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싸움 속에 있는 자와 그것을 기억하는 자

- 백납(수유너머R)

2013년의 5.18이 벌써 보름 정도가 지난 시기인데도 5.18과 관련하여 논란이 계속됩니다. 당시 광주의 시민군에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종합편성채널의 방송으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한 유머 웹 싸이트인 ‘일간 베스트 저장소’에서 행해지고 있는 그들 나름의 놀이문화가 종합편성채널의 방송과 맞물려 사람들을 자극하였고, 몇몇 논자들은 해당 웹 싸이트를 폐쇄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에서는 밀양 송전탑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옵니다. 원자력 발전소에 불량부품이 사용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몇 원전의 가동이 중단되었습니다. 밀양에 송전탑이 지어지면 전력을 보낼 목적으로 건설 중인 신고리 원전 3호기에도 불량부품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불량부품 파동이 일자, 신고리가 있는 장안읍 주민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가 열렸는데, 원자력안전위원장은 납품 비리는 완전한 적발이 불가능하며 한수원 근무자 중 원자력 전공자는 8%뿐이라고 말하며 인력난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원자력에 대한 안전을 책임질 단체에서 자신의 무능함을 호소하고 있는 지경이니,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주민은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이런 와중에도 전력수급문제만을 언급하고 있으며 또 언론은 이를 국민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이야기고 많이 이야기되는 말입니다만, 원전문제는 국가적 문제를 넘어서 인류의 문제로까지 비화할 수 있는 심대한 문제입니다. 같은 시대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밀양에 있는 고령의 어르신들과 서울에 있는 저 간의 차이는, 아마도 싸움 속에 있는가의 여부 차이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아무리 그들과 연대한다고 해도 온몸으로 부딪히며 병원에까지 실려 가는 그들에 비할 바 못 됩니다.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5.18 당시의 광주도 그렇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 봅니다. 군부 통치의 비민주성이야 그 시대 국민이 공유한 문제였겠습니다. 하지만 싸움 속에 있었던 사람들과 싸움 바깥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무래도 같은 질문을 공유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올해 출간된 공선옥의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는 5.18 당시의 인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소설 속 숙자와 그녀의 딸 당금이는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엄마, 뭔 세상이 이런다요? 군인들이 사람들을 맥없이 두들겨패고 죽이고 했던 것이 다아 거짓말 같네. 지난봄에 사람들이 죽기는 죽었었던가?
―다들 묵고살라면 어쩔 것이냐, 안 존 것은 언능언능 잊어불어야제. 좋도 안헌 것 붙들고 있어봐야 밥이 나오겄나, 뭣이 나오겄나.
―참말로 그라까, 참말로 그라까. 나는 참말로 모르겠소. 나는 참말로 암것도 모르겠어라우.

밀양의 어르신들이 공권력이 비호하는 용역들과의 물리적 충돌에도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근거가 흔들리는 어르신들이 아닌 이상, 대부분 사람은 ‘밥 나오는’일 하면서 일상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능언능’ 잊어버립니다. 아무래도 싸움의 바깥에 있는 대부분 사람의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언능언능’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설 속에는 시민군이었던 박용재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폭력에 장시간 노출되었던 그는 광주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습니다. 그는 자기의 처가 군인들에 의해 겁탈당해 임신했으리라는 망상에 시달립니다. 칼로 처의 배를 가르려다 처의 손에 목 졸려 죽습니다. 용재나 밀양의 어르신들에게 ‘역사’는 어떤 의미일까요. 오히려 그들에게는 거창한 역사보다 폭력의 경험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더 큰 과제일 듯싶습니다.

모든 싸운 자들의 망각을 기원합니다. 밀양 어르신들에게도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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