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사고하다

차마고도는 관점이다(중국, 윈난성)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차마고도는 관점이다(중국, 윈난성)

1.

중국에 있는 속담이라고 들었다. 중국인으로 태어나 평생토록 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중국의 모든 성에 가보는 것이요, 중국의 모든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요, 중국의 모든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그 불가능함에서는 중국이라는 규모에 대한 자긍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 내부의 복잡한 민족 문제도 짐작된다.

윈난성은 중국에서도 가장 많은 소수민족이 살아가는 땅이다. 중국에서 공식 집계된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타이족(傣族)·먀오족(苗族)·이족(彛族) 등 26개의 소수민족이 이곳에서 살아간다. 이는 1000만 명 미만의 소수민족은 포함시키지 않은 수치이다. 그리고 8개의 소수민족 자치주, 27개의 자치현이 있다.

윈난은 남쪽 변방의 땅이다. 윈난성이 설치된 것은 청대인 17세기 말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에 유비가 조조에게 쫓기고 쫓겨 멀리 내려가 세운 나라 촉한이 이곳에 자리잡았다. 그 후로는 타이족의 남조국(南詔國)과 대리국(大理國) 등이 세워졌으며,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은 청대에 이르러서였다. 차마고도는 이 변방의 땅을 거대한 순환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수많은 소수민족들을 이어놓았다.

2.

하지만 차마고도를 윈난의 길로 묶어두지 않고 실크로드에 버금가는 대교역로로 만든 것은 티베트의 생존 문제였다. 티베트인의 목마름을 향해 차마고도는 생명수를 실어 날랐다. 윈난에서 차마고도가 시작된 시기, 티베트로 불교가 전래된 시기, 티베트인이 차를 알게 된 시기는 대체로 일치하는데, 모두 7세기 무렵이었다.

히말라야가 세계의 지붕이라면 티베트인들은 지붕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 고도에서는 풀이 잘 자라지 않으며, 티베트인들은 채소를 구하기가 힘들다. 야크만이 거의 유일한 영양원이었다. 티베트인들은 야크로 이동하고, 야크털로 추위를 막고, 야크똥을 말려 연료로 쓰고, 야크젖을 마시고, 야크 고기를 먹는다.

티베트의 사진을 보면 아름답다. 대지는 표면이 벗겨져 있어 물질감이 살아있으며, 하늘은 창공의 담청색이다. 노인들의 거친 피부와 깊은 주름살은 신산의 세월을 전하는 듯하다. 그들의 무표정한 표정을 그 땅, 그 하늘과 함께 담으면 인간도 자연도 날 것인 채로 우리를 응시하고 말 건네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거친 피부는 말해준다. 그곳은 고도가 너무 높고 그들에게는 비타민이 절대 부족하다. 그런 그들에게 7세기에 차가 소개되었다. 차는 생존을 위한 선물이었다(그리고 나라의 운명에는 재앙이었다).

인간만이 비타민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가축에게도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은 야크 버터를 넣은 수유차를 마시고, 질 낮은 차는 가축에게 먹인다. 또한 같은 무렵 전래된 불교가 티베트에서 독특하게 발전하면서, 차는 티베트 불교의 일부가 되었다. 차가 티베트의 삶으로 깊숙이 뿌리를 내리자 이제 차의 공급줄은 티베트인의 숨줄이 되었다.

생존이 달린 찻잎은 멀고도 험난한 길을 거쳐 티베트인들의 손에 낳는다. 아니 “멀고도 먼”이라고 표현해야겠다. 차를 생산하는 윈난의 남부에서 티베트로 들어가기 전의 샹그릴라까지가 2000km가 넘고, 거기서 또 라싸까지가 1500㎞이다. 멀고 또 한 번 멀다. 차마고도의 높낮이는 차마고도의 길이를 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잡아 늘린다. 차마고도는 해발 1700m와 5000m를 오르내린다. 펼쳐놓은 그 길은 대체 얼마나 멀리까지 뻗어갈 것인가. 그 길이를 계산해낸다고 차마고도를 건너는 지난함은 또 얼마나 전달될 것인가. 1930년대 일본이 중국을 반식민 상태로 만들어 국제교역을 차단시켰을 때도 이 길만큼은 차단하지 못했다. 마방, 그들은 더 이상 마땅한 수사를 고르기조차 힘든 그 길을 지나갔을 뿐만 아니라 만들어냈다.

3.

차마고도에는 설산과 호수, 초원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빚어진 그 길은, 그러나 마방에게는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제사를 요구한다. 행렬이 멈추면 말은 풀을 뜯고 인간은 기도를 드린다. 길가의 마니석 돌무더기, 풍파 속에서 바란 만다라(Mantra) 옴마니 반메홈(“온 우주(Om)에 충만한 지혜(mani)와 자비(padme)가 지상의 모든 존재(hum)에게 그대로 실현될지라.”), 바위에 새겨진 불상, 제사지내는 터들이 마방의 행로와 함께 한다. 어찌 보면 차마고도는 순례의 길이다. 생존을 위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신들의 땅에 길을 냈다. 그곳에는 산을 일으킨 태곳적 힘과 대지의 풍요로움, 삶의 고단함이 공존한다. 이 길은 확실히 종교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독실한 티베트인들에게 라싸로 향하는 차마고도는 생을 두고 한 번은 떠나고픈 인내와 믿음의 길이다. 걷기도 힘든 이 길을 그들은 오체투지로 나아간다. 몇 걸음 걷고 온 몸이 땅에 닿도록 절하며, 그렇게 자신을 최대한 낮춘다. 마방보다도 오래도록, 백 일도 이 백 일도 넘는 시간 동안 고난의 순례길을 마치고나서 그들은 티베트 사원의 심장인 조캉사원에 다다른다. 거기서 또 다시 올리는 만 번의 기도. 그리고는 남아서 구도자의 길을 가거나, 비로소 집으로 돌아간다.

