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Releases

  • 한국을 떠나게 되었기에 이번 글로 제가 이런저런 지껄이는 것은 마지막으로 하겠습니다. 글을 쓰면서 이렇게 많은 반응들이 올 줄 몰라서 놀라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답신을 해보고 싶은데 답신 글을 쓰는 방법을 몰라서 답을 못했던 것들도 많았지만 코멘트는 다 읽었습니다.
  • 타지마할의 뒤편. 무굴제국의 최고의 건축물인 타지마할. 우리는 타지마할을 보며 뭄타즈 여왕에 대한 샤자한 황제의 사랑에 감탄하지만 따지고 보면 타지마할은 한 황제 부부의 로맨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착취당했는지 보여 주는 곳이기도 하다. 인도 전역에서, 그리고 세계 어디에서든 만나는 거대한 건축물들, 특히 국가 건축과 종교 건축물은 거의 언제나 그 시대 최고의 착취의 산물이다. 우리 시대의 착취는 고층 빌딩으로 상징되지 않을까?
    들깨 in 수유칼럼 2014-01-22
    타지마할의 뒤편. 무굴제국의 최고의 건축물인 타지마할. 우리는 타지마할을 보며 뭄타즈 여왕에 대한 샤자한 황제의 사랑에 감탄하지만 따지고 보면 타지마할은 한 황제 부부의 로맨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착취당했는지 보여 주는 곳이기도 하다.
  • 12월 4일 - 나치스 복장을 입은 아베 총리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4-01-10
    2013년 12월 6일 ‘특정비밀보호법안(特定秘密保護法案)’이 날치기로 강행 채택되었다. 이를 막으려던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도 배반당했고 일본의 민주주의는 퇴보했다. 그러나 중의원 표결을 통과한 11월 28일부터 현재까지 법안폐지를 위한 활동은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이 파시즘의 시대에 "NO PASARAN"이라고 외치는 정신이 점차 깨어나고 결집해 가고 있다는 또 하나의 ‘비밀’을 선포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white
    내가 본 최초의 영화는 영화관에서 본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적 나는 꽤나 시골에 살았던 모양이다. 예닐곱 살 무렵이 아니었나 싶은데, 어른들이 공터에 울타리를 만들고는 검은 휘장을 둘렀다. 그날 밤에 영화를 본다는 거였다. 무슨 식민지 시절 이야기도 아니고 70년대 후반이니 영화가 사람들에게 대단한 신문물은 아니었겠지만, 어떻든 나 같은 어린애나 일부 어른들에게는 그것에 필적하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 오항녕 수유칼럼
    오항녕 in 수유칼럼 2013-12-17
    이 문제는 교학사 한국사교과서의 왜곡에서 시작되어 지금 더욱 논란을 부추키고 있는 사안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013년 5월 10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1차 검정 결과를 발표하였다. 국편은 신청한 9종 교과서 가운데 8종의 합격을 발표하였는데, 거기에 교학사에서 펴낸 한국사 교과서(이하 교학사 교과서)가 끼어 있었다. 이어 8월 30일 최종적으로 8종의 교과서가 검정에 합격하였다.
  • 한국에 온 지 오래되었다 보니까 어느 정도 한국 생활에도 적응하게 되었는데, 적응한 것이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주변에 있는 외국인 중에서도 상당히 한국어를 잘하고 그리고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고 살아 있는 이들도 많으며 그러한 사람을 본 한국인들이 "아휴, 한국인이 다 되셨네 그려"라든가 하는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있는데, 과연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물어야 할 것이다.
  • 최요왕 in 수유칼럼 2013-12-01
    지난 추석에도 고향에 다녀왔다. 팔순 노모는 이번에도 이것저것 싸 주신다. 항상 팔 남매 모두에게 더 많이 싸 주지 못해서 안달이시다. 일곱째인 내가 고향 뜬 지가 28년이다. 큰형님이 출가한 40여년 전부터 그 오랜 세월 여덟 자식들에게 싸 주고 또 싸 주신다.
  • DollsHouse
    어둡고 답답한 현실이 길어질 때 사람들은 수난의 세월을 견딜 해석학적 장치를 만든다. 좋게 보자면 그것도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노력일 것이다(그것이 정말로 삶에 보탬이 되는지 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이 분야에서는 기독교가 특히 영리했는데, 그들은 수난을 심판 이후에 있을 보상과 연계시켰다.
  • 5 가면7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3-12-01
    때로는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최소한의 생존조건이 되는 그러한 때도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왜”라고 묻는 것이 차단된 그런 상태에서는 말이다. 이럴 때 진실이 아니라 거짓이 우리의 진실을 표현한다. 거짓에 가담하지 않으면서도 거짓이 보여주는 진실과 대면하는 건 얼마나 불가능한지...
  • •ñ“¹ŠÖŒWŽÒ‚Ɉ͂܂ê‚éŽR–{ŽQ‰@‹cˆõ
    요새 일본에서 가장 큰 뉴스 중 하나가 야마모토 다로(山本太郎) 참의원 의원이 천황(일왕)에게 편지를 전달했다는 행위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천황의 정치 이용이라든가 이런저런 비판이 나왔으며, 인터넷에서도 아주 큰 논의 거리가 되었다.
  • “승때숙씨?” 느물거리는 놈 전화다. 천하의 원수다. “누구세요?” 어쩌다 한 번 보는 얼굴이니 누군지 잘 몰라버릴 테다. 어젯밤에도 문자만 띡 보내서 졸리니 먼저 자야겠다고 했던 바로 그 놈이다. 집에도 안 들어온 놈이 그런 문자를 보내니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겨우 깨달았다.
  • 네팔 왕궁 앞을 지키고 있는 하누만, 이 문을 하누만 도카(문이라는 뜻)라고 부른다. 힌두교 혹은 불교 국가들에서 통치자는 비슈누신으로 비유되곤 하는데 하누만은 이 왕을 지키는 충실한 부하를 뜻한다. 네팔은 히말라야 산맥으로만 많이 알려져있지만 세계에서 유일한 힌두교 국가이기도 하다. (인도는 법적으로는 세속주의 국가인데 반해 네팔은 힌두교가 국교이다)
    들깨 in 수유칼럼 2013-11-04
    열려 있던 방문을 밀치고 원숭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나의 눈치를 살살 보며 유유하게 말이다. 나가라는 손동작을 취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난 어찌할 줄 모르고 넓지도 않은 방 맞은편에서 지켜봤다. 제법 덩치가 컸는데, 어쩌다 물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않은가.
