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못난 것들

-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1. 분홍 공주 구타

만약 공부방을 하다 죽는다면 십중팔구는 울화통이 터져 죽거나 어처구니가 없어 죽을 경우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애들하고 있다 보면 겨우 그 따위 일로 이렇게 난리를 부리나 싶은 것투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밑바닥을 매일 봐야 하는 공부방 교사의 삶은 그런 의미에서 힘겹다.
토요일 오후 공부방에서 전화가 왔다. 아니나 다를까 전혀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말하자면 놀이터에서 남녀 아이들 예닐곱 명이 분홍공주를 둘러싸고 집단 구타를 했다는 것이다. 남자 아이 셋은 평소에도 분홍공주를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거리던 놈들이고, 분홍공주를 때리라고 부추겼다고 하는 초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1학년 여자 아이들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정말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아니 이야기를 듣는 내내 기분이 너무 언짢고 배신감에 몸서리가 쳐져 듣는 둥 마는 둥 시늉뿐이었다. 벌써 열불이 올라 일요일에 당장 아이들을 불러들이자고 했는데, 오늘 공부방을 지키고 있던 다른 교사가 월요일에 아이들 모두를 모아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자고해서 겨우 그러마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더 듣고 싶지도 않았다.
분홍 공주는 올해 초등2학년에 올라가는 여자 아이다. 2학년답지 않게 조금 덩치가 있고, 부모님이 직접 아이가 말이 너무 많다고 하소연을 할 만큼 산만한 특성이 있었다. 처음 아이를 보던 날 스스로 학교에서 왕따 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아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분홍 공주란 이름에 어울리는 하얗고 복스런 귀염성 있는 얼굴을 지니고 있는 아이는 매우 스스럼이 없었다. 누구는 그런 스스럼없는 태도를 ‘경계가 없다’고 그 의미를 해석해준 적도 있었다. 자기와 남들 사이의 경계를 잘 모르는 아이, 그래서 자기를 지킬 줄 모르거나, 지킬 자신이 없는 아이들은 아무에게나 그렇게 스스로를 내어놓는단 말이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러고보면 아이는 초면답지 않게 좋지도 않은 자기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그러고 공부방을 온 아이는 곧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 매사가 많이 서툴고 남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말은 많지만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살피지 못했고, 그저 자기 이야기를 물새는 수도꼭지처럼 흘려대니 곧 지겹다는 소리를 곧잘 듣게 되었다. 또 겨울이라 그런지 늘 누런 코를 달고 사는 것이다. 어지간한 아이들은 흘리지 않는 누런 코를 손가락 한 마디 정도는 될듯하게 달고 있다. 모두가 기염을 하며 휴지로 닦으라고 난리를 부리면 잘 닦지도 않는 것은 물론이요, 무에가 즐겁다고 그 코를 손에 묻혀 입에 넣거나 다른 사람들 옷이나 몸에 묻히려 드니 난리가 났다. 거기에 한 번씩 웃옷을 올려 내복을 보여주거나 스스럼없이 바지 속에 손을 넣고 항문이 가렵다고 긁어대니 정말 “오 마이 갓!”이다.
교사들마저 질겁하며 그만하라고 부탁을 해도 쉽게 고치려 들지 않고 금세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겨 딴 소리를 시작한다. 집에서도 이런저런 일로 꾸중을 많이 듣는다는 말을 익히 들었는데, 과연 그런지 조금만 무슨 소리를 하면 애써 다른 척을 하지만 슬쩍 낙심하고 우울해하는 표정이 어린 아이 얼굴에서도 여실히 읽을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마치 탐닉하는 것처럼 그런 행동을 고치질 못해했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마치 남이 자기를 혼내고 싫어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이라도 하려는 듯이 열심히 혐오스런 일을 하고 있는 아이가 참으로 난감하였다. 고민 끝에 보통 어린 아이들은 부모가 방과후를 결정하기 때문에 자기는 그냥 부모가 시키는 대로 왔을 뿐이고, 따라서 파랑새에 대해 보통 자기는 아무 책일질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흔히 잘 군다는 생각이 미쳐 냉정하지만 아이와 담판을 짓게 되었다. 이런 식이면 곤란하니 공부방을 그만 다녀주든지 아니면 그만하라고 할 때 최소한 그만하고 좀 조심스럽게 생활해주던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 달라고 말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은 아이가 꽤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집에 있자니 심심하고 공부방에 남아서 말을 듣자니 힘도 들고 다른 아이들이 자기를 괴롭히는 일을 쉽게 그만두지는 않을 것 같은데 왜 자기만 말을 들어야 되는데 한참을 중얼중얼을 하면서 고민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고민을 해도 너무 진짜로 고민을 한다는 것이었다. 분홍 공주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본떠 얼굴을 찌푸려가며 고개를 손아귀위에 올려놓고 어쩌지를 연발하였다. 그러기를 10여분이 훨씬 지나 고민고민 끝에 가까스로 교사가 그만이라고 하면 그만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공부방에 남겠다는 어려운 결정이 내려졌다.
