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코뮨으로 가는 길

- 지안

코뮨이 무엇일까? 내가 수유너머라는 코뮨에 발을 들인 후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은 그것이었다. “코뮨이 무엇인가, 코뮨은 어때야 하는가?” 어떤 사건이나 누군가의 혹은 나의 행동, 무슨 말에 대해서 ‘이건 코뮨인가? 저건 코뮨인가?’ 라고 재고, 따져보고, 생각해왔었다. 사실 나는 꽤 오랫동안 공동체라는 이름에 강한 반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공동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종교나 민족 혹은 가족, 학교를 자동적으로 연상시켰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 주제들을 모두 몹시 싫어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코뮨’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을 때, 나는 그 주제가 별로라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있는 곳이 코뮨이긴 하지만 코뮨은 싫어,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코뮨에 대해 배우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공동체라는 이름을 싫어했던 이유는 내가 ‘공동체’라는 단어를 통해 연상한 것들이 배제와 단결을 통해 작동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떤 공간이나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묶인다면 그건 그 공간 혹은 사람들이 다른 공간과 사람들과 구분되는 것이고 <우리 공동체>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배제됨으로써 구분선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제도 공동체를 그런 식으로 굴러가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공동체의 일에 대해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어리고, 자격 없는 일원일 뿐이다. ‘국가, 가족, 학교’와 같이 제도적인 공동체들은 그냥 태어나서, 이곳에, 이 이름으로 존재한다는 이유로 묶여버린 그물망 같은 것이고 이미 짜여진 코드에 따라가기만 해야 하는 곳이다. 존재함과 동시에 묶여버렸는데,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어찌나 답답한지!
‘위클리 수유너머’ 또한 코뮨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제도화된 공동체와는 다른 성격의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먼저 위클리라는 코뮨은 이곳에 글을 쓰거나 읽고, 편집하고, 기획하는 모두가 포함되는 상당히 넓고 추상적인 코뮨이다. 조금 더 좁혀보자면 ‘위클리 수유너머’라는 코뮨 안에 ‘위클리 수유너머 편집진’이라는 작은 코뮨이 있다. 우리는 매일 연락하고, 만나서 회의하고, 뒤풀이를 하고, 동료로서 여러 일을 함께 하고, 뭐 그런 일상을 공유하는 코뮨이다. 이곳에서의 일은 나름의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되는데, 사실 그건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벌써 관료제에 익숙한 몸인 건지 지시하거나 지시받아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훨씬 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동료를 의심하는 일도 빈번하다. ‘지금 얘가 일을 하고 있을까? 해오겠다는 것을 해올까?’우리는 편집장이 없기 때문에 일처리도 더딜 수밖에 없다. 지시사항을 따르면 되는 것과 다르게 각자가 자발적으로 일을 찾아야 한다. 안건 하나를 처리하는 데도 서로 서로 무슨 생각과 문제제기들이 그렇게 많은 건지!
제도 공동체는 정해진 코드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사실 요즘에는 제도 공동체 또한 바꿀 수 있는 여지들이 있겠다 싶긴 하지만 학교와 같은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규칙들에 내가 흡수되어야하는 일이다. 반면 위클리 공동체는 계속 어긋나고 균열이 난다. 그리고 그 균열들을 처단할 수 있는 코드도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공동의 몸짓 혹은 언어를 만들어내야 할 텐데 그러기가 무진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매일 깨달아가고 있다. 지금으로썬 균열들을 서로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리고 이 공동체가 배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접속-변화로 작동한다는 것 두 가지만 상기하고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요즘 내 선배 코뮨주의자들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생각과 시행착오를 겪었을는지.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시행착오를 겪을 것인지!

 

 

응답 1개

  1. 최원형말하길

    페이스북 페이지가 너무 오랫동안 잠자고 있는 것 같아…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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