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준의 언더라인

Relea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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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의 서평을 쓰기로 마음먹고도 한동안 써지지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세상은 교회를 말하면서도 교회가 아니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았던 모순된 곳이어서, 감히 이 글을 써도 될지 자신이 없었던 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책이 나온 것,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를 하느님에 대한 불경이라고 비난할 사람도 꽤 많을 것 같습니다.
  • k2
    얼마 전 자유시장경제 연구기관(이 기사가 나올 때까지 있는 줄도 몰랐..)인 자유기업원의 김정호 원장이 힙합 앨범을 냈다는 기사를 봤다. 김 원장은 힙합 그룹 '김 박사와 시인들'을 결성, 오는 21일 디지털 앨범인 '희망의 메시지'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개미보다 베짱이가 많아', '똥파리들', '챔피언 한국' 3곡은 김 원장이 직접 랩을 맡은 곡이다. 그 중 타이틀 곡 '개미보다...'는 경쟁을 피하고 삶에 안주하려는 세태를 비판했다고 한다. 가사 인트로만 간략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 insang
    예술과 모더니티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상주의 회화의 의미는 각별하다. 인상주의는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기, 즉 오스망에 의해 파리의 대규모 도시계획이 주도되었던 1800년대 중반의 도시문화를 배경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상주의는 비단 회화의 운동에 국한된 예술적 의미 외에도 모더니티의 등장이라는 사회사적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 c0074789_49791faec8415
    전쟁의 참혹한 광경을 다룬 사진들은 2차세계대전 발발이후 전쟁 사진작가들이 생겨나면서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쟁사진이 일간 신문들과 주간 신문들에 대거 실리기 시작했고, 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포토저널리즘의 등장과 함께 시대를 기록하려는 사진들이 대거 등장했다.
  • ssh
    한동안 어떤 책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위 ‘슬럼프.’ 생활습관이란 이런 때를 위한 것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어떤 대가의 글을 읽어도 머리에도 마음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눈가에서 아른 거리다 사라져갔다. 그래도 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고, 줄 그은 문장이 많은 페이지를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렇게 ‘멍 때린 지’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만에 노들야학에 현장인문학 세미나를 하러 갔다.
  • 6481399
    연말에 일제히 올해의 주요 사건을 정리 할 언론들은 상투적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 라는 말로 뉴스를 시작 할 것이다. 올 해도 작년처럼 지나치리라 만치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대북관계의 일촉즉발 불안함과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국민들의 박탈감이 기묘하게 결합하여 무거운 공기를 만들고 있다. 이것은 허무주의라기 보다는 집단적 상처와 같다.
  • 658_바우만
    어떤 책들의 매력의 적절한 질문에서 비롯된다. 사회적 문제나 현실과 긴밀하게 관련된 책들을 읽을 때, 우리는 저자에게 ‘그래서 어쩌라구?’에 해당하는 현실적인 답변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이 현실적 기대 없이 책을 읽는 것이 가능할까? 현대사회를 분석한 많은 책들이 우리의 선택을 벗어나거나, 일회적인 독서의 대상에 그치는 까닭은 이 답변의 현실성(즉각 사용할 수 있음!)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 homocommune
    를 읽고 정말 단순하게, 내게 있어 돈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해봤다. 부끄럽지만 까놓고 말한다. 난 푼돈을 몹시 사랑하지만 돈에 대한 개념은 없는 사람이다. 나름 신의 직장을 나온 아버지 덕에 내 수중에 돈 한푼 없다고 길거리에 나앉을 걱정 없다.
  • wgbd
    현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뭘 의미할까? ‘노동법을 준수하라’며 전태일 열사가 뜨거운 불길에 스스로를 던진지 벌써 40년이 지났다. 그때보다 노동자들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을까? 지난 11월 1일, 비정규 파견직 노동자 문제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기륭전자 싸움이 6년 1895일 간의 투쟁 끝에 극적으로 해결되었다.