  • a
    지난번에 나는 ‘3-18 사건’에 대한 루쉰의 글, 의 한 대목을 소개했다. 루쉰은 이 글 외에도 이 사건에 대해 몇 편의 글을 더 썼다. 이 글들은 모두 그가 이 사건에 대해 받은 충격을 말해 준다. ‘적수공권’, 맨 손으로 오직 나라를 위해 ‘청하는 말’ 하나를 가지고 간 인민들에게 ‘빗발 같은 총탄’을 퍼부은 정부. 그는 사건 당일에 쓴 글 말미에 “민국 이래 가장 암흑한 날”이라고 적었다.
  • 최요왕 in 수유칼럼 2013-10-21
    새벽 다섯 시 반. 집사람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거의 동시에 꺼진다. 집사람이 반사적으로 끈 거다. 30분 후 다시 울린다. 알람 끄고 다시 잠들어버려 허겁지겁대는 경우가 허다한 집사람의 자구책이다.
  • HAPAXvol1coverh1
    요새 일본에서 "HAPAX"라는 잡지가 창간되었다. 사상에 관한 잡지이다. 도쿄에 사는 어떤 분이 보내 주셔서 읽고 보았다. 중요한 잡지라고 생각되었다. 다양한 기사가 있으며, 모든 기사를 소개하면 나열적인 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싱거운 글이 되는 것은 확실하니까, 그냥, 내가 특히 중요하다고 느낀 후쿠시마 사태에 대한 기사를 중심으로 소개를 해보고 싶다. 그런데, 소개라고 했으나, 나의 주관도 많이 들어가는 글이 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서평이며, 서평이면서도 "HAPAX"에 촉발되면서 쓴 나의 느낌을 몇 가지 써보겠다는 것이다.
  • 오항녕 in 수유칼럼 2013-10-13
    ‘서양현대사’ 강의 시간. 백효리가 외우기 시작했다. “민중운동을 위해 승리의 기록을 날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역사 서술의 목적이 과거를 지배하는 실패만을 요약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역사가들은 끝없는 패배의 순환에서 공모자가 되어 버린다. 역사가 창조적이라면, 또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도 가능한 미래를 예견하려면, 덧없이 스쳐 지나간 일일지언정 사람들이 저항하고, 함께 힘을 모으며, 때로는 승리한 잠재력을 보여준 과거의 숨겨진 일화들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가능성들을 강조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 그림 0
    들깨 in 수유칼럼 2013-10-07
    인도의 동해안 뿌리라는 도시에서 난 벵갈만의 일출을 보러 새벽 일찍 바닷가로 나갔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해안가를 걷는데 사람들이 잔뜩 앉아서 나와 같은 동쪽 방향을 보고 있었다. 난 그때 현지인들도 일출을 감상하는구나 하며 신기해 했다. 잔뜩 낀 구름 때문에 일출 장면은 볼 수 없었지만 해는 떴고 주변이 밝아진 덕에 난 사람들이 뭘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바닷물이 밀려오는 해변가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장엄해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올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나왔지만 숙소로 돌아갈 때는 뭔지 모를 꺼림칙함을 감내하며 발밑을 조심하며 해변을 걸어야 했다. 이후 나는 ‘똥’에 대한 느낌의 다름에 대해서 종종 생각하게 됐다.
  • 지역아동센터는 요즘 한창 긴장 중이다. 내년부터 전체 초등학생들을 위한 학교 중심의 방과 후 무상 돌봄이 전면화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돌봄‘이 전적으로 가정과 특히 여성이 부담해야 할 몫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짊어져야 할 몫으로 인정받고, 정책적으로 배려 받는 현실에 대해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지역아동센터들은 스스로가 오랫동안 주장해 왔던 이 정책의 실현에 앞서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 4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3-09-30
    8월 15일은 일본에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야스쿠니 신사 주변에서는 자이도쿠카이(在特會)를 비롯한 과격 우파와 이에 대항하는 카운터 데모가 동시에 펼쳐질 것이었다. 음흉하게 스며드는 불편함이 아니라, 불꽃 튀기듯 부딪치는 힘들 어딘가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이시즘에 대항하는 것은 ‘경계선 따위는 없다’는 추상성이나, 그것은 ‘지도 위의 선일 뿐이야’ 하곤 자기 삶과 분리시키는 태도가 아니라, 그 ‘경계선’이 복잡하게 형성되는 순간들을 보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 318demo
    칼럼을 쓰며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을 삼가고 공부나 좀 하자는 결심을 하던 터였다. 하지만 입 열고 펜 드는 것도 습관인지라 꼭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의 개편을 맞아 고정 칼럼진에 합류하기로 했으니, 마음으로는 매듭을 묶으면서도 행동으로는 그것을 다 풀어버리는 꼴이 되었다. 무슨 글을 쓸까. 그래도 하는 짓이 책 읽는 일이니, 뭔가를 써야 한다면 공부삼아서 내가 읽은 글들을 소개하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주제는 따로 있지만, 나는 요즘 머리가 막힐 때 종종 중국 작가 루쉰의 글들을 읽는다. 앞으로 이 지면을 빌어 그 글 몇 편을 소개해 볼까 한다. 최근의 세태에 대한 내 생각들 몇 가지와 묶어서 말이다.
  • 2013년5월 일본의 어떤 정치인이 제도는 필요했으며, 이러한 제도는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들도 가지고 있었다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것이기도 하고, 한국정부나 여러 사람들이 이 발언에 대해 직접 비판하기에 나섰으며,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이 되었기 때문에, 굳이 내가 거듭 논의할 것은,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내가 해야 할 비판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자리를 빌려서 약간의 의견을 제시하고
  • 오항녕 in 수유칼럼 2013-07-07
    만약 사관(史官)이 자기에게 관계되는 사건을 싫어하거나 친척과 친구의 청탁을 듣고 관련 사실을 없애고자 하여 파일을 훔친 자는 ‘제서(制書 국서)를 도둑질한 법률’로써 논죄하여 목을 베고, 사초를 도려내거나 긁어 없애거나 먹으로 지우는 자는 ‘제서를 찢어 버린 법률’로 논죄하여 목을 베며, 동료 관원으로서 알면서도 고
  • 들깨 in 수유칼럼 2013-07-07
    미누를 인터뷰 하기 전에 미리 머릿속에 그려놓은 구상에선, 이진경 선생님이 쓴 글의 마지막 구절을 비판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려 했다. 네팔에서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유령’이 아니라 엄연히 살아있는 실체이며 그와 함께 여전히 어떤 연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유령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의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가 죽은 사람도 아니고 엄연히 네팔에 살아있는데 그를 ‘유령’이라 부르는 것이 강제추방이라는 것을 어떤 끝으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3-06-20
    이번 글은 원거리와 근거리, 법과 일상, 현재와 과거가 잘 구별되지 않는, 2013년 4월에서 6월 초에 걸친 어떤 도쿄 유학생의 불평불만이 될 것 같다. 이 불평불만 속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질문은 이것이다. 명명백백히 존재하는 법과 식민주의적 감정을 못 본 척하지도 않지만, 동시에 마치 법과 식민주의가 없는 것처럼 살아갈 수는 없을까?
