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신문 사회면의 그래프, 도표의 퍼센티지 숫자들 중 한 점으로 자리해서 당신들을 도와주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다. 쥐 죽은 듯 살던 내가 졸업 선물로 88만원 세대라는 딱지와 함께 취업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출산도 포기하게 될 거라는 예언을 선물 받은 후부터였다. 점으로 만들려는 당신들에게 포획되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결론은 점이 되어 버린 아니 원래부터 점일 수 밖에 없었던 나의 이야기다.
내가 알기로 그 할머니는 손주 아이 둘밖에 아무도 없다고 했다. 명절에 어디 갈 곳이 없는 내가 임대단지에 사는 그 아이들을 명절날이면 꼬박꼬박 보곤 했으니 그로써 할머니 말을 믿을 증거도 충분하다 싶었다. 그런 날 아무데도 갈 곳 없고, 아무도 찾아줄 이 없으니 그런 할머니
20세기 후반 이래 첨단 생물학의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모방이라 할 수 있다. 자연현상과 생명현상을 모방하여 소기의 성과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생물학이 모방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 대표적 사례를 한 가지 들어 볼까 한다. 바로 항체공학이다. 거의 대부분의 생물학 연구가 자연의 사례를 탐구하고 그 사례가 작동하는 원리원칙을 따르면서 거기에 한 두 가지 변용이나 연구자의 아이디어를 개입시킴으로써 생명을 활용한 응용(Biotechnology)을 실현시켜낸다.
2013의 부활주일, “레퀴엠”은 우리 교회의 부활주일 행사로 ‘성 금요일’ 저녁에 열린 ‘음악예배’ 공연이었다. 애잔하면서 장중한 진혼곡 “레퀴엠”이 마음을 적신다. 이번 “레퀴엠” 공연은 생애 최고의 감동으로 내 마음에 길이 남을 것 같다. “음악예배”로 올린 “레퀴엠”은 일반 공연도 흔치 않치 않으며, 교회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다. 어쩌면 나뿐이 아닌 다른 여러분들께도 흔치 않는 모처럼의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친구와 사주를 보러갔다. 홍대에 위치해있는 사주카페인데, 보고 오는 친구마다 그 아줌마가 늘어놓는 내팔짜가 여간 신통한 것이 아니라고 하여 재미 반, 궁금한 마음 반으로 내 사주를 확인하고자 갔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물들, 이를테면 나무나 물 흙 등이 생겨난 원인의 원인의 ······ 원인을 끝까지 추적하면 무엇이 나올까. 또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 아버지는 누구일까. 이 모든 존재 이전에는 최초에 무엇이 있었을까. 누구나 궁극적인 실재에 대하여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었을 거야. 이 의문은 고대 신화에서 현대 과
대학교에서 3년을 먹고 자며 살아왔던 청년들이 있다. 기숙사, 연구실이 아니라 캠퍼스 거리에서 텐트를 치고 공간을 점거하면서. 모임에 함께 할 수 있는 자격을 특별히 두진 않았지만, 대부분 이 학교를 다니면서 등록금을 내고 있거나 냈던 이들이다. 대학에 자본을 투입했으니 나름 그곳을 점유할 권리가 있고 일정지분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왜 그랬을까. “최신식 기숙사를 더 지어달라” “대학생을 위한 공공기숙사를 지어달라” “월세 보증금을 지원해달라”고 여느 친구들처럼 요구하지 않고 길바닥에 텐트를 짓고 살아야 했을까.
소통이란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두 사람의 대화와 같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 사람이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느 한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버리고 상대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각자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서로 자기 말만 하는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요. 따라서 소통이란 자신의 지반을 떠나 상대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소통의 기본 조건입니다.
살면서 어떤 관계가, 완전히 부셔져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 때가 있다. 잉마르 베리만의 대표작 에서는 영화 안의 거의 모든 관계가 단절의 직전에 있다. 영화의 주인공 이삭 보리는 의사이자 그가 자신을 표현하듯 “죽음을 앞둔 노인”이다. 소통이 안 되는 상황들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인 만큼 주인공 이삭을 중심으로 하여 관계망이 조직된다.
우리는 이렇게 활동했었다. 2009년 가을, “방 구할 돈 없으니 학교에서 살아보자”며 시작된 “성공회대 노숙모임 – 꿈꾸는 슬리퍼”의 이야기는 2013년 4월 8 - 11일까지의 전시회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후의 꿈꾸는 슬리퍼의 활동들은 고민 중이지만, 학교 공간에서의 활동은 정리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빈곤 문제를 사회에 드러내고, 가난해도 보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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