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우리 지금 만나~

- 백납(수유너머R)

위클리 수유너머에 참가하기 시작한지 1년이 다 된 것 같습니다. 독자 분들은 알게 모르게 몇몇 편집진들은 떠나고, 또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가 편집회의에 들어가기 시작하자, 기픈옹달 연구원과 박카스 연구원이 편집회의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합니다. 뭔가 당혹스러운 감정, 저는 느꼈습니다. 이제, 새로운 편집진들이 들어왔습니다. 아마 최근에 들어온 편집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박정수 연구원과 고병권 연구원이 편집진에서 빠진다고 합니다. 이 미묘한 당혹스러움을 저는 알 것도 같습니다.

이제 위클리 수유너머의 편집회의에는 위클리가 만들어질 당시의 편집진들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속된 말로 물갈이가 된 것이지요. 위클리 수유너머의 ‘편집자’라고 했을 때, 그들에게 필요한 역량이란 무엇일지에 대해 이야기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위클리 수유너머에서 편집회의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것은 ‘동시대 반시대’ 기획입니다. 특별히 동시대 반시대 주제와 관련하여 자신의 글을 쓰는 능력 또한 필요하겠습니다만, 기획한 모든 글들을 편집자들이 쓰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템을 떠올리는 능력과 그 글을 써줄 필자를 섭외할 섭외력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런데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었던 기존의 편집자들은 필자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모든 필자와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필자를 구하는 능력, 그것은 기존의 관계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편집자가 할 일은 결국 근본적으로는 편집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이 만남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어느 공동체나 공동의 일들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건 따지고 보면 의미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는 일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물리적 한계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의미 있는 일 들 중, 자신이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혹은 할 수 있는 일들을 선택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의미 있는 일’이라 칭하는 말 속에서 그 공동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척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가 얼마나 품을 들이고 수고를 들이고 있는지 에서 그 척도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위클리 수유너머를 만드는 것에 대해 우리 공동체는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위클리 수유너머를 만드는 것이 편집진 몇몇만의 고군분투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수유너머 모든 회원들과 위클리 수유너머를 읽는 독자들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말 그대로 웹상의 꼬뮨으로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이왕이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편집회의에 참여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좋은 기획을 더 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편집회의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위클리 수유너머를 통해서 자신의 공부를 나누는 만남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위클리 수유너머 편집진들이 그래서 만나러 가기로 했습니다. 일단 회의 장소를 바꿔 보기로 했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편집자에게는 만남과 활동,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수유너머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아닐까요?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응답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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