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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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보았다. 제과회사 직원들이 전쟁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지쳐간다. 그러던 어느날 신제품의 홍보영상물을 만들어 좋은 결과를 얻는다. 이 일을 계기로 직장인 밴드를 조직해서 서로간의 우정을 다져 나간다. 회사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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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요즘은 왜 글을 안 써?” “무슨 글?” "위클리에 글 쓴 지 오래 됐던데." 아뿔싸,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정말 잊어버리고 지냈다. 9월 1일자로 학교에 복직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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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생명에 대한 예의 (1)2011년은 유엔이 정한 ‘생물다양성’의 해다. “생물다양성은 생명. 생물다양성은 우리의 삶”은 생물다양성의 해를 상징하는 표어다. 이 표어는 온 지구상, 아니 온 우주상의 생명체가 모두 다 소중한 존재이며, 그들을 홀대하거나 외면하고서는 인간의 삶 또한 행복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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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를 젓는다. 그녀와 그의 뒷모습이 고요하다. 아마 저 배는 어딘가에 가 닿을 것이다. 그곳에 가 닿기 전에 그는 그녀에게, 그녀는 그에게 가 닿았을 것이다.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나와 너는 대체로 타자다. 나는 그저 ‘나’라는 느낌, 너는 그냥 ‘너’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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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나의 독서 행각 몇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얼마 전 매주 참여하는 독서모임에서 안창모의 이라는 책을 읽었다. 대한제국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기까지의 역사 현장을 이렇게 책으로 생생하게 만나는 것이 무척 생경스러우면서도 반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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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하면 고리타분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학창시절, 오로지 점수를 얻기 위해 달달 외웠던 시조들이 어쩌다 떠올랐지만, 별반 감흥이 없었다. 인상이 고약한 이웃을, 단지 이웃이라는 이유만으로 외면할 수 없어 억지웃음을 짓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씁쓸하고 심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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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인간을 되살려내다 (0)2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막막한 느낌만 가득했다. 무거운 안개가 내려 회색빛으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볼 수 없었다. 최근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무거운 안개 속으로 조금씩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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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소년의 진로나 직업에 관한 책이나 자료를 눈여겨보고 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모임에서 학교도서관에 비치하면 좋을 책 목록을 해마다 만들고 있는데, 올해의 목록 주제가 바로 '진로와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그냥 흘려듣는 신문 기사나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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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책이 참 귀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터라 새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친척집에 다녀온 엄마 보따리에서 책이 나오면, 횡재를 한 것처럼 즐겁고 좋았다. 낙서가 되어 있건, 겉표지가 빛이 바랬던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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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가족과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였다. 중산간지역에 내리는 눈을 맞으며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박물관에 갔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 모습을 재현해 놓아서 지난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코흘리개 시절에 보던 풍경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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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몸담고 있는 권장도서목록연구모임에서 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을 고르는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학교도서관이나 지역도서관에 가면 청소년 관련 도서가 꽂혀 있는 서가 앞을 서성거리는 일이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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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발칙한 천사, 룰레트 (2)한 사내가 있다. 반백의 사내는 늘 구부정하니 걷는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사내는 꽃다발을 들고 벌써 두 시간 째, 봉분 주위를 왔다 갔다 한다. 가끔 멈춰서 멍하니 하늘을 보기도 하고, 아주 가끔 ‘허허’ 낮은 신음을 토해내기도 하고, 또 아주 가끔 눈을 지그시 감고 회상에 잠기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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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업 마치는 종이 울렸다. 남학생반 수업이었다. 아이들의 잠을 깨우느라 보낸 시간이 길었다. 졸고 있는 아이들은 복도에서 찬바람을 쐬게 했다. 잠을 깬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왔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졸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이었다. 미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의 마음이 전해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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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카이스트에 다니던 한 학생이 안타깝게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카이스트 학생이 자살을 한 사건이 올해만도 벌써 세 번째라는 기사와 함께. 다음 날 신문에서 그 학교 학생들이 학점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 지불하는 제도 때문에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고, 이로 인해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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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공주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아름다운 공주의 모습에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하고, 멋진 왕자를 만나는 이야기에 설레기도 한다. 그러나 서양 동화 속 대부분의 공주들은 주체성을 포기한 나약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절대 권력을 가진 남성에게 선택을 받아야만 부귀와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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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 모임의 연구모임 중 하나인 권장도서목록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얼떨결에 대표를 맡은 지 햇수로는 5년째에 접어든다. 정작 학교 도서관을 담당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다행히도 내가 재직하는 학교에서는 학교 도서관에 전문 사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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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바다를 보고 있다. 