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호

Releases

  • 김융희 in 여강만필 2012-10-21
    외출을 쉬이 잘 안하신 이웃 아주머니께서 오늘 아침 모처럼의 나들이시다. 교사로 정년 퇴임해 노후를 산촌에서 조용히 지내신 이웃이시다. 가정에서도 항상 깔끔하고 정갈하신 분의 나들잇 벌이 오늘따라 왠지 좀 그분 답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평상복으로 손에는 보따리까지 들려 완전 ‘보따리 장수’ 차림이다.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한 저녁 나절 후반에야 돌아오신다. 나가실 때 들었던 보따리는 보이지 않았다. 좋은 일
  • 이번 추석 전날 집에는 식구가 달랑 셋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나. 최소 인원 대여섯은 되던 명절 집풍경이 조금 썰렁하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고등어를 구워라 갈치를 구워라 반찬 걱정이시다. 가난한 서울자취생 둘째 딸래미가 싱싱한 생선은 입에도 못 대지 싶은가보다. 노릇하게 굽힌 도톰한 갈치살 위에 직접 양념간장을 올려주시며 어서 먹으라고 성화다. 이렇게 먹어야 맛있다며 뼈바르는 것까지
  • 황진미 in 씨네꼼 2012-10-18
    속담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다. 저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이다. 감염학적으로 봤을 땐 말이다. 영화 은 감염학의 끔찍한 진실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영화이다. 흔히 감염이라 하면, 과거의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항생제와 백신이 개발되기 전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했지만, 항생제와 백신이 개발된 이후부터는 인류가 미생물을 정복해온 역사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류가 항생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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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외부 환경을 지각하는데 제일 많이 사용하는 감각기관이 뭐겠니? 눈. 그래, 눈이지. 그럼, 눈만 뜨면 무엇이든 다 보일까? 그럼요. 아니야. 눈을 떴어도 안 보여서 못 보는 것들이 더 많아. 그게 뭔데? 이를테면 눈썰매를 열대지방 사람들에게 가
  • 한국에서 일본사람을 하면서 자주 원전에 관한 질문을 받게 된다. 일본인은 원전에 대해 잘 알거나, 무언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나 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그러한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반원전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본의 원전 사태에 대해 일본에 사는 사람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도 한국에서 반원전 운동을 하는 친구들한테 많은 지식이나 사고방식을 배웠다.
  • 심보선 in 수유칼럼 2012-10-17
    문학 제도는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단독성singularity 신화를 통해 작동하는 문학 제도는,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나 자유 의지와 독창성을 발휘하여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개인”에 대한 믿음을 강고히 한다. 그러나 개인의 자율성은 제도적 장치의 형식과 내용에 의해 그 형식과 내용이 마름질된다. 고독한 개인들과 저항하는 공동체의 소멸, 수평적 연결망의 확산, 제도적 행위자들의 우세로 요약되
  • IMG_0070
    오래 전부터 온라인상에 떠돌던 사진 한 장이 있다. “미술이 돈이 된다는 걸 보여주겠다.” 홍대 어느 골목 담벼락에 누군가가 써놓았다는 글귀를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자마자, 나는 곧 저 노란 담벼락 너머에 있을 미대생의 모습을 상상했다. 독한 물감냄새로 찌든 눅눅하고 어두컴컴한 작업실과 그 안에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종일토록 그림에 열중하는 한 젊고 재능 있는 화가의 모습을! 그는 문득 ‘아
  • 류희경, 이동식 트럭 작업실 내부
    은 : 물론 레지던시 자체에 들어가면 좋긴 한데 앞서 일부 유명한 곳은 레지던시 이름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 되고 있다. 의미가 퇴색된 것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레지던시는 특히 양날의 검과 같다. 제가 본 몇몇 경우에는 오로지 지역발전적인 것과만 연합해서 생각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작가의 역량을 키우려는 게 아니라 그 지역에 대한 작가의 재능 기부 같은 느낌도 있다. 돈도 제때 못 받고 하는 경우도 들
  • 르네상스시대 예술가의 신분이 장인이었을 때, 창작자로서의 자기 각성이 예술가를 이탈하도록 만들었다. 장인도, 완전한 자유인도, 신도 아닌 자, 규정되지 않는 자의 이름이 예술가였다. 예술가의 이름으로 기존 신분질서와 지배체제에서의 탈주와 위반이 허용되었다. 그들은 신을 닮은, 그러나 신은 아닌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 칸트는 ‘무관심한 관심’으로 미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관심한 관심? 모순된 표현처럼 보이는 이 개념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무관심한 관심에서 ‘무관심’이란 감각적 욕구나 도덕적 욕구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즉, ‘배불리 먹고 싶다, 부를 소유하고 싶다, 자기체면 유지하고 싶다, 도덕적 명성을 얻고 싶다’와 같은 것들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거죠. 반면, 무관심한 관심에서 ‘관심’은 감각적 욕구나 도덕적 욕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