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여치와 떠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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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ul1

  • w2
    모모! 모모! 어서 일어나. 아침이라구우. 햇살의 우렁찬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눈을 찌르는 것 같았다.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봤다. 먼저 잔꽃무늬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여관의 낯선 벽지를 보고서야 내가 길 위에 있음이 실감났다. 어제 길을 잃고 헤매다 해질 무렵에 가까스로 찾은 여관이었다.
  • apple

    여행의 둘째날 아침은 새들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시작됐다. “찌르르 찌르르” 찌르래기가 공기의 현을 두드리자 멧새가 “츄이~ 츄이~” 높은 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참새도 질세라 “치칫 치칫” 화음을 넣었다. 새소리 때문에 잠에서 깬 것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귀청이 떨어져라 울리는 자명종 때문에 아침잠에서 깨곤 했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자명종이 있을 수 있다니! 혹시나 지휘자의 날갯짓에 맞춰 노래 부르는 새들을 볼 수 있을까 싶어 창문을 활짝 …

  • suyup
    길은 어느덧 경기도를 벗어나 충청남도 아산에 접어들었다. 시야를 가로막던 콘크리트 벽이 사라지자 추수를 끝낸 빈 들이 양 옆으로 펼쳐졌다. 길섶에 코스모스 한 송이 피어있을 법도 하건만 마른 수숫대만 서걱이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바람이 불어 그나마 붙어 있던 남은 잎들마저 약탈자처럼 훑어가고 밭두렁에서 벗겨낸 검은 비닐들이 공중에 우우 떠다녔다. 들판 위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았다.
  • wan1
    현관문을 열자마자 싸늘한 가을 공기가 코끝을 아려왔다. 방금까지의 자신감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몸이 으스스 떨려 왔다. 다시 집 안으로-내 방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세상과 부딪치고 싶지 않다. 누구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다. 한번도 진정으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죽을 수도 없다. 진짜 심장으로 세상을 만나고 사랑하기 위해 지금 나는 이 문을 열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나는 풀여치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집을 나섰다.
  • pulwan
    여행을 준비하기 앞서 나보다 먼저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어떻게 여행을 준비했을지 궁금했다. 먼저 자전거 여행에 관한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여러 글들을 쭉 훑어보았다.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 두바퀴로 떠나는 여행, 자전거 타고 고고씽, 자전거로 만나는 세상 등등... 생각보다 자전거 여행과 관련된 카페는 아주 많았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전국일주를 다녀온 사람들 또한 많았다.
  • 80.pych
    우리는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아 나무로 만든 집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집 안은 깔끔하고 아늑했다. 벽에는 톱이며 망치 같은 각종 공구들이 키를 맞춰 걸려 있었고 닥터 제페토의 책상에는 각종 실험기구와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77pul
    자전거 가게 문을 열고 나온 후 다른 자전거 가게를 둘러 보았지만 모두들 풀여치를 자세히 보지도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떤 곳에서는 그런 고물을 고치느니 차라리 엿을 바꿔 먹으라는 말까지 들었다.
  • wans
    하지만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음날 얄리는 공구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다 한숨을 쉬었다.
  • 71travel
    내가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라니... 나는 풀여치의 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원래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다. 누군가 내 칭찬을 조금만 해도 수줍어서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한다.
  • pul
    풀여치를 만난 이후 내게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골칫덩어리로만 여겨졌던 고장난 물건들 하나 하나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고물들은 그저 어디 한 부분이 고장난 것일 뿐 존재 자체가 모조리 쓸모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풀여치만 해도 그랬다.
  • 62th

  • pulyuci1044
    다음날부터 나는 카페 에서 일을 하게 됐다. "정해진 일은 없단다. 카페에서 놀면서 틈틈이 우리 일을 도우면 된단다. 카페에 오는 시간도, 집에 가는 시간도 네 마음대로 하면 된단다"라고 히피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지만 나는 카페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부지런을 떨었다
  • "따끈따끈한 모모 나왔습니다!" 그때 커다란 잠자리 안경을 쓴 여자가 쟁반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여자가 등장하자 카페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벙글었다.
  • pulyuchi
    카페 안은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했다. 게다가 성한 것이라곤 채송화 씨앗만큼도 없었다. 문짝이 떨어져나간 냉장고, 찌그러진 톱밥난로, 낡은 공중전화 부스, 건반이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오르간, 구멍 뚫린 나무보트, 오래된 타자기, 찢어진 우산, 부서진 기타 같은 것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 two
    오늘 점심때 친척들이 온다고 해서 장장 육개월만에 외출을 감행하기로 했다. 친척들과 마주하는 것은 가족에게도 나에게도 상처가 되는 일이다. 옷을 챙겨 입고 가방을 매고 현관문을 열자 싸늘한 삼월의 공기가 이마를 탁 친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한다. 어디로 가지?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다. 하지만 밤 늦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때워야 한다!
  • sisap
    봄이다! 블라인드의 각을 살짝 젖히니 생선회처럼 얇게 저며진 햇살이 켜켜이 날을 세우고 들어온다. 젓가락으로 집어먹고 싶을 만큼 쫄깃쫄깃하고 투명한 햇살이다. 이렇게 좋은 날 집안에 콕 박혀 있는 신세라니. 에휴. 기지개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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