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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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요리를 잘 못한다. 못한다기보다는 만들긴 만드는데, 그 맛이 잘 안 난다. 배고프니까 먹는 그저 ‘먹거리’가 아니라 ‘요리’를 ‘요리’답게 해 주는 그 특별한 감칠맛 말이다. 왜 그럴까? 함께 산 지 3년이 되어 가는 애인은 나에게 ‘정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어머니의 노력과 땀, 눈물이 깃든 가게가 새카맣게 타 한줌 재로 내려앉았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잿더미를 정리하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골목 모퉁이에서 훔쳐보았습니다. 멀리서도 불에 탄 냄새가 콧등을 시큰하게 했습니다. 가슴을 후벼 파고 드는 그 흔적들 속에서도 어머니는 묵묵히 차근차근 차분히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 “거짓말 하지 마. 그건 여자 이름이잖아. 너 목소리 하며, 응? 내가 그런 걸로 속을 것 같아 보여? 너 아버지 뭐하시니? 너희 집에 전화 좀 해야겠다. 아니, 너 날 좀 봐야겠다. 너, 내가 그리로 찾아갈 줄 알아, 너.” “저… 남자 아닌데요. 정말… 여자 맞는데요.” “아니, 이 미친놈 봐라. 너, 내가 우습니? 그럼, 넌 누구니?” 나는 알 수가 없어서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 돼지누린내가 연기로 날리는 국밥집 구석자리에 앉아 연거푸 소주를 들이켰다. 그녀는 내 국밥에 새우젓을 넣어 주며 허기를 달래길 재촉했다. 그녀의 잔을 채우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긴 싸움을 끝내야 한다.
  • 외할머니는 매일 저녁 7시에 잠에 들어 다음날 4시에 기상한다. 5시면 천주교TV에서 나오는 를 복창하고, 6시엔 세탁기를 세 번씩 돌려 구정물이 안 나오는지 확인하고, 8시 반엔 침 묻은 젓가락을 휘둘러 밥그릇마다 마늘장아찌를 추가한다. “마늘 두 쪽씩 먹어야 건강하다.” 외할머니는 매년 장독 두 동이를 마늘장아찌로 채운다. 장아찌가 알맞게 익으면 그 중 반을 건져내어 자식과 손주들에게 전해 주고, 반은 자신이 먹는다. 가장 저렴한 설탕과 간장으로 재워 둔 마늘에서는 불량식품 같은 단맛이 난다.
  •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에서 총 기획하고 실행한 퀴어 에세이 낭송회 의 시작은 기형도의 「거리에서」란 시의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는 말에 꽂혀버린 누군가의 제안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처럼 퀴어(Queer; 원래 "이상한", "색다른" 등을 나타내는 말이나, 지금은 성적 소수자-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 섹슈얼, 트랜스젠더 등-의 사람들 모두를 포괄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인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고, 우리 “같은 사람들”, 우리는 퀴어든 아니든 모두 같다고 하는 의미를 모두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