푸른 바다가 아니다. 어두컴컴한 바다다. 그 위로 초승달이 떠있다. 달빛이 희미하게 비친다. 소녀는 까치발을 하고 한쪽 팔꿈치를 창틀에 올린 채 어두컴컴한 밤바다를 바라본다. 뭔가 간절함이 묻어난다. 그리고 책 표지를 가로질러 붉은 연이 날아올랐다. 소녀의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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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욕망에 시달려왔다. 인정 욕망은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한 셈이다. 그런가 하면 인정받지 못한 경험들은 아픈 상처로 남아, 남은 생을 지배하기도 한다.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무관심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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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간의 제주 생활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제주로 내려갈 때의 예상과 마찬가지로 마음먹은 계획 중 10분의 1정도밖에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 중 하나가 아들 녀석과 중학교 1학년 1학기 수학 범위를 함께 공부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뭐 그리 대단하고 거창하게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한 단원씩 매일 함께 읽고 예제와 유제를 풀었다는 사실에 무척 뿌듯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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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제주도를 여행했다. 어느 땐가부터 제주도에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곳이 달라져 있었다. 그들은 귀에 익숙한 관광지 대신 올레길 몇 구간을 걸었다는 말을 했다. 나는 기대했다. ‘바다가 있고 억새가 있는 길을, 그리고 맑은 바람이 있는 제주길을 걷는다는 말이지…….’ 그래서 여행을 가기 전에 올레길 중 한 구간과 제주를 사랑한 사진 작가 김영갑 갤러리,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용눈이 오름을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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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易地思之의 기술 (2)작은 부평초로 뒤덮인 호수에 붉은 낙엽 한 장이 누워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녹색 천지인 세상에 너무도 편안히 누워 있는 붉음. 그 파격이 어찌나 눈부시던지!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눈부심이란 다름 아닌 이질적인 존재들의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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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라 다시 제주도로 내려왔다. 아들 녀석에겐 마지막 초등 겨울방학이자, 나에겐 마지막 2개월 남은 휴직 기간이라 아무쪼록 뜻깊게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하지만 세상 일이 대개 그렇듯이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오히려 잘 보내기 힘들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기에 웬만하면 거창한 계획이나 기대 같은 것은 안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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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차다. 하늘은 맑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다. 교실에서 내다보는 세상은 따뜻하게만 보인다. 얼마 전 쌓인 눈 위에 눈부시게 비치는 햇빛이 차가운 눈마저 따뜻한 솜이불처럼 보이게 한다. 세상이 차다. 세상은 멋지게 보인다. 높은 빌딩이 하늘로 치솟고 있고 멋진 차들이 도로를 질주한다. 교실에서 내다보는 세상은 점점 더 세련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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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가족’. 다가가기엔 너무도 먼 꿈같은, 그래서 헛헛하기까지 한 이 제목에 대한 반감은 표지에 있는 그림을 보는 순간 스르르 녹는다. 앞표지엔 단정한 옷차림의 가족이 소파에 앉아 있다. 박제된 듯한 정지된 표정이 ‘완벽한 가족’이라는 설정에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뒤표지엔 정물처럼 앉아 있는 가족들 뒷모습 사이로, 가족의 구멍인 알렉스만 얼굴을 반쯤 내밀고 있다. 알렉스만이 자신이 걸어온 길을 성찰하는 존재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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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변두리 버스 정류장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어요. 옆으로 쓰러질 듯한 쇼핑백을 바로 세우고, 어디서 나올지 모를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핑크색과 보라색 리본으로 어설프게 멋을 낸 와인 한 병, 선물로 받았으나 나보단 선생님에게 더 어울릴 것 같아 챙겨온 목도리 하나, 여드름 다닥다닥한 중학생 녀석들 몇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기에 챙겨온 책 세 권. 마음을 표현하기엔 턱없이 가벼운 쇼핑백이 자꾸 넘어져요. 저 멀리 보이는 산머루에선 스멀스멀 안개가 내려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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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최근에 전쟁을 다룬 책을 두 권 연달아 읽게 되었다. 하나는 세노오 갓파의 자전적 성장소설인 『소년 H』이고, 다른 하나는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이다. 두 권 다 자발적으로 선뜻 골라서 끝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우연히(결국 그 우연이라는 것도 내가 만들어낸 것이긴 하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두 책을 읽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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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인간의 마음을 절묘하게 묘사한 유행가 구절이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던 남이 어느 순간 내 온 가슴을 헤집어 놓는 님이 되기도 하고, 하루라도 안 보면 눈이 멀 것만 같던 그리움이 지겨움으로 변해 ‘도로 남’이 되라는 요상한 주문을 입에 달고 다닌 경험이 있는 이에겐 ‘도로 남’ 이라는 유행가 가사야말로 구구절절 옳은 말이요, 만고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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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세대 문화인류학과에 계시는 조한혜정 선생님 강연회가 울산에서 열린다. 이 행사를 위해 전날 울산에 내려오신 선생님은 학교 수업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오전에는 인근 중학교 수업을, 오후에는 고등학교인 우리 학교 수업을 참관하시기로 했다. 조한혜정 선생님 제자 한 분과 인근 학교에서 오신 국어교사 두 분, 그리고 우리 학교 동료교사 세 분과 교감 선생님도 참관을 하겠다고 했다. 잠시 후 선생님들이 들어오셨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들. 선생님들이 교실 뒤편 자리에 앉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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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쿨? 오, No 쿨! (0)‘쿨하다’는 말이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적이 있다. 시원시원하고 주위에 휘둘리지 않고 무지 담백할 것 같은 느낌. 세상이 무너져도 똑 부러지게 제 할 말은 다 할 것 같은 당당함. 그래서인지 ‘쿨하다’는 게 마치 신세대의 아이콘처럼 생각된 적이 있었다. 쿨하고 싶었고, 더러는 쿨 한 체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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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을 위한 고전 수업을 계획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적당한 책을 고르는 일이다. 책이 없어서 그런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서점에 가보면 청소년을 위한 고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많은 책이 너무 쉽다는 데 있다. 이런 책들은 대부분 수준을 낮추는 방법을 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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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0년이 지났단다. 청년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지가. 