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창간호] 풍경지기의 책 이야기 1 – 친구, 안녕?

- 편집자

풍경지기의 책 이야기 1

친구, 안녕? –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우석훈, 레디앙

고등학교 2학년 네 개 반의 문학 수업을 맡고 있다. 수업하기가 유독 힘든 반이 있다. 이 반 수업시간이면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 어떤 활동을 해도 반응이 없었다. 교실이라는 광장에 몸을 내맡긴 것 같지만 개인마다 자기만의 방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느낌이었다. 더 이상 표정의 변화도 없이 밀납된 채로…….

다행히 아이들이 밉거나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뭔가 길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다. 수업 전반부에 교육방송의 지식e를 보여주며 아이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니 예전보다는 조금 좋아졌다.

또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수업에 집중시키기 위해 수업 시간마다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게 했다. 고민 발표가 끝나면 나의 지명을 받은 학생이 고민을 발표한 친구에게 애정어린 조언을 했다. 물론 처음엔 남학생들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조언들이 나왔다. 학교 다니기가 싫다는 아이에게 자퇴하라는 식의……. 성의없는 답변에 대해서는 다음 발표 때 자기 인생 이야기를 10분 동안 하도록 했더니 조금씩 나아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놀랄만한 광경이 만들어졌다. 항상 혼자만의 세계에 있던 한 아이는 일본문학 번역가가 되기 위해 일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한때 자퇴를 고민하던 아이는 요즘 인문학 책을 읽으며 꿈을 찾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항상 생각없이 장난만 치며 지낸다고 생각했던 한 아이가 들려주는 진지한 고민을 듣고서 모두 놀라기도 했다.

신기했다. 무채색의 아이들이 조금씩 빛깔을 되찾고 있었다. 갑자기 활기찬 수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 아이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아이들이 친구들을 보는 시선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장난만 치던 아이들이 창밖을 함께 보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우석훈 선생의 글을 읽으면 하얀 화선지 위에 붉은 빛, 푸른 빛이 은은하게 물드는 광경이 떠오른다. 우석훈 선생은 <88 만원 세대>를 통해서 무채색의 20대들에게 붉은 볼을 되찾아주었다. 자신 밖에 모르고 사회에 대한 관심이 없는 존재라고 치부했던 20대가 어떤 세대 경험을 통해 소외받은 존재가 되어왔는지를 그제서야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통해 20대에게 푸른 힘줄이 살아있는 손을 되찾아주었다.

이 책을 통해 우석훈 선생은 또한번 20대들에게 거울을 들이댄다. 거울 속 20대는 누군가에게 쏠 총을 든 채 불안에 떨고 공포에 짓눌려 있다. 하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다. 땀을 닦아줄 사람뿐만 아니라 쏘아야 할 대상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저 벽으로만 둘러싸인 방에 갇힌 채 떨고 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의 자식으로 태어나 평생 경쟁에 내몰린 채 지금까지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살아왔다. 부모로부터, 교사로부터 지금까지 배워온 것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경쟁에서 이기고 모든 걸 가질 수 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손에 남은 것은 끝없는 불안, 공포일 따름이다. 그런 20대에게 우석훈 선생은 따뜻하게 말을 건넨다.

– 쫄지 마, 상상해 봐, 혁명을…….

20대들은 잔뜩 쫄아서 자신과 마주 보지 못하고, 주변의 다른 이들도 보지 못한다. 신자유주의가 이식한 공포가 정신을 넘어 육체까지 지배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서로 자신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이야기한다. 나만 외롭고 두려운 것이 아니었구나를 확인하는 순간 주변에 사람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양한 관계망을 회복하는,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20대를 위한 진 짜기가 될 것이라고 우석훈 선생은 이야기한다. 더 이상 20대의 문제를 누군가가 해결해 줄 거라는 환상을 버리고 20대 스스로가 시민단체를 조직하고 지역정당을 만들어 정치운동을 해나가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20대 스스로가 낯설어 하는 노동조합을 그들의 일상 영역으로 붙잡는다. 알바들의 지역 일반노조를 만들자는 제안으로.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조용히 번지고 있는 혁명의 기운을 들려준다. 주변부에서 시작되고 있는 당사자 운동으로 대안경제의 흐름을 소개한다. 문화적 상상력이 넘쳤던 프랑스 68혁명의 에너지와 명백하고 간결하게 요구사항을 내세우는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 방식을 결합한 사회 변화를 제안하고 나아가서는 20대의 기본권을 선언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대안의 출발점은 “친구, 안녕?”을 외치며 각자의 방에서 나와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나 혼자 고독하고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 내 옆에 있는 친구에게 따뜻한 가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바로 이러한 사회 변화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석훈 선생은 애정어린 시선으로 20대를 지켜보며 하얀 화선지 속에 붉은 빛, 푸른 빛을 은은하게 물들이고 있다.

이제 서로를 바라보며 빛깔을 찾아가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우석훈 선생이 들려준 이야기를, 꿈을 함께 나눠봐야겠다.

– 박혜숙(울산중앙고등학교) / kriunsungsanpo@hanmail.net1
  1. 발령 초기,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후 12년이 지났습니다. 더 이상 저에게 아이들은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 아닙니다. 함께 길을 걸어가는 벗이요, 스승입니다. 저는 오늘도 아이들과 주위 선생님들과 함께 배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

응답 2개

  1. 연초록말하길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있는 딸과 아침에 통화를 하다가 (전화건 사연은 같이 사는 친구랑

    베를린 장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궁금하다고 엄마에게 물어보자 하고 전화를 걸었다고 하네요

    갑자기 웬 베를린 장벽? 알고보니 여행계획을 짜다가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더군요,평소라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아이라서 저도 순간 이상한 느낌이었거든요) 여름에 돌아오면

    수유공간너머에서 대학생들이 함께 할 만한 모임에 참석해보지 않을래? 하고 권했습니다.

    그랬더니 엄마,그러기엔 내가 너무 때묻은 것 같아,취직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하고

    그런 우울한 대답을 하더군요.너,호모 에로스,호모 쿵푸수읽고는 니체에게 관심이 생긴다고

    했지 않니? 혼자서는 힘드니까 공부는 역시 여럿이서 같이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모르니까 함께 하는 거지,이렇게 에너지를 넣어주니 생각해보겠노라고 하네요.

    뭔가 밝은 미래가 있을 듯한 기분이 드는 날,아무것도 희망이 없을 것 같은 회색빛에 가득한

    날 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그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20대,더 나가서

    불안정한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닐까,그 안에 익사할 것이 아니라

    함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저도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돌아오면 아이에게 이 책을

    선물로 주고 싶네요.

  2. 욱스말하길

    무채색의 아이들에게 점차 빛깔이 채워지고 있다니 정말 아름다운 말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책도 꼭 한번 읽어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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