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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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을 떠나며 나는 하나의 이미지를 그렸다. 낯선 텍스트를 접한 독자의 이미지 말이다. 나는 장소를 텍스트로 삼아 한 명의 신중한 독자가 되고 싶었다. 낯선 텍스트를 대할 때 어떤 이는 자기 마음에 드는 일구만을 건져간다. 어떤 이는 행간을 읽어내기도, 전체상을 움켜쥐기도 한다. 장소가 텍스트라면, 행간은 그 장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직조해내는 삶의 논리일테며, 전체상은 역사에 값하리라...
  • 잃어버린 낙원, 샹그릴라는 이제 실재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것은 중국에 있다. 1997년 중국 정부는 샹그릴라를 발견했다고 대대적으로 공식 발표했다. 원난성의 중띠엔(中甸)이 바로 그곳이라는 것이었다. 2001년에는 중띠엔을 샹그릴라(香格里拉, 샹거리라Xiānggélǐlā)로 개명하여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개발하였다. 도로를 포장하고 공항을 개설하고, 2003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시켰다. ...
  • 소설 은 화자인 루더포드가 친구인 콘웨이의 체험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930년대 초 인도의 바스쿨에서 영국의 식민지배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나자, 현지의 영국 영사였던 콘웨이, 부영사 멜린슨, 미국인 사업가 버나드, 천주교 전도사 브링클로는 비행기로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비행기는 안에 숨어 있던 티베트 청년에 의해 납치당해 히말라야 쿤룬산맥 서쪽 끝자락의 험준한 ‘푸른 달 계곡’에 불시착한다. 불시착으로 그 티베트 청년은 사망한다. ...
  • “인간”이라는 통칭을 저리도 쉽게 사용할까. 다른 땅을 그토록 열망하고 열망할 수 있는 인간은 누구인가. “항상”이라는 말 앞에는 어떤 사회적·감정적 상태가 조건절로 붙어야 하지 않을까. “자아를 벗어나”라는 대목 역시, 지난 여행을 되돌아보면 나는 정신적 자유를 원했지만 언제나 자아(와 모어사회)라는 ‘맥락’을 이끌고 낯선 장소를 찾았으며, 결국 여행하는 동안 사고의 공간이 마련된 것은 ...
  • 중국에 있는 속담이라고 들었다. 중국인으로 태어나 평생토록 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중국의 모든 성에 가보는 것이요, 중국의 모든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요, 중국의 모든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그 불가능함에서는 중국이라는 규모에 대한 자긍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 내부의 복잡한 민족 문제도 짐작된다. 윈난성은 중국에서도 가장 많은 소수민족이 살아가는 땅이다. ...
  • 죽음. 프리다와 디에고, 트로츠키는 모두 코요아칸에서 숨을 거뒀다. 하지만 내게 코요아칸은 생의 이미지로 충실하지 그다지 죽음을 떠올릴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죽음이 삶의 일부라고 할지라도.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죽음의 장소라는 말에는 차라리 이슬라 네그라라는 곳이 떠오른다. 그곳은 칠레에 있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는 두 종류의 시를 썼다. ...
  • 프리다 칼로의 화폭에는 트로츠키(Leon Trotsky)의 초상화가 그리다 만 상태로 남겨져 있다. 러시아혁명의 이 위대하고 불행한 혁명가를 프리다 칼로는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둘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트로츠키 생애의 마지막 시기는 추방과 망명의 연속이었다. 그는 1929년 2월 소련에서 추방된 이래 이스탄불에서 4년, 프랑스에서 2년, 노르웨이에서 2년을 보냈다. ...
  • 공원에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파란집(Casa Azul)이 있다. 벽도 지붕도 문도 코요아칸의 하늘색을 닮았다. 여기서 프리다 칼로(Frida Kahlo)가 살았다. 그녀는 1907년 7월 6일 코요아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생일이 1910년 7월 7일이라고 말한다. 1910년은 멕시코 혁명의 해다. 그녀는 혁명의 딸이었다. 그리고 아스테카의 달력에 따르면 7월 6일은 ‘죽음’(Miquiztli)의 날이지만 ...
  • 질문은 어설프고 가벼웠으며 답변은 묵직했다. 사실 구스타보씨는 잡지에 실린다는 사실을 인터뷰 직전까지 모르고 계셨다. 그런데도 콕 찌르면 꿀물이 흐르듯 저렇듯 정리된 말씀을 지니고 계셨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가령 구스타보씨가 한국에서는 무엇이 운동의 축이냐고 물었을 때 과도기라며 얼버무리고 다시 화제를 사파티스타로 옮겨갔다. ...
  • 마르코스의 스키마스크는 아직 벗겨지지 않았다. 마르코스라는 전설도 깨지지 않았다. 검은 스키마스크는 사파티스타 반군 모든 이들의 얼굴을 가려버렸다. 이는 얼굴로 지도자와 피지도자를 가르는 것을 거부하고 모두가 지도자이며 대중이라는 상징적인 표현이자, 동시에 자본의 세계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 수 없다는 고발이었다. ...
