기계도 엉망진창이 된 몸체를 들고 AS까지 받아야하는 고역을 번번히 겪었다. 이번엔 피하려 미리 치워둔 것을 찾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랴. 그 고역을 또 당해야 한다. 안절부절하며 지켜보는데, 먼저 하겠다며 치근덴 막내가 벌써 마우스를 뻬앗아 능란하게 게임을 즐긴다. 한글을 겨우 겨우 읽는 놈이, 나도 모르는 내용까지 자유자제하며 솜씨가 능란하다. 기특하고 부러웠다.

컴퓨터를 빼앗긴 큰놈들이 다시 나에게 달라붙어 치근덕거린다. 참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말은 진실이요, 명언이다. 삼 일째, 이제는 지겹다. 지치다 못해 귀찮고 그들이 싫어졌다. 주말에 오겠다고 했으니, 하루만 넘기면 자식들이 올 것이다. 마지막 고비려니 참으려 하지만, 당장 보내 버리거나, 아니면 내가 도망이라도 치고 싶다. 연락하여 자식들을 부르고 싶지만, 자기 일에 파묻힌 그들이 올 리도, 그럴 수도 없다. 내가 버티며 견딜 수 밖에…

주변의 동료중에는 손주들과 소일하며 지낸다는 이들이 더러 있다. 나는 그들이 궁금했다. 아무리 손주라지만, 챙겨도 넘치는 많은 내 할 일을 젖혀두고 어떻게 일상을 손주들 뒷바라지로 소일 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이처럼 까다롭고 힘든 일을 자진해서 일상으로 한다니… 나의 지나친 이기심이요, 편협한 욕심이래도 나는 도저히 못하겠다. 아니 안하겠다.
우리 손주들이 혹여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드세인건가?

그러고 보니, 드센건 내 손주들이 아니라, 모두가 융통성 없는 아주 고약한 망골의 내 탓이다. 방학동안에 하고 싶은 짓 하면서 맘껏 놀라고 했음은 말뿐, 그들을 해아려 이해하려 함은커녕, 수시로 참견하고 간섭하며 온통 지배하려고만 드는 할아버지였다. 그들은 나름의 할 짖을 하면서 놀고 있다. 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뜻을 지키려는 욕심이다. 이는 노, 유의 문화 충돌이 아닌 분명히 망물인 나의 강박이며 지배욕이다. 손주들께 미안하다.

응답 2개

  1. 그네말하길

    꼼짝없이 당하셨군요. 조금만 더 버티셨어도 비법을 획득하셨을텐데 안타깝네요. 알고보면 단순한 게 애들이거든요. 어차피 계속 키우는 게 어니니 한번 길을 들여놓는 것도 좋았을텐데..

  2. bada말하길

    그러니까 VVIP를 모시고,
    ‘차이’를 인정해야하는 값진 교훈을 얻으셨군요.
    행복한 고통- 즐거운 시간이셨겠습니다. ㅎㅎㅎ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