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젊은 사람

- 백납(수유너머R)

젊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한전 본사 앞에서 밀양 송전탑 건립을 반대하는 릴레이 단식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침 제가 그를 만난 날은 그가 단식을 시작한 첫날이었습니다. 마을의 어르신 두 분과 함께 3인 1조로 돌아가면서 릴레이 단식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저와 같이 간 일행들에게, 단식을 하는데도 들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먹을 걸 많이 가져 온다며, 먹을거리를 권했습니다. 단식하는데 먹을 것들이 놓여 있는 걸 누가 보면 큰일 날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놀라웠습니다. 윤리적 가치판단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송전탑이 가장 짧은 거리를 지나는 산의 주인은 송전탑 건립이 결정되던 당시 시장 조카였다고 했습니다. 행정구역상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송전탑이 지나는 거리를 짧게 하면 다른 행정구역인 경상북도도 지나야 했습니다. 허가를 한 번 더 받아야 하는 행정절차를 피하기 위해 밀양 송전탑은 그 사람이 사는 마을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언제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협상 대표자를 임명하는 서명지에 서명을 해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을 바깥에서, 마을 사람들이 공사 진행에 합의를 해줬다는 소문이 들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확인해보니 협상대표자 임명 내용의 서명지가, 서명에 관한 내용이 담긴 첫 페이지만 바뀐 상태로, 마을 사람들이 공사에 합의한다는 서명지로 바뀌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송전탑에 관한 전문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송전탑은 구시대적 방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선진국은 송전탑이 없다고 했습니다. 한전은 비용 때문에 송전탑을 고집한다고 했습니다. 한전은 송전탑을 이미 세운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때문에 밀양에도 송전탑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이미 송전탑이 세워진 충남과 당진의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자신들도 송전탑이 이렇게 안 좋은 줄 모르고 세우게 했다며 밀양은 꼭 어떻게든 막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송전탑은 북한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합니다. 하지만 이제 대북정책은 변화하였고, 북한에 전력을 공급한다는 명분은 사라졌습니다. 대신 수도권 지역의 전력공급을 위한다는 명분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대북정책이 변화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밀양에는 송전탑이 세워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송전탑은 핵이라는 고전력 발생 장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은 분명 인간의 일입니다. 우리가 핵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전력을 크게 생산하는 기술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둘러싼 인간의 기득권과 약자를 집요하게 노리는 그 탐욕을 반대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는 핵을 생각하지 않고도 반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젊은 사람은,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전부다 도시로 나가서 어르신들만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도 농사일이 많이 바쁘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마을에서 두 번째로 젊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어르신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습니다. 올해로 나이가 54세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젊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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