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각자의 영화觀

2013, 주목할 만한 사적다큐멘터리 두 편을 추천합니다! – <아버지의 이메일>(2012), <마이 플레이스>(2013)

- 권은혜(수유너머N)

다큐멘터리. 그 중에서도 자신 주변의 삶 즉, 가족이나 친구 스스로를 찍는 사적다큐멘터리는 사실 내 취향은 아니다. 사적이지 않은 소재의 다큐멘터리나 극영화를 보아도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사적 다큐멘터리는 적극적으로 만든 이의 삶을 고백하고 보여주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나의 사적인 삶을 누군가에게, 그것도 관객이라는 불특정다수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용기와 어느 정도의 노출증(?)이 필요한 일이고, 다른 누군가의 사연을 알게 된다는 것 역시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그간 내가 좋아했던 한국의 사적다큐멘터리들은 <거류>(2000), <동굴 밖으로>(2011), <장보러 가는 날>(2012)처럼 에세이형식이나 미디어아트적 성향으로 사적다큐의 성격을 다소 가리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2013년 봄, 내 생각을 흔들어 놓은 두 편의 사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났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43통의 이메일.

<아버지의 이메일>(홍재희)은 아버지가 남긴 이메일의 내용을 기본으로, 배우들을 통한 재연, 남아 있는 아버지의 사진, 가족들의 인터뷰, 한국 현대사를 담은 자료 들을 연대기 순으로 재구성하여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다. 둘째 딸인 감독은 아버지가 살아계신 동안에는 아버지를 떠나 미국에서 가정을 꾸린 언니나 아버지와 대화가 거의 없었던 남동생과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를 싫어했던 사춘기 시절의 딸은 나이가 들어 ‘빨갱이’ 딸이 되었고, 이는 이북에서 월남한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할 수 없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컴맹임은 물론이고 술을 드시지 않으면 별 말씀이 없으셨다는 아버지는 영화를 찍고 있는 둘째 딸이 어쩌면 자신의 삶을 이해 해 줄 것이라 생각했는지 마흔네 통의 이메일을 통해 지난 자신의 삶에 대한 비망록을 남긴다. 아버지 홍성섭씨의 생애는 분단, 전쟁, 월남전, 중동, 88올림픽, 재개발까지 한국 현대사의 면면들과 고스란히 포개진다. 어머니와 누이들을 두고 월남하여 남한에 살면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길 바란 그가 선택한 길은 외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서독, 베트남, 사우디와 같이 근대화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이주 혹은 파견근무가 가능했던 나라들은 물론 미국, 브라질, 호주 같은 나라들로 이민을 가길 원하셨다. 그러나 그 기회들은 번번이 좌절되거나 실패하고, 이에 대한 원인을 아내의 집안 문제로 돌리며 아버지는 사회와 가족들로부터 점점 고립된 삶을 살게 된다. 말년, 오래도록 살아온 집의 재개발 투쟁에 관여한 과정에서 국가와 사회구조의 문제를 느끼시는 듯했지만 말년의 그 짧은 경험이 지난 세월의 힘을 거스르진 못했던 것 같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돌아가신다.
아버지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충실히 보여준 <아버지의 이메일>은 사적다큐멘터리가 수행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은 듯 보인다.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라는 사적다큐멘터리의 슬로건을 한국 현대사와 함께 한 아버지 삶의 행적을 통해 적절히 제시했고, 감독을 비롯한 가족구성원이 그리 좋은 아버지만은 아니었던 홍성섭씨와 순탄치 않았던 가족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이다.(http://siff.tistory.com/21)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가 2008년인데, <아버지의 이메일>이 빛을 본 건 2012년이다. 재연장면과 대한뉴스회를 통한 자료 수집, 이들의 편집 등 4년간의 감독의 노고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영화다.

기적같이 찾아온 소울!