스물 두 살 세상을 떠난 청년 전태일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예순 둘의 할아버지겠지. 할아버지 전태일, 낯설기만 하다. 그것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가 여전히 청년으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스물 두 살의 새파랗게 젊은 전태일의 삶을 그린 만화가 올해 초 완간되었다. 제목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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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이 넘으면 고전을 읽으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르치는 일 때문에 혹은 시험에 대비해서 이런 저런 책들을 의무삼아 읽어 왔지만, 고전을 읽으려는 엄두를 내본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금 이 시대, 현재 내가 안고 있는 고민을 고전이 해결해 주지는 못할 거라는 막연한 거리감과 고전이 지니고 있는 딱딱함과 고리타분함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으리라. 그리고 일단 고전은 두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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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선배교사의 소개로 『고함쟁이 엄마』(유타 바우어 지음, 이현정 옮김, 비룡소) 라는 그림책을 본 적이 있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자 주인공 아기 펭귄의 머리는 우주로, 몸은 바다로 날아가 버린다. 아기 펭귄은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부리가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어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고, 훨훨 날고 싶지만 두 날개가 밀림 속으로 사라져버려 날 수가 없다. 뒤늦게 엄마 펭귄은 아기 펭귄의 몸을 모아 꿰맨다. 그리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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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자문자답하는 소년에게 (0)매주 수요일, 파랑새 지역 아동센터에서는 서당 수업이 열린다. 논어 한 문장을 암송하고 이어서 시를 배운다. 시를 배운다지만 실재로는 시를 쓰는 시간이나 다름없다. 에서 이 시간에 쓴 시들을 소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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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진실, 그 너머 (1)팔이 아프다. 저릿저릿하게 때로는 묵직하게, 간헐적으로 통증이 찾아온다. 손으로 누르는 것조차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픈 날이 있는가 하면, 거짓말처럼 말짱한 날도 있다. 기가 막히는 건 외형상으로는 아무런 증표가 없다는 것. 그러니 아프다는 내 하소연은 번번이 엄살로 귀결되거나, 구박을 받는 원인으로 소급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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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수유 너머에서 고미숙 선생님과 함께 했던 마음 세미나를 끝냈다. 3월부터 시작해서 10월까지 했으니 꽤 긴 시간 동안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셈이다. 물론 중간에 마음이 흔들려서(내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본다는 게 무척이나 힘이 들고 고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빠지기도 했고, 여름에 제주에 내려간 기간 동안 참석을 못하기도 했다. 이제 세미나를 정리하고 나니, 이제야 겨우 내 마음자리의 언저리에 발을 디뎌 놓은 것 같은데, 무척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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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간절한 바람으로 (0)책표지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추방’은 경계 밖으로 추방되었다. ‘탈주’는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중간고사 기간 내내 시험 문제에 오류가 있지나 않을까 마음 졸이고 있는 나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 시험 시작 종이 울리고 답안지를 나눠주자마자 시험지도 보지 않은 채 답안지를 작성하고 엎드려 자는 아이들은 또한 어디쯤 있는 것일까? 암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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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딸아이와 함께 모처럼 동네 도서관에 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부모들이 무척 많았다. 나도 이참에 멋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며(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내 책을 보느라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데는 영 인색한 엄마다), 서가에서 근사한 그림책 몇 권을 골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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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함께 꿈을 꾸다 (0)빗속을 달렸다. 퇴근 후 저녁 7시 30분에 울산에서 출발했다. 경기도 남양주를 향하는 먼길이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차 속에는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네 명의 벗이 있었다. 독서교육활동가 연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좀더 긴호흡으로 독서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연수를 기획했다. 이 연수에서는 현장에서 독서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사례, 사례를 전달하는 방식, 앞으로 마련해야 독서정책을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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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그냥 팍 싸 버려 (2)송언의 글은 언제나 유쾌하다. 그의 글을 읽으면 그가 어떤 선생님일지 눈에 확 그려진다. 아이들보다 더 아이 같고, 아이들보다 더 어수룩한, 아이들보다 더 눈물이 많고, 아이들보다 더 짓궂은 선생님. 키도 아이들처럼 아담하고, 얼굴도 아이들처럼 동글동글한, 그래서 한없이 만만한 선생님. 그래서 어른이라는 걸 깜빡깜빡 잊어버리게 하는 재주 좋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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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즐겁게 존재하기 (0)한달여 일의 제주에서의 체류를 마치고 무사히 서울로 돌아왔다. 제주로 떠날 때는 그동안 하고 있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가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이 찜찜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없어도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에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다. 돌아와보니, 별일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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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지기의 책이야기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휴먼 앤 북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2004년 어느 날, 체격검사를 하는 날이었다. 1학년 때부터 3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체격검사를 하는 날은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자랐구나!’ 하고 감동하는 날이 된다.
우리 교실이 시끌벅적하다. 웃음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우스갯 소리가 들린다. 우리 반에서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가 저울에 올라선 것이다.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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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기가 겁이 난다. 나이가 들면서 더더욱 그렇다. 빼어난 미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성형을 한 것도 아닌 데도, 얼굴은 볼 때마다 다르다. X-RAY선으로 마음속을 투사하기라도 한 것처럼,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는 얼굴도 쭈그렁 마귀할멈이 되어 있다. 모처럼 옛날 친구를 만나 한바탕 수다를 늘어놓고 들어온 날은, 중학교 적 갈래머리 아이의 눈웃음이 살랑거린다. 뼈마디가 욱신거려 따끈한 아랫목만 자꾸 밟히는 날이면, 얼굴 가득 실뱀이 기어간다. 눈 꼬리도 실룩, 입 꼬리도 실룩, 여간 꼴사납지 않다. 그러니 하나의 얼굴이 수십 개의 얼굴로 변주되는 것쯤이야 다반사다.
