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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도시의 가난함을 넘어서는 싸움

- 숨(수유너머R)

시부모님(저는 혼인신고서에 잉크도 안 마른 새내기 유부라 이 호칭이 어색하네요. 남의 옷을 입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언제 몸에 맞는 옷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매번 남편의 부모님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그냥 이렇게 써야겠지요)은 20 여 년 전 서울 살이를 청산하고 경기도 포천에 들어가 살고 있습니다. 집 앞 뒤로 텃밭을 일구어서 당신들 먹을 채소 정도는 기릅니다. 7,80 고령의 노인들이라 비료 주고, 풀 베고 장정이 힘써야 하는 일은 모두 남편 차지지요. 그래서 남편이 2,3주마다 한 번꼴로 포천에 방문을 해야 합니다. 저도 자주는 아니고 가끔 가는데 시어머님이 “공기 좋은 데 와서 하루 잘 쉬다 가는 셈 치라”고 하시면 겉으로는 “예”해도 속으로는 난감합니다. 말은 쉬운데 어디 그렇게 되나요. 밥도 어머님이 다 하시고 제가 하는 거라곤 마당 잡풀이나 한 시간 뽑는 일이 다지만 잘 쉰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어색하고 어려워 여전히 몸에 맞지 않은 옷이고 가끔 입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큽니다.

그래도 갈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습니다. 처음의 어색함과 긴장이 조금씩 가시니 여지가 생깁니다. 어머님이 밥을 하면 저는 설거지를 합니다. 당신이 원체 살림과 거리가 먼 여성이라 제 살림 솜씨를 잔소리 하지 않습니다. 연세 많은 어른 두 분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돌아가신 친할머니 생각도 납니다.

세 번째 방문에 두 노인이 살고 있는 동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은 높고 산은 둥그렇게 마을을 감싸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천이 마을 앞에 흐릅니다. 집 앞 텃밭 보라색 가지며 동그마난 호박이며, 탐스러운 열매들을 보면 “아고, 이쁘다” 소리가 절로 납니다. 붉은 맨드라미와 코스모스 꽃길은 소박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흥겹게 해줍니다.

그 날 해가 질 무렵이었습니다. 마당에 난 잡풀을 뽑고 돌아서는데 풀밭 한쪽에 앉아있는 검은제비나비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한 쪽 날개가 어디에 뜯긴 것처럼 찢어져 있었어요. 죽은 건가 싶어서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보니 꿈틀 아주 작게 움직였습니다. 그 후로도 한참을 바라보는데 나비가 꼼짝을 않습니다. 아버님께 말씀드리니 “죽을 때가 다 되어서 그런 게지” 합니다. 저는 뭔가 마음이 울컥한데 정작 80 노인은 아무렇지 않게 말씀합니다. 해가 기우는 동안 나비의 남은 시간이 적요롭게 저물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나비는 죽겠지요. 나비의 죽음은 외로워보이지만 뉴스에 보도되는 인간의 고독사처럼 가난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태어나고 날갯짓하고 그 안에서 한 생을 잘 누리다 그냥 가는 것. 죽음의 순간에도 다른 것들이 열매 맺고 생을 누리는 속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죽음도 삶도 생명의 순환 안에서 같이 있다는 것. 나비의 죽음이 가난하지 않은 까닭이겠지요. 문득 두 노인네가 무성한 나무와 꽃과 열매 사이에 여생을 보내는 모습이 다행스럽고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저기 밀양에 계신 촌로들의 평화는 무참히 깨지고 있습니다. 당신들을 푸르게 키워 열매 맺게 한 고향땅이 더 이상 다른 생명을 품지 못하게 생기자 밀양의 어르신들은 목숨을 내놓고 저항하고 있습니다. 노후를 안녕히 보내고자 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당신들 다음에 올 생명을 위해 노년의 평화는 팽개쳤습니다. 소중한 고향땅을 살아있는 채로 후손들에게 잘 넘겨줘야하는데, 여기서 끊기면 평생을 일궈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니까요.

미래 세대를 위한 생명의 싸움은 모욕당하기 일쑵니다. 경찰은 사복을 입고 버젓이 무단으로 채증을 하면서 농성자들을 비웃습니다.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상부에서 내려진 명령에 잘못된 것은 없는지,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잃어버린 공권력은 비열한 노예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일부 여론은 어르신들의 싸움을 보상금을 더 받으려는 이기주의로 몰아갑니다. 천박한 자본의 목소리입니다.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땅과 생명, 삶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말은 자본의 목소리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돈 말고 목숨 걸어야할 것이 없으니까요.

대한민국 정부는 ‘국익을 위해’ 공사를 강행합니다. 정부가 말하는 ‘국익’ 뒤에 숨겨진 진짜 이유는 노후화된 원전의 수명연장과 불량 부품이 적발된 신고리 원전3호기의 완성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아직도 수습되지 않고 있습니다. 수명을 넘긴 원전은 정지시키고, 불량부품은 정품으로 교체해야하며 안전검증을 거쳐야하는 게 당연한 진실이지요. 밀양 주민들은 거짓 ‘국익’에 의문을 던지고 진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모든 억지와 모욕에 맞서 지금 밀양 사람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산 중턱에서 노숙을 하고, 4남매를 둔 부부와 한 성직자는 서울에서 단식 농성을 합니다.

166호는 지난 호에 이어 밀양의 싸움을 다룹니다. 죽음의 에너지에 대항하는 생명의 힘으로, 거짓에 균열을 내는 진실로, 침묵과 외면에 호소하는 눈물로, 밀양의 싸움은 송전탑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밀양은 소비하기만 하는 도시의, 우리의 가난함을 넘어서는 싸움을 하는 중입니다.

 

*개편과정에서 실수가 있어 바로 잡습니다. <이솔의 공공공> 코너는 마무리 하지 않고 계속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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