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노동과 공동체

- 박정수(수유너머R)

좀 늦었지만, ‘활보일기’에 대한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3주 전에 위클리수유너머 편집진과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몇 분이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활보일기’의 일부 내용에 대해 전장연 활동가 사이에서 심각한 문제제기가 있어서, 터놓고 얘기를 나누고자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103호 편집자의 말에서 썼듯이 “엄청난 논란과 토론을 불러일으킬” 거라 예상하고 기대했지만, 솔직히 긴장된 자리였습니다. 야단맞는 자리 같아서. 장애해방 활동가들이 제기한 문제는 첫째, 활보노동의 성격상 장애인 이용자의 일상을 빼놓고 ‘활보일기’를 쓸수는 없지만 장애인 관찰기록이 될 우려가 있으며 실제로 일부내용에서 장애인의 사생활이 ‘관찰’되는 느낌을 가졌다. 둘째, 장애인의 성생활은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문제임이 틀림없으나 ‘흥미거리’로만 다뤄질 위험이 다분하며, 실제로 ‘활보일기’ 2,4,6호의 내용은 남성장애인의 성욕과 성생활에 대한 가감없는 묘사가 ‘성찰’을 일으키기기보다는 관음증적 흥미만 일으킬 우려가 있으며 장애남성의 성생활에 대한 묘사 속에서 제 3의 여성이 자신의 신원과 사생활을 ‘아우팅’당하고 있다. 가명을 쓰고 당사자 동의를 받았다는 것이 자칫, 마땅히 가져야 할 긴장과 조심을 약화시키지는 않는지, 장애인 일반에 대한 편견으로 확장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셋째, ‘일기’라는 고백적 서사가 비록 장애인에 대한 일상화된 차별과 편견을 잘 표현할 형식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 머물 우려가 있다. 이상하게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꾸 장애인 전체로 확장되는 특성이 있어서 좀더 보편적이고 진지한 성찰이 담긴 글이 되기를 바란다. 대강 이런 문제제기였습니다.

간담회를 통해 많은 걸 배웠습니다. 생각지도 못했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던 소수자의 감각이 어떤 것인지, 막연한 연대의식만으로는 결코 그걸 예단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걸. 관찰되는 대상의 위치에 놓이는 게 어떤 것인지, 악의는 없을 지라도 타인에 의해 아예 고려되지도 못하는 존재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한 개인의 사생활이 그가 속한 정체성 집단 전체의 특성으로 일반화되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전에도 몰랐고 앞으로도 모를 수 있는 소수자의 감각을 느끼게 된 배움의 장이었습니다. 항의하고 변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감각을 소통시킨 간담회였습니다. 간담회 말미에 한 장애인 활동가 분이 “이 시간이 뭔지 모르게 참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말은 듣지도 않고 권위와 변명으로 일관하는 자들에게만 항의해온 경험 때문이었을까요?

그렇다고 거리와 긴장이 해소된 건 아닙니다. 장애인 이용자는 활보와 장애인이 한몸이기를 원하지만 활보노동자는 노동과 봉사의 구별, 노동자와 이용자의 합리적 거리를 원합니다. 활보노동자와 장애인이 한몸, 즉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선, 혹은 활보의 노동자성과 장애인의 소수자성이 행복한 연대를 이루기 위해선, 넘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활보일기’는 장애인의 소수성을 놓치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활보의 노동자성에 대해, 활동보조 노동의 실상과 의미에 초점을 맞출 겁니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의 소수성과 만나고 헤어지고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이 좌충우돌 계속될 것입니다.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로 치부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장애인의 소수성이 진정으로 해방적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활보노동자의 노동현실과 대면해야 함을 끊임없이 지적할 것입니다. 때론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에서 살짝 벗어나는 표현도 나올지 모르지만 그건 ‘말’의 장벽에 갇힌, 정치적으로 올바른 ‘실천’을 트기 위해서입니다.

전장연이 제기한 장애인 이용자의 성생활에 대한 부분은 ‘권리’ 문제를 넘어 ‘윤리’ 문제로서 긴급한 조처를 취할 부분이 있습니다. 장애인의 소수적 삶 중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연재 초반 흥미 유발을 위해 ‘시리즈’ 형식으로 ‘동원’된 측면, 깊이 생각하고 반성할 여지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장애인 이용자의 연애와 성생활에 대한 기술 과정에서 동의 없이 여성 파트너의 신원과 사생활이 주변에 아우팅된 점, 뼈저리게 반성합니다. 추후 대책은 논외로 하더라도, 문제가 되는 이 부분은 연재에서 삭제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번호 기획주제는 ‘해방촌 빈가게’입니다. 수유너머가 남산에 있을 때 알게 된 해방촌 빈집 친구들이 ‘빈고’라는 대안금융의 도움을 받아 해방촌에 카페를 열었습니다. 빈가게는 빈집의 젊은 친구들이 적은 돈이라도 벌어 적게 쓰고 살 수 있게 벌린 카페 사업입니다. 카페 운영금과 일하는 친구들 임금을 마련하려면 한달에 6백만원의 매출이 필요한 사업이죠.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빈가게는 야심차게 해방촌 마을공동체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공통공간이기를 꿈꾸며 운영방식도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카페 일이 또 다른 임금 ‘노동’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빈가게 친구들은 해방촌 마을 주민들과 긴밀한 공동체 활동을 벌릴 계획입니다. 이 공동체 사업이 잘 안 되면 빈가게는 여느 상업적 카페와 다를 바 없는 노동공간이 될 것이고, 그렇다고 공동체 이념을 앞세우면 빈가게 친구들은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느라 지치고, 마을 주민들은 후진 서비스에 얼토당토않은 당위와 책임만 부여한다고 짜증낼 겁니다. 장애인이용자가 꿈꾸는 공동체(한몸)와 활보의 노동권 사이의 긴장이 해방촌 빈가게에도 있습니다. 이 긴장은 생산적인 긴장입니다. 긴장이 괴롭다고 어느 한쪽의 관점으로 다른 쪽을 해소해버리면 새로운 삶의 맹아도 해소되어 버립니다. 노동과 공동체, 참, 절실하고도 긴장된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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