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TV 토론회 관전기

-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별다른 찬이 없어서 김치랑 대충 뭐 한 가지를 갖다놓고 느직한 저녁상을 앞에 둔 자리였다. 11시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KBS 공영방송에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를 하고 있더란 말이다. 서너일 전쯤 MBC의 ‘100분 토론’에서도 만형만제를 가졌다는 김태호 후보가 박후보를 누님으로 모시는 걸 잠시 보다가 코를 골며 잠이 들었는데, 오늘은 밥도 앞에 둔 참이라 좀 눈 여겨 보았다. 그러고 보니 런던 올림픽이 정말 끝났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방송은 일제히 대선으로 핫 아이템을 갈아탄 모양이다.
눈을 들어보니 막 박후보가 김문수 후보에게 대기업 규모를 결정하는 상한선을 왜 그리 높였냐고, 그러면 10여개 정도만 빼고는 모두가 대기업 범위에서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스레 질문을 하던 참이다. 김문수 후보는 대기업 규정을 엄격하게 하자는 것은 중소기업을 건실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며, 특히 기업의 투자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 때문이라는 한물 간 유행어로 힘겹게 대응을 하고 있었다. 박후보는 그렇다고 죄 대기업에서 빼버리면 기업들의 순환출자나 특수 관계를 이용한 일감 몰아주기 및 공시의무제와 같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조치들에서 그 기업들이 모두 제외될 텐데, 그러고도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겠냐고 정말 걱정스럽다는 듯 재차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뭐 그러고 말았다. 주도권 토론인지 뭔지를 한다면서 시간은 고작 몇 분을 주고마니. 말이 느린 사람은 어물쩡거리다 말고 내용이 많은 부분은 건드리다 말고 속이 시커먼 사람은 딴 소리 하다 말면 그뿐이다. ‘입맛만 버려놓는군’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다시 밥이나 먹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지난 대선에서는 야당 후보들은 일제히 시장경제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큰 소릴 치고, 이에 대해 MB는 무슨 소리냐며 시장을 활성화시켜 선진국 대열에도 들어가고 일자리도 백만 개쯤 더 만들어야 하니, 확실히 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쪽으로 가겠다고 대놓고 편을 들곤 했었는데 완전 격세지감이다. 여당 후보들이 이런 식으로 정의감에 불타는 정책들을 거침없이 뱉어대면, 야당 대선주자들은 여당 후보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는 둥 쓸 만한 안은 모두 원래 우리 안이었다는 둥 말들이 많을 줄 안다, 하지만 국민의 절반이 스스로를 저소득층이라 생각하고, 계층의 사다리가 진작 걷어치워져 98%의 국민들이 살아봐야 별 좋을 일도 없을 거라고 사는 나라니 아무리 여당 후보라도 달래는 시늉을 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서도 그것이 누구 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힘 있는 쪽에서 현실 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루어주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적이다. 물론 야당 주자들이야 열을 받을 것이다. 고갱이는 싹 빠지고 명분만 가져가 오히려 일을 더 어렵게 만드는 여당의 꼼수가 얄미울 것이고, 그 가락에 춤을 추는 국민들도 물론 야속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사란 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도 밥이 잘 넘어가는데 김문수 후보가 조마조마하게 보라는 것 같은 숨통 물어뜯기 엇비슷한 공격을 시작했다. 새누리당이 사당화가 되어 박 후보가 오지 않으면 의중을 몰라 의원총회가 열리지도 않는다고 포문을 열었다. 공천비리 파문도 오세훈 전(前)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투표 때 디도스 공격에 버금가는 문제이므로 이 자리에서 대국민 사과도 하고, 무엇보다 파괴된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 박후보가 쓴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곁에 두는 결단을 내려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조마조마해졌다. 그렇게하면 정말 인정받고 곁에 남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게 조마조마해졌단 말이다.

