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탈영병을 위하여

- 고병권(수유너머R)

1.

“우리는 모든 마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조국을 위해 죽은 자들에게 바친” 우스꽝스러운 기념비들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탈영자들을 위한 기념비들을 세우길 원한다. 탈영자들을 위한 기념비들은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대표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 모두는 전쟁을 저주하면서 그리고 탈영자의 행복을 부러워하면서 죽어갔기 때문이다. 저항은 탈영에서 태어난다.”

1943년 유럽의 어느 반파시스트 파르티잔이 썼다고 하는 탈영자들을 위한 기념비. 어제 동료들과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보고는 이 글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명령을 받았고 그저 작전을 수행할 뿐이라는, 우리는 판단하지 않는다는 특공대장의 말처럼, 정말 경찰특공대는 “유독가스와 화염에 싸인 생지옥”과 같은 현장에서도 작전을 군말없이 수행했습니다. 물론 그 작전이라는 건 우리 모두가 알듯이, 망루에서 농성중인 철거민들을 진압하는 것이었습니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이 자기 처지를 알려보겠다며 꼭 하루 동안 올라간 망루를 말입니다. 아마 망루가 아니었어도, 철거민이 아니었어도, 농성이 아니었어도 그들은 출동했을 겁니다. 그 누군로부턴지는 모르지만(그들은 무지하기보다 무관심합니다), 명령이 하달되는 순간 그들은 출동합니다. 그들은 판단하지 않고 행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어떤 영웅의 칭호를 달든 상관없습니다. 판단없이 행하는 바로 그 순간 그들은 노예이고 기계이고 수단입니다.

그런데 <두 개의 문>은 국가의 이 냉혹한 전투기계 안에, 명령을 따르지 않는 혹은 스스로 판단하려고 하는 ‘인간’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공대의 저 깊은 곳에 망설이고 두려워하고 눈물 흘리는 인간, 즉 명령에 울먹이며 도망치고 싶어하는 ‘탈영병’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곳은 생지옥과 비교될 정도였습니다.” “훈련된 나도 순간순간 공황상태였습니다.” “망루에서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 하고 공포에 떨었어요.” “희생된 철거민 농성자의 목숨도, 우리 동료도 사랑하는 우리 국민입니다.”

그때 국가의 목소리가 검사의 입을 통해 울려퍼집니다. “그 상황에서 이제 위험하니까 퇴각해야겠다는 생각을 증인이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증인은 해서도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는 현장에 투입된 대원에게 이렇게 말한 셈입니다. 너는 현장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고. 이런 다그침 속에 맘 속 깊은 곳에서 잠시 용기를 내던 ‘탈영병’은 다시 훌쩍이며 더 깊은 곳으로 밀려나 억압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검사가 묻습니다. “진압 작전 중에 김남훈 경사가 사망했는데, 그 사망 책임이 본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5초나 됐을까. 그 망설임의 시간 뒤에 대원은 답했습니다. “농성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망설임에서 탈영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항을 보았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비참하게 죽어간 다섯 명의 철거민들만큼 두렵고 또 살고 싶었을, 그리고 그런 사지 속에서 자신들을 몰아놓은 권력자들을 저주하고 싶었을 한 특공대원을 생각해봅니다. 망루가 타오를 때 철거민 중 누군가 큰 소리로 울먹이며 외쳤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망루에 올라갔다 생지옥을 본 특공대원도 가슴 속에서는 큰 소리로 외쳤다고 믿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당시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지만, 특공대원들의 가슴 속에서 절규하며 소리질렀을 그 탈영병의 존재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2.

2주 후 발간될 <위클리 수유너머>(124호)는 <두 개의 문> 특집호로 꾸며집니다. 개별 코너들을 한 주 쉬고, <두 개의 문>에 대해 감상평들로만 지면을 다 채울 생각입니다. 다양한 분들이 감상평을 보내주기로 약속해주셨습니다. 그것은 <두 개의 문>에 대한 생각이기도 하지만, 이제 3년이 지난 용산참사, 여전히 우리 의식 속에서 장례치를 수 없는 그 사건에 대한 생각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지난호 ‘진보와 민주주의’와 관련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진보와 민주주의’ 주제 아래 조희연 선생님의 인터뷰를 싣기로 했는데, 인터뷰 정리가 길어지면서 너무 늦게 게재되었습니다. 늦게나마 조희연 선생님 인터뷰를 읽은 분들은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만,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 식민화’ 문제도 그렇고, 제도와 운동 사이에서 진보진영이 어떤 고민을 해야하는지를 이처럼 포괄적으로, 그리고 진솔하게 다룬 인터뷰는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조희연 선생님의 인터뷰를 지난호에 이어 이번호에도 계속 게재를 합니다.

3.

이번호에는 수유너머의 여름 강좌들을 소개합니다. 여름이니 공부하기 좋지 않느냐거나, 더위보다 무지를 피해야 한다거나, 여름 지나고 나면 이 여름에 공부한 것에 뿌듯한 보람을 느낄 것이라거나 하는 광고성 문구는 적지 않겠습니다. (^^;) 그냥 닥치고 공부입니다. 한 번 맘에 드는 강좌를 찾아보세요.

응답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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