- [30호]시가 내게로 왔다 (0)하루에 버스가 단 세 번밖에 오지 않는 산간 마을에 은둔(?)하며 지내고 있다. 운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한번 제주 시내나 어딘가로 가려면 큰맘 먹어야 한다. 게다가 이번 여름은 어찌나 더운지 제주 도민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나는 나름 이 여름을 색다르게 즐기게(?) 되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못 보고 못 느꼈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기에 오래 기억에 남을 여행이자 칩거 생활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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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영화, 수다, 우정 (3)평소 존경하는 선배교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7년 째 독서모임을 함께 하고 있는 선배교사였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던 시절에는 함께 책을 읽었다. 내가 읽은 책 중 좋았던 책을 그녀에게 빌려주었다. 얼마 뒤 그녀가 그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학교 정원에서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 나는 국어교사, 그녀는 지구과학교사였다. 흔히 이야기하는 문과적 사고와 이과적 사고가 만나 어우러지는 기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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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주도에 있다. 남편이 이곳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방학이 되자마자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 제주로 내려왔다. 공항에서 받은 제주도 지도와 뉴스를 보면 누구나 제주에서 가 볼 만한 곳이 정말 많고 여름을 지내기 딱 좋은 곳이라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열흘 남짓 생활하는 동안 우리 가족도 제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본성(?)은 속이지 못하나 보다. 내가 이곳에서 꼭 빠뜨리지 않고 가보고 싶은 곳은 역시 도서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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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의『보름달의 전설』은 참으로 철학적인 그림책이다. 진리, 구원, 깨달음 등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비네테 슈뢰더의 몽환적인 그림 또한 텍스트의 깊이를 더해준다. 이 그림책은 은자와 도둑. 상반되는 두 캐릭터가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잘 보여준다. 은자의 삶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젊었을 때 죽도록 사랑했던 여인은 결혼식 전날 다른 사내와 줄행랑을 친다. 부유하고 명망이 높았던 예비 장인은 폭풍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거지가 된다. 은자는 사랑, 부, 명망……. 지상의 모든 것들이 허울뿐이며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은자는 진리를 찾기 위해 책 속으로 파고든다. 보일 듯 보일 듯,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진리를 찾아 난해하기 짝이 없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 저작을 샅샅이 뒤진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죽을 무렵에 쓴 마지막 책에 가서야 “내가 쓴 모든 책이 진실로 속이 빈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았다”며 은자의 뒤통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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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처음으로 교육실습생을 지도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가르쳤던 제자였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나는 그의 담임교사였다. 그는 국어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따뜻함, 유쾌함을 간직하는 그를 보면서 그와 만나 함께 배움의 장을 만들어갈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꿈대로 국어교육과로 진학했고 작년 내가 있는 학교로 교육 실습을 왔다. 그가 교육실습을 마치고 떠나던 날, 『행복한 인문학』(임철우 외 지음, 이매진)을 선물했는데 속표지에 위와 같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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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발표된『미리 가본 2018년 유엔 미래보고서』를 읽다가, 2018년 대한민국 인기 직업 가운데 ‘다문화 전문가’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다문화 가족이 무려 100만 명, 10년 후엔 40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란다. ‘그래, 그쯤 되면 다문화 전문가가 필요하기도 할 거야.’ 싶으면서도, 한편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우린 뭐든 자신 없는 일엔 그럴듯한 ‘전문가’를 내세우지 않던가? 이번에도 혹여 ‘전문가’ 뒤에 숨어 묻어가고픈 얄팍한 심리가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치자. 그들에겐 과연 어떤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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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스러운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나이가 내 나이보다 많은가 적은가를 확인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마도 어떤 일을 할 때, 이제 내 나이가 어리다고 변명하기에는 글렀음을 깨닫고 나서부터 이런 습관이 생겨난 것 같다. 이제는 내 나이가 적지 않고, 그러니까 나이 몫을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자꾸 하나보다. 옛날에는 좋은 글을 읽을 때마다 저자가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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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의 책꽂이 – 파베우 파블락 그림 / 베키 블룸 글 / 김세실 옮김 / 시공주니어
난 달리기는 젬병이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 그 흔한 공책 한 권 못 받았다. 울 엄마는 다른 집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팔을 쑥 내밀고 들어오는 모습을 참 많이 부러워했다. 슬며시 다가가 팔에 찍힌 도장을 확인하고는 “오메, 좋겄다!”를 연발했다.
언젠가 한 번 정말 죽기 살기로 달렸던 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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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작년이었다. 남편이 하루는 『한겨레21』을 내밀었다. 특집기사로 노동일기를 연재하는데 기자가 직접 빈곤노동일을 하면서 쓴 노동일기라고 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편이 덧붙였다. 그때 읽었던 기사가 ‘감자탕 노동일기’였다.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음식점마다 직원 수가 줄고 한 사람이 맡은 일은 늘어나서 하루 종일 쉴 사이 없이 일을 하는 식당 아줌마들은 식당 종이 울릴 때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 반응을 한다. 하루 12시간을 일한 후 퇴근하면 다시 가족들 뒤치다꺼리에 뻗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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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의 책꽂이 -『할아버지와 나』마야 게르버-헤스 글 / 하이케 헤롤드 그림 / 유혜자 옮김 / 한림출판사
할아버지와 아이(손자)가 마주 서 있다. 무릎을 살짝 굽히고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할아버지는 아이와 잘 지내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뭔지 어색하다. 두 손을 무릎과 무릎 사이에 끼고 있다. 아이 역시 책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있는 폼이, 어정쩡하다. 마음을 열기 전인 모양이다. 화가는 어색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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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내가 대한민국 국적이 맞는지 좀 걱정스럽다. 물론 얼마전 열심히 월드컵 응원도 했고, 6월 2일 선거에도 성실히 참여했으니 한국 국적이 맞긴 맞다. 근데 최근 만난 엄마들은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대한민국 엄마로서 내가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얼마 전 옆집에 사는 초등1학년 엄마가 우리집에 차를 마시러 왔다. 일단 우리집에 아이들 책보다 내 책이 많은 걸 보고 엄마들은 무척 놀란다. 좋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안 좋은 의미에서 놀라는 것이다. 애한테 기본적인 투자를 안하니까. 다른 집엘 놀러 가면 이제는 내가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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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순교자’, ‘프라하의 도살자’ 상반된 이 별칭은 라인하르트 트리스탄 하이드리히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하이드리히는 히틀러가 가장 신뢰하던 부하였으며, 나치를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쟁기계였다. 유럽에 있는 모든 유태인을 말살시켜 버리겠다며 ‘최후의 소탕작전’을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레지스탕스에게 암살당하자, 나치들은 그에게 ‘독일의 순교자’란 거룩한 이름까지 부여했다. 우표까지 발행하며 그를 추억했다...
