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지지리 궁상

- 백납(수유너머R)

[88만원 세대]라는 저작 이후로 ‘세대론’이 많이 언급되었던 것 같습니다. 책이 출간될 당시 저 또한 대학생이었는데, 벌써 나이가 서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좋은 직장에 예쁜 마누라와 금쪽같은 애새끼 교육을 걱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뭔가 하고 있기는 한데, 이게 도대체 뭔가 나의 미래에 이어져 갈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고. 그런데 또 그렇다고 딱히 할 것 혹은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그런 이상한 기분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새끼와 마누라는 없어도, 나이가 이정도 찼으면 결혼도 생각해 보고, 연애도 하고, 섹스도 합니다.

둘 중 하나가 홀로 자취라도 하면, 그것은 좋은 조건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둘 모두가 사적공간을 갖고 있지 못한 이들이라면 어떨까요? 공동주거를 하거나, 부모와 함께 살거나, 그 어떤 경우라도 상관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둘의 공간이 없다는 것, 그 둘이 마음 놓고 쪽쪽거릴 공간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모텔비가 아까워, 가끔은 비어 있을 수도 있을 친구의 자취방을 두리번거리는가 하면, 그저 저렴한 모텔을 골라가기 위해 시장조사도 해봅니다. 처음 들어가는 모텔 앞에서는, 그 모텔에 전화를 걸어 숙박비가 얼마인지 꼭 물어보고 들어갑니다. 들어가서 물어보지 무슨 전화질이냐 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모텔 문 앞을 드나들 때 느껴지는 찰나의 부끄러움과 긴장을 경험해 보신 분들이라면, 이 행동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뭐 어쨌거나, 가끔 주어지는 그 공간과 그 시간이 너무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집도 절도 없는 저에게 비명을 지르며 광란의 섹스를 할 그 공간이 너무 간절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새로 코너를 쓸 친구들도 저와 비슷한 나이를, 아마도 저보다는 조금 더 건전한(?) 고민들을 하면서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다리 유령은 여친집에서 잠을 자지만, 여친과 함께 잠을 자지는 않습니다. 가족들이 집을 나갔을 때에야 여친이 살포시 오다리 유령의 이불 속으로 들어옵니다. 가족들에게 들킬까봐 밤에 마음 놓고 쪽쪽거리지도 못한답니다. 뿐만 아니라, 학자금도 갚아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합니다. 맨발의 청춘이라는데 맨발은커녕 마이너스 상태입니다. 아 캐안습.

저는 오다리 유령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아마, 오다리 유령도, 저를 상당히 부끄러워할 것 같습니다. 친구라고 명명하기에도 민망한 저 궁상들이 각자의 다른 생각들을 써보겠다고 합니다. 주제를 벌써부터 12가지로 정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코너 제목이 ‘열두가지 궁상이몽’입니다. 20대도 아니고, 청춘도 아닙니다. 뭐라 말하기 어정쩡하게 걸쳐있는 그냥 궁상들입니다. 아 그냥 궁상. 뭔가 그들을 특정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만, 까고 들어가 보면, 저들만한 궁상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숨긴 채,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궁상들의 궁시렁을 저는 꽤나 동질감을 느끼며 읽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곤, 오다리 유령이 고개 숙여 웃었던 그 웃음을, 우리 궁상들을 바라보며 웃게 될 것 같습니다.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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