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준의 언더라인

디자인 액티비즘 – 착한 디자인으로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디렉터)

– 착한 디자인으로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다

디자인 올림픽이 디자인 한마당으로 바뀐 사연

한국사회에서 요즘처럼 디자인이라는 말이 디자인 비전공자들에게 자주 회자된 적은 없었을 것이다. 특히 서울시가 ‘디자인 서울’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낸 후, 시민들 사이에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으며 디자인 서울에 대한 반응도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디자인이 곧 경제발전과 국가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며, 마치 우리가 디자인을 부흥시키면 G20가 아닌 G7안에도 진입하는 일류 선진 국민이 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 사람들도 생겨났는데, 이들은 ‘디자인=경제 성장의 원동력=부의 성장=미래 선진 국가’라는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또 하나의 부류는 디자인이라는 말의 범람으로 인하여 디자인이라는 말에 반감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디자인이 일부에게는 ‘개발=파괴=예산 낭비=공공성의 저하’와 동의어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디자인 서울’ 슬로건을 내 세운지 3년이 넘었고, 더욱이 올해는 디자인 수도 서울이라는 타이틀 까지 내 걸었다. 사람들은 왜 서울이 디자인 수도에 뽑혔는지 어리둥절했지만 그 영문을 채 알기도 전에 2010년은 한 달 밖에 안 남았고, 2010년 가을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 디자인 파크’에서 개최하기로 예정되었던 ‘디자인 올림픽은’ 동대문 디자인 파크 공사가 연기 되는 바람에 유야무야 사라지고 디자인 한마당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눈치를 챈 사람들은 얼마 없는 것 같다. 이 사건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2007년 많은 논란 속에 철거된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는 ‘하도감 터’ 즉 조선 시대 최대 군사 훈련시설이 발견되었지만 ‘디자인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한 ‘디자인 파크’를 위해 과감히 밀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600백년 넘은 도심 대형 유적 터를 파헤친 제 1 명분인 ‘디자인 올림픽’이 사라졌지만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디자인 수도 서울 인가 경관 토목공사 수도 인가?

하도감 터를 과감하게 밀어버리고 디자인 파크를 지을 수 있게 허락해 준 것은 서울 시민이다. 서울 시민은 청계천에서 일어난 대규모 유적 파괴 유실 사건도 눈감이 주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유적을 파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청계천 복원이라는 국민 대 사기극은 디자인 서울의 어머니 이다. 청계천의 제1 목적은 ‘문화재 복원’ 그것도 수표교 복원이었지만 수표교를 비롯하여, 청계천 사업에서 제대로 복원 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오히려 철저한 파괴일 뿐이었다. 청계천에서 흐르는 물은 수돗물이고 일제 강점기와 독재개발시대를 견뎌내고 콘크리드 밑에 꿋꿋하게 남아있던 문화재 상당부분이 회복 불가능하게 손상되었다. 하지만 이 사업을 두고 ‘서울 르네상스’니 하는 말들로 꾸며댔고, 심지어 이 사업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는 데 중점적 역할을 하였다. 차기 당선된 서울시장은 청계천 사업과 유사한 소프트한 개발 사업을 여러 개 기획하며, 급기야 서울시 행정의 핵심으로 ‘디자인’을 내 걸고, 2010년 디자인 수도를 위해 2007년 부터 야심차게 준비해왔다. 그런데 그 디자인이라는 것의 의미가 현 시대의 디자인이 담고 있는 의미의 영역, 즉 비가시적, 비 물리적이고 상호 소통적인 영역보다는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60-70년대식의 산업, 제품디자인 그리고 도시경관 디자인의 의미에 한정 되어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래는 디자인 서울 추진 단이 내놓은 사업 방향이다.
‘천혜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살린 건강한 생태도시,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에 맥이 닿아 있는 품격 있는 문화도시, 세계 첨단의 IT인프라를 활용한 역동적인 첨단도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천만 시민에 의한 지식기반의 세계도시’ 가 ‘디자인 서울’의 비전이다. 서울시는 SOFT SEOUL 이라는 디자인 서울의 비전아래, 자연성에 기초하고 문화를 기반으로 서울의 도시경관을 변화시키는 계획으로 디자인서울을 추진하고 있다.‘
기본 목표에서도 명확히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이 사업의 목표는 결국 ‘서울의 도시경관을 바꾸는 것’이다. 디자인 사업단의 주요 핵심 사업이 한강 르네상스, 동대문 디자인 파크 건설 등 공원 조성이나 문화의 거리조성이라는 점은 이 기본 방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디자인 사업의 슬로건은 ‘소프트 서울(Soft Seoul)’이지만 사실상 내용은 ‘하드 서울(Hard Seoul)’인 것이다. 이것은 청계천 개발의 홍보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 청계천 사업의 생태와 문화재를 복원하겠다고 홍보하였고, 디자인 서울은 생태 대신에 ‘문화’라는 좋은 내용을 삽입했다. 두 사업의 실체는 60-70년대 독재시대와 별 다를 바 없는 토목 개발사업이지만 ‘문화, 생태, 복원’등의 좋은 이름을 덧씌워, 일반 시민이 한 눈에 토목개발이라는 것을 알아보기기 힘들어진 것이다.

디자인의 균열

현재 디자인 서울은 많은 갈등과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디자인 서울은 지난 서울시의 잘못된 환경 정책, 문화 정책의 맥을 잇고 있다는 데에서, 또한 그 잘 못된 ‘녹색 성장’이 4대강 운하 사업으로 확장되고 있는 데에서 문제가 있다. 마치 청계천 사업이 4대강 사업으로 확장 되었듯이 ‘디자인 서울’이 ‘디자인 대한민국’으로 확대되어, 4대강에 유명 보트 디자이너가 설계한 카지노 보트가 떠다니고, 북한산, 지리산 디자인 케이블카가 지나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디자인 액티비즘’은 많은 사례와 통계를 통하여 디자인의 ‘좋은 기능’ 즉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해결하는 기능 또는 구성원의 창조력과 상상력을 향상시키는 현대의 디자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디자인은 작은 유토피아를 실현시킬 능력이 있으며, 세상을 위해 새로운 실체를 제안하고 구체화 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의 몇 디자이너들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 4대강 사업을 찬성하지 않지만 먹고 살기 위해 댐을 디자인하고, 말도 안 되는 미사여구로 4대강 산업을 찬미하는 로고를 만들어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 디자이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자들이며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자들이지 이미 존재하는 미사여구들로 탐욕을 채워주는 도구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Beautiful Strangeness for a Sustainable World-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한 아름다운 낯 설음]이 아니겠는가.
디자인은 껍데기만을 바꾸는 것이 아닌 사람과 자연, 사회의 문화를 재 영역화 하는 아름다운 낯 설음-바로 ‘창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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