- [22호]바람 같은 그니 (0)아주 멀리서도 그니는 눈에 확 띈다. 한 그루 미루나무처럼 호리호리한 몸에 바바리 자락을 날리며 휘청휘청 걸어가는 것을 볼라치면, 슬며시 다가가 팔이라도 잡아주고 싶다. 밥상머리에 앉아 간드러지게 ‘사랑밖에 난 몰라’ 라며 노랫가락이라도 흥얼거리는 날은 좀처럼 그니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몇 겹의 비닐봉지 안에 담긴, 그니가 직접 담근 오이지 맛이라도 보게 되면 영락없이 그니의 덫에 턱 걸리고 만다. 그래서인지 그니 주위엔 광팬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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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던 해, 중등교사임용시험에 보기좋게 떨어졌다. 나는 하루빨리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빠는 집안형편을 생각해서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고 이 시험에 합격하자 직장에 근무하며 야간대학에 다녔다. 그리고 의학공부를 하고 싶어하던 동생은 학비가 들지 않는 간호사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입시를 두 번 실패하고서야 대학에 들어간 나만 여전히 부모님의 짐이 되고 있었는데 중등교사임용시험마저 실패하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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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뱅이 역습>은 한마디로 '가난뱅이 계급의 서바이벌 기술 실용서'이다. 고로 이 책을 '읽을거리'로 취급하는 당신 혹은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척하는 당신'! 당신에게는 이 기술들이 필요 없다. '바가지나 씌우는 부자 계급'은 가난뱅이의 적임이 분명하다. 당신이 이 책을 읽고도 집에 '남아도는 물건'을 창고에 쌓아둔다든가, 여러 명이 탈 수 있는 차를 혼자 타고 다닌다면 말이다. ...
- [21호]책 읽기와 공감능력 (3)얼마 전 어느 대학교 화장실에서 청소일 하는 아주머니와 젊은 대학생이 말싸움하는 장면이 인터넷 동영상으로 떠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적이 있다. 뉴스에까지 등장한 이 사건은 결국 그 당사자인 학생이 직접 아주머니를 찾아가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사건이 터지자 여기저기서 개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어머니같은 사람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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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바탕에 진회색의 육중한 건물이 우뚝 서 있는 겉표지를 보는 순간, 스르르 손이 먼저 움직였어. 『섬』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도 좋았고. 정현종이 그랬던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가고 싶다’는 욕망을 일으켰으니 그에게 섬은 아름다운 공간, 희망적인 공간일 거야. 섬을 통해 사람들 ‘사이’를 유영하고 싶어 하니까.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점에서 보면 섬은 매개의 공간이요, 소통의 징검다리이기도 할 테지. 하지만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섬은 단절의 공간,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심연의 공간이기도 해.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을『섬』이라고 적은 건, 정말이지 절묘한 선택인 것 같아...
- [20호]좁은 공간, 너른 품 (0)드디어 ‘우리’ 집이 생겼다. 평생 전셋집으로 전전하던 우리에게 ‘우리’ 집이 생겼다. 그 동안 이년 혹은 삼년에 한번씩 꼭 이사를 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마냥 신났지만 중학생이 되자 우리가 이사하는 모습이 부끄러웠다. 이사를 하는 날이면 큰 대야마다 살림살이를 가득 담아서 집 앞에 늘어놓은 모습, 그 모습을 쳐다보며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내 자신이 왜 그리 초라하게 느껴졌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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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새러 블래퍼 허디(Sarah Blaffer Hrdy)는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 캠퍼스에 석좌교수로 있는 영장류학자다. 스스로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인도 라자스탄에 사는 랑구르원숭이의 영아살해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고, 국내에 번역된 및 작년에 출판된 을 비롯한 여러 책과 글들을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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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매혹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책들은 종종 독자의 은근한 기대를 보란 듯이 배신한다. 순진한 독자들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푸코의 , 유명세를 무색하게 만드는 마조흐의 소설들, 정작 대상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제공하지도 않으면서 ‘~란 무엇인가?’ 같은 원초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책들……. 그 책의 리스트 마지막에 이 책(오사와 마사치의 )을 추가해도 결코 결례는 아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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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대단하고 멋있는 결심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고백하건대 제주도를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책을 읽어야 '책빵'의 글을 쓸 텐데, 거기서 도무지 책 구경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라 가방에 잔뜩 옷을 쑤셔 넣고 나니, 책 들어갈 여지가 없었고, 그래도 미련이 남아 딱 한 권 넣어간 책이 그만 레비 스트로스의 였다. ...