  • 40-55--121
    지난 5월 17일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광주시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정신건강 현황을 발표한 바 있다. 직접적인 상해자나 고문 피해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인데 무려 43%가 “5-18을 생각하면 분노, 슬픔, 죄의식 등 매우 강한 정서를 느낀다”고 답했다. 5월만 되면 불안하고 답답하며 우울해지는 소위 ‘5월 증후군’이다. 그런데 따져보니 내가 그렇다.
  • 대통령 선거 이후, 정치판에서 벌어진 여러 사태를 보면서 힘이 빠지기만 했던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안 모씨 같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면서, 그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안 모씨 같은 사람은 인기가 아주 있으며, 더럽기만 하는 다른 정치인들과 비교하면 믿음직하게 보인다는 것이 나도 이해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아주 나쁜 사람들이고 웃는 얼굴을 하면서 마음속에서는 끔찍한 것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치인으로서의 더러움이 없게 보이는 사람이 정치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기대를 가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알기 쉬운 구도이다.
  •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일 생길 때마다 찾는 마음을 모른 척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할머니와 함께 입원해 있다는 동생을 찾아가보니 아픈 기색이 역력한 초로의 아저씨셨다. 아저씨는 열여섯 넘어 돈 벌러 고향 전라도를 떠나와 여기저길 떠돌았다고 한다. 그렇게 식구들과 소식이 끊기고 어찌 여자 하나를 만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살았는데, 그 마누라도 벌써 십여 년 전에 집을 나가고 그 뒤로 자식들도 차례로 집을 나갔다고 한다. 그리곤 위암에 걸렸다고 한다.
  • 20세기 후반 이래 첨단 생물학의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모방이라 할 수 있다. 자연현상과 생명현상을 모방하여 소기의 성과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생물학이 모방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 대표적 사례를 한 가지 들어 볼까 한다. 바로 항체공학이다. 거의 대부분의 생물학 연구가 자연의 사례를 탐구하고 그 사례가 작동하는 원리원칙을 따르면서 거기에 한 두 가지 변용이나 연구자의 아이디어를 개입시킴으로써 생명을 활용한 응용(Biotechnology)을 실현시켜낸다.
  • 내가 알기로 그 할머니는 손주 아이 둘밖에 아무도 없다고 했다. 명절에 어디 갈 곳이 없는 내가 임대단지에 사는 그 아이들을 명절날이면 꼬박꼬박 보곤 했으니 그로써 할머니 말을 믿을 증거도 충분하다 싶었다. 그런 날 아무데도 갈 곳 없고, 아무도 찾아줄 이 없으니 그런 할머니
  • 들깨 in 수유칼럼 2013-04-20
    원래 이주노동자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기분이 몹시 나쁜 일이 생겼고 산에 가고 싶어졌다. 말하자면 도피하고 싶어진 것이다. 한 2주쯤 떠나고 싶었는데 중간에 마감일이 있었다. 아직 쓰려던 글에 필요한 만남들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왜 갑자기 산에 가고 싶어졌는지 쓰는 것으로 이번 글을 대신하려고 한다. 그냥 감정적 투정에 불과한 글일 수도 있겠지만(그런 점을 감안해서 삐딱하게 읽어주시
  •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3-04-12
    사실, 이야기란 얼마나 부질없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삶의 모든 기반이 사라지고 피난을 결심하고, 점차 악화되기만 하는 느린 타살 속에서, 이야기한들 뭐가 달라질까? 사랑하는 사람이 되살아나지도 이전의 삶이 되돌아오지도 않는다. 더구나 우리에게 되돌아가고픈 삶이란 게 과연 있기나 했을까? 오히려 이야기가 되는 순간, 생생한 현재의 고통과 사랑은 모조리 과거의 후일담이 될 위험에 처하고 만다. 많
  • 문제의 그 기차에서 찍은 오디샤주의 풍경. 오디샤주와 비하르 주 모두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주로 꼽히고 있다. 오디샤 주는 철광석과 보크싸이트등의 지하광물이 풍부한 곳이기도 한데 그 때문에 여러 대형 기업들과 주민들, 시민단체들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러해동안 환경파괴와 인권침해로 세계적인 이슈가 됐던 베단타 철강 건도 오리싸주에서 벌어졌다. 비하르주는 낙살라이트의 주요 활동지역이며 오리싸주 일부도 낙살라이트 영향하에 있다.
    들깨 in 수유칼럼 2013-04-03
    또, 하나의 유령이 이번 여행을 따라왔다. 인도의 야간열차에서였다. 인도 동부의 오디샤에서 가장 가난한 주인 비하르의 보드가야로 가는 기차였다. 활짝 열려 있는 침대칸의 창 밖이 깜깜해졌을 때 갑자기 장총을 든 경찰들이 소란스럽게 올라탔다. 강도라도 들었나 했다. 옆의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낙살라이트 구역을 지나는
  • 이번 서울 인디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재일조선인 다큐 작가인 김임만 감독의 <가마가사키 권리 찾기>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나는 이번에는 이 다큐영화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 이 때 우리란 누구냐면 나 같은 한국거주 일본인, 한국에 사는 한국인, 한국에 사는 재일조선인
  • 1 들어가는 입구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3-03-13
    최근 나는 어떤 일본인 사상가와 한국의 친구들과 함께 이와 같은 “자기검열”의 고통을 공유해야 했다. 동시에 그러한 자기 검열을 넘어서서 흘러 넘쳤던 비밀스러운 시간을 공유했다. 번역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던 그 소중한 시간들은 언젠가 이 세상에 자연스럽게 드러날 시간을 미리 사는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이미 미래가 된 과거의 시간들. 그 시간들은 자신들만의 ‘시민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권’을 벗어나 더 멀고 풍성한 비밀스런 영역을 열어 젖히고 있다고 믿는다.
