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각자의 영화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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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지하다시피 근대적인 사랑이 확립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주어에 열정, 낭만, 권태, 감정, 설렘, 인정, 광기 등등의 술어를 쉽게 붙인다. 하지만 사랑에 이러한 술어가 붙은 것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근 200년 정도밖에 안된 것으로, 사랑을 가족이나 공동체로부터 분리시켜 순수한 개인 대 개인 간의 관계로 보게 된 것은 분명히 역사적 산물이다.
  • 풍경
    장률 감독의 첫 장편 (2004)를 제외한 그의 모든 영화들에는 디아스포라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2005)에서는 감옥에 갇힌 남편을 대신해 김치 행상으로 살아가는 조선족 최순희와 그의 아들 창호가 등장하고, (2007)에는 평양에서 출발해 두만강을 건너 몽골로 간 탈북자 최순희와 그의 아들 창호가 등장한다. (2007)에는 북경어 강습을 하는 쑤이와 매춘을 일삼는 그의 아버지가 등장하고, 이리역 폭발사건의 육체적 정신적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중경으로 이주한 한국인 김광철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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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자가 피아노를 친다. 그녀는 쇼팽을 연주하고 있다. 시선은 불안정하게 악보와 건반을 오가고 박자 역시 엇나가는 것 같다. 뒤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서 그녀의 연주를 지켜보고 있다. 피아노를 치는 여자는 뒤에 있는 여자를 의식하면서 연주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가 치는 선율은 무언가에 억눌려 있는 것 같고, 어쩐지 본래 실력보다 못하게 치는 것 같다. 뒤에 앉아 있는 깐깐해 보이는 여자의 눈에는 아주 잠깐 눈물이 고이려 하지만 이윽고 그녀는 눈을 감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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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영화를 보면서 꿰어 맞췄던 퍼즐은 마지막 신(scene)에서 산산이 흩어져버렸다. 주인공들을 그저 현실물정 모르는 청년들의 유희라고 판단했던 내 생각들이, 순수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고, 그들은 그저 어른아이라고 생각했던 내 판단들이, 마지막 신에서 송두리째 뒤집혀 버렸다.
  • 잔인한 나의 홈
    작품을 보기 전 이 다큐멘터리가 친족 성폭력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선뜻 영화를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른 성폭력도 아닌 아버지에 의해 저질러진 성폭력의 피해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에서 생길 심적 부담감이 미리부터 힘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우리 선희
    "구석에 몰린 선희가 선희를 아끼는 세 남자와 만납니다. 그들 사이에 많은 말들이 오고 갑니다. 이 말들과 선희란 사람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런 말들이 선희를 도와줄 수 있을까요?" 문장을 조금 수정해 보자. "영화를 찍는 브루노 뒤몽이 플랑드르와 까미유 끌로델을 만납니다. 그들 사이에 많은 말들이 오고 갑니다. 이 말들과 영화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런 말들이 영화를, 그리고 뒤몽을 도와줄 수 있을까요?"
  •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사에서 무엇을 봤을까. 아마도 나르키소스가 연못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 표면은 아주 잔잔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르키소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반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최선의 모습이 담길 만큼 고요한 수면 위에서 가능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수면 위는 늘 일렁거린다. 센 물결도 치는데다가 진흙과 물이 뒤섞여 버리는 상황도 발생한다
  • 02_JGBPO4_2003
    나는 이 영화를 세 번 보았다. 첫 번째 봤을 때는 중3 때여서 그런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재밌는 SF물로 보았다. 수능 끝나고 우연하게 다시 봤을 때는 중3 때 봤을 때보다는 나름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보였다. 허나 내가 느낀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역시 인간은 나쁜 동물이야' 정도였고, 영화가 반전 또한 괜찮아서 그냥 즐겁게 타임킬링 한 영화로 기억에 저장해 놓았다.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이 영화로 다시 보게 되었는데, 나는 정말 경악했다.
  • 그리고 싶은 것
    권효 감독의 은 한·중·일 평화그림책 프로젝트에서 위안부를 소재로 택한 권윤덕 작가 그림책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8월 15일 광복절에 개봉을 했고,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할머니들이 늘어 가는 현실을 알리고 호소하는 데 힘을 싣고 있다.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는 위안부 문제의 국제사회화를 위해 투쟁하다 돌아가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에 의해 1991
  • japan
    계획에 없던 여행이라 여행계획도 없었던 나는 무료했던 며칠을 보내고 분라쿠 극장에 갔다. 분라쿠는 주로 무사, 서민, 무용 등을 제재로 삼는 일본식 인형극이다. 내가 본 것은 그중 한 무사와 그의 여인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 했기 때문에 내용에 관해선 자세히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무능은 외려 내용에 몰입했다면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극에 설정된 기초적인 요소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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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명의 주인공이 있다. 한 명은 유명한 배우이고 한 명은 정신병원에 입원한 그녀를 돌보는 간호사이다. 배우인 엘리자베스는 어느 날 연극 의 무대에서 갑자기 몇 분간 대사를 멈추어 버린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들과 남편도 보지 않고, 일상을 정지시킨 채로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낸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히 정상이라는 의사의 소견과는 정반대로 그녀는 전혀 괜찮지가 않
  • NCFOM_Chigurh_WildEyes
    니체의 말마따나 인간은 무(無)라도 의지한다. 인간은 무언가에 의지해야지만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고 지속시킬 수 있다. ‘시대’나 ‘역사’, ‘세계’와 같은 별이 사라진 시대에서도 인간은 무언가에 의지하고, 의지하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타자와 싸운다. 이 영화에서 그려진, 거대서사가 사라진 시대에 인간이 의지하는 대상은 바로 ‘나’와 ‘주사위로서의 동전’ 그리고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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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그 중에서도 자신 주변의 삶 즉, 가족이나 친구 스스로를 찍는 사적다큐멘터리는 사실 내 취향은 아니다. 사적이지 않은 소재의 다큐멘터리나 극영화를 보아도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사적 다큐멘터리는 적극적으로 만든 이의 삶을 고백하고 보여주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 hitchcock
    서스펜스 영화는 관객에게 늘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도대체 범인은 누군가? 관객은 영화가 흘러가는 대로 눈을 맡기지 않는다. 화면을 꼼꼼히 검토하면서 단서가 될만한 증거물을 찾고, 인물들 한명 한명의 알리바이와 동기를 추정하면서 누가 범인일까를 짐작해본다. 그 와중에 너무 놀라지 않기 위해서 혹은 ‘감독 네 놈이 꾸민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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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개의 시계를 가진 종탑. 시계들은 제각각 다른 시간을 가리킨다. 허나 그것은 시계들 뿐 아니라 이 마을 전체가 그렇다. ‘지금’이라 명명된, 양쪽으로 쭉 뻗친 직선 위의 한 점이라 생각 된 그 시간은 무수한 직선들의 교차점인 것이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선이나 점 따위로 얘기될 만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레이터의 말대로 그것은 ‘사악해’ 뵌다.