- [18호]미자에게 다가가기 (1)예순 여섯의 할머니인 미자가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다. 나무를 잘 보기 위해 나무를 보고, 또 본다. 그리고 나무와 이야기를 나눈다. 지나가던 이웃 할머니가 미자의 모습을 이상하게 쳐다본다. 할머니가 뭐하냐고 묻자 미자는 나무를 보고 있으며, 나무와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한다. 말을 건 할머니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나간다. 정신 나간 사람을 만났다는 표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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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동화에서 “가장 대담하고 신나고 뻔뻔스럽고 재미있는 어린이 책”을 쓴 작가. 로알드 달을 일컫는 찬사다. 그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 뒤에는 현대인에 대한 신랄한 조롱이 숨어 있다. 현대인의 비참하고 부조리한 일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멋진 여우 씨>또한 다르지 않다. 인간과 여우의 한 판 승부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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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오래도록 마음에 품은 적이 있었다. 미련퉁이 같은 여자. 사랑도 고행처럼 하는 여자.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여자. 서영은이 그려내고 있는 속 그녀, 문자는 내가 읽었던 여느 소설 속 주인공과는 너무도 달랐다. 너무 어수룩하고 너무 평범해서 어디서건 불현듯 마주칠 것만 같았고, 그럼 단박에 척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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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맘 때, 우리는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소리높여 외쳤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대통령은 촛불들이 반성하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다시 5월을 맞아 촛불들이 일어날까봐 두려운 걸까.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가 20년 전 수준으로 퇴보했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6월 2일 지방선거를 맞이하여, 선거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자며 결의를 모은다. 과연 우리는 지방선거를 통해 후퇴한 민주주의를 되돌릴 수 있을까? ...
- [16호]시험교를 아십니까 (1)지금도 간혹 그런 꿈을 꾼다. 시험 보는 꿈. 꿈속에서 나는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가 시험을 본다. 꿈에서 자주 치르게 되는 시험 과목은 물론(?) 수학이다. 시험지를 보니, 모르는 문제가 절반 이상이다. 정신없이 풀다 보니, 답안지를 하나씩 밀려 썼다. 시험 종료 종이 쳤는데, 등에서 진땀이 난다. 악몽이다. 휴,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도, 철없이 시험 보는 꿈을 꾸다니.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험에 대한 강박 관념이 내 무의식 속에 이렇게 오랫동안 고질적으로 남아 있었구나 하는 씁쓸함과 동시에 시험이 주는 중압감이라는 게 얼마나 큰지도 새삼 실감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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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소설 에는 주인공이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한탄하는 구절이 등장한다. 백화점 마트 일을 하는 주인공에게 세상이란 인간다움을 가르쳐주는 이 없고 경쟁만을 종용하면서 등수를 매겨 성공 아니면 실패로 사람을 판단하는 곳이다. 진보적이라고 자신의 성향을 밝히는 사람 중에서도 이러한 성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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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을 읽다 보면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루소는 인간 유형을 자연인과 시민으로 나눈다. 자연인이란 ‘자기 자신이 전부인 사람, 그 사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전체’인 사람이다. 자신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에 반해 시민은 사회라는 전체와의 관계에 의해서 가치가 정해지는 상대적 존재이다. 이는 근대 국가에서 학교가 만들어진 배경과도 일치한다. ...
- [15호]동심을 일깨우는 詩들 (4)스무 살 무렵 내가 살던 동네엔 헌책방이 많았다. 가난했지만 정이 넘치던, 그 동네엔 유난히 책에 목숨 건 이들이 많았다. 동네 끝에 위치한 조그만 복지관에선 매주 독서 토론 모임이 열렸다. 노동자, 시인 지망생, 헌책방 주인, 앳된 직장 여성, 늙수레한 아저씨 등이 오래된 난로가 품어내는 온기에 의지해 머리를 맞대고 조잘거리곤 했다.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를 만난 곳도, 박노해를 깊이 읽게 된 것도 그 곳을 통해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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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거대한 탑에서 돌멩이 하나를 빼낸다. 탑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나는 바라보고 있다. “너무 나대는 것 같아요.” 1학년 남학생반 수업시간이었다. 국어시간에 대안교육 잡지 에 실린 김예슬 선언을 읽어주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묻는 질문에 한 아이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 그 아이의 표정은 장난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복잡해 보였다. 내가 받은 인상은 그랬다. ...
- [14호]소통의 힘 (2)지난 일요일 오후, 신촌에 모임이 있어 다섯 살 난 딸아이를 데리고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들이를 다녀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충무로 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탔는데, 우연히 두 자리가 비어 있어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하철 안은 평소와는 다르게 약간 소란스럽게 느껴졌다. 봄나들이 다녀오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이야깃소리 때문이겠거니 하고 앉아 있는데,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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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버지 꿈을 꾼 적이 있어. 딩동. 벨 소리가 났는데 거실에 앉아 있는 식구들 누구도 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어. 딩동, 또 다시 벨 소리가 났어. 마지못해 문 앞으로 다가가 구멍으로 밖을 내다 봤더니, 아버지가 서 있었어. 식구들을 향해 귀신이라도 본 듯 소리쳤지. “아버지가 왔어, 아버지가!” 내 이야기를 들은 그 누구도 아버지를 맞으러 달려가지 않았어. 서로 끌어안고 벌벌 떨기만 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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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 타로는 꽤 유명한 그림책 작가다. 그림은 발랄하고 경쾌하고 단순하며, 글은 깔끔하나 정곡을 찌른다. 해서 고미 타로의 책을 읽다 보면 “어?” 하는 사이에 뒤통수를 한 방 맞는 기분이다. 더 희한한 건 맞고 나서도 실실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는 것. 까불대는 막내처럼 보이나, 속에는 참으로 깊고 따듯하고 날카로운 어른 서너 명쯤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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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첫 발령을 받은 학교는 실업계 고등학교(지금은 전문계 고등학교라고 부른다.)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은 이곳에는 구제금융 위기 이후 타격이 무척 컸다. 경제적 타격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2000년에 2학년 여학생반 담임을 맡았다. 한 아이가 자퇴를 하겠다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돈을 못 버시는 상황이고 동생들이 많다고 했다. 형편이 어려워지니까 부모님이 맏이인 자신에게 학교 그만두고 일해서 집안을 도우라고 하셨단다. ...