<마이 플레이스>(박문칠)는 결혼을 하지 않았음에도, 계획적으로(?) 진행된 것으로도 추정되는 여동생의 임신과 조카 소울이 태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인 감독이 이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아버지의 이메일>에서 아버지가 남긴 43통의 이메일의 존재가 그랬던 것처럼, <마이 플레이스>에서 소울이 태어나는 사건 역시 동생과 감독은 물론 부모 세대의 삶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만든다.
감독의 부모는 캐나다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 성공적인 이민가정을 꾸리며 감독인 문칠과 동생 문숙을 낳아 잘 살고 있었지만, 당시 민주화운동에 몸담고 있었던 친지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어머니의 뜻에 따라 다시 한국으로 역이민을 하게된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에 갓 입학한 문숙은 감독인 오빠보다 캐나다에서 보낸 시간이 짧았지만, 이미 자유롭고 독립적인 그곳 분위기에 익숙해진 이후였다. 한국에서 보낸 시간은 짐작할 수 있는 대로 평탄하지 않았다. 특히 문숙에게 그러했다. 그녀는 엄격하고 규율적인 한국의 학교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만 살아온 친척들과의 말에서도 상처를 받았다. 문숙은 캐나다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부모에 대한 원망을 했고, 부모님 역시 그녀에게 평생 상처가 될 유년시절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져왔다.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외로운 삶을 살아온 문숙에게 가장 필요했던 존재는 ‘항상 내편’ 일 수 있는 누군가였던 것이다. 문숙은 아이의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고 이를 실행한다. 감독의 집안은 진보적 정치적 성향을 가진 가족이었다. 그러나 한국적 상황에서 자처하여 미혼모가 되겠다는 딸을, 동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러 우려들 가운데에서 꿋꿋이 뜻을 지켜온 엄마 문숙 덕분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소울은 오랜 기간 냉전 상태였던 아버지와 문숙의 관계를 녹여버리는 등 집안의 복덩이가 된다.
여동생의 임신을 시작으로 촬영을 시작한 것이 2006년으로, 2013년에 완성된 <마이 플레이스>는 감독이 기록한 7년 이외에 감독과 문숙의 어린 시절을 담은 홈비디오의 클립들과 사진들이 함께 편집된 영화다. 그렇게 74분이라는 러닝타임 속에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과 3대에 걸친 가족의 역사가 차곡차곡 담겨있다. 가족의 이야기임에도 개입하거나 파고들지 않고 구성원 각각의 입장을 존중하는 감독의 태도가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미혼모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러한 정도는 큰 문제라 생각지 않는 당차고 매력적인 문숙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카메라를 향해 함박웃음을 짓는 소울이 보인다. 영화가 끝나 갈 무렵, 모자가 함께 뛰노는 모습이 보이게 되면 그 어떤 관객이라도 아빠미소로 그들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적다큐멘터리의 매력

<아버지의 이메일>과 <마이 플레이스>는 사적다큐멘터리의 전형성들을 갖추고 있는 작품들이었지만 바로 그 전형성들에 충실함으로써 매력을 가지는 작품들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된 <아버지의 이메일>은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마디마디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면면들을 제시하고, 그 속에서 제약을 받으며 살아가야만했던 감독 가족의 굴레와 억압들을 보여줌으로써 미시사를 통한 거시사의 표현을 잘 수행해낸 작품이었다. 소울의 탄생에서 시작된 <마이 플레이스>는 ‘미혼모’라는 말이 주는 편견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 다음 스텝의 삶을 사는 동생 문숙을 통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은 기본으로 하되, 사적다큐멘터리계의 <가족의 탄생>이라 할 만한 것을 수행했다. 각각 가족구성원의 죽음과 탄생을 시작으로 하는 이 다큐멘터리들은 인간극장을 능가하는 감동의 휴먼다큐이자, EBS 지식채널에 못지않은 감각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꼬집고 있는 작품들이다.
23일 목요일부터 인권영화제가 진행 중이고, 이번 주말부터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열린다. 곧이어 인디포럼 영화제도 열린다. 과거에 비해 개봉하는 독립영화들이 많아진 상황이지만, 다큐멘터리 영화들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다. 볼 수 있는 기회는 위의 영화제들뿐일 확률이 높다! 이상, 시간 내서 찾아가도 후회하지 않을 사적다큐멘터리 두 편에 대한 애정 가득한 리뷰 끝!

응답 2개

  1. 수수말하길

    마이 플레이스를 봤어요.
    감독의 담담하고 조용한 시선이 어떤 웅변보다
    마음을 적시더군요. 사랑은, 혁명은,….이렇게…가슴을
    적시듯 스며드는 것을!…. 강추합니다!!!

  2. 바카스말하길

    두 작품 다 좋은 작품들일 것 같아요. 잘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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