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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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리 봐도 그는 멀쩡햇다. 가령 일그러진 표정이라거나 아무렇게나 걸친 옷차림. 우스꽝스러운 몸짓, 휠체어나 목발같은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근사한 야구모자를 쓰고 단정한 옷차림의 청년이 반듯하게 앉아있었다. 그 옆에는 그의 어머니가 앉아 연신 아들과 자신의 이마를 닦았다. 당황스러웠다. 일을 하기전에 늘 짓는 자신감있는 표정이라거나 ‘뭐든지 열심히 하겟습니다’ 같은 나름대로의 준비된 제스쳐
  • 파레지아에 대한 푸코의 연구는 그 자신의 말을 빌자면 “전혀 예기치 않은” 물음의 발견으로 시작되었고, 계속 진행 중에 있었지만(푸코는 마지막 날 강연에서 “내년에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삶의 기술, 삶을 가꾸는 기술들을 역사적으로 추적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의 생애가 돌연 중단됨으로써 끝나고 말았다. 생애의 끝에서 그가 새로 시작하려 했던 연구는 내게 철학(철학적인 삶)과 정치(해방, 혁명, 코뮨)에 관한 많은 영감들을 떠오르게 했다. 그러나 그는 어떻든 말을 하려하다 멈추고는 강연을 끝내버렸다. “이런, 너무 늦은 시간이군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 신자유주의적 통치와 단절하는 대항통치술을 발명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좌파 정당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사명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권교체와 야권연대에 올인하는 한국의 진보 정당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 언제 썼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예전에 병원 실습생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본 적이 있다. 오늘은 실업계 고등학교 실습생에 관한 이야기를 ver2.0으로 풀어 보려 한다. 주 70시간의 노동 끝에 쓰러진 기아자동차 실습생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다.
  • 한참 게으름을 부리는 사이 인터넷에 권애라 관련 글이 늘었다. 박진영 선생이 광익서관을 추적하다 권애라에까지 시선이 가 닿았나 보다(http://bookgram.pe.kr). 더 보탤 말이 없다 싶지만 두 토막으로 나눠 쓰려고 준비한 몫이 있어 췌사를 무릅쓰기로 한다. 스캔들화돼 버린 권애라의 젊은 시절을 엮다가 남편 명색으로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하는 대목에서 멈추고 말았는데, 글을 잇다 보면 결국 남성의 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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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전적 질병을 가진 이들은 살아서 사회에 큰 부담이 될 뿐이라는 우생학적 메시지를 형상화한 1937년 독일의 포스터.
    우생학은 20세기 초의 세계적 조류였고 1907년에서 30년대 초까지 미국 각주에서 단종법이 시행되던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단종법이 널리 채택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20년대 말 캐나다, 덴마크, 스위스 그리고 30년대에는 독일,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아일랜드 등 다수의 국가가 단종법을 제정하여 70년대까지 유지한다. 이런 세계적 추세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실은 미국이 나중에 유태인 대량학살로 이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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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여러 가지 학교교육의 모순 때문에 이른바 대안학교라는 것이 생겼어. 너도 들어본 일이 있을 텐데 거기는 국가 교과과정을 운영하는 공사립학교의 모순과 그에 따른 학생들의 불행에 대하여 어떤 대안이 실천되고 있는지 잠깐 살펴보자. 그러면서 네 고등학교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자. 그 모색 과정에서 적어도 바람직한 고등학교의 생활에 대한 방향은 짚어볼 수 있을 것 같다.
  • “아, 안 오셔도 돼요, 괜찮아요, 진짜 괜찮다니까요.” 어머니는 수년째 이런저런 병을 앓고 계신다. 급기야 한쪽 눈의 시력도 약해져 밖을 나다니시는 것도 힘겨워하실 만큼 이제는 기력을 다하셨다. 그런 노모가 일삼아 다니시는 곳이 있으니 바로 우리 집 일을 해주시러 오는 것이다. 청소에 빨래에 먹을 것 사다 나르시는 일에 심지어는 마흔 살이 훌쩍 넘은 딸년 속옷 챙기시는 일까지 어머니의 손이 미치지 않는 구석은 없다.
  • 그림 3 케플러 법칙 두 번째
    안단호 in 사상가 특집 2012-03-07
    누구나 과학을 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통계학적 논리이다. 많은 사례나 실험을 통해 입증된 귀납적 사실이 진리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상이한 이론들이 서로 진리라고 주장하는 혼돈의 상태를 정리하기 위한 정치적 기술일 뿐이다. 마치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기 전에 하는 안전검사 같은 것이다. 그런데 안전검사를 통과했다고 해서 그 차의 성능이나 상품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듯이 이
  • anotheryear4
    황진미 in 씨네꼼 2012-03-07
    <세상의 모든 계절>은 ‘집’이 있는 사람과 ‘집’이 없는 사람에 관한 영화이다. 물론 여기서 ‘집’은 물리적 공간(house)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정서적 유대(home)을 뜻하는 말이다. 위의 한용운 시에 나오는 땅, 집, 민적(民籍)도 물리적 실체를 가리키는 것만은 아닐 것이며, 릴케의 시에 나오는 ‘집’도 부동산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계절>은 위 시들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의 ‘집’이 있는
  • 김상수 in 사상가 특집 2012-03-07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이다. 지난해에 냉온정지되었지만 지금도 원자로의 온도가 상승해 멜트다운의 위험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1년이나 지난 지금도 가끔씩 방사성 먼지들이 한반도를 쓸고 지나갈 거라는 기후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원자력 발전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신과 불안도 커지고 있다. 국내에는 이미 21기의 원자로가 발전에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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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유 in 올드걸의 시집 2012-03-07
    서른다섯. 일자리가 필요했다. 이력서를 썼다. 세 바닥을 채워도 시원찮을 판에 네댓 줄 쓰니 끝이다. 쉼표 없이 달려온 마라톤 인생인데 어쩜 이리도 이력서가 빈곤한가. 화폐화 되지 않는 노동-활동은 언어화도 불가능했다. 궁극적으로는 존재증명이 난감했다. 아무튼 자기소개서에 금칠과 덧칠을 해서는 두 군데 지원했다. 은행파트타이머랑 지역신문기자. 결과는 둘 다 낙방. 물 한 바가지씩 연거푸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민망하고 처량하여 고개돌렸다. 내 인생에서 슬그머니 찢어버리고픈 한 페이지. 곧이어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 자리
  • _MG_1828_1
    골목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아름다운 햇살로 우연한 만남으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으로 사진은 찍는 사람이 만난 그런것 들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고 추억 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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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에서 영국의 의료시스템인 NHS (National Health Service)에 대한 연재를 한 바 있다. '의료민영화'와 '무상의료'라는 두 다른 극단을 두고 이리저리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연재를 한번 봐두면 참 좋을 것 같다. 영국에서 6년을 살면서 나 역시 NHS에 대해 참 할 말이 많다. 거기에는 제도에 대한 칭찬이나 비판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사람이 만든 제도이니만큼 문제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지
  • 당신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위대한 사유는 언제나, 익숙한 통념들을 산산조각 내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사람들 앞에 들이민다는 것을. 그래서 위대한 사유는 또한 항상-이미 위험한 사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하지만 이 위험한 사유는 또한 너무나도 매혹적이라서 거부하기 힘든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