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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가끔씩이었지만 <위클리 수유너머>에 농사 소식이라며 농사 일지를 전해 왔습니다. 서툰 농사꾼이 솜씨도 없는 농삿일을 하면서 별다른 일도 아닌 하찮은 꺼리들이란 생각에 늘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별 볼 일 없는 산중에서 지내는 산촌 초부로써 이런 소식이라도 전하는 것이 도리라며 무릅쓰고 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여러 생각들이 겹쳐 떠오릅니다.
- 그리고 나는 지금 뉴욕의 작은 시립 도서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1년간 체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일본도 아닌 곳으로 왔지만 친구 y에게 생긴 (그것이 나였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일’이, 뉴욕과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 나를 딱 붙여 놓고 있다. 따라서 나는 뉴욕에 있지만, 아직/이미 뉴욕에 있지 않다.
- <재일 조선인 여성 강사가 일본대학에서 강의하는 법1(http://suyunomo.jinbo.net/?p=12537)>에 이어, 인터뷰 속편을 싣는다. 인터뷰 전편의 소제목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사건의 경위, 리츠메이칸의 ‘견해서’의 문제점, 계속 심화되는 인종주의의 시대, 역전된 권력관계, 법에 대한 싸움, 법을 통한 싸움”이다.
누구를 향해 소리를 질러야하는지
“지금 시국이 어느 땐데 이 난리야? 사람이 죽었는데!”
검은 자동차 한 대가 반포주공아파트 단지 입구를 빠져나오다가 잠시 멈추었습니다. 운전자석 창문을 내리고 아주머니 한 분이 당장에 쫓아 나와 누구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소리를 지릅니다. 보건복지부 장관님과 한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며칠 째 소음에 시달리고 있으니 화가 단단히 난 것도 이해는 됩니다만, 아주머니의 마지막 말은 집회에 참가하고 있던 스무명 정도의 사람들이 실소를 터뜨리게 만들었지요.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주머니와 마찬가지로 이곳에 매일 밤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가 바로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고 항의하기 위해서니까요. 장애등급제로 인해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한 고 송국현 님이 지난 4월 집에 혼자 있다가 화재를 피하지 못하고 누운 채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아 또 다시 한 사람이 죽었는데, 보건복지부장관은 유감이다, 라는 말만 했습니다.
그러니 아주머니의 훈계는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 참 잘못 찾았습니다. 혹시, 아주머니는 사람들이 반포주공아파트 앞에 모인 이유가 한 사람의 죽음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랬을까요? 한 장애인의 죽음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보다 가볍다거나 덜 슬프다거나 덜 아프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면 정말 끔찍합니다. 하지만 물어볼 새도 없이 아주머니는 차를 돌려나갔으니,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긴 어렵지요. 중요한 건, 고 송국현 님과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이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고 항의하는 것은 다른 죽음을 애도하고 항의하는 것과 같다고 다음에 그 아주머니를 만난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처음 생기던 1998년도부터 부양의무제는 악법적 요소라는 비판을 받아왔고, 장애등급제 폐지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습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광화문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도 벌써 600일이 지났습니다. 부양의무제로 인해 장애인 아들이 수급자에서 탈락할까봐 목숨을 끊었던 아버지부터, 장애등급제로 인해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해 불붙은 집 안에서 죽은 고 송국현 님까지. 그 사이와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돈 때문입니다. 정부는 복지 예산을 늘릴 의지가 없기 때문에 장애등급제나 부양의무제 등으로 복지서비스의 필요를 제한합니다. 각종 제한과 규제가 사회적 약자의 삶을 옭아매고, 위협합니다.
반대로 세월호 침몰은 돈과 기업의 이익을 위해 각종 제한과 규제를 완화시킨 선택의 결과였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노후 선박의 수명 연장법안이 통과되면서 한 번, 선박 결함을 시정하지 않은 허술한 안전점검으로 한 번, 화물을 기준치 이상으로 선적하고 규격에 맞지 않는 고정 장치를 쓴 것에서 한 번, 선박직의 절반을 비정규직으로 뽑고 판공비에는 연간 6천만원을 썼지만 안전교육에는 고작 54 Online Casino만원만 쓰면서 한 번, 사고 직후 승객에게 선내 대기 명령을 내린 후 선장과 선원들이 먼저 탈출하면서 한 번, 정부가 갈팡질팡 시간을 허비하고 탑승자명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한 번, 사고 선박 인양 전문 업체 ‘언딘’에 인명 구조작업을 의뢰하면서 한 번. 대통령이 모두 책임지겠으니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라 명령하는 대신 책임자와 관련자 질책 타령만 하면서 한 번. 기타 등등의 무수한 한 번들. 수없이 되풀이된 한 번들은 사람의 목숨 대신 돈과 기업의 이익을 선택한 한 번이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고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거나, 더 많은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었겠지요.
