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카레닌에 대한 테레자의 사랑

- 유일환(수유너머N 회원)

저는 어려서부터 강아지도 고양이도 안 좋아했습니다. 물론 갓 태어난 새끼들은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귀엽긴 합니다. 그렇지만 쓰다듬어 준다든지 안아준다든지 하는 건 잘 못하겠습니다. 눈으로만 봅니다. 새끼들도 이런데, 커다란 아이들은? 가까이 오면 피합니다. 길가다 마주치면 최대한 티 않나 게 멀리 피해서 갑니다. 물론 어렸을 땐 그들이 조금 무섭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섭지는 않습니다. 무서워서 피한다기보다 그냥 몸이 싫어한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저와 달리, 요즘 강아지나 고양이 기르는 사람들은 우리주변에 참 많습니다. 가끔 보면 정말 한 가족처럼, 어쩔 때는 가족보다 더 끔찍하게 애완동물을 아끼고 보살피는 것 같습니다. 애완동물의 청결은 물론 미용이나 패션까지 꼼꼼히 챙기고, 혹여나 그들이 아파하면 발을 동동 구르며 함께 아파하지요. 이런 모습을 볼 때 마다 저는 개콘의 <불편한 진실>의 한 대사를 떠올리곤 합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옆 사람한텐 놀랄 정도로 무심하면서 왜 애완동물한텐 간도 쓸개도 다 빼주려는 걸까요?”

왜 그들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끔찍이 좋아하는 걸까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그중에서 저를 비교적 잘 납득시켰던 말은 밀란 쿤데라가 그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들려줬던 그것입니다. 이 소설에는 토마시와 테레자라는 연인이 나오는데, 토마시는 타고난 바람둥이이며, 테레자는 오직 토마시만 바라보는 여자입니다.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며 은밀한 관계를 맺는 토마시를 보면서 테레자는 매일 밤 참을 수 없는 질투와 괴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건 그럼에도 그녀가 계속해서 토마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던 그녀에게 어느 날 새로운 친구가 생깁니다. 카레닌이라는 개입니다. 테레자는 카레닌을 정성껏 돌보며, 그에게 마음을 주게 됩니다. 그녀는 케레닌을 좋아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것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이다. 테레자는 카레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조차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 한 쌍을 괴롭히는 질문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가 나를 사랑할까? 나보다 다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가 나를 더 사랑할까? 사랑을 의심하고 저울질하고 탐색하고 검토하는 이런 모든 의문은 사랑을 그 싹부터 파괴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461)

누가 그러더군요. 연인들이 싸우는 이유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더 많이 좋아하는 데서 비롯되는 거라고. “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 많은 노력을 하는데 왜 너는 나만큼 못해주니?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 거니?” 이 흔한 줄다리기가 “내가 더 잘할게.”로 마무리되면 연인의 관계는 지속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관계는 정리되는 거겠죠.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나도 사랑받길 원합니다. 그리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상처받고 질투하고 힘들어 합니다. 결국 우리네 사랑이 힘든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늘 그 혹은 그녀의 반응에 집착하게 합니다.

그러나 강아지나 고양이에 대한 사랑은 남자가 여자에게 혹은 여자가 남자에게 행하는 사랑과 다릅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누가 더 많이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지가 문제되지 않는 사랑입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사랑할 때, 우리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이 지닌 강아지 혹은 고양이의 우주를 수락하고 그것을 압수하거나 자신의 모습대로 바꾸려 들지 않습니다. 그들의 은밀한 성향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는 일도 없습니다. 밀땅이 없는 사랑, 너와 내가 사소한 의심에서 벗어나 온전히 마음을 열어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 밀란 쿤데라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향한 사랑이 그렇다고 말합니다.

제가 강아지를 아끼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소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이 소설 때문입니다.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온전히 마음을 여는 사랑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할 때도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카레닌을 만난 이후 토마시에 대한 테레자의 마음과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던 것처럼요. 정말 현실에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뭐 아예 경험 안 한 거보단 낫지 않을까요.^^;

<위클리 수유너머> 이번호는 고양이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고양이 애호가들과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고양이의 얘기를 담아봤습니다. 모처럼 어깨에 힘 빼고, 소소하고 생글생글한 일상의 이야기를 다뤘으니 재밌게 읽어주시길~. 누구네 고양이가 제일 예쁜지, 누구네 고양이가 제일 말썽꾸러기인지 한번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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