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아니, 예술적 표현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문제이다

- 박준상(숭실대 철학과 교수)

나는 약 한 달 전 수유너머R에서 발표를 한 번 한 것을 계기로 이 학술 단체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후에 몇 번 박정수의 쥐 그래피티 사건 공판에 참관했다. 그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있었던 날 오후에는 프랑스의 가장 큰 라디오 방속국인 에르에프이(RFI)의 한 한국 통신원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박정수의 인터뷰에 동행했다. 그 인터뷰를 계기로 이 사건의 진실이 프랑스에도 널리 알려지기를 원한다.

몇 번 공판에 참석하면서 내가 가장 주목해 보았던 것은, 사건 담당 검사와 판사의 논변 전체에서 어떠한 것도 정치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는커녕 그것을 건드리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쥐 그림 사건이 애초에 정치적 공안 사건으로 판단 분류되어 검찰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누구나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간단히, 쥐 그림이 누구를 말하는지 피차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처지에 말이다. 두 분은 아마 사법부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의무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담당 검사는 4월 22일 공판에서 “피고는 우리 국민들과 아이들로부터 청사초롱과 번영에 대한 꿈을 강탈한 것입니다. 빼앗은 것입니다”라고 고백함으로써 은연중에 자신의 정치적 관점 또는 정치적 무의식을 드러내 보여주고 말았다. 우리도 법정에서 두 분의 ‘온건한’ 입장과 태도에 맞추어 뱅크시 운운하면서 다만 예술적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실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외치고’ 싶었던 것이고, 그에 따라 검사의 정치적 관점과 같은 것을 무시하고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몇 가지로 요약해서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 쥐 그래피티는 이명박 정부에 반대한다는 표현이다. 그 독선과 무능과 무사고(無思考)와 불관용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김대중 정부로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국가의 신자유주의 정책 또는 경제제일주의 정책을 비판하고 싶다는 것이다. 셋째, 박정희 정권을 기점으로 해서 현 정권에서 다시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개발 지상주의 또는 성장 지상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넷째, 번드르르하고 그럴듯한 겉모습에만 집착하고 실속은 없는 현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안에 남아 있는 한국인의 고질적인 병 허영심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방 이전부터 지금까지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사대주의’를 폭로하고 거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G20 개최 당시 왜 국민에게 지체 높은 손님들을 맞이해야만 하는 머슴의 역할 비슷한 것을 하라고 요구했는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사대주의’를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기에 정확히 묻자면 이렇다. 왜 ‘강자’(강자라고 여겨지는 자)에게 약자니까 머리를 조아리라고 요구했는가? 그러한 요구가 바로 ‘국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박정수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88올림픽’ 때처럼 외국인을 만나면 인사를 하라느니 40조의 국가수익이 난다느니 마치 행사만 끝나면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양 홍보하고 있었고 저는 그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 풍자적인 의미로 가필한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무죄이지만 기껏해야 경범죄로 처리되었어야 할 사건이 정치적 사건으로 분류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결과는 200만원, 100만원 벌금형. 물론 이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이지만, 사법부는 쥐 그림 사건이 정치적으로 무죄임을 사실상 고백한 것이며, 따라서 이제 박정수는 정치적으로 절대적인 우위를 점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제부터는 서로가 진정 솔직해져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우리는 단순히 예술적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외치고 싶었고 분명히 공표하고 싶었다. 우리는 단순히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자유를 주장하고 확대하고 싶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정치적 우위로부터 정치적 승리로 나아가는 길이 눈앞에 보인다.

응답 2개

  1. 황진미말하길

    쥐그림 사건은 예술적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표현의 자유 문제이다” 라는 박준상선생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사건이 상행위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 문제이듯이

  2. 매이엄마말하길

    정말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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