사람을 죽이는 제도를 강화하고 사람을 살리는 규제는 완화한 결과가 고 송국현 님과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입니다. 그 중심에는 돈과 기업의 이익이 먼저인 사람들이 있었지요. 살려내라고 외치는 소리에 귀 막는 보건복지부장관이나, 고속버스를 타러온 장애인들의 얼굴에 최루액을 분사하도록 명령한 서울지방경찰청이나, 분노하는 유족과 국민들을 미개하다고 말한 어느 정치인의 스무살 짜리 아들이나(그 정치인은 거듭 사과하고 있지만, 평소 아버지가 하는 말을 아들이 반복한 거 아니겠냐는 추론은 매우 정당해보입니다), 현장 의료진들이 구급의약품들을 올려놓은 테이블을 치우고 라면을 먹은 교육부 장관이나, 라면에 계란을 넣어먹은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냐라고 말하는 청와대 대변인이나, 자신이 입은 옷색을 보정한 사진을 언론에 뿌리게 한 대통령이 그들입니다. 열거하기에 숨차도록 너무 많네요. 이들에게는 법과 제도, 규칙과 규제 모두 사람의 삶 대신 돈과 기업의 이익을 위해 존재합니다. 가장 약한 사람의 삶을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카드로 취급해온지 오래라는 사실이 매일 폭로되고 있습니다.
어떤 고통의 울부짖음도 한 사람의 울부짖음보다 더 클 수 없다.
또한 어떤 고통도 한 인간이 혼자 겪어야 하는 것보다 더 클 수 없다.
지구 전체라도 한 영혼이 혼자 겪어야 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비트겐슈타인
햇빛이 어제보다 밝고 따뜻해진 오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은 연초록으로 반짝입니다. 날씨가 아까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시장에서 장을 봐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쌈채소, 고추, 방울토마토, 호박 모종을 삽니다. 옥상 상자텃밭에 흙을 파고 거름주고 물뿌리고 모종을 심습니다.
고 송국현 님이 살아있었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생각해봅니다. 동료 학생, 선생님들과 산보삼아 야학근처를 돌아다니다, 제법 따가운 햇볕에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느라 땀을 흠뻑 흘려 투덜댔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어딘가 핀 꽃에 자기도 모르게 함뿍 웃었을 지도요.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오늘 하루를 생각해봅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가 잃은 것은 그 모든 사람들의 귀한 삶인데요. 한 사람의 삶이 누렸을 매일을 빼앗아간 이들은 자기 책임을 느끼지도, 잘못을 고치려들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 아주머니를 만나면 누구를 향해 소리를 질러야하는 지,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82호 동시대반시대는 창간편집진과 나눈 위클리 이야기입니다. 이번호가 마지막 <위클리 수유너머>입니다. 결정을 내린 후 마지막 인사를 하기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어요. 웹페이지는 닫지 않습니다. 지난 호와 코너별 글 보기를 하실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좋은 글 써주신 필진분들과 숨은 독자 여러분들, 그리고 편집진들 모두에 감사드립니다.
- "니가 원한대로 다 했어. 그런데도 헤어진다고?” 지난 181호 글의 제목이다. 확실히, 우리는 천천히 헤어지고 있다. 한때 불나게 카톡을 하고, 모여서 술 먹던 관성에서 벗어나 각자의 새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시기에 지난 181호 ‘편집자의 말’ 제목은 사뭇 섬뜩하게 다가온다. “잘못된 낙원은 불타버려야 했죠.” 과연 우리의 ‘낙원’은 어떤 것이었을까?
- 작년 말 리츠메이칸 대학 강의에서 한 학생 단체가 조선학교를 ‘고교 무상화’ 대상으로 포함시켜 줄 것을 어필한 뒤 “문부과학성 앞으로 보내는 메시지 카드”를 나눠 줬다. 그런데 올해 1월 당시 나눠 준 메시지 카드의 서명 여부에 따라 성적을 주기로 했다는 데마가 트위터의 한 트윗에 의해 퍼져 나갔고 2채널(2ch)이나 인터넷 우익에 의해 담당 강사는 극심한 공격을 받는다.
