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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댓글 : 넌 애국시민을 원하니? 난 야만인을 기다린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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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182호</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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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경내이(가) 만듦</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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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박경내]]></dc:creator>
		<pubDate>Mon, 25 Oct 2010 18:10:31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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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감사 인사를 먼저 드렸어야 하는데.. 답변 감사합니다. 이번 학기 산업구조론과 노동경제론을 공부하면서 요사이 로버트 달의 &#039;On Political Equality&#039;를 읽고 있었는데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셨어요^^]]></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감사 인사를 먼저 드렸어야 하는데.. 답변 감사합니다. 이번 학기 산업구조론과 노동경제론을 공부하면서 요사이 로버트 달의 &#8216;On Political Equality&#8217;를 읽고 있었는데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셨어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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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경내이(가) 만듦</title>
		<link>http://suyunomo.jinbo.net/?p=5768&#038;cpage=1#comment-1641</link>
		<dc:creator><![CDATA[박경내]]></dc:creator>
		<pubDate>Mon, 25 Oct 2010 18:07:25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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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경제적 이유로서의 난민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지요. 경제적 이유는 앞의 정치적, 종교적 난민과는 다르게 물질적 자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정치적, 종교적 자원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물질적 비용이 발생하지 않지만, 타인의 경제적 자원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Physical한 희생이 발생합니다. 바로 &#039;자원은 한정되어 있다&#039;는 경제학의 대전제가 문제가 되는 것이죠. 여행자는 경계 안의 자원을 늘려줄 사람이므로 환영받고, 경제적 난민은 파이 조각을 작게 만들 사람이므로 밀려나는 것이죠. 

어디 선가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이며 우파적인 성향을 지닌다는 말을 들을 적이 있습니다. 일례로 같은 가격이지만 공정 무역으로 거래된 커피에 대한 소비는 증가하였지만 공정 무역으로 발생한 추가 비용을 커피값에 전가한 경우엔 그 소비 증가정도가 미비했다고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피해 없이 남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면 기꺼이 그것을 선택하지만 자신이 실제로, 혹은 물질적으로 bleeding해야 하는 경우에는 타인의 이익이 giving, 혹은 나눔의 충분한 인센티브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으로서의 저는 &#039;고통 있는 나눔&#039;의 지지자입니다. 그렇지만 이 고통 있는 나눔, 좀 더 의미있는 나눔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동참시킬 수 있는 인센티브가 있어야 합니다. 더 장기적으로는 &#039;고통 있는 나눔&#039;의 지지자의 수를 늘리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겠지만 말이지요. 

기본적으로 인간은 좀 더 &#039;옳게&#039;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039;옳음&#039;에 대한 척도가 저마다 다르다는 거죠. 그래도 사회가 유지되는 데에는 일정 농도의 &#039;Inter-subjectivity&#039;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언젠가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은 부분입니다......웃음) 공감과 교섭, 접촉과 대화는 애정, 상호의 성장을 원하는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애정의 범위를 극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경제적 이유로서의 난민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지요. 경제적 이유는 앞의 정치적, 종교적 난민과는 다르게 물질적 자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정치적, 종교적 자원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물질적 비용이 발생하지 않지만, 타인의 경제적 자원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Physical한 희생이 발생합니다. 바로 &#8216;자원은 한정되어 있다&#8217;는 경제학의 대전제가 문제가 되는 것이죠. 여행자는 경계 안의 자원을 늘려줄 사람이므로 환영받고, 경제적 난민은 파이 조각을 작게 만들 사람이므로 밀려나는 것이죠. </p>
<p>어디 선가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이며 우파적인 성향을 지닌다는 말을 들을 적이 있습니다. 일례로 같은 가격이지만 공정 무역으로 거래된 커피에 대한 소비는 증가하였지만 공정 무역으로 발생한 추가 비용을 커피값에 전가한 경우엔 그 소비 증가정도가 미비했다고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피해 없이 남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면 기꺼이 그것을 선택하지만 자신이 실제로, 혹은 물질적으로 bleeding해야 하는 경우에는 타인의 이익이 giving, 혹은 나눔의 충분한 인센티브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p>