  • 189251659
    한국사회에서 요즘처럼 디자인이라는 말이 디자인 비전공자들에게 자주 회자된 적은 없었을 것이다. 특히 서울시가 ‘디자인 서울’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낸 후, 시민들 사이에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으며 디자인 서울에 대한 반응도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디자인이 곧 경제발전과 국가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며, 마치 우리가 디자인을 부흥시키면 G20가 아닌 G7안에도 진입하는 일류 선진 국민이 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 사람들도 생겨났는데, 이들은 ‘디자인=경제 성장의 원동력=부의 성장=미래 선진 국가’라는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 8958623012_1
    대학시절 과동기 중에 가로수정비사업으로 인해 도심에 버려진 나무들을 모아두는 '나무 고아원'을 찾아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4년 내내 '나무고아원, 나무고아원' 하더니 졸업할 즈음이 되어서 대학로 어느 카페로 나를 불러 '나무고아원'이라는 제목의 연극대본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각종 행사의 촬영을 하고 돈을 받는 회사에 들어갔는데 입사한 지 3년이 지났을 즈음, 친구가 늘어놓는 불평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 dsas
    16세기, 토마스 모어가 “불안과 고삐 풀린 공포가 제거된 세계를 그린 자신의 청사진”(지그문트 바우만)에 ‘유토피아(utopia)’라는 이름을 붙인 이래, 근대는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으로 충만한 시기였다. 알다시피 유토피아는 ‘선한 곳’을 뜻하는 에우토피아(eutopia)와 ‘존재하지 않는 곳’을 뜻하는 우토피아(outopia)라는 두 개의 그리스어를 동시에 의미하는 것이었다. 근대적인 의미의 진보주의자들에게 진보는 유토피아라는 (도달할 수 없는) 허상의 뒤를 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사람들 각자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의 구체적 형상은 달랐을지 몰라도,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을 유토피아로 표상한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열망은 단일한 것이었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유토피아의 정치학」은 이런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이후의 현실에서 시작된다.
  • 이제모든
    연구실의 친구인 ‘노들장애인야학’과 꾸준히 함께 공부하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장애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몇 년 전, 장애 운동계의 가장 큰 이슈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었다. ‘버스를 타자’로 압축될 수 있는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는 여전히 열악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상당한 진전을 낳았다. 예전보다 노란색 장애인 콜 택시가 자주 눈에 띄고, 저상버스도 많이 도입되었다. 광화문 사거리에 놓인 횡단보도도 큰 성과다. 서울의 중심이라고 할 그 곳을, 이제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모두 다닐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 13
    『삼성을 생각한다』가 출간되었을 때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 노동자’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언급되지 않았을까 생각 하였는데, 전혀 언급되지 않아 조금 실망했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일 수도 있다. 필자는 2007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2교대 근무하던 두 여성이 7개월 간격으로 같은 종류의 백혈병으로 사망하였지만 삼성에서 산재인정을 거부한다는 뉴스를 보고,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현재 삼성반도체 백혈병, 암 발병 피해자는 100명에 육박하고 그 중 알려진 사망자는 22명이다. 이 사건은 삼성 무노조 경영의 온갖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고, 대한민국 사회의 비합리적인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 중동이
    대학로 혜화동 성당 앞이나 동묘 앞역 근처를 걷다 보면 필리핀계 사람들이나 미싱을 돌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주로 인도, 네팔인)을 보게 된다. 그렇다고 그들의 시장판에 끼어 물건을 사진 않는다. 왠지 비위생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끔 “스탑, 크랙다운”이라는 구호가 적힌 전단지를 보지만 그리 주의 깊게 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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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 바디우의 ‘비미학’은 ‘미학’과 ‘반미학’ 모두를 겨냥한 철학적 개념이다. 그의 『비미학』은 “비미학이라는 말은 철학과 예술이 맺는 관계를 가리키는 것으로~”처럼 “철학과 예술이 맺는 관계”를 사유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만, 정작 ‘미학’이라는 단어에는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철학과 예술의 관계가 ‘미학’이 아니고 왜 ‘비미학’이어야 하는가, 이 책에서 이 의문에 대한 설명을 발견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독서가 될 것이다.
  • 영화  1985
    테네시 윌리암스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희곡의 배경은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오랜만에 한 집에 모인 떠들썩한 가족의 모습이다. 형님 내외인 구퍼와 메이는 다섯 아이를 대동하고 곧 여섯째가 될 아이를 임신했다. 반면 동생 내외인 마거리트와 브릭은 학생시절부터 연애를 했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장 결혼한 젊은 부부다. 브릭은 한때 잘나가던 축구 선수였지만, 지금은 부상을 입은 채 스포츠 중계일도 그만둔 상태. 마거리트는 여전히 아름답고 조금은 앙큼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상냥하고 좋은 아내. 하지만 브릭과 마거리트는 아직 아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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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유너머N이 있는 북 아현동은 장마가 끝나자 마자 재개발이 될 것이다. 연구실이 이사 온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또 다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는 지은 지 30년쯤 된 건물들에서부터 갓 지은 건물들까지 용도, 종류가 다양한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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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에게서 가끔 전화가 오곤한다. 이들의 하소연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말이 붙는다. '뭐랄까. 잘못된 건 없는 데 뭐가 잘못된 느낌이라고 할까.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고 할까. 좀 허무하다고 할까' 대학교 4년 내내 목숨을 걸어가며 준비한 끝에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도 곧잘 이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 PiAdornoTW1
    우울과 허무주의는 철학에서 언제나 끈질기게 따라붙는 물귀신 같은 것이었다. 철학뿐만이 아니다. 그리스 시대의 비극을 포함해서 모든 예술작품은 그것이 허무와 구원의 문제로부터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어째서 그럴까? 어떻게 ‘허무주의’는 하나의 ‘~주의’로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길바닥에 앉아 한탄하는 자들을 가리켜야 할 것이 아닌가? 우울과 절망이 어떻게 철학자의 사유의 원동력이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도르노의 책 가 그렇다. 어찌보면 이 책은 우울과 절망으로 점철된 염세주의자의 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어둠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 276_이웃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신분석학은 신학적이고 가족주의적이다. 정신분석학은 세상을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유지되는 가족 질서로 본다. 욕망의 원초적 금지자로서의 아버지, 욕망의 원형적 대상으로서의 어머니, 아버지의 법을 내면화한 아들(남자)과 그것을 선망하는 딸(여자)로 구성된 외디푸스적 가족. 이 가족주의적 신학의 구도는 정치적으로 주권-사법적 질서로 구현된다. 아버지는 대지에 노모스(율법)를 선포하는 주권자이며, 어머니는 법에 포획된 대지의 삶이고, 아들(남자)은 법 바깥으로의 추방을 두려워하면서 법 안에 포획된 신민이며, 딸(여자)은 법의 경계에 있기에 법 안쪽을 선망하는 자유민이다...