4.

차마고도 위의 일상이란 하루가 집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움직인다는 자명한 사실 말고는 집이 대변하는 안전성과 주기성 바깥에 놓여있으며, 때로는 해가 바뀌어야 집으로 돌아간다. 마방에게 필요한 종교, 신의 축복이란 농사짓는 이들의 그것과 다르리라. 계절이라는 자연의 긴 호흡 아래 살아가지만, 일과가 끝나면 집이 품어줄 농사꾼 혹은 정착민과 달리, 마방은 계곡에서 계곡으로, 촌락에서 촌락으로, 강에서 설산으로 집이 아닌 곳을 전전한다. 그 생활의 주기란 농사꾼보다 뱃사람과 가까울지 모른다. 아니, 뱃사람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없으니 비교할 대상을 달리 찾기란 힘들 것이다.

하지만 마방은 집을 떠나는 대신 길 위에 마을의 씨를 뿌렸다. 마방들은 주막에 모여 물건을 집산하는 역참(驛站)을 만들었고 그곳은 세월이 흐르며 마을이 되었다. 길과 마을은 함께 성장했다. 그리고 마방은 산과 강으로 갈라져 있는 소수민족의 마을들을 이어주었다. 차마고도라는 대동맥은 무수한 소수민족의 마을이라는 모세혈관을 통해 피를 공급받는다.

5.

그리하여 차마고도는 하나의 관점이다. 중국사회의 넓이와 깊이를 이해하는 관점이며, 소수민족의 유동성을 이해하는 관점이며, 문화적 교섭을 이해하는 관점이다. 그 관점은 정주적인 것, 제국적인 것과 갈라선다. 차마고도라는 관점은 실크로드라는 또 하나의 관점과 비교해보아도 그 의미가 분명히 다르다. 북방의 길 실크로드는 서역의 길이며, 따라서 동방과 서방의 만남을 상징한다. 그때 동과 서는 기실 중국과 유럽을 가리키며, 실크로드 자체가 중국의 비단이 로마제국으로 흘러들어간다 하여 생긴 말이다.

실크로드는 길이지만, 다면적이기보다 양극적이다. 혹은 차마고도라는 명칭이 교역품목인 차와 말을 동시에 보여주며, 즉 윈난과 티베트라는 교류의 당사자를 좀 더 뚜렷이 밝힌다면, 실크로드는 유럽이 필요로 했던 중국의 실크만을 표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모든 길은 중국으로 향한다는 듯이 실크로드는 단극적이다. 물론 중국과 유럽 사이에서 실크로드는 북아시아 유목민을 매개로 하는 스텝지대의 교역로와 남방의 남해제국(南海諸國)을 매개로 하는 해상교역로를 품엇다. 분명 실크로드는 중국과 다른 세계의 만남을 가리킨다. 하지만 실크로드의 주요서사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자 경계 없는 제국이었음을 보여주며, 중국과 유럽 이외의 지역은 매개물에 머물고만 채, 중국이 실크로드를 통해 다음 시대의 패권자가 될 유럽을 양육했다는 인상마저 풍긴다.

하지만 실크로드보다 두 세기 먼저 개척된 길 차마고도는 다른 흐름을 갖는다. 만약 윈난과 티베트까지의 교역으로만 한정한다면 거기서는 중국 변방사가 작성될 될 것이며(그 변방사에는 남방의 소수민족만이 아니라 차마고도를 통해 중화제국이 들여온 말들로 쫓겨난 북방민족도 함께 기술될지 모른다), 실크로드와 달리 제국보다는 소수민족의 역할이 부각될 것이다. 또한 중국을 벗어나 시야를 넓힌다면, 차마고도는 티베트를 타고 넘어가 네팔, 부탄, 인도, 아프가니스탄에 닿아 남아시아로 이어져, 티베트와 네팔, 부탄 등 히말라야 동부의 유목문화권과 윈난, 쓰촨을 중심으로 한 농업사회를 연결한다. 중국과 유럽이라는, 제국 간의 교류와는 다른 질감의 역사적 만남이 부각되는 것이다.

– 윤여일 (수유너머 R)

응답 1개

  1. cman말하길

    다양하고 넓은 시각과 해석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덕분에 수유너머를 더 사랑하게 됩니다. 일전에 내몽골을 갔을 때도 윈난과 비숫한 인상을 받았는데 우리에게 없기에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차마고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면 돌아오지 못할까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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