  • 여행을 떠나기 전 친구들이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치아파스라고 답했다. 재차 그게 어디냐고 물어준다면 사파티스타의 근거지가 있는 곳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아, 그러냐”는 반응을 접할 때 약간의 우쭐거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땅을 밟는다! 그리고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 와서 안달했던 것도 사실이다. 난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을까. ...
  • 안나푸르나에서 트래킹을 하는 동안에는 매일 묵는 곳이 바뀐다. 로지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기 전에 식사부터 주문한다. 시간이 제법 걸리니까. 밥이 나오는 동안 샤워를 하면 말끔하련만 그게 쉽지 않다. 추워서 옷을 벗으려면 결심이 필요한 데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려면 나무 두 그루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 개중에는 낮에 비축해둔 태양열로 물을 데우는 곳도 있다. 상쾌함과 자연보호 그리고 추위를 두고 타협을 벌인 결과 샤워는 사흘에 한 번 꼴이다. ...
  • 눈앞에 둔 사물과 머릿속 생각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 큰 생각은 때로 거대한 광경을 요구한다. 깎여져 내려가는 절벽을 마주하노라면 품위 없다고 느껴지는 근심이 있다. 반면 어떤 착상들은 그 광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자연의 웅장함은 산란한 마음을 차분하게 덮어준다. 압도적인 규모는 뇌를 포화시켜 소소한 것들을 걷어낸다. ...
  • 안티구아는 걷기 좋은 도시다. 오래 걷자니 발의 피로보다는 배의 허기가 먼저 찾아왔다. 마침 한국음식점을 발견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얼마만의 한국음식인지. 메뉴를 물을 것도 없었다. 김치찌개를 시켰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밥을 먹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허기를 달래니 이제 힘이 붙어 잠시 도시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
  • 많은 여행서는 이렇게 권유한다. “떠나라! 일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꿈과 자유가 있을지니.” 하지만 그저 이국적이라면 외국의 장소는 일상의 감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차라리 내게 ‘마음의 장소’는 여행에서 일상을 만나고, 일상에 여행의 숨결이 입혀지도록 이끄는 곳이다. 나는 멕시코시티에 오면 띠앙기스를 기다린다. 띠앙기스는 아무 때나 찾아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
  • 일상의 무게에 그리고 가픈 호흡에 여행의 기억은 점차 바래간다. 먼저 여행지가 그 고유한 빛깔을 잃고, 나중에는 여정의 줄거리가 사라진다. 그 망각은 여행하는 동안에도 예감할 수 있다. 그래서 훗날 회상하려고 그 장소를 사진으로 남긴다. 하지만 어떤 장소는, 가끔씩 어떤 장소는 사진 대신 마음에 남는다.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그 장소의 편린은 감각의 밑바닥에 남아있다. ...
  • 여행지에서 카메라를 들이미는 행위는 남의 일상에 갑자기 작은 파란을 불러일으킨다. 그 파란은 서로 간에 웃음으로 번질 수도 있고, 상대의 주뼛거림이나 불편한 표정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찍고 찍히는 사이에 그렇듯 알게 모르게 의미가 교환될 테지만, 대개 그 의미는 찍는 쪽이 결정하거나 적어도 보존한다. 글로 쓰는 일과 달리 사진은 사진찍는 내 행위를 상대가 눈치 채기 쉽다. ...
  • 멕시코시티로 들어가는 비행기에 오른 것은 네 번째다. 미국을 경유한 비행기는 늘 밤 시간에 도착했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바깥 세계의 어둠들. 창에는 바깥 풍경 대신 내 얼굴이 비친다. 또 왔구나. 오랜 비행시간에 초췌해진 얼굴을 보며 말한다. 우웅 … 귀를 가득 메우는 비행기 실내의 소음은 내면의 대화로 들어가는 적절한 정막이 되어 준다. ...
  •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은 전사자의 묘지이다. 광장에 가지런히 세워진 검은 석제 묘비는 한자 한자 전사자의 이름을 새기고 있다. 광장 뒤편의 기념비는 일본의 각 도시·부·현 단위로 전몰자를 위령하고 있다. 찬찬히 비석들을 훑어본다. 일본인만이 아니라 적국이었던 미군 병사의 이름도 눈에 띤다. 전쟁의 역사를 뒤로 하여 민간인과 군인 전사자의 이름이 국적을 불문하고 함께 새겨져 있다. ...
  • 네 사람이 구부정하게 서 있다. 머리모양과 차림새가 비슷하다. 서로 모르는 사이는 아니지 싶다. 서 있는 곳은 경작지로도 보이고 뒤로 흐릿하게 나무 형상이 있는 걸 보아 어느 들판인지도 모르겠다. 그림자를 보니 대낮이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정오 무렵에 이들을 만나거나 불러낸 모양이다. 둘의 시선은 카메라를 향하고, 둘은 카메라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