- ‘위클리를 만든 사람들’ 가운데 독자를 빼놓을 수 없다. 위클리 편집진은 엄정한 규칙 아래 위클리의 ‘우수 독자’ 둘을 선정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3월 14일 금요일 오후 2시. 컨셉트는 낮술. 민방위 훈련으로 대중교통이 멈추어 버린 탓에 삼십 분씩 지각한 우수 독자 2인과 위클리 편집자 1인이 약속 장소인 연희동 야X포차로 하나둘 들어섰다.
- 심뽀, 언어 사용이 좀 심했을까 싶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를 보면서 나는 그의 마음보가 심뽀로 밖에, 달리 생각이 되질 않는다. 왜소한 도민(島民)들 근성이려니 생각해 보았지만, 도대체 하는 짖거리가 꼭 골목길 꼬마 심술꾸러기의 심통이며 심술부림 같기만 하다.
- 김융희 선생은 바다 건너편에 완도가 보이는 바닷가 마을 장흥 출신이다. 4형제와 아버지만 남겨두고 어머니는 일찍 돌아갔다. 선생의 나이 17살이었다. 남자만 득실거리는 집안에서 혼자 여자라 힘드셨는지 라며 어머니 죽음의 이유를 추측한다. 이듬 해, 아버지가 살림을 꾸리기 위해 재혼을 하실 무렵 사춘기 반항심에 혼자 서울로 올라왔다.
- 위클리 수유너머(이하 위클리)의 창간 멤버들은 딱 100호까지만 하고 그만둔다는 꽤 멋진 이별을 준비해 두었다고 한다. 그런 그들이 99호 때, 100회가 지나도 계속하겠다 했을 때, 나는 편집자의 말 아래 쑥스런 고백 댓글을 달았었다. 위클리 필진, 편집진들의 글빨에 기가 눌려 댓글 한번 다는 것도 힘든 시절이었는데 처음으로 위클리에 마음을 표시를 했다. 좀 더 오래 붙들어 두어야겠다 싶어서였다.
- 일본에서 공부하며 데모와 마을, 여러 현장의 소식과 일본 내 사상과 동향을 칼럼으로 전해줬던 신지영 씨를 만났다. 위클리를 마무리하기 위해 논의하고 있을 즈음, 지영 씨도 미국에서 1년 간 공부하게 될 예정이라 일본에서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미국행 준비를 위해 입국한다는 말에 만날 약속을 잡았다.
- 독일의 5인조 메탈코어 밴드인 ‘헤븐 쉘 번’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이다. 음악적인 면에서는 메탈에 기반하였지만 생활면에서는 철저히 하드코어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이와 같은 음악을 하는 밴드들을 sXe라고 일컫는다. HSB는 더욱 극단적으로 sXe Vegan이라고 하는데 이는 금주, 금연, 무분별한 섹스 금지에 채식을 더한 것이다. 또한 멤버들 모두 반-파시스트/반-인종주의 밴드이며 그것이 그들의 정치적 기반이 된다고 한다. 도대체 이 밴드의 삶이 궁금했다.
- 지난 2009년 일본 타이지 앞바다에서 잡혀와 울산 남구 고래생태체험관에 갇혀 있는 큰돌고래 장꽃분이 조만간 출산을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울산 남구청과 고래생태체험관, 서울대공원, 한화 아쿠아플라넷 등이 '큰돌고래 번식협의회'를 구성하고 본격 출산 준비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 5월 8일은 독일 역사뿐 아니라 유럽 역사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유럽 사람들의 내전은 끝났으며, 낡은 유럽 세계는 붕괘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역사학자 미카엘 쉬트르마(Michael Struemer)의 말대로 “유럽은 전쟁을 통하여 철저하게 정리된” 것입니다.
- 내가 콜트콜텍 사건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은 밴드 Rage Against The Machine의 보컬 ‘잭 드 라 로차’가 프로젝트 밴드로 일본 후지산 락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No Cort!’를 외치는 것을 본 것이었다. 그 때가 2010년이였다.
- 육지에서 강정하면 다들 해군기지를 떠올린다. 나 같은 경우에도 강정이야기만 나오면 해군기지 결사반대가 자동으로 떠오르니까. 그런데 미사를 보고 삼거리식당으로 가던 도중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이라고 적혀있는 조감도 사진을 보고 갸우뚱 했다.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곳에 수영장, 복합문화센터?
