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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너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밥

- 숨(수유너머R)

속이 허해 뱃속까지 찬바람이 드는 것 같은 겨울날이면 굴국을 끓입니다. 손질해놓은 굴 한 바가지, 크지 않은 무 한 덩이가 필요해요. 굴은 찬물에 여러 번 헹궈내면서 붙어있는 껍데기를 잘 골라냅니다. 손이 빨갛게 시려오지만 대충하다보면 나중에 빠각, 어금니 사이에 껍데기가 끼일지도 몰라요. 이제는 무를 다듬습니다. 껍질을 긁어내고 채를 썹니다. 씹히는 맛이 있는 게 좋으므로 채칼보다는 그냥 칼을 써요. 무를 냄비에 넣고 물을 부어 끓여 무가 반투명해졌다 싶으면 굴을 넣고 다진 마늘을 넣고 소금을 넣어 간을 합니다. 보글보글 한소끔 끓이면 뜨끈한 굴국 완성. 뽀얀 국물이 시원합니다. 밥까지 말아 한 그릇 뚝딱. 불러오는 배만큼 마음도 든든해집니다.

처음 서울에 와서 혼자 자취를 시작했을 때가 12월이었습니다. 아직 부산사투리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제게 서울의 겨울은 참 추웠습니다. 정신없이 1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이 되어서 생각했습니다. ‘아, 너무 춥다. 엄마가 끓여준 뜨끈한 굴국 먹고 싶네’ 해마다 겨울이면 종종 굴국을 끓여먹습니다.

추운 겨울 말고도 증상은 계속 됩니다. 더 이상 흐를 땀이 없을 것 같이 지친 여름날이면 엄마가 해주는 시원한 콩국수가 먹고 싶어집니다. 헤어진 옛애인이 자꾸만 생각나서 우울해지는 봄에는 달래를 담뿍 넣은 집 된장이 떠올랐구요. 공부방에서 아이들과 하루 종일 씨름한 날이면 얼큰하고 시원한 경상도식 소고기국을 먹고 묵은 땀을 빼내야했어요. 지쳐있는 게 내 몸인지 마음인지 헷갈리는 어느 날이면 어김없어요.

고픈 배와 함께 주린 마음까지 채워줄 음식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한번은 있죠. 그럴 땐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담긴 밥이 필요해요. 요즘 어떻게 지내니, 밥은 챙겨 먹고 다니니, 어디 아픈 데는 없니, 힘내렴. 이 모든 말들이 담긴 따뜻한 밥 한 그릇. 나를 위해서 정성스럽게 준비된 맛있는 밥 한 그릇. 열 마디 말보다 더 큰 힘이 담긴 밥 한 그릇.

당신에게 이 밥 한 그릇이 필요한 날에는 어떻게 하나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주시는 엄마는 이제 옆에 없어요. 혼자서 밥을 해먹는 것조차 힘겨운 노동일 때가 있고요. 이미 엄마가 된 사람은 식구들 밥 챙기느라 자기 마음 하나 돌보는 게 어려워요. 그런 분들, 수유너머R에 와보시는 건 어떨까요. 매월 두 번째, 네 번째 목요일 특별한 밥상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정해진 요리사는 없습니다. 누구라도 요리사가 될 수 있고, 누구라도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 속에서는 언제나 엄마가 밥을 해주시죠. 하지만 우리에겐 엄마가 없으므로 누구라도 음식을 할 수 있어요. 또 누구라도 맛있는 밥을 얻어먹을 수 있구요. 내 마음을 나눠주고 싶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나눠받고 싶은 사람들이 특별한 음식으로 만나는 곳, 목요밥상입니다.

138호에서는 목요밥상을 다룹니다. 이제 두 번째 밥상이 차려졌지만 세 번째, 네 번째…백번째…그 후로도 밥상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어요. 서로를 돌보는 일이 즐겁고 행복한 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밥 한 그릇에 같이 웃을 수 있는 그런 밥상으로 말이죠.

*평화활동가 들깨 님이 수유칼럼의 새로운 필진으로 함께 합니다. 전쟁의 상흔이 지워지지 않은 캄보디아에서 반전과 평화의 의미를 묻는 소중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불편함을 배려하는 눈빛에서 평화를 읽어낸 들깨 님의 시선이 목요밥상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건 저뿐일까요^^

응답 3개

  1. 미리퐁말하길

    숨님. 잘 읽었습니다. 목요 밥상이 이렇게 따뜻한 밥상이 되는건 공허함과 한기를 따뜻한 온기로 바꾸는 숨님 같은 분들이 모인곳이라 그런것 같습니다.
    굴국 함 끓여봐야겠네요^^

  2. 말하길

    눈물이 날 뻔~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목요밥상이여 영원하라! 들깨님, 방가방가

  3. […] | 편집실에서 | 너에게 건내는 따뜻한 위로, 밥_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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