<p>개인으로서의 저는 &#8216;고통 있는 나눔&#8217;의 지지자입니다. 그렇지만 이 고통 있는 나눔, 좀 더 의미있는 나눔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동참시킬 수 있는 인센티브가 있어야 합니다. 더 장기적으로는 &#8216;고통 있는 나눔&#8217;의 지지자의 수를 늘리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겠지만 말이지요. </p>
<p>기본적으로 인간은 좀 더 &#8216;옳게&#8217;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8216;옳음&#8217;에 대한 척도가 저마다 다르다는 거죠. 그래도 사회가 유지되는 데에는 일정 농도의 &#8216;Inter-subjectivity&#8217;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언젠가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은 부분입니다&#8230;&#8230;웃음) 공감과 교섭, 접촉과 대화는 애정, 상호의 성장을 원하는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애정의 범위를 극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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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weets that mention 넌 애국시민을 원하니? 난 야만인을 기다린다 « Weekly 수유너머 -- Topsy.com이(가) 만듦</title>
		<link>http://suyunomo.jinbo.net/?p=5768&#038;cpage=1#comment-1634</link>
		<dc:creator><![CDATA[Tweets that mention 넌 애국시민을 원하니? 난 야만인을 기다린다 « Weekly 수유너머 -- Topsy.com]]></dc:creator>
		<pubDate>Sun, 24 Oct 2010 14:05:44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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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기픈옹달, Dhandhan. Dhandhan said: RT @zziraci: 위클리 수유너머 독자의 질문에 대한 병권이 형의 긴 답글 http://bit.ly/bX3YNk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8230;]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기픈옹달, Dhandhan. Dhandhan said: RT @zziraci: 위클리 수유너머 독자의 질문에 대한 병권이 형의 긴 답글 <a href="http://bit.ly/bX3YNk" rel="nofollow">http://bit.ly/bX3YNk</a> [&#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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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추장이(가) 만듦</title>
		<link>http://suyunomo.jinbo.net/?p=5768&#038;cpage=1#comment-1633</link>
		<dc:creator><![CDATA[고추장]]></dc:creator>
		<pubDate>Sun, 24 Oct 2010 05:32:15 +0000</pubDate>
		<guid isPermaLink="false">http://suyunomo.jinbo.net/?p=5768#comment-1633</guid>
		<description><![CDATA[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긴 생각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법과 정의를 동일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법에 대한 모든 문제제기 내지 법의 변경 사태는 정의의 파괴가 되겠지요. 그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법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법은 정의 자체가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이라고 합니다. 사실 ‘법의 힘’(실정성은 법의 본질적 특징이죠)은 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 너머에 있습니다. 어느 학자의 말을 빌자면, 법은 그 힘을 받아옵니다. 법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 그 권위는 분명 ‘정의’와 긴밀한 관련을 맺습니다. 통상적으로 말하자면 ‘어? 법이 저러면 안 되지 않나’하는, 법으로 환원할 수 없는 다양한 힘들의 영역(경쟁하는 온갖 정서나 감정들의 영역)이 있습니다. 
정의를 현실화하는 것은 ‘법’이라고 합니다만, 법에게 힘을 부여하는 ‘법 이전의 영역’, 정의의 영역은 항상 미결정의 영역입니다. 법 이외의 정의는 없다고, 법만이 정의의 수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미결정의 영역을 닫아버림으로써, 사실상 지배적인 충동과 정서, 통념을 승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완전한 폐쇄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자폐적으로 닫아버릴 수 없는 틈은 항상 열려 있고, 도둑을 막기 위해 창문을 모두 닫는다면 우리는 집을 감옥으로 바꾼 뒤 스스로 죄수가 되는 길을 택하겠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불법’을 정의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불법은 법의 다른 면일 뿐이지요. ‘법’, 즉 ‘right’과 생기면 ‘불법’, 즉 ‘wrong’은 자동으로 생겨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법(불법)의 척도, 그 경계를 계속해서 의문에 부칠 수 있는 의지와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소위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이주자들’은 어떤 행위의 ‘불법성’이 문제가 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의 ‘존재에 불법성’을 부여한 것인데, 이때의 ‘불법성’이란 일반적 의미의 ‘불법’과는 아주 다른 의미입니다. 이들이 불법 행위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합법/불법’을 따지 않겠다는 것, 이 ‘영토’ 안에서 그 존재를 승인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재판을 받지 않습니다(불법/합법은 재판의 결과로 나오는 겁니다). 재판받을 ‘시민권’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아렌트식으로 말하면 ‘권리를 가질 권리’를 부인당한 거죠. 그래서 재판없이 그냥 소위 ‘보호소’에서 ‘보호’한 뒤 추방합니다. 형식적으로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영토 안 존재에 대한 ‘승인과 부인’의 문제이지, 행위의 합법성/불법성을 가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연적으로만 보면 한국의 ‘영토(territory)’ 안에 있을지라도, 실제로는 영토바깥 ‘치외법권지대(extra-territory)’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이들이 머무는 장소의 ‘영토성’을 부인하는 겁니다.(영토라는 개념 자체가 법적입니다.)