박후보는 별 흥미 없다는 얼굴로 나 없이도 의총만 잘도 열리고, 선거는 죄 시스템을 만들어서 시스템대로 하고 있는데 뭘 어쩌라는 거냐며 여전히 싸늘히 대응했다. 알면서 저러면 밀당이 장난이 아닌 거고, 모르면서 저런다면 김후보의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얼굴이 왜 그런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자기들끼리 그러거나 말거나이다. 다 짜고 돌아가는 노름판처럼 모두가 약간은 흥미를 잃고 건성인 대선판에 자기 혼자 미래를 걸고 한판 열심히 하겠다는데 뭘 어쩌랴 싶기도 하다. 진짜 잘 보이고 싶어서 저런 모양이지, 누구한테 잘 보이고 싶은 걸까, 잘 보일 수나 있을까 조차 궁금하기도 힘들었다.
오히려 머리를 떠나지 않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대한한국의 보수는 그 동안 건강성을 잃고 꼴통으로 불린 지 이미 오래다. 특히 MB 들어서는 거칠 것 없이 사사로이 이익을 탐하는 날것 그대로의 정신과 밥줄을 틀어지고 사람을 위협하는 저열함이 작렬해 누구나 보수적이라는 말에는 수치심을 느끼곤 하였다. 그런데 박후보가 제대로 대가도 치르지 않고 이 판을 엎어 버릴까봐 오히려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보수나 진보 가릴 것 없이 사람의 도리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었던 한 때가 있었다. 그런 호기를 진보당에서 한 방에 날려 버리고 안철수 소장이 조금은 희망이 되는 듯도 했으나, 결국 한 줌 바람에 날아가고 박후보만 현실적 선택으로 남아 보수를 다시 우뚝 세우게 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에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있는 것이다.
누가 뭐래니 하는 표정으로 박후보는 김문수 후보를 외면하고 결국 임태희 후보에게 질문과 관심을 돌렸다. 소통의 달인이라고 자처하는 임후보가 MB시절 청와대 요직까지 있었는데, 어째서 MB는 불통의 아이콘이 되었는가를 하문하였다. 인사문제가 MB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는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도 물었다. 이에 임후보는 아무리 자체 점검표를 마련해 주어도 결국 예상치 못한 국회 인사청문회의 질문 한 방에 날아가 버리더라며, 국회에서 미리 기준선을 만들어주지 않는 한 별 수가 없는 것 같다고 고백을 하는 듯 했다. 수첩공주는 무언가를 적으며 깊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그렇겠지 하는 것만 같았으나 그녀는 표정없는 얼굴은 그저 근엄할 뿐이었다.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시스템을 마련하다. 시스템 속에 사람을 하나씩 넣어서 돌려 본다. 줄을 서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누구든지 시스템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만하다. 튕겨져 나가면 잘라 버린다. 사람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 보수든 누구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는 새로운 방식에 혹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의 사람이 아니면 속절없는 1인자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는, 시스템의 냉혹함을 견디는 것을 훨씬 더 감당하기 쉽다는 착각도 가능하다. 최소한 시스템은 줄만 서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믿음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신화는 그렇게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것이다.
그러면 불통의 시대가 가고 시스템의 시대가 올 것이다. 시스템은 아예 소통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모든 일들은 모두 개인적 문제로 돌려질 것이다. 시스템은 완벽하고 거부할 수 없는 신화가 되어 우리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시스템을 두고도 속이려드는 사람은 더 후안무치한 인간이 되는 것이며, 용서받지 못 할 존재로 그들의 존재자체가 시스템에 의지해야만 하는 반증이 되어줄 것이다. 그것이 시스템의 완성이다.
아니 진정한 시스템의 완성은 그녀가 시스템으로 화(化)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오늘 밤 꿈을 꿀 것이다. 꿈속에서 그녀는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며 허연 얼굴을 돌려 사람들에게 절대 복종을 요구하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되어 나타날 것 같다. 나는 거대한 그것 앞에 서서 악몽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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