  • 만약 공부방을 하다 죽는다면 십중팔구는 울화통이 터져 죽거나 어처구니가 없어 죽을 경우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애들하고 있다 보면 겨우 그 따위 일로 이렇게 난리를 부리나 싶은 것투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밑바닥을 매일 봐야 하는 공부방 교사의 삶은 그런 의미에서 힘겹다.
  • “내게 화학은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담은, 무한한 형태의 구름이었다.”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가 처음 화학의 문을 열고 그 안에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던 시기, 대학을 들어가기 전 그가 마음에 품었던 바에 대한 고백이다. 그는 아래와 같이 부연하고 있다. "이 구름은 번쩍이는 불꽃에 찢기는 검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내 미래를 에워쌓는데, 마치 시나이 산을 어둡게 둘러싼 구름과 비슷했다.
  • 이제 2월이 되고 2013년도 한 달이나 지나 버렸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작년 말의 선거부터 꽤 오래 되었다는 감각도 가지게 된다. 여기에서 <작년 말의 선거>라고 약간 어렴풋하게 썼지만, 왜냐하면, 일본과 한국, 두 가지의 선거를 이 글에서 다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선 말해 놓아야 할 것은, 선거가 민주주의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선
  • 1
    오항녕 in 수유칼럼 2013-02-03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말일 텐데, 나에게는 두 가지 이유에서 각별하다. 하나는 내가 전혀 ‘불온’하는 인격과 거기가 멀다는 것. 정말이지 난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화가 난다. 여기서 ‘온(慍)’은 ‘꽁한다’는 말과 가깝다.
  • 캄보디아에 처음 들어가서 국경에서 탄 버스이다. 한글로 안내문이 적혀있다. 한국의 하나투어에서 쓰던 버스이다. 한국의 유치원이나 여행사에서 쓰고 버린 낡은 버스들이 고속버스로 많이 쓰이고 있었다. 버스가 너무 낡아서 중간에 차가 뻗어 버리고는 하는데 그러면 새 버스가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나 또한 차가 한번 멈춰서 두 시간을 기다려서 새 버스로 갈아타고 간 적이 있는데 흔한 경우라고 한다.
    들깨 in 수유칼럼 2013-01-26
    하나의 유행이 이번 여행을 따라왔다. 8월에 한국을 떠나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내내 곳곳에서 나는 그와 마주쳐야 했다. 거리에서, 상점에서,식당에서 언제나 오빤 강남스타일이었다. 수억이 봤다는 뮤직비디오도 캄보디아 시엡립에서 묵었던 숙소의 직원 덕에 처음 봤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의 공연도 어떤 인도인이 스
  • 공원 숲속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블루텐트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3-01-24
    2013년 새해 첫날. 모두 가족과 지낼 테니까 유학생이고 외국인인 나는 3일간 자유다! 밀린 일을 으쌰 해치워야지 했지만, 역시 새해 첫날 집에만 있자니 어쩐지 답답했다. 더구나 날씨도 기똥차게 좋은 게 아닌가? 그때 요요기 공원 블루텐트 마을의 이치무라씨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블루텐트 마을의 에노아루 카페에서 신년 맞이 파티를 한다
  • 가족과 관련한 이야기를 더할 필요는 사실 없다. 가족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꺼낸다 할지라도 한 번은 누군가 성질을 내듯 울음을 터뜨리며 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또 꺼내는 것은 아무래도 참 힘들기 때문이다. 가족이 힘든 이유는 누구나 알듯이 대개 죽일 수도 살릴
  • 일 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 거친 바람처럼 밀려와 내 안의 많은 것들을 부숴 버렸다. 마음을 자꾸 부리지 않고 가만히 가라 앉혀 보고자 애를 써 보았지만 가라앉기 보단 무너져 내렸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만치 마음이 상해 버렸다.
  • 최요왕 in 수유칼럼 2013-01-14
    엊그제 옥상에 쌓인 눈을 치웠다. 그 동안 몇 번이나 왔던 눈이 거의 고스란히 쌓여 있어서 꽤 힘들었다. 다 치우고 나서 앉아서 쉬다보니 지난 가을에 추수해서 종자하려고 조, 수수 이삭들을 걸어 놓은 게 눈에 띈다. 헌데 가까이 가서 보니, 이런! 새들이 쪼아 먹어서 조 이삭이 꽤 상해 있고 새들은(주범은 멧새들!) 사람이 있는데도 근처까지 왔다
  • 뉴욕에 살기 시작한 지 벌써 2년 반이나 흘렀다. 그동안 대체로 여행자의 자세로 이 도시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고, 단편적인 경험의 인상들을 이 지면을 통해 이야기해 왔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그야말로 대단히 소극적이고 일면적인 인상의 파편들에 불과했다. 나보다 조금 더 오래 이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들, 혹은 다른 방식, 다른 속도로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 심보선 in 수유칼럼 2012-12-28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첫눈부터가 폭설이었고 기온은 유래 없는 한파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날씨에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철탑과 다리에 매달린 채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평택에서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아산에서는 유성기업 노동자가, 울산에서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칼바람과 눈보라와 싸우며 목숨을 담보로 공중에 매달려 있다.
  • 오항녕 in 수유칼럼 2012-12-13
    극심한 가뭄 끝에 단비가 흠뻑 내렸는데, 형의 정리(靜履 벼슬에서 물러난 사람의 안부)가 어떠하신지요? 지난번 춘장(春長 친구 이만영(李晩榮)의 자)을 통해서 제가 형을 남에게 비방했다고 하여 형이 자못 언짢아한다고 들었습니다. 대개 형의 지난번 일은 특히 저와 의견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제가 과연 사람들에게 드러내놓고 배척하였으니, 이른바 비방했다는 것은 빈말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 지난 글(http://suyunomo.jinbo.net/?p=10870)에서 언급했던 자전거 철거에 항의해서 채포당한 친구이야기인데, 그 친구는 겨우 11월22일 석방되었다. 그러나 아직 판결이 나오지 않는 상태이며, 법원이 어떠한 판단을 하는지에 대해 경과를 치켜봐야 한다. 판결은 12월19일에 교토 지방 법원에서 내릴 예정이다. 요새 간사이 지방에서는 활동가를 겨냥한 채포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 심포지엄의 종합토론. 순서대로 사회자, 이나미네씨, 아라사키씨, 아라카와씨, 오다씨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2-12-13
    정권이란 어느 쪽이든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서인지, 선거가 몰고 오는 열띤 희망들이 풍기는 냄새가 싫어서인지, 도무지 선거에는 관심이 생기지 않는 나도, 이번 선거에는 유독 신경을 쓰인다. 특별히 훌륭한 정권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지만, 특별히 나쁜 정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별로 없는 세대인 나로서는
  •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생활복지분과 위원장님! 지난해와 올해 동네에서 짊어져야 했던 멍에였다. 뭐든지 참여, 민주, 자치, 민관 거버넌스 뭐 이런 게 들어가면 환장을 하고 보는 습성 때문에 지난 해 주민자치위원에 신청서를 내지 못한 것을 한탄하다가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생긴 것을 보고 단박 신청서를 내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시작하는 제도라 그런지 신청서를 내고 아주 쉽게 위원이 되어 버렸다.