- [12호]사랑스러운 뇌 (3)아파트라는 공간은 참으로 이기적이고 외로운 공간인 것 같다. 쓰레기를 버리고, 방을 따뜻하게 데우고, 먹고 자고 싸는 것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정말 편리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나만의 이로움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기적인 공간이다. 한편 주변에 누가 사는지 전혀 모르고 지내다보니,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따뜻한 대화를 나누기가 그 어느 곳보다 어렵고 벅차다는 점에서는 그야말로 외로운 공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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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 아동 도서에서 이처럼 파격적인 제목을 찾기도 아마 쉽지 않을 게다. 이 책은 장애인과 안락사라는 첨예한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이 돋보이는 점은 섣부른 충고나 교훈을 주절주절 늘어놓기보다는,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하지만 아들의 최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아빠, 중증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끈을 놓을 수 없는 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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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개월 동안 내 활동의 주요 공간은 W-ing이었다. 재작년, 연구실 학술제 주요 행사였던 ‘현장인문학 워크샵’의 인연으로 그곳에서 강의도 하고 행사 때마다 얼굴도 비치곤 하다가 우연찮게 좀 더 가깝게 사귈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W-ing은 탈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쉼터와 자활훈련작업장, 그리고 그룹 홈과 임대주택을 포함한 주거공간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 ‘친구들’은 함께 생활하고 공부하고 일하면서 지낸다. ...
- [11호] 나, 나를 만나다 (2)예전 근무했던 학교에서 3년 동안 함께 생활했던 아이였다. 이 아이는 1학년 때 몸이 무척 아팠다. 아이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부모님과 의사 선생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가 자는 줄 알고 나누는 대화는 아이의 생존 가능성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 된다면 삶이 끝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원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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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幸福’ 조그만 소리로 읊조려 본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거릴 수가 없다. 그럼 나는 지금 불행한가? 딱히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불행하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면, 그럼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걸 때때로 잊고 산다. 시선은 늘 행복을 향하고 있지만, 발은 항상 더디 움직여 그런가? 이번에는 ‘行福’이라고 바꾸어 써 본다. 복을 향해 걸어가기. 복을 향한 적극적인 몸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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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의 노래 은 모성의 지극함을 보여준다. 꽃구경 가자는 말에 입이 헤벌어져서 아들 등에 업힌 노모는, 숲속 깊숙한 곳에 들어서자 꽃구경이 그냥 꽃구경이 아님을 직감한다. 노모는 순간 너무 놀라 말을 잃고 눈조차 감아버린다. 하지만 곧 정신을 추스르고 아들을 위해 솔잎을 따서 길에 뿌린다. 헨젤과 그레텔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빵조각을 뿌렸듯이, 노모는 아들의 귀환을 염려하며 솔잎을 뿌린다. ...
- [10호] 나이듦의 행복 (2)며칠 전 버스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낯익은 가수의 노래 가사가 가슴 깊이 여운을 남긴다. 어린 시절에는 내 나이 서른 이후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서른도 까마득한, 마흔 줄에 들어선 나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날 때가 많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멋있는 연예인을 보고 좋아하다가, 어느 순간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라는 걸 알았을 때 느끼는 소스라침도 요즘 자주 나타나는 증상 중의 하나이다. ...
- [9호] 낙원을 만드는 사람들 (5)그때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 낙원이라는 게 뭘까? 낙원이든, 유토피아든, 파라다이스든, 에덴동산이든 결국 이 세상에 없는 곳을 지칭하는 거잖아. 아무런 고통이 없이 안락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은 결국 저 세상에나 있다는 것. 그러기에 우린 끊임없이 갈 수 없는 그 곳을 동경하는 것일 테고. 어찌 보면 낙원이란 지금-여기에서 실패한 자들이 꾸는 몽상일지도 몰라. ...
- [9호] 순수가 짓는 집 (2)남녀공학인 학교로 옮겼다. 처음 발령받은 학교를 제외하면 남학교에서만 8년 동안 생활했다. 그런 나에게 여학생반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은 긴장감을 주었다. 첫 시간은 책과 인연을 맺어주기 위한 수업을 준비했다. 먼저 책 제목, 저자, 출판사 이름이 적힌 제비를 만들었다. 같은 제비가 두 개씩 있어서 이를 뽑은 친구는 짝이 된다. 제비를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 표정이 떠올라 마음이 설렜다. ...
