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호

Relea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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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3-09-30
    8월 15일은 일본에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야스쿠니 신사 주변에서는 자이도쿠카이(在特會)를 비롯한 과격 우파와 이에 대항하는 카운터 데모가 동시에 펼쳐질 것이었다. 음흉하게 스며드는 불편함이 아니라, 불꽃 튀기듯 부딪치는 힘들 어딘가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이시즘에 대항하는 것은 ‘경계선 따위는 없다’는 추상성이나, 그것은 ‘지도 위의 선일 뿐이야’ 하곤 자기 삶과 분리시키는 태도가 아니라, 그 ‘경계선’이 복잡하게 형성되는 순간들을 보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 김융희 in 여강만필 2013-09-29
    하늘은 자꾸 짙푸르러 높아만 가며, 청록의 산색은 얿어지면서 더욱 멀어져간다. 벌써 가을이 한창이다. 서툰 농사꾼의 장포에는 여름 내 내 힘겹게 자란 작물들의 결실이 한창 익어가고 있다. 금년 여름은 파종에서 개화기까지 줄곧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었다. 악천후의 수렁속 잡초들과 사투를 벌였던 작물의 결실은 너무도 볼품없이 초라하다. 줄곧 곁에서 성장을 지켜본 내겐 이같은 결실이 너무 애처롭고 한없이 대견스러워 보인다.
  • 음악을 주제로 한 글쓰기는 내가 늘 바라왔던 작업이다. 곡을 쓰는 것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응?) 글을 쓰는 일에 애정을 품고 있다. 보미의 레드 노트. '노트'는 '음'을 의미하고, '레드'는 열정, 앞서 나아감을 나타낸다. '레드'라는 형용사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지만, 여러 의미를 풍성하게 담아낼 수 있는 적절한 수식어를 찾지 못했다. 소리를 표상하는 음에 색깔이라는 성질을 덧붙이려는 의도는, 공감각을 연상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다.
  • japan
    계획에 없던 여행이라 여행계획도 없었던 나는 무료했던 며칠을 보내고 분라쿠 극장에 갔다. 분라쿠는 주로 무사, 서민, 무용 등을 제재로 삼는 일본식 인형극이다. 내가 본 것은 그중 한 무사와 그의 여인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 했기 때문에 내용에 관해선 자세히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무능은 외려 내용에 몰입했다면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극에 설정된 기초적인 요소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 무엇보다 먼저 실제로 말해지고 있는 것만큼 예술이 노동운동에 어떤 전술적인 가치가 있는지, 운동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듣고자 했다. 그래야지 만이 예술과 노동의 결합에 대한 과장된 수사를 줄이고 직접적인 경험의 양상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투쟁을 전개해나가고 있는 콜트콜텍 조합원들에게 예술은 정말 쓸모 있는 전술이었는지, 만약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쓸모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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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안 in 동시대반시대 2013-09-29
    처음 본 인천에는 공장이 많았다. 광역버스를 타고 갔는데, 창문으로 보이는 도로 양 옆으로 공장들이 계속 스쳐갔다. 이 속에 콜트 공장도 있었겠지만 철거되고 지금은 사라졌다. 공장이 없어졌는데, “콜트가 (더 이상) 뭐 가지고 싸우겠느냐”고 누군가 말했다지만, 여기 콜트 공장 터 맞은편에 천막을 치고 “분명 콜트는 공장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에서 총 기획하고 실행한 퀴어 에세이 낭송회 의 시작은 기형도의 「거리에서」란 시의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는 말에 꽂혀버린 누군가의 제안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처럼 퀴어(Queer; 원래 "이상한", "색다른" 등을 나타내는 말이나, 지금은 성적 소수자-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 섹슈얼, 트랜스젠더 등-의 사람들 모두를 포괄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인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고, 우리 “같은 사람들”, 우리는 퀴어든 아니든 모두 같다고 하는 의미를 모두 품고 있다.
  • IMG_1783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모임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위클리 수유너머’에 글을 쓰게 될 줄을 말이다. 2003년 2월 28일이었다. K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당시 전주에 살면서 결혼하지 않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직장 여성 일곱 명을 모았다. 결혼을 꿈꾸는 친구도 있었고, 연애 중인 친구도 있었고,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친구도 있었다. 나처럼 결혼이 삶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 Camera 360
    송이 in 묘한 일기 2013-09-29
    고양이를 부르는 이름으로 애정을 알 수 있다면 나는 석류를 예뻐한다. 고양이 2살이면 인간 나이로 24살 청년인데 아장아장 걸으며 엉덩이를 씰룩거리니 아기처럼 보인다. 석류는 덩치가 크다. 엄마가 오십 평생 저렇게 큰 고양이는 처음 봤다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고양이 크기가 아닌 것 같으니 시골에서 버섯 농사를 짓는 사촌 언니네 집에 보내는 게 어떠냐고 몇 번이나 물어볼 정도다. 그런데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크지가 않다. 인간과 고양이의 크기를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나보다 너무 작은 꼬맹이같다.
  • 318demo
    칼럼을 쓰며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을 삼가고 공부나 좀 하자는 결심을 하던 터였다. 하지만 입 열고 펜 드는 것도 습관인지라 꼭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의 개편을 맞아 고정 칼럼진에 합류하기로 했으니, 마음으로는 매듭을 묶으면서도 행동으로는 그것을 다 풀어버리는 꼴이 되었다. 무슨 글을 쓸까. 그래도 하는 짓이 책 읽는 일이니, 뭔가를 써야 한다면 공부삼아서 내가 읽은 글들을 소개하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주제는 따로 있지만, 나는 요즘 머리가 막힐 때 종종 중국 작가 루쉰의 글들을 읽는다. 앞으로 이 지면을 빌어 그 글 몇 편을 소개해 볼까 한다. 최근의 세태에 대한 내 생각들 몇 가지와 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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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광호 in 편집실에서 2013-09-29
    최근 연구실 내에서 저희 위클리 편집진은 이렇게 불립니다. 두 달의 개편 기간 동안 일주일에 두 번이 넘는 회의를 계속해 왔음을 돌이킨다면 과연 그런 별명이 따라붙을 만합니다. 어떤 분은 이런 저희들을 가리켜 ‘카프카적’이라고까지 이야기하셨습니다. 회의만이 끝없이 이어지고 결국에는 무엇도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섬뜩한 유머였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개편 이후 164호를 이렇게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밝히는데, 다른 편집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회의(會議)’주의자라는 별명이 저의 경우 꽤나 마음에 듭니다. 그러니까, 왠지 모르게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 tae1
    경제성장률은 바닥을 향하고 불황의 기운이 만연한 가운데, 활발히 치솟는 수치들은 다음과 같다. 고시 응시율, 대기업 입사 경쟁률, 청년 실업률, 청년 부채율. 주거비를 비롯한 생활비는 나날이 오르는데, 제대로 된 사회 안전망은 미비하고 계층 상승도 기대하기 어렵다. 현 세대의 불안은 윗세대의 욕망을 뛰어넘는 동력이 되어 청년들로 하여금 안정적인 생활 기반 선점을 위한 무한 경쟁에 매달리게 한다.
  • 말자 2 in Weekly 2013-09-28
    언제부터인가 인터넷 연예 기사에서 ‘민폐 하객’이라는 단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연예인 결혼식장에 주인공보다 더 예쁘게 차려입고 온 여자 연예인을 부르는 말이다. 민폐 하객은 흰색 옷을 입고 가는 하객을 가리키기도 한다. 결혼식장에서 순백은 신부만이 가질 수 있는 색으로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졌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