  • 학생들이 장을 보고 돌아오고 있다. 집집마다 한명씩 돌아가며 당번을 한다. 이들은 해도 뜨기전인 꼭두새벽 네시에 출발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장을 본다. 우리도 같이 가려고 전날 약속을 했었는데 늦잠을 자서 함께 하지 못했다. 대신 학생들이 돌아올 때 가서 사과를 했는데 웃으면서 용서해줬다.
    들깨 in 수유칼럼 2012-12-02
    다른 한 공간은 군대였다. 이곳에선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웠다. 90년대 민주캄푸치아 정권이 사라진 후 이곳은 학교이자 하나의 마을이 됐다. 처음에는 지뢰와 확산탄 등 전쟁으로 인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기술을 배우는 학교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점차 그런 사람들이 줄어들자 이제는 좀 더 문을 넓혔다. 프놈펜에서 10키로쯤 떨어진 반티에이 뿌리웁이라는 학교이다. 뿌리웁은 캄보디아말로 평화를 상징하는 비
  • 세자르는 1984년에 단일 클론 항체를 만들어 내는 Hybridoma개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나는 그와 6개월 동안 같은 연구소 비좁은 3층 서로 마주 보이는 실험실에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행운을 맛보았다. 나는 저녁이면 Mowbray road를 동료와 함께 산책하며 무언가 열심히 토론하던 그를 몰래 뒤 따라 걷다 몇 블록 넘어 있던 집까지 기쁜 마음으로 달음박질 치곤 했다. 내가 박사과정동안 하던 일 (B cel
  • 최요왕 in 수유칼럼 2012-11-22
    20대 때 서울에서 자취를 했었다. 뭐 자취야 지방 소도시에서 재수시절에도 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집도 가깝고 누나 동생이랑 같이 있었기 때문에 ‘주부’노릇까지는 하지 않았었는데 서울에서의 자취는 ‘주부’가 되어야 했다. 시장을 직접 봐야 했다. 헌데 생선을 사면 손질해준다며 대가리를 떼 내어 버리고 무를 사면 무청을 잘라내 버리고 뿌리만 주는 거다.
  • 2012년8월26일, 내 친구가 일본 교토에서 체포되었다. 범죄를 저질러서 체포된 것이 아니라, 정말 어이없는, 그러니까 하나도 정당성이 없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게다가 체포된지 2달을 넘었는데 아직 석방되지 않는 상태이며(2012년11월12일 현재), 구치소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정에 대해서는 지원자들이 만든 불로그를 보시기 바랍니다.
  • ohn
    오항녕 in 수유칼럼 2012-11-08
    알라이다 아스만은 차곡차곡 쌓아 놓는 기억을 저장기억이라고 부르고, 탁 떠오르는 또는 그렇게 떠올리는 기억을 기능기억이라고 불렀다. 저장기억은 비활성화되어 있고, 비교적 무념무상하게 불러줄 때를 기다리고 있다. 19세기 역사 실증주의시대에 니체는 이 저장기억을 역사학의 책무로 삼는 경향에 대해 기억과 회상의 활기를 빼앗는 원흉으로 보고 비판했다. 물론 문서와 책으로 남은 기억에 대해
  • 밤 10시 퇴근을 준비한다. 몸뚱이는 무감각해져 온다. 뇌의 신경회로는 간간이 접속에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들이 부은 커피의 카페인은 끈적하게 들러붙어있는 혈병들 속을 파고들지 못한다. 하나하나 컴퓨터의 전원이 내리면서 마침내 오늘도 전원 오프 중이다. 곧 끝난다.
  • 캄보디아 시엠립에 있는 전쟁박물관. 나무들 사이사이에 전쟁이 끝나고 수거한 무기들이 나열돼있다. 조금씩 부숴지고 녹슨 모습 그대로 놓여져 있다. 마침 비가 쏟아졌는데 영화나 책으로 접했던 밀림 사이로 크메르 루주 군이, 베트콩이 다가오는 장면이 연상됐다. 무기들엔 설명이 조금씩 돼있는데 캄보디아 군이 썼던 무기들은 소련제, 폴포트가 썼던 무기는 중국제, 크메르 루주 전정권이 썼던 무기들은 미제가 많다. 대부분 무기는 2차대전 때 사용됐던 무기를 중고로 판매한 무기이며 캄보디아 전쟁이 어떤 대립구도로 이뤄졌는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이 곳의 가이드도 대부분 지뢰로 다리나 팔을 잃은 전직 군인이다.
    들깨 in 수유칼럼 2012-11-02
    냉전은 사기였다. 실제로 전쟁을 치루지 않은 전쟁이라는 뜻의 냉전이었지만 어떤 곳에서는 역사상 가장 많은 양의 폭탄이 뿌려졌고 근대에 들어 가장 잔인했던 학살이 이뤄졌다. 미국과 소련, 중국 등 열강들이 개입했고 그것은 누구나 알았지만 비밀이라 했다. 이 전쟁엔 한국도 참여했다.
