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미의 자율성에 정치가 개입할 때

- 유일환(수유너머N 회원)

칸트는 ‘무관심한 관심’으로 미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관심한 관심? 모순된 표현처럼 보이는 이 개념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무관심한 관심에서 ‘무관심’이란 감각적 욕구나 도덕적 욕구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가령, 누드화를 감상한다고 할 때, 감각적 욕구에 사로잡혀 “오, 몸매가 예술인데.”라고 감탄하거나, 도덕적 관점에서 “어떻게 저런 알몸을 그릴 수 있어!”라고 성을 내는 것은 진정한 미에 대한 판단을 방해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이러한 욕구에 대해 무관심해야 한다는 거죠. 반면, 무관심한 관심에서 ‘관심’은 감각적 욕구나 도덕적 욕구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져서 대상 자체를 주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욕구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대상 자체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것, 칸트는 이것이 ‘무관심한 관심’이며, 미에 대한 판단은 이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칸트를 언급한 이유는 ‘미의 자율성’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미에 대해 판단을 위해선 여타 다른 욕구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게 중요한데요, 이 논의를 확장해보면, 예술은 예술 고유의 영역을 가지며, 도덕적 개념이나 정치적인 개념은 이에 간섭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예술은 예술의 독자적인 원리에 따라 이해되고 판단되어야 한다는 ‘미의 자율성’에 대한 근본적인 테제가 성립하게 되는 거죠. 이로써 예술에 대한 이해나 평가는 미의 자율성을 전제로 다뤄지게 됩니다. 예술가의 인간성이 어떠한지, 정치적 성향이 어떠한지는 예술의 문제에서 배제되어지며, 오직 그가 펼치는 예술적 행위나 작품 그 자체로 미를 판단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미의 자율성의 영역에 정치의 논리가 개입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문화정책이라는 형태로 공공의 영역이 예술의 영역에 개입할 때가 그렇습니다. 이때 문화정책의 역할은 국민의 세금으로 모은 사회적인 부를 배분하는 겁니다. 국민에게서 나온 세금을 재원으로 하기 때문에 공공의 영역이 예술에 예산을 지원하는 순간, 예술은 공공성이라는 문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로써 예술의 영역에는 유일한 관심이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 외에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하나 더 추가된 셈이지요.

예술과 공공의 영역이 만나게 되면 예술의 논리에 정치의 논리가 스며들게 됩니다. 어떠한 예술 분야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공공성에 좋은 것이지를 두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2011년 기준으로 서울시는 서울시향에 130억 규모의 예산을 지원했습니다. 서울시 산하 6개 문화예술단체의 총예산이 103억 원인데, 서울시향에만 131억을 지원한 겁니다. 물론 세계적인 수준의 클래식 연주를 감상하는 게 공공성에 적합하다고 판단된다면, 이러한 예산 배정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수준 높은 클래식 연주를 갈망한다면, 지금보다 예산배정을 늘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반대로 서울시민들의 삶에 클래식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서울시향에 배정된 예산을 줄여서 다른 예술 분야에 투자할 수 있을 겁니다. 예술의 영역에 공공성이라는 정치의 논리가 스며든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를 갖습니다.

예술은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공공의 영역은 예술가들이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정된 예산 탓에 모든 예술 분야를 ‘동일하게’ 지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술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을 위해선 선택이 필요합니다. 이때 선택의 기준은 어떠한 예술 분야가 우리의 삶에 있어서 더 중요한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공공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우리전통음악을 지원할지, 서양고전음악을 지원할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예술가를 지원할지, 아직 발현되지 않은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젊은 예술가를 지원할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소수의 예술가를 지원할지, 열악한 환경 탓에 창작 활동을 접을 위기에 있는 예술가들을 지원할지에 대해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술의 영역에서 정치적 논의를 할 때 무엇보다 주목해야할 것은 예술가들의 목소리인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예술활동이 왜 중요한지, 사람들이 자신들의 예술작품을 향유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아는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술계에서는 왜 공공의 영역이 자신들의 예술 분야를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전개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열악한 조건에 놓인 일부 예술가들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 경우에는 공공의 영역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주지 않습니다. 이처럼 예술의 영역에서 정치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이유는 예술가를 ‘예술 밖에 모르는 고고한 존재’로 인식하고, 순수예술 분야일수록 정치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를 ‘예술에 대한 모독’으로 여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의 자율성에 대한 과도한 강조가 자율성을 넘어 폐쇄성으로 변하여 예술가 측의 목소리도, 공공의 영역의 경청도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술이 공공의 영역의 지원 대상이 되는 한 정치적 논리의 개입은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정치의 논리가 예술의 논리를 잠식하는 상황에 대해 분개할 것이 아니라 정치의 논리 속에서 예술이 올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공공의 영역에서는 정치의 논리에 의해 예술의 논리가 배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예술에 대한 모든 논의는 다음의 말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예술은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

위클리 이번호에서는 <제도 앞의 열정; 젊은 미술가를 위하여>라는 테마로 제도적 장치를 향한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담아봤습니다. 육영신의 [YOU ALL ARE WORTH IT]은 젊은 미술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술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지를 문제 삼고, 제도와 예술이 어떠한 관계로 만나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리고 오현미의 [예술가들, 노동자이자 노동자가 아닌 자들]은 예술가의 특수한 노동 조건을 지적하며, 창작활동을 위해 예술가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제도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젊은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한 움직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는데요, 그들은 예술인 노조나 예술인 협동조합을 구성하여 정부와 사회를 향해 보다 적극적인 주장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제도 앞에 선 예술가들, 그들의 외침을 응원합니다.

응답 3개

  1. 은선말하길

    예술가들이 지원을 많이 해달라고 노조같은 것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예술가들이 정부나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재정지원이라고 말하기 힘들며 재정 지원이 늘어난다고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하는게 꼭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지요

    예술을 지원하는 것, 예술가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재정지원에 맞춰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협소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 유일환말하길

      넵.
      저 역시 정부나 사회를 향한 예술가들의 요구가 재정지원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또 재정지원 문제가 해결되면 예술가들의 문제가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도 않고요. 예술가들의 활동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적인 차원의 변화가 재정지원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재정지원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겠죠. 어쨌든 우리 세금이 문화정책 예산으로 책정돼서 특정 예술 분야에 지원되고 있는거니까요. 이건 예술 창작자뿐만 아니라 세금을 내는 예술 수용자와도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해요. 가령, 서울시에서 서울시향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데, 클래식 연주가 우리한테 정말 중요한지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와 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예술 분야가 있으면 그 예술을 지원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러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요? 어쩌면 지나친 ‘미의 자율성’의 강조가 예술에 대한 일체의 정치적 논의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이 글에서 이러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어요.

      아무튼 예술가 노조에 관한 구체적인 얘기들은 저도 궁금해요.
      잘 됐네요. 다음번에 기사로 좀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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