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길들여질 것인가, 길들일 것인가

- 숨(수유너머R)

“아이들은 자치회의를 왜 해야 하는지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대요. 그래서 그날 공부방에 놀러와 있던 졸업생에게 물어봤어요. 옛날에는 자치회의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졸업생이 그때는 공부방에 돈도 없고 급식도 없는 때라서 오늘은 뭐하고 놀지, 내일은 뭐 먹을 지를 자치회의에서 아이들끼리 의논하고 결정했다고 하더라구요. 그 얘기를 듣던 공부방 아이가 우리에게는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자치회의가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어요.”

‘청소년과 자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중 한 공부방 활동가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서 자치회의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한 아이의 말이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습니다.
아이의 말을 뒤집어보면 자치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조직하는 과정입니다. 공부방에서 아이들 스스로 무엇을 하고 놀지, 무엇을 해 먹을지를 직접 의논해서 결정하는 것부터가 자치인 거죠. 하지만 각종 프로그램과 급식이 그것을 대신해버립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 걸까요? 아무것도 없던 과거로 과감히 돌아가는 것? 가난한 공부방이 되는 것?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국가가 해결해주지 못했던 삶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해 공부방이나 기타 이러저러한 것들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에 대한 지원을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지요. 가려져있던 문제를 드러내고 몇몇 가난한 이들, 아픈 이들의 개인적인 문제로 여기던 것을 공공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정부의 제도적 물질적 지원이 결정되면 문제들을 안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집니다.

바로 이 순간에 우리는 갈등에 빠집니다. 정부에선 돈을 주는 대신 제도와 권력에 대한 순응을 요구합니다. 그들의 돈이 어떤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증명하라고 합니다. 각종 행정 절차와 서류, 일방적인 평가기준이 만들어집니다. 기준에 맞춰서 심사를 잘 받아야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길들이는 채찍이 돼 혀를 날름거리며 혼을 빼놓습니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급급하다 어느새 정말 해결하고 싶었던 삶의 문제들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지원을 받지 않고 100% 자치를 할 것인가, 지원을 받으면서 굴종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양자택일을 해야만 하는 걸까요? 그 속에 우리가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은 없는 것일까요? 자치를 할 수 있는 보다 고급한 기술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돈을 안 받는 걸로 해결볼 것이 아니라 돈을 받으면서도 우리의 결정권을 지켜내고 강화하는 기술. 지금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질적인 지원, 제도적 틀에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길들이는 힘이 요구되는 순간.

저항과 요구, 참여의 결과로 온갖 지원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앞으로도 그 형태를 바꾸어 계속 이어지겠죠. 사회적 기업, 마을만들기, 협동조합…… 이번 147호에서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우리의 자치, 참여의 영역에 정부의 지원이 덧붙여졌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를 다룹니다. 지원을 받아야한다 말아야 한다를 결정하기보다 우리 스스로의 통치가 위협당하는 순간은 언제이며 이것을 어떻게 다루어야할 것인가를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좀 더 많이 투덜거리고 좀 더 많이 뻗대는 기술, 제도적 지원이나 돈으로 절대 길들일 수 없다는 걸 보여줄 밀당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물을 보는 시선의 여유를 느끼게 해주는 김환님의 그림 한 장이 연재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황진미님의 씨네꼼은 이번호까지만 발행되구요. 최신의 영화를 예리하게 분석한 비평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다음호부터 새로이 연재될 코너로 달래봅니다. 수유너머N에서 영화공부를 하시는 분들의 새코너 “그들 각자의 영화觀”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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