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두려움과 마주하는 일

- 주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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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강정 마을에 사는 친구가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두물머리에 일이 생겨 잠시 머문다고 합니다. ‘재판 승소 파티’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조만간에 ‘나랏님’들이 또 ‘쳐밀고들어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답니다. 그런 배경을 뒤로하고,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 강정 소식을 물었습니다. “힘들다”합니다. 지친 표정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강정을 떠나 살아야겠다”고 합니다. 몇 주 전에 만났을 때도 그런 이야기를 했던 터라 그러려니 하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떠나는 이유, 결국 사람 때문입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것이 많이 불편한 가 봅니다.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들어보니 무언가에 치받는 분노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말한 그 이야기, 한번 글로 써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냉랭함이 가득 담긴 말이 화살이 되어 귀에 박힙니다. “왜 글을 써야 해요, 쓸 얘기도 없고, 쓸 수도 없어요”. 듣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치고 짜증나서 글을 쓸 마음이 생기지 않는건가, 아니면 공개된 글을 쓰고 나서 (생길지 모를)감당해야할 후폭풍 때문인가, 아니면 원래 글을 쓰는 걸 싫어하는 친구였나’. 대화를 마치고나니 그 친구 기분이 안 좋아 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글 쓰기 싫다’ 말하던 그 친구에게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두려움이라는 건 ‘자기 삶의 진실을 알고자하는 스스로의 마음’을 외면 혹은 기만하는 태도의 다름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실상 그것은 지금 제 속마음과도 같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참 어렵고 힘듭니다. 지금껏 살아온 삶, 자신의 과거와 대결하는 일은 정말 피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렇지만 피할 수 없습니다. 내 안의 두려움이라는 ‘괴물’은 아무리 도망쳐도 끝까지 쫓아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냥 쓰기 싫어서’, ‘글을 쓸 시간이 없어서’, ‘글을 쓰는 능력이 부족해서’ 따위의 글을 쓰지 않겠다는 이유들은 저에게는 이렇게 들립니다. “내 삶과 마주하는 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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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말씀드렸듯이 이번 125호 <위클리 수유너머>는 영화 ‘두 개의 문’을 본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쌍용차 가족대책위, 홈리스행동, 그리고 용산참사 유가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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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울컥했습니다. 사실 그냥 울컥한 게 아니라 눈물이 주르륵 나왔습니다. 영화에 감동해서라기보다는 날 것 그대로 드러나는 구타 장면들, 그런 무자비한 폭력에 복종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앞에 놓인 현실’들’ 때문이었습니다.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무력함에, 나 자신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또 이렇게 눈물 흘리는 꼴을 보고있자니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내가 용산참사를 잊고 있었구나,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참회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고 별 생각 없이 그냥 평소의 자기 삶으로 돌아간다면, 그 흔한 멜로 영화 보고 질질 짜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보고나서도 변하지 않은 현실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 상처 가득한 현실이, 우리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 권력이 어쩌고~ 자본의 탐욕이 어쩌고~’와 같은 말들을 억지로 떠올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관념적인 단어들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자기 삶을 구체적으로 돌아볼 수 있기때문입니다. “3년 6개월이 지난 지금 나의 삶에 용산참사는 어떤 의미인가”

두려움과 맞서느냐, 피하느냐. 지금 우리 앞에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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