  • 266_1초에+24번의+죽음
    당신은 자신을 시네필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반복 강박의 충동에 사로잡혀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만 한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영화 사랑의 세 가지 단계를 이야기할 때, 그 첫 번째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시네필의 이러한 특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반복 관람을 통해 시네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네필은 ‘자신만의 영화’를 원한다. 그것이 자신이 존경하는 위대한 감독의 영화라 할지라도, 그들은 나만이 기억할 수 있는 작가적 서명을 발견하고자 하며, 그럼으로써 나만의 영화, 나만의 감독, 나만의 숏, 나만의 편집, 나만의 인물과 배우를 소유하려 한다. 시네필은 자신에게만 특권화된 그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페티시적 욕망으로 충만하다...
  • 주권의 너머에서
    2004년에 처음 도쿄에 간 일이 있다. 번화가인 신주쿠에서 본 여러 유형의 노숙인들이 인상적이었는데, 부부로 여겨지는 이들, 혹은 한때 번듯한 사회적 지위를 누렸을 것 같은 이들, 뭔가 개인적인 것으로만은 읽을 수 없는 이력들을 흔적으로 갖고 있는 이들이 강한 인상으로 남은 일이 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다시 도쿄에서 한동안 지내게 되어서 신주쿠는 자주 지나다니게 되었는데, 한쪽의 정체모를 조형물들이 늘 의아했다. 그곳은 신주쿠 역 서쪽 출구 지하도였는데, 조야한 색칠을 한 비쭉비쭉한 좀 흉물스런 조형물들이 한쪽 공간을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앉아서 쉴만한 곳도 아니었고, 어떤 의미(용도)가 있어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공공미술작품이라고는 결코 생각해 볼 수도 없는 조형물이었는데, 훗날 얘기 듣기로는 아니나 다를까 노숙자 추방을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 24_ud_03
    최근 국내에서 번역된 발리바르의 저작, < 우리, 유럽의 시민들?>을 관통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1990년대 유럽의 맥락에서 정치의 가능조건을 다시 묻는 것이다. 역사적 사회주의가 몰락, 제3세계로부터 이주해오는 인구들의 급증, 자본주의 질서의 전지구화, 유럽연합 건설 프로젝트의 구체화라는 정세 속에서 유럽의 정치적 환경은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급변하는 유럽의 정세 속에서 인종청소로 불리는 발칸 전쟁이 발발하였다. 동유럽에서 다양한 종족적 동일성을 통합하던 권력형태인 국가가 붕괴로 인해 집단적으로 심각한 동일성의 위기에 처하게 된 자들이 인종이라는 상상적 동일성을 통해 그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다른 인종을 자신들을 위협하는 타자로 설정하여 그들에게 잔혹한 폭력을 휘두르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 신문을 보다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2009년 용산에서 무리한 진압으로 철거민 다섯 분과 경찰관 한 분이 돌아가셨을 때가 그러했다. 국가 권력에 의해 사람이 죽었지만, 국가 권력은 결코 처벌받지 않는다. 용산 참사만이 아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과잉 단속으로 사람이 죽어나갈 때, 테러범을 잡는답시고 엄한 사람을 폭행하고 증거도 없이 수용소에 가둘 때, 그러고도 당당한 ‘놈’들의 모습을 볼 때, 숨이 막히다 못해 돌아버릴 지경이다. 우리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국가 권력을 고발하고 규탄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