  • 01
    살면서 어떤 관계가, 완전히 부셔져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 때가 있다. 잉마르 베리만의 대표작 에서는 영화 안의 거의 모든 관계가 단절의 직전에 있다. 영화의 주인공 이삭 보리는 의사이자 그가 자신을 표현하듯 “죽음을 앞둔 노인”이다. 소통이 안 되는 상황들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인 만큼 주인공 이삭을 중심으로 하여 관계망이 조직된다.
  • images
    영화가 시작되면 하얀 병실의 벽 위로 가볍게 움직이는 나뭇잎의 그림자가 한동안 어른거리고, 이윽고 문이 열리면 신부 상현(송강호)이 들어온다. 하얀색이 주는 창백하고 차가운 톤은 이 영화의 주된 분위기를 구성한다. 나중에는 자신들의 집의 대부분을 하얀색으로 색칠하기도 하는데, 이렇듯 병실의 느낌을 주는 하얀색은 이 등장인물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의 환유이다. 세상은 병실이며 그들은 모두 어떤 병을 앓고 있다.
  • 왼쪽부터 변성찬 평론가, 큰콩쥐님, 김임만 감독님, 와다 요시히코상 http://www.nomadist.org/xe/galary/1516892
    지난 3월 30일 토요일 수유너머N에서 재일교포 2세 김임만 감독의 다큐멘터리 <가마가사키 권리찾기> 상영이 있었다. 이튿날은 수유너머R에서 상영이 있었고, 뒤이어 현재 감독이 진행하고 있는 재일조선인 본명쓰기와 관련한 투쟁인 ‘이름투쟁’의 간담회도 열렸다.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벌에 초청된 이 다큐멘터리는 영화제의 해외프로그램담당이자 한국 다큐멘터리스트인 강석필감독에 따르자면 “오랜 기간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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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부는 소리는 들려오고 다른 어떤 배경 음악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어떤 배경 음악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듣는다. 그저 바람이 불 때 바람 소리가 날 뿐이다. 텍사스의 풍경 또한 태연하기만 하다. 풍경을 이루는 공기와 날씨는 결코 등장하는 인물의 심경이나 스토리의 박진감에 보조를 맞추는 법
  • tim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팀 버튼 특별전”이 매주 성황리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근래에 나온 팀 버튼의 영화들이 예전과 달리 흥행에서 실패한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사람들의 열광이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팀 버튼이라는 영화감독이, 좀 마이너한 성향이 있지만 그래도 어쨌든 이른바 “예술영화”보다는 “대중영화” 쪽으로 분
  •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bunilee/10030277873
    영화는 또 다른 영화로 시작한다. 남녀 콤비인 도둑들이 무기상을 털고 있다. 이어지는 쇼트에서 영화는 영화 속 영화에서 빠져나와, 돌아가는 영사기와 졸고 있는 영사기사를 보여준다. 콤비 도둑들이 가게를 빠져나가는 순간 영화상영이 멈추고, 관객들의 야유가 쏟아진다. 뒤이어 ‘우중산책’이라는 영화의 타이틀이 뜬다.
  • very
    잉마르 베리만이 죽었을 때 우디 앨런은 ‘심오한 질문을 던진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즈에 기고한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는 이안 감독은 “나는 베리만으로부터 스타일보다는 심오한 질문을 제기하는 정신과 두려운 존재에 대한 도전, 내면의 성찰 등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검색엔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상철학자’ ‘실존주의 영화 거장’이라는 수식어는
  • 유림은 소년이다. 안정적이고 편한 직업 중 대표라고 말할 수 있는 교사를 하고 있지만, 대사에서도 나오듯이 그는 이 직업이 갖는 권태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이 권태로움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이 영화에서 표현되는 학교라는 공간의 특이성은 탈영토화의 계수가 극히 낮은, 오로지 ‘선생다움’을 추동하는 욕망만이 허용되는 명사주의적 혹은 남근위계적 공간이다.
  • 변,황 영화평론가가 글을 썼었던 ‘씨네꼼’를 무진장 의식(만)하면서 만들게 된 ‘그들 각자의 영화觀’은 수유너머N에서 영화를 좋아하는 YB들이 꾸린 코너다. 액션영화, 연애영화, 잉마르 베리만, (독립)다큐멘터리, 예술영화와 B급영화. 영화라는 틀로 묶이긴 하지만 다섯 명 모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고, 이런 우리를 표현하기에 ‘그들 각자의 영화觀’은 적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