  • 최요왕 in 수유칼럼 2012-10-27
    '사람이 지 똥을 3년을 안먹으면 병에 걸린단다.' 올해 여든 둘 되신 내 모친의 말씀이다. 나는 농사꾼이다. 유기농 농사를 하고 있다. 9년전 귀농을 하면서 관행농이 아닌 유기농을 선택했다. 유기농의 중요한 가치인 안전성과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면서 세상을 살고싶어서였다. 이 두가치의 상관관계를 보자면 지속가능이 담보되면 안전성이 가능하지만 안전성의 담보만으로 지속가능성을 이루기는 어렵다
  • 낙엽수들은 왜 가을이 되면 잎새를 땅으로 떨굴까? 생물학에서는 낙엽이 되는 과정을 이층형성(Abscission)이라 일컫는다. 이층(異層)이란 말 그대로 단일한 존재였던 한 덩어리에서 일부가 다른 존재로 변화되어 이룬 층을 의미한다. 가을이 되기 전까지 잎새는 가지와 한 몸이었다. 가을이 되어 해가 짧아지고 온도가 내려가면서 잎에서 벌어지던 광합성 작용은 감소되기 시작한다. 그 상호작용으로 뿌리에서 올라오던
  • 한국에서 일본사람을 하면서 자주 원전에 관한 질문을 받게 된다. 일본인은 원전에 대해 잘 알거나, 무언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나 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그러한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반원전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본의 원전 사태에 대해 일본에 사는 사람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도 한국에서 반원전 운동을 하는 친구들한테 많은 지식이나 사고방식을 배웠다.
  • 심보선 in 수유칼럼 2012-10-17
    문학 제도는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단독성singularity 신화를 통해 작동하는 문학 제도는,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나 자유 의지와 독창성을 발휘하여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개인”에 대한 믿음을 강고히 한다. 그러나 개인의 자율성은 제도적 장치의 형식과 내용에 의해 그 형식과 내용이 마름질된다. 고독한 개인들과 저항하는 공동체의 소멸, 수평적 연결망의 확산, 제도적 행위자들의 우세로 요약되
  • 맨해튼 유니온 스퀘어에 있는 그린마켓 풍경
    ‘오늘은 또 뭘 먹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끈질기게 유전되는, 주부들의 오랜 근심거리이다. 게다가 최근 몇 년 간 식탁 위에까지 골고루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계경제의 불황과 먹거리의 생산, 유통의 문제는 ‘뭘 먹나?’에 이어 ‘어떻게 하면 싼 값에 좋은 재료를 선택하나’라는 근심을 더해주고 있다.
  • 가만 보면 살면서 감사히 생각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 요즘같이 흉흉한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가는 것을 보면 그래도 험한 꼴 안당하고 이제껏 살아온 것에 다시금 감사한 마음이 생길 뿐이다. 최근에 특히 아이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잔인한 일을 두고 ‘인면수심’을 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공분들이 대단하지만, 난 왠지 괜히 짐승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뿐이다. 그건 짐승만도 못한 짓이지, 짐승들이
  • 지킴이 친구D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2-09-22
    “혼자 있다”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도쿄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이 말이 의심스러웠다. 혼자 있으면 기억 속 사람들이 얼마나 소란스레 말을 걸어 오는지. 그 중에서도 대추리에서 만난, 지금은 두물머리에 사는 지킴이 친구D는 많은 순간 나와 함께였다. 그녀가 어딘가에서 지킴이로서 멋지게 살 것이란 생각이 나를 바로 세워줄 때가 많았다.
  • 무엇을 안다는 것은 무얼 뜻할까? 배낭여행이 되었건, 기획관광이 되었건, 여행을 하고 난 뒤 사람들은 어느 장소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다. 그곳을 오감을 동원하여 직접 체험했다는 사실이 이러한 판단을 가능케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과연 몇 시간 혹 며칠 동안의 체험을 통해 무엇을 제대로 아는 것이 가능할까? 여행뿐만이 아니다. 요즘 인터넷의 위키피디아를 통해 사람들은 아주 홍수 같은 정보를 아주 손쉽게 얻을 수
  • 1
    건강한 삶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위한 휴식과 운동, 그리고 먹거리를 향유할 만큼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최상위 1%에 부가 집중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미국의 사회복지제도는 제 나라 국민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끼니를 거르도록 방치하지는 않는다.
  • 지금 우리를 둘러싼 문제들 중의 하나로 영토문제가 있다. 어려운 문제라고 말해서 도피하는 게 아니라 비판적으로 검토를 해야 하겠다. 물론 국가주의가 높이는 것은 이번 영토문제가 처음인 것이 아니다. 거듭 있어 온 것이고 그 때마다 국가주의가 고요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가 행해져왔다. 이러한 국가 간의 갈등에 대해서는 무시해도 되겠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국가주의자 놈들의 싸
  • 1
    심보선 in 수유칼럼 2012-09-07
    사회 연결망Social Network 연구 분야는 사회학에서 오랫동안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다. 내가 공부를 했던 대학원에는 연결망 분야의 대가들이 포진해 있었다. 우선 해리슨 화이트Harrison White라는 일흔이 넘은 네트워크 이론의 대가가 있었다. 나는 그의 수업을 청강했는데, 학생 중 대다수가 그가 도무지 뭔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단지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학생 중 하나가
  • 오항녕 in 수유칼럼 2012-08-30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사람들의 기억이 사라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자연적인 훼손과 인위적인 파괴. 그 중 더 결정적인 이유는? 안타깝게도 인위적인 파괴 쪽이다. 먼저 자연적 원인 잠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태풍 볼라벤이 올라오고 있다. 바람, 비의 피해를 걱정하고 있다. 전에 국가기록원에 근무할 때 한 지방자체단체에서 침수된 기록물의 복원에 대한 의뢰를 받은 적이 있었다. 침수(沈水)는 전통적
  • 별다른 찬이 없어서 김치랑 대충 뭐 한 가지를 갖다놓고 느직한 저녁상을 앞에 둔 자리였다. 11시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KBS 공영방송에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를 하고 있더란 말이다. 서너일 전쯤 MBC의 ‘100분 토론’에서도 만형만제를 가졌다는 김태호 후보가 박후보를 누님으로 모시는 걸 잠시 보다가 코를 골며 잠이 들었는데, 오늘은 밥도 앞에 둔 참이라 좀 눈 여겨 보았다. 그러고 보니 런던 올
  •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2-08-23
    낮이 저녁으로 넘어가기 바로 직전, 기르던 개의 실루엣이 마치 나를 해칠 늑대인 양 어둠 속에서 낯설게 빛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는 친숙한 것에서 낯선 것으로의 단 한 번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을 ‘이행’에 대해 거는 희망, 그것이 우리가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말에서 느끼는 감촉이며 데모나 집회 그 자체의 에너지다.