이들은 국가의 보호를 자발적으로 포기했다고 하셨는데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UN에서는 대체로 ‘정치적 이유’와 ‘종교적 이유’에서만 난민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살기 어렵다’는 것에서 ‘경제적 이유’를 왜 빼야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멕시코 사람들이 사는 곳을 ‘자발적 포기’하고 미국으로 갈 때, 네팔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한국에 올 때, 그 ‘자발성’은 여행자가 여행지를 고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실 겁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 역시 ‘법을 무시하면 정의’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굳이 말씀드리자면 ‘법의 근거와 토대를 문제 삼는 것’이 ‘정의의 물음’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 질문은 봉쇄해도 안 되고 봉쇄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물음은 우리와 근거를 공유하지 않는 모든 존재들로부터 제기된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척도를 공유하는 자들이 아니라, 척도를 공유하지 않는 자들로부터 그 물음이 제기되는 겁니다. 그것을 단속하고 추방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우리를 바꿀 힘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다. 교섭이라는 말을 쓴 것은 그 때문이지요. 의견 고맙습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긴 생각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p>
<p>법과 정의를 동일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법에 대한 모든 문제제기 내지 법의 변경 사태는 정의의 파괴가 되겠지요. 그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법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법은 정의 자체가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이라고 합니다. 사실 ‘법의 힘’(실정성은 법의 본질적 특징이죠)은 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 너머에 있습니다. 어느 학자의 말을 빌자면, 법은 그 힘을 받아옵니다. 법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 그 권위는 분명 ‘정의’와 긴밀한 관련을 맺습니다. 통상적으로 말하자면 ‘어? 법이 저러면 안 되지 않나’하는, 법으로 환원할 수 없는 다양한 힘들의 영역(경쟁하는 온갖 정서나 감정들의 영역)이 있습니다.<br />
정의를 현실화하는 것은 ‘법’이라고 합니다만, 법에게 힘을 부여하는 ‘법 이전의 영역’, 정의의 영역은 항상 미결정의 영역입니다. 법 이외의 정의는 없다고, 법만이 정의의 수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미결정의 영역을 닫아버림으로써, 사실상 지배적인 충동과 정서, 통념을 승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완전한 폐쇄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자폐적으로 닫아버릴 수 없는 틈은 항상 열려 있고, 도둑을 막기 위해 창문을 모두 닫는다면 우리는 집을 감옥으로 바꾼 뒤 스스로 죄수가 되는 길을 택하겠지요.^^)<br />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불법’을 정의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불법은 법의 다른 면일 뿐이지요. ‘법’, 즉 ‘right’과 생기면 ‘불법’, 즉 ‘wrong’은 자동으로 생겨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법(불법)의 척도, 그 경계를 계속해서 의문에 부칠 수 있는 의지와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br />
소위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이주자들’은 어떤 행위의 ‘불법성’이 문제가 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의 ‘존재에 불법성’을 부여한 것인데, 이때의 ‘불법성’이란 일반적 의미의 ‘불법’과는 아주 다른 의미입니다. 이들이 불법 행위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합법/불법’을 따지 않겠다는 것, 이 ‘영토’ 안에서 그 존재를 승인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재판을 받지 않습니다(불법/합법은 재판의 결과로 나오는 겁니다). 재판받을 ‘시민권’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아렌트식으로 말하면 ‘권리를 가질 권리’를 부인당한 거죠. 그래서 재판없이 그냥 소위 ‘보호소’에서 ‘보호’한 뒤 추방합니다. 형식적으로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영토 안 존재에 대한 ‘승인과 부인’의 문제이지, 행위의 합법성/불법성을 가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연적으로만 보면 한국의 ‘영토(territory)’ 안에 있을지라도, 실제로는 영토바깥 ‘치외법권지대(extra-territory)’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이들이 머무는 장소의 ‘영토성’을 부인하는 겁니다.(영토라는 개념 자체가 법적입니다.)<br />
이들은 국가의 보호를 자발적으로 포기했다고 하셨는데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UN에서는 대체로 ‘정치적 이유’와 ‘종교적 이유’에서만 난민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살기 어렵다’는 것에서 ‘경제적 이유’를 왜 빼야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멕시코 사람들이 사는 곳을 ‘자발적 포기’하고 미국으로 갈 때, 네팔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한국에 올 때, 그 ‘자발성’은 여행자가 여행지를 고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실 겁니다.<br />
말씀하신 것처럼, 저 역시 ‘법을 무시하면 정의’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굳이 말씀드리자면 ‘법의 근거와 토대를 문제 삼는 것’이 ‘정의의 물음’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 질문은 봉쇄해도 안 되고 봉쇄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물음은 우리와 근거를 공유하지 않는 모든 존재들로부터 제기된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척도를 공유하는 자들이 아니라, 척도를 공유하지 않는 자들로부터 그 물음이 제기되는 겁니다. 그것을 단속하고 추방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우리를 바꿀 힘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다. 교섭이라는 말을 쓴 것은 그 때문이지요. 의견 고맙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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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경내이(가) 만듦</title>
		<link>http://suyunomo.jinbo.net/?p=5768&#038;cpage=1#comment-1631</link>
		<dc:creator><![CDATA[박경내]]></dc:creator>
		<pubDate>Sun, 24 Oct 2010 04:38:5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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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정의가 국경 안에 있지 않다는 말은 그 국경으로서 사람과 가치, 애정을 제한하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그렇담 국경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에 정의가 있는 것일까요? 

