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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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 10시 퇴근을 준비한다. 몸뚱이는 무감각해져 온다. 뇌의 신경회로는 간간이 접속에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들이 부은 커피의 카페인은 끈적하게 들러붙어있는 혈병들 속을 파고들지 못한다. 하나하나 컴퓨터의 전원이 내리면서 마침내 오늘도 전원 오프 중이다. 곧 끝난다.
  • 캄보디아 시엠립에 있는 전쟁박물관. 나무들 사이사이에 전쟁이 끝나고 수거한 무기들이 나열돼있다. 조금씩 부숴지고 녹슨 모습 그대로 놓여져 있다. 마침 비가 쏟아졌는데 영화나 책으로 접했던 밀림 사이로 크메르 루주 군이, 베트콩이 다가오는 장면이 연상됐다. 무기들엔 설명이 조금씩 돼있는데 캄보디아 군이 썼던 무기들은 소련제, 폴포트가 썼던 무기는 중국제, 크메르 루주 전정권이 썼던 무기들은 미제가 많다. 대부분 무기는 2차대전 때 사용됐던 무기를 중고로 판매한 무기이며 캄보디아 전쟁이 어떤 대립구도로 이뤄졌는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이 곳의 가이드도 대부분 지뢰로 다리나 팔을 잃은 전직 군인이다.
    들깨 in 수유칼럼 2012-11-02
    냉전은 사기였다. 실제로 전쟁을 치루지 않은 전쟁이라는 뜻의 냉전이었지만 어떤 곳에서는 역사상 가장 많은 양의 폭탄이 뿌려졌고 근대에 들어 가장 잔인했던 학살이 이뤄졌다. 미국과 소련, 중국 등 열강들이 개입했고 그것은 누구나 알았지만 비밀이라 했다. 이 전쟁엔 한국도 참여했다.
  • 찬바람이 불고 가을이 오는가 싶으면 동내 어귀에 게장수가 등장한다. 트럭 가득 게를 싣고 파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몇 년 전이었던가.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친구가 자기 동네에서는 와인에 꽃게를 쪄먹는다고 가르쳐 주었다. 와인 먹은 삼겹살 따위는 들어보았지만 와인 먹은 꽃게라니! 꽃게탕 따위만 알고 있던 나에게 이 신비의 조리법은 충격 그 자체였다. 순간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당연히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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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융희 in 여강만필 2012-11-02
    秋收冬臧(추수동장)은 한문 세대의 처음 배우는 교과서 천자문(千字文), 첫 페이지에 나온 문구(文句)이다. “천자문”은 양(梁)나라 주흥사(周興詞)가 지은 책으로, 자연 현상과 인륜 도덕의 내용인 지식 용어를 사용한 주로 어린이(童蒙)의 교양 습자로 쓰인, 사언고시(四言古詩) 250구로 구성되어 있다. 나도 어린 시절, 한석봉의 필사본으로 첫 구절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끝 절인 언재호야(焉哉乎也)를 내용도 모
  • 뻔하게 흘러가는 분위기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아서 나 너랑 잘 생각 없는데, 하고 말한다. 이리 저리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보니 한 달 전쯤 극장에서 봤던 영화가 나온다. 참 빠르네. 그는 옷을 벗기는 손을 멈추지도 않은 채 나랑 못 잘 이유도 없잖아, 라고 대답한다. 하기야 이미 그를 따라 이곳까지 들어왔으니 얘기는 다 끝난 셈이다. 나는 더 말하지 않는다. 하고 싶어서 한 말도 아니었고 그만두자고 한
  • 수유너머R에서는 매달 둘째, 넷째주 목요일 저녁이 되면 목요 밥상이 진행된다. 이제 2회 진행했지만, 감이 좋다. 주방매니저 죠스에게 인터뷰좀 하자고 하니, 자기가 기획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공동 주방매니저 중 한 사람인 덤쌤이 해보자고 했단다. 덤쌤에게 인터뷰 좀 해보자고 했다. 연구실에서 만났는데, 시작부터 반응이 냉랭하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위클리에서 기획을 할 가치가 있냐고 묻는다.
  • 속이 허해 뱃속까지 찬바람이 드는 것 같은 겨울날이면 굴국을 끓입니다. 손질해놓은 굴 한 바가지, 크지 않은 무 한 덩이가 필요해요. 굴은 찬물에 여러 번 헹궈내면서 붙어있는 껍데기를 잘 골라냅니다. 손이 빨갛게 시려오지만 대충하다보면 나중에 빠각, 어금니 사이에 껍데기가 끼일지도 몰라요. 이제는 무를 다듬습니다. 껍질을 긁어내고 채를 썹니다. 씹히는 맛이 있는 게 좋으므로 채칼보다는 그냥 칼을 써요. 무를
  • 남색 모자를 쓴다. 검은색 머리망 사이로 머리카락이 빠져 나오지 않게 머리카락을 구겨 넣는다. 시선을 아랫도리로 옮긴다. 지퍼는 잘 닫혔는지, 신고 있는 신발이 검은 구두가 맞는지 확인한다. 가끔 의도한 건 아닌데 어짜자고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지퍼를 내리고 있는 경우가 있어 민망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윗도리 검은색 티셔츠 OK. 검은색 깔맞춤 완성. 휴대폰을 보니 9시 55분. 지금 내려가면 10시 정시 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