-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127번 농성장을 방문하는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전화가 오더니, 그 전화 때문에 속이 상해서 일에 집중 할 수 가없었습니다. 그래도 부산에서의 일을 끝내야 했기 때문에 농성장으로 바로 달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농성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 새벽 6시. 비어있는 복도에서는 소리가 잘 울린다. 또깍,또깍,또깍. 여러 개의 구두 소리는 합창을 하듯, 돌림노래를 하듯 에코 효과를 내며 아침 공기를 가른다. 농성장 바닥에서 밤새 굳은 몸을 이리 저리 움직여 본다. 날이 많이 풀렸다고 해도 한 데는 한 데다. 어제의 피곤이 풀리지 않았는데 새로운 하루가 다시 밝았다.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 농성장의 아침 풍경이다.
- 장애등급제의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면 1981년에 이르게 된다.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된다. 다음해 1982년 장애등급기준이 발표되고 1987년 장애등록제도가 시범 실시된 이후 1988년 11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장애인등록제도가 시행된다. 그리고 1989년, ‘장애인복지법’ 전면개정을 통해 일본과 같은 방식의 장애등급제가 제도화되었다.
- 최근에 자그마한 그림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벌써 대여섯 점의 그림, 혹은 비슷한 무엇을 만들어 내었어요. 이전 만화 학원에 다니며 배웠던 기억들을 되살리려 애쓰고 있는데, 생각대로 잘 되지는 않더군요. 그림을 조금 그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보이는’ 대로 그려지지 않고 ‘아는’ 대로 그려지는 터라 아무리 보고 따라 그리려 해도 그게 안 되는 거예요.
-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감당해야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청소년기 가장 흔한 조언은 이런 것이다. 네가 하고 싶은 꿈을 위해선 대학을 가야하고, 대학을 가기 위해서 수능을 봐야한다는 식의. 물론 이 A-B-C의 세 단계도 무지 간추려진 것이다. 꿈을 위해서 그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D나 E, 심지어 F에 해당하는 일까지도 감당해야 한다.
- 작년 봄 개봉한 <왕자가 된 소녀들>의 포스터는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포스터 속 선명한 흑백 사진 안에는 마치 난리 통에 부모를 비롯한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몸뚱어리만 간신히 연명한 채 위태로이 스러지려 하는 아리따운 여인과 그 여인의 어깨와 허리를 두 손으로 꼭 감싸 안고 평생을 지켜주겠다는 굳은 맹세를 하는 듯 날선 콧날과 앙다문 입술을 하고 있는 남자가 있다.
- 루쉰의 <소잡감(小雜感)>(1927)은 몇몇 서양학자들(맑스나 니체, 벤야민 등)이 애호했던 ‘단편(fragement)’ 내지 ‘아포리즘(aphorism)’ 형식의 글이다. 니체는 두 개의 산을 잇는 가장 짧은 길이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선이라고 했다. 그것은 문제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것이다. 모서리를 돌지 않고 말이다. 이런 글쓰기 형식은 누군가(직접적인 비판 대상 뿐만 아니라 독자까지)를 찌르는 데 특히 적합하다. 문체, 즉 ‘스타일’이라는 말이 ‘스틸로스(stylus)’, 즉 ‘단검’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포리즘은 ‘문체’라는 말의 본래적 의미에 가장 가까운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 올해 봄, 말자들이 뭉쳐 말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녀들은 같은 일터에서 “미스 김"(올해 방영되었던 ‘직장의 신’의 주인공)업무를 밤 12시까지 하면서 정이 들었다. 일터는 공장이 아닌 사무실이었지만 갑 님들에게 어마어마한 서류 더미들을 가지런히 철해서 합격 점수를 받아야 월급을 계속 받을 수 있는 곳이라 엄청난 서류를 한 번 더 복사하고, 종이에 구멍 뚫고, 철하는 업무가 많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명의 말자를 뺀 나머지 말자들이 모두 이 곳을 퇴사해서 대부분 백수가 되었다.
- 언제부터인가 인터넷 연예 기사에서 ‘민폐 하객’이라는 단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연예인 결혼식장에 주인공보다 더 예쁘게 차려입고 온 여자 연예인을 부르는 말이다. 민폐 하객은 흰색 옷을 입고 가는 하객을 가리키기도 한다. 결혼식장에서 순백은 신부만이 가질 수 있는 색으로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졌나 보다.