불법이주자, 노점상 문제..
&#039;불법&#039;이라는 말 속에 그들이 국가가 정한 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을 그들이 국가로부터 보호받기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으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따를까요?

 법은 정의로워야 할테지요. 그렇지만 법은 &#039;정의&#039;로 해석되어서는 안되는 걸까요? 불법이주자를 단속하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 해도 단속하지 않는 것 역시 정의라 말하기를 어려울 듯 합니다..

진지하게 생각을 하다보면 결국 &#039;이 것도 저 것도 아닌 것&#039;이 답인 듯 하여 벙어리가 되곤 합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정의가 국경 안에 있지 않다는 말은 그 국경으로서 사람과 가치, 애정을 제한하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그렇담 국경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에 정의가 있는 것일까요? </p>
<p>불법이주자, 노점상 문제..<br />
&#8216;불법&#8217;이라는 말 속에 그들이 국가가 정한 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을 그들이 국가로부터 보호받기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으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따를까요?</p>
<p> 법은 정의로워야 할테지요. 그렇지만 법은 &#8216;정의&#8217;로 해석되어서는 안되는 걸까요? 불법이주자를 단속하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 해도 단속하지 않는 것 역시 정의라 말하기를 어려울 듯 합니다..</p>
<p>진지하게 생각을 하다보면 결국 &#8216;이 것도 저 것도 아닌 것&#8217;이 답인 듯 하여 벙어리가 되곤 합니다.</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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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weets that mention 넌 애국시민을 원하니? 난 야만인을 기다린다 « Weekly 수유너머 -- Topsy.com이(가) 만듦</title>
		<link>http://suyunomo.jinbo.net/?p=5768&#038;cpage=1#comment-1603</link>
		<dc:creator><![CDATA[Tweets that mention 넌 애국시민을 원하니? 난 야만인을 기다린다 « Weekly 수유너머 -- Topsy.com]]></dc:creator>
		<pubDate>Wed, 20 Oct 2010 01:22:18 +0000</pubDate>
		<guid isPermaLink="false">http://suyunomo.jinbo.net/?p=5768#comment-1603</guid>
		<description><![CDATA[[...]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tzara, 서원 (Seo-Won) and 황윤정(독장미), Progress_News. Progress_News said: [수유너머] 넌 애국시민을 원하니? 난 야만인을 기다린다 – 마이클 샌델, 를 읽고: 1. 당신에게 읽어주는 시 한편 -왜 우리가 이렇게 광장에 모인 거지? 야만인들이... http://bit.ly/cb8QFC http://suyunomo.jinbo.net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8230;]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tzara, 서원 (Seo-Won) and 황윤정(독장미), Progress_News. Progress_News said: [수유너머] 넌 애국시민을 원하니? 난 야만인을 기다린다 – 마이클 샌델, 를 읽고: 1. 당신에게 읽어주는 시 한편 -왜 우리가 이렇게 광장에 모인 거지? 야만인들이&#8230; <a href="http://bit.ly/cb8QFC" rel="nofollow">http://bit.ly/cb8QFC</a> <a href="http://suyunomo.jinbo.net" rel="nofollow">http://suyunomo.jinbo.net</a> [&#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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