  • 심보선 in 수유칼럼 2012-08-17
    나는 이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소위 '눈팅'은 종종 하는 편이다. TV 뉴스나 신문에서는 접하기 힘든 소식을 알고 싶어서, 때로는 급한 상황에서의 긴요함 때문에, 혹은 지인들의 이야기나 의견을 엿보고 엿듣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소셜 미디어에서 '소셜'보다는 주로 '미디어'에 방점을 찍어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소셜 미디어의 '소셜social'에 대해서, 무엇보다 그것
  • 8차선 고속도로는 다분히 작위적인 길이다. 별로 타협하지 않고 길게 직선으로 난 길. 고속으로 주행하는 자동차의 안전을 위해 고안된 길이다. 보통 길은 타협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강물이 흐르는 궤적과 타협하고, 언덕과 산들의 생김새와 타협하고, 나무나 생태계의 분포와 타협한다. 인류를 비롯해 움직이는 생명체들이 길을 내는 원리는 이러한 타협이었다. 나는 진보를 이러한 길의 속성에 빗대 개념 지을 수
  • 2012년8원6일 아침, 나는 두물머리 행정대집행의 현장에 써 있었다. 8원6일에는 다행히도 대집행이 되지 않았다. 어떤 폭력사태가 될까 걱정을 하던 나로서는 우리가 모여서 대집행을 막았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으며, 마냥 단순히 기뻤다.
  • 창피하게도 ‘행정대집행’의 ‘대’자가 ‘대신할 대(代)’인 줄 몰랐다. 막연하게 ‘큰 집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대신 집행한다’는 뜻이란다. 행정대집행법은 누군가 법률에 의거한 행정청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때 행정청(그 위임을 받은 제 삼자)이 ‘대신’ 이행하고 그 비용을 당사자에게 청구하도록 한 규정이다. 굳이 ‘대신’이란 단어를 넣고 또 나중에 비용까지 청구하도록 한 걸 보면, 공익을 위해 긴급히 해야 할 일임
  • 애완견을 데리고 강변을 산책하는 사람
    발터 벤야민은 어떤 도시를 잘 알기 위해선 그 도시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연 그렇다. 도로의 표지판, 지도, 유명한 랜드 마크들에 의지하는 방문객에게 어떤 도시가 보여주는 건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무엇, 어쩌면 그 도시를 방문한 목적일수도 있는 유명한 지형지물, 딱 거기까지이다. 어떤 낯선 도시를 방문했을 때, 우리가 즐겨하는 행동은 유명한 건축물과 지역 그리고 먹거리를 찾
  • 오항녕 in 수유칼럼 2012-08-02
    큰애, 말도 늦게 배우고 쪼그만 해서 이게 세상을 제대로 살 수가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시킨 적이 많았다. 지금은 빈들거리기도 하고, 뭔가 꼼지락거리며 하기도 하면서 지 인생 알아서 살고 있다. 나도 애들 인생과 내 걱정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고.
  •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는 사실 간단한 이야기이다. 어떤 입자(또는 물질)를 특정 위치에 고정시키는 순간 그것의 움직임에 대한 표현 가운데 하나인 모멘텀(운동량)을 정확히 알 수 없고 반대로 운동의 모멘텀을 정확히 계산하는 순간 그 물질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얘기이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 어느 주말 아침 회사에 출근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보도국으로 날아들었습니다. 순간 “왜 하필 내가 출근한 주말 아침에...”라며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쌍용차에 공권력을 배치하겠다는 당시 조현오 경기경찰청장의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는 “날 더운데 고생 좀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드디어 오늘 아들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는 날이다. 다른 날 같으면 아침부터 안 일어나고 빌빌거리고 사람 속을 있는 대로 긁어 놓았을 녀석이 학교를 그만둔다고 하니까 신이 나서 일찌감치 활기차게 등교했다, 쩝.
  • 야숙자 추방 반대 호소!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2-07-18
    상황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6월 29일 오키나와 히가시마을에 신형 군용기 Osprey 설치가 통보된다. 이 군용기는 미국에서도 추락사고가 빈번이 일어나 안전성에 계속해서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분노했다. 결국 7월 1일 오키나와 지사는 대규모 시위의 위험성을 시사하며 이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다. 연이어 노다 총리는 원전 재가동을 강행한다. 분노한 사람들은 6월 29일 마치
  • sim
    심보선 in 수유칼럼 2012-07-12
    “I care about you” 나오미 클라인에게 큰 영향을 준 포스터의 문구를 읽어보세요.... 그 말은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말입니다. OWS의 사람들로 하여금 영감으로 가득한 인간성과 새로운 경제적 윤리를 소통하도록 하는 태도에 대한 말입니다. AAAC는 지구적 사회의 중심에 인간적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OWS의 목표와 함께 동양적 가치와 미학을 재발명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습니다.
  • 한국에서 요새 '기본소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많다. 나도 끼어 들고 많은 논의를 하고 싶다. 기본소독이란 것은 조건 없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일정한 액의 현금을 준다는 방법이다. 그것을 하려면 언청난 돈이 든다는 것은 사실이며 기존의 사고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방법이다. 그러나 내가 몇 년 전에 기본소독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당연히 의문스럽기도 했지만 너무 재미있는 방법이라고 느꼈고 많
  • 퍼레이드를 즐기러 나온 커플
    뉴욕은 게이들의 도시다. 맨해튼 시내를 걸어 다니다 나도 모르게 눈길 한 번 더 주게 되는 훈남들 중 절반 이상은 동성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있거나 얼굴에 ‘나 게이거든’하고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특히 뉴욕 게이운동의 성지인 스톤월(stone wall inn)이 있는 크리스토퍼 거리, 게이 바나 그들의 완구점이 모여 있는 첼시나 웨스트, 이스트 빌리지 쪽에서 만나는 사람이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내에서
  •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2-06-21
    몇 달간 화요일이 오면 나는 조바심을 치곤했다. 화요일마다 열리는 라는 모임에 참여하고 싶은데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았다. 월요일 저녁이면 “내일은 기필코”라고 생각하지만, 화요일에는 결국 조바심을 치다가 못가는 걸 반복하는 에 걸린 것이다.
  • 오항녕 in 수유칼럼 2012-06-21
    급훈이 중요하다. 학교 다닐 때 태극기 옆에 액자에 걸려 있던 교훈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시간표 옆이라든지 환경미화란에 나름의 권위를 과시하던 슬로우건. 정직, 성실 같은 하나마나한 말도 있지만, ‘담임이 보고 있다’는 매우 프라그마틱한 교훈도 있어서 웃음을 주기도 하나보다.