- [8호] 시를 읽는다는 것 (6)몇 년 전 아주 좋은 동시 한 편을 만났다. 권영상 시인의라는 동시다. 처음 읽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하하하!’ 소리 내어 웃었고,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어눌한 강아지가 안쓰러워 눈을 조금 흘겼던 것 같다. 그러고도 몇 번을 더 읽었다. 눈으로 볼 때보다 입으로 종알종알 거릴 때 훨씬 더 감칠맛이 나서, 읽고 또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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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라는 작은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책은 미국의 작은 도시의 유일한 지역 도서관 관장인 한 여성이 자신이 직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이 도서관 반납함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발견된다. 그리고 저자는 이 고양이를 도서관에서 키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 마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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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의 <눈물바다>는 표지부터 상큼하다. 앞표지에 있는,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있는 아이 얼굴이 뒷면으로 가면 싹 바뀐다. 활짝 개어있다. 표지만으로도 눈물의 힘을 느끼게 한다. 어려서부터 만화를 좋아했다더니, 작가의 재치와 유머도 돋보인다. 상상력도 남달라, 첫 페이지부터 독자를 휘어잡는다. 시험 보는 교실 안. 아이들은 제각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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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방학, 풍경 아이들과 서울여행을 떠나 ‘수유너머 남산’에서 하루를 묵었다. 그날 고병권 선생님은 풍경 아이들에게 연구소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서 그곳은 더 이상 낡은 건물이 아니었다. 수유너머에 계신 분들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나에게도 이런 공간이 있다. 지금은 없어진 곳. 예전 근무했던 학교 건물이 몇 년 전에 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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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꼬마 참새와 허기진 떠돌이 사내. 바닥에 떨어진 빵 한 조각은 그들에겐 꼭 필요한 먹을거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빵은 떠돌이 사내의 배를 채우기엔 형편없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떠돌이 사내는 빵을 똑같은 크기로 나눕니다. 인간과 조류, 덩치 큰 짐승과 작은 새라는 분별은 그에겐 중요치 않습니다. 내가 먼저 집었으니, 내 것이라는 욕심이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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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귀로만 듣게 되는 책이 있다. 신명조체의 활자가 한순간에 저자의 목소리로 변해 귀에 박히는 책. 저자와 약간의 일면식이라도 있거나, 그 자신의 문체만큼이나 독특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쓴 책이라면 더 그렇다. 윤구병의 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칼칼한 선생의 목소리가 쟁쟁 울리고, 그때마다 변산 공동체의 명랑, 왁짜, 싱싱한 풍경들이 활짝 피어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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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결국, 마침내 금서령이 떨어졌다. 앞에 거창한 수식어를 사용한 까닭은 사실 머지않아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예감했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도 아닌데 웬 금서령이냐고?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금구매서령(禁購買書令)이라 해야겠다. 이런 상황이 닥친 것은, 어느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이 아들 녀석의 책상 위에 얌전히 놓인 지난 달 카드 사용 내역서를 봐 버렸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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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백수다. 가끔은 문필하청업자 노릇도 한다. 둘째 놈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해리포터를 찜쪄 먹을 수 있는 대작을 터뜨려서 인생이 한 방이라는 걸 보여주라고 성화지만, 그건 너무나 먼 세상의 이야기라……. 그냥 산다. 설렁설렁 건들건들. 마흔을 훌쩍 넘겨 깨달은 건, 살아 보니 내 욕심껏 세상은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 그러니 그저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게 제일이라는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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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이다. 아이들의 표정에 지루함이 담긴다. 자신도 모르게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아이도 눈에 띈다. 뭔가가 필요하다. 오늘은 어떤 책으로 아이들을 깨어나게 할까? 그래, 차윤정 선생의 을 소개하자. “얘들아, 내가 퀴즈를 낼 테니 맞춰봐!” 아이들의 눈이 열린다. 귀를 쫑긋 세운다.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는 하지만 덩치만 컸지 역시 아이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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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너무 다른 두 ‘날 것’의 이야기다. 크나큰 배고픔 하나밖에 없는 여우 씨는 숲속 호숫가에 홀로 앉아 있는 엄마 오리를 보자,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친구가 되어야겠다는 그럴듯한 허울을 붙이기는 하지만, 속이야 뻔하지 않은가! 대책 없는 엄마 오리는 자기만 살겠다고 제 새끼(알)를 남겨둔 채 줄행랑을 치고, 여우 씨는 알과 친구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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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그동안 평범한(?) 교사로 살아오던 나에게는 좀 색다른 한 해가 될 것 같은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일이 나에게 부과된 것도 그런 색다른 경험 중의 하나가 될 듯하다.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과 경험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부담감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만들어가는 즐거움과 성취감이 주는 기대감에 은근히 배가 부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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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나 한의대 가볼까?” 이 친구는 공대를 나왔고, 지금 잘 나가는 대기업에 취직해서 돈도 제법 잘 벌고 있다. 이유 없이 배알이 꼴려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왜, 돈 좀 벌어볼라고?” 그러자 친구가 그건 아니라고 얼굴이 새빨개지며 항변한다. 지금 한의사가 포화상태라 한의대 나온다고 무조건 돈 잘 버는 게 아니며, 개업할 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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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생각지도 못했던 귀한 선물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찔끔 나는 선물. 얼마 전 받은 귤 한 박스가 꼭 그랬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아 껍질이 무지 두텁고, 까만 점이 곰보처럼 박힌 귤. 지인들에게 나누어 줄 욕심에 주인집 밭에 가서 하루 종일 귤을 땄더니 허리가 꽤 아프더라고, 이제 나도 다 된 것 같다고 소녀처럼 깔깔 웃으시던 선생님이 생각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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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네 개 반의 문학 수업을 맡고 있다. 수업하기가 유독 힘든 반이 있다. 이 반 수업시간이면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 어떤 활동을 해도 반응이 없었다. 교실이라는 광장에 몸을 내맡긴 것 같지만 개인마다 자기만의 방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느낌이었다. 더 이상 표정의 변화도 없이 밀납된 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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