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당신의 일주일

- 숨(수유너머R)

너의 미소를 오늘도 볼 수가 있다면
내일도 모레도 계속 볼 수 있다면 좋겠네
니가 꿈을 계속 꾼다면 좋겠네
황당한 꿈이라고 해도 꿀 수 있다면 좋겠네
너와 나는 얼굴을 모른다 하여도,
그래도 같이 달콤한 꿈을 꾼다면 좋겠네
지구라는 반짝이는 작은 별에서
아무도 죽임을 당하지 않길
지금 너는 먼 하늘아래 있지만
그래도 같은 하늘아래 니가 조금 더 행복하길
-오지은, <작은 자유> 중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금요일 밤입니다. 자정이 지났으니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네요. 노트북을 펼치고 지난 일주일을 돌아봅니다. 편집자의 말을 써야 하니까요.
월요일에는 집 계약을 했습니다. 저는 세입자이지만 2년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가는 것이라 인터넷을 통해 새로 들어올 세입자를 직접 구해야했습니다. 계약 당일 집주인 아주머니가 남의 일 대하듯 “새로 구해온 세입자가 남자라 마음에 안 드네, 계약 조건이 마음에 안 드네” 딴소리만 자꾸 해대는 통에 애를 먹었습니다.
화요일에는 다음번 위클리 기획을 위해 인터뷰를 했습니다. 성소수자 지역주민 모임을 꾸려가는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즐거운 기억이었죠. 수요일에는 연구실에서 하는 글쓰기의 최전선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앎과 삶의 일치에 대해 격하게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어요. 목요일에는 아파서 외부일정을 모두 취소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잠만 잤어요. 금요일에는 오전에 회의 하나를 하고 오후에 4명의 아이들과 상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노트북을 켜고 지금 자리에 앉았지요.
특별하지 않은 일주일이었네요. 이런 날들이 이어지는 게 일상입니다. 별다른 것 없이, 예상 가능하게 이어지는 날들의 연속에서 일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책도 읽고, 웃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면서 보내는 날들 말이지요.

이번 주 밀양은 달랐습니다. 한전에서 송전탑 건설 공사를 강행한 날이 월요일이었어요. 하루에도 서너명의 어르신들이 밀려서 쓰러지고 넘어지는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오늘까지 15명의 주민이 다쳤답니다. 월요일부터 매일 인터넷 뉴스나 페이스북을 보며 상황을 지켜보는 제게 밀양은 전쟁 같은 날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넓지도 않은 나라에서 나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누구는 살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게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일이었고, 이렇게 살고 있는 제가 죄송해질 지경이었지요.
그런데 2005년부터 마을을 지키며 싸워온 어르신들을 월요일부터 다급하게 밀어붙인 이유가 어제 밝혀졌습니다. “UAE(아랍에미리트연합) 원전을 수주할 때 신고리 3호기가 참고모델이 됐다. 2015년까지 신고리 3호기가 가동되지 않으면 벌금을 물도록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어서 밀양 송전탑 문제는 꼭 해결돼야 한다.”고 한전 부사장이 실토했습니다. 그 동안 전력수급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한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지요. 70이 넘은 어르신들이 고향 마을을 지키겠다고 나무에 줄을 매고, 옷을 벗고 하는 동안 그 앞에서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거짓말을 해댄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밀양 어르신의 일주일이 당신의 일주일보다 가볍습니까? 그분들의 일상이 당신의 일상보다 하찮습니까? 아니, 일주일이 아니지요. 이제 9년차 접어드는 싸움입니다. 작년에는 어르신 한 분이 당신 몸에 불을 붙여 알리셨지요. 국가의 이름으로, 자본(이윤)의 이름으로 당신들의 터전을 짓밟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돌아가신 어르신을 살릴 수도 없고, 9년이라는 전쟁같은 시간을 보상할 수도 없다면, 지금 멈춰야 합니다. 이 글이 발행될 때쯤이면 공사강행이 중단되고, 주민들의 뜻에 따른 송전탑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밀양의 어르신들이 다시 논에서 밭에서 당신들의 하루를, 오늘과 내일이 다를 것 없는 일상을, 9년 전에 빼앗긴 평화를 맞이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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