-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신랑과 신부가 차례로 입장했다. 진행자는 주례를 소개했다. 그는 신랑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운 대학교 교수였다. 사회를 맡은 남자가 주례를 하늘 높은 자리로 올려주었다. 대.다.나.신. 주례의 진행에 따라 혼인 선언을 마쳤다. 이제 일반적으로 결혼식 가운데 가장 재미없고 지루한 절차인 주례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날의 주례사는 지루하지가 않았다. 얼마나 지루하지 않았는지, 듣고 있는 속에서 불이 났다. 그는 먼저 신랑 아버지에 대한 칭찬을 했다.
- 듣보잡, 이뭐병, 여병추 등의 줄임말을 열심히 배우던 몇 년 전, 결혼을 앞둔 학교 동창이 주선한 모임에 나갔다. 그것이 아마도 내가 경험한 첫 청첩장 증정식이었을 것이다. 동기 여섯이 모였다. 파스타를 먹으며 두 시간 동안 이 사람, 저 사람에 대한 뒷담화를 실컷 했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부터의 대화 주제는 결혼과 남자가 될 차례였다.
-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의 주요 소재 중 하나는 ‘결혼’이다. 친구로만 생각했던 남자가 결혼 소식을 전하는 순간, 호르몬 작용이 뒤집히며 ‘오! 마이 갓! 이 남자가 내 운명의 남자였어!’를 외치는 여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모르지만 관객 모두가 아는) 나쁜 남자와의 결혼을 앞둔 여자 앞에 우연히 진정한 사랑이 나타나기도 한다. 결혼을 앞둔 여자들의 불안한 심리, 혹은 단짝 친구의 결혼을 앞둔 여자의 심란한 마음을 다룬 영화도 있다. 앤 해서웨이
- ‘아니, 이건 무슨 언어 파괴?’ 라는 생각을 하며 누가 이런 문자를 보냈나 싶어 프로필 사진을 봤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10여 년 만이었다.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난 이후, 처음으로 내게 연락한 것이었다. 사회적 인간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대충 잘 산다고 대답하며 상대의
-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대한 최초의 메커니즘에는 인간이 개인적 자아의 독립을 포기하고, 개인적 자아에 결여된 힘을 얻기 위해 자기 외부의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그 자신을 융합시켜 가고자하는 성향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상실한 일차적 관계 대신 새로운 '이차적' 관계를 추구하는 성
-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것 이 외에는 2년4개월, 아니 28년간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그야말로 말세적 삶(-사람들이 나를 보며 말세라고 일컬을 만한 그러한 어찌하면 나태한, 편안한, 재미있는, 조금은 다른 삶) 을 즐기고 있다. 아침에 운동을 하고나면 공복감이 몰려온다. 허기져서 뭔가 요리해먹고는 잠깐 배가 꺼질 때까지 독서를 한다. 그러다보면 너무도 편안한 조도와 바람에, 낮잠을 잔다. 내가 일하지 않아도 세
-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어서 모든 것이 첫 경험(?)인지라,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른채 2년 4개월을 보냈다. 퇴사 역시도 생애 최초의 경험이다 보니,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퇴사를 하는 것이 마치 회사의 사정과 스케쥴에 피해를 끼치는 것마냥 이야기하기도 하고, 통사정을 하기도 하는 통에 (그럴 필요없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몸둘 바를 모르기도 하였지만서도, (그럴 필요가 다소 있어보이는) 무엇보다 대책없이 그만둔
- 얼마 전 친구와 사주를 보러갔다. 홍대에 위치해있는 사주카페인데, 보고 오는 친구마다 그 아줌마가 늘어놓는 내팔짜가 여간 신통한 것이 아니라고 하여 재미 반, 궁금한 마음 반으로 내 사주를 확인하고자 갔었다.
- 얼마 전, 일본에 ‘사토리세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는 인터넷기사 제목을 우연히 발견했다. 88만원세대니 프리타족이니 떠들지만, 결국엔 명칭의 이면에 맥락을 같이하는 사회구조적 옳지않음을 바꾸어내는데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고, 또 우리가 아무런 세대이면 안되는 것처럼 여기저기 떠드는 강의만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식상해질대로 식상해져버린 세대담론 하나가 또 유행처럼 번지고 있음을 알리는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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