  • JOHN D MCHUGH / 2006 AFP
    4년 전 BBC에 뜬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영국 국회에서 두 가지 주제와 관련된 투표를 했다는 소식이다. 그 하나가 인수(Human-Animal) 혼성 배아의 허용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형제 구조자 (Savior siblings)와 관련된 시술을 금지하려는 개정 법안을 기각하는 투표였다. 인수 혼성 배아에 대한 논의는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할 생각이다. 기사를 보며 생각에 잠겼던 주제는 형제 구조자와 관련된
  • 아침마다 눈이 번쩍 떠진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하여 뭐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나 싶어서다.당원도 아닌 주제에 흘끗거리는 것조차 자격이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평생 소신으로 ‘진보’를 삼아 왔기에 구경할 자격 정도는 있겠지 하고 혼자 허락을 구해 버렸다. 이제부터 쇼 타임!
  • 위크리 수유너머에 실릴 기사를 써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생각했던 것은 과연 어떤 독자가 이 글을 볼까? 라는 것이었다. 아마 일본의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재밌게 쓰면 그만한 게 없을 것이다. 일본의 이야기를 하면 될 텐데 한국에 있어보니까 요새 일본에서 재밌는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그러니까 한국에 있으면서 문맥 없이 생각하게 된 것을 아웃풋을 할 샘치고 즉흥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독자에게도 나
  • 뉴욕에 대한 첫 인상. 야경사진 찍을 때나 쓸모 있는 높은 빌딩과 그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낡고 오래된 아파트. 그리고 고도 비만인들이 제법 많다는 것과 의외로 거리에 백인들이 드물다는 것. 하긴 평일 대낮에 거리를 배회하는 자들이란 관광객 아니면, 실업자일 확률이 높지. 혹은 그가 일용 계약직 육체노동자일 순 있겠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쭉쭉빵빵한 백인 뉴요커들은 다 어디에 숨었을까,
  • 이계삼 in 수유칼럼 2012-05-23
    다큐멘터리 영화 <마이 스윗 홈(My sweet home)>을 보았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부상을 입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끝내 법정 구속된 세 사람의 이야기다. 영화를 본 지 한 달이 다 되었지만, 지금도 거기 나온 세 사람, 김창수, 김성환, 천주석 님의 얼굴은 잊혀지지 않는다. 기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 길에 차창에 볼을 기대며 신록이 짙어가는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도 영화의 한
  • 오항녕 in 수유칼럼 2012-05-17
    조선시대 실록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자료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실록을 그냥 역사책이라고 알고 있다. 맞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사(史)이다. ‘史’에는 근대적 의미의 역사(history) 뿐 아니라 기록(archives)이 포함된다. 실록은 기록의 모음, 문서 모음이다. 사관(史官)들이 후대에 남길만하다고 생각하여 보존한 문서를 날짜순으로 모아놓은 것이다.(2011년 7월 19일자 수유너머 위클리 칼럼에
  •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2-05-17
    웬 놀부 심보냐구 하겠지만, 이 말들은 내 가슴을 쳤다. 자유와 생존의 메이데이 데모에서 이 말을 반복해서 외치자, 어쩐지 왈칵! 눈물이 나며, 가슴 속 깊은 빗장이 스스르 풀리는 듯 했으며, 땀과 비로 범벅이 된 옆 사람에게 진심을 다해 우산을 씌어주고 싶어졌으며.... 자유와 생존의 맛은 임금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이런 게으름뱅이의 맛,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맛, 그 순간 생기는 외부로 열리는 어떤 교감들은
  • 서구 문명에 의해 평정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또한 그것이 지옥이건 낙원이건간에 서구 문명이 만들어 낼 세상의 미래를 고스란히 우리의 미래로 안고 살아가면서 그 문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두고 아주 자주 고민에 빠져 든다.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면 대체로 세 가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kbg
    작년 5월 말쯤이었던 것 같다. 미국에 있던 나는 인터넷에서 한국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시위의 짧은 영상을 보았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학생시위와는 아주 달라보였다. 과거에 내가 봤던 선배나 동료들은 ‘무슨 무슨 전사’ 내지는 ‘무슨 무슨 선봉대’ 같은 티셔츠를 입고 머리와 팔에 붉은 띠를 묶고 거리로 나왔다.
  • 최근에 거기 다니는 아이들이 공부방에 들어왔다. 새로 들어온 아이들 각자의 열심이 모두 다르긴 하지만 아무튼 거기에 다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 아이들이 다섯이나 한꺼번에 들어오고 보니 조금 정신이 없기도 하다.
  • 이계삼 in 수유칼럼 2012-04-25
    학교를 그만두고 나니, 가끔 학부모들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다. ‘교육불가능’을 떠들고 다니는 전직 교사라 하니, 무슨 이야긴가 들어보고 싶은 마음들일 것이다. 가로세로 떠들고 나면 질의응답 시간에 가끔 ‘당신은 자식을 어떻게 키우는가’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나는 ‘자녀 교육’이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같은 세태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교육한다는 말 또한 여러 의미에서 적절치 않
  • Met의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뉴욕은 박물관(혹은 미술관)의 도시이다. 도시의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는 다양한 성격의 박물관이야말로 이 도시를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결정적인 카드다. 그 카드는 뉴욕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온갖 상품들, 자극적인 쇼와 패션 아이템들과 가장 평균적인 입맛을 유지하는 음식들에 넌더리를 내며 이 도시를 싸구려가 아닌지 의심하는, 자칭 교양 있는 호사가들에게 넌지시 들이미는 회심의 패
  • 병훈이 처음 “총파업”이란 단어를 내뱉은 것은 지난 3월쯤이었다. 병훈은 나와 함께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란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다. 그가 “총파업”에 대해 이야길 시작했을 때, 나는 솔직히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모두(commons)의 광장을 만들자!”며 3월 1일 몇몇 그룹들이 모여 서울광장에 텐트를 치고선 점령(occupy)한 지 2주일. 2주일 간 눈, 비, 바람과 사투를 벌인 탓에 이미
  • IMG_6373
    신지영 in 수유칼럼 2012-04-18
    이토타리는 여성 퍼포머다. 그리고 위의 대화는 내가 그녀와 나눈 최초의 대화다. 갤러리에 전화를 건다는 것이 이토타리 자택으로 전화를 해 버린 것이다. 이 첫 전화대화에서 나는 이토 타리의 개인 핸드폰 번호를 알게 되었다.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바로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는 목소리 앞에서, 나는 멈칫했다. 이 느낌은 뭐지? 뭔가 일반적인 통화와는 달랐다. 처음 듣는, 이상한 일본어 억
  •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말은 당위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다름'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단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각기 다른 개체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특성과 '다름'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개체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이야기이다. 어떤 인위적인 조작을 거쳐 이처럼 자연스러운 다양성을 없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