나는 의기양양해서 식당에서 분홍 공주 앞에 당당히 앉았다. 분홍 공주는 반찬을 밥에 죄 비비고 툭하면 손으로 반찬을 짚어먹고 무엇보다 입가에 온통 양념을 발라대며 밥을 먹는 통에 식당에서도 기피대상 1호였다. 그날 나는 우리 사이의 뚜렷한 계약이 성립한 것을 보여줄 심사로 막 야만적인 식사를 하는 분홍 공주에게 “손으로 하지 말고 젓가락을 쓰세요”하고 야멸차게 그녀를 제지함으로써 드디어 분홍 공주의 훈육을 시작하게 된 나의 남다른 능력을 마구 자랑하기에 이른 것이다.
시작은 거창한 듯하였지만 최근까지 분홍 공주의 변화는 미비하였다. 이제는 윗도리를 올려 내복에 가로 덮힌 배를 보여주는 일은 드물어졌지만, 대신 쫄쫄이 바지를 한껏 치켜 올려 그녀의 푸짐한 하체 라인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과 가렵다는 명분으로 똥꼬를 손으로 쑤셔대는 일만은 여전히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물론 콧물과 코닦지 문제는 만성적으로 남아 있다. 무언가 그런 어색하고 살짝 혐오스럽기까지 한 야릇한 분위기를 아이들이나 심지어 어른들도 견디기 어려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빌미만 있으면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것으로 제 위안을 삼는 공부방 꼬맹이 사냥꾼의 눈에 그것이 예사롭지 않게 보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자기한테 코를 묻히려 했다는 것을 명분으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가볍게는 분홍 공주를 보면 때릴 듯 위협을 가하고 그러면 분홍 공주가 자동으로 “꺄악!”하고 엄청 큰 비명을 질러 교사들에게 한 소리를 듣도록 하였다. 물론 이를 넘어서 직접 때리거나 욕을 하고, 심지어 분홍 공주가 피하다가 그랬는지 찢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옷이 조금 찢겨져 온 일도 있었다.
꾸짖어도 보고 달래도 보고 별 수를 다 써도 참 쉽지 않다. 하다하다 안돼서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에게 “네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쳐볼 테니 제발 조금만 시간을 다오, 그런데 내가 아이들을 많이 돌봐 바서 아는데 분홍 공주가 흘리는 콧물의 색깔하고 양을 봐서는 아무래도 2년은 걸릴 것 같아. 너한테 너무 미안하지만 어떡하든 2년 안에 열심히 가르쳐 볼테니 제발 그 때까지 조금만 참고 봐줘라 응? 제발 때리거나 괴롭히지 않으면 안되겠니?”하고 통사정에 사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럴 때는 조금 수굿하다가도 금방 또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분홍 공주는 도망가며 또 비명을 질러대니 정신이 돌 지경이다.
하루는 너무 성질이 나서 “파랑새에서 아이들이 코를 흘릴 자유도 없으면 파랑새는 있을 필요가 없다. 분홍 공주는 얼마든지 코를 흘리고 먹을 자유가 있다. 너네 코도 아니고 자기 코를 자기가 먹겠다는데 아무도 뭐라고 해서는 안된다. 만약 이것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 힘들면 그것을 보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너무 가여우니 차라리 안 볼 수 있게 집으로 피하는 것도 말리지 않겠다. 그러니 월요일 각 모둠회의에서 이에 대해 의논하고 의견을 정해오라.”고 ‘코딱지 선언’을 해버렸다. 말을 하며 치미는 울화 때문에 혹 더 큰일을 저지를까 싶어서 “더욱이 분홍 공주의 코딱지는 사과젤리 맛이 나니 먹을 만할지도 모른다‘고 괜한 소리를 한 마디 덧붙여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하다가 아이들이 거짓말 말라며 난장판을 부리는 통에 앞에 잘한 말까지 다 실없는 소리로 만들고 말았다.
그 날도 오늘 분홍 공주를 때린 세 명의 악동을 정리시키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강경하기도 하고 지들도 어처구니가 없어 “그래 콧물 흘려라, 흘려!”하고 6학년 녀석은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자신의 체념을 보여주었었다. 3학년 사냥꾼 녀석은 이에 동조를 하는 척하며 “그대신 너 인제 내 앞에서 코 안 흘리면 죽는다”하고 위협조의 말을 하는 것을 좀 더 유심히 살폈어야 했다. 물론 그 뒤에도 다시 불러 2년간의 양해를 구했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제발 이 무능한 공부방 교사를 어여삐 여겨서 괴롭히고 때리지만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다신 한 번 했었다. 그런데 그 때 그렇게 철썩 같이 알았다고 해놓고서 오늘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다.
이것도 지겹기가 그지 얺는데 이 악동들에게 분홍 공주를 때리라고 뒤에서 부추긴 여자 아이들 이야기가지 듣고 보니 아니할 말로 역겹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물론 아이들을 만나 다시 이야기를 들어보아야겠지만 이런 짓거리를 참아내기가 정말 어렵다.
특히 그 두 여자 아이는 맞는 일이라면 질색 팔색을 해야 할 아이들이다. 초등1학년 여자 아이는 분홍 공주 오기 직전 3학년 사냥꾼이 지독히 미워하던 대상자였다. 그 미움과 괴롭힘을 막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분홍 공주의 활약 덕분이었던 것이다. 저 역시 분홍 공주를 나무랄 처지도 전혀 아님도 물론이다. 지는 대소변 가리기에 문제가 있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대변 묻은 휴지가 절대 발견되지 말아야할 장소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아이의 엄마로부터 집에서 같은 일로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의 일이었다. 제가 하는 그 모든 것을 그저 제 처지가 오죽하면 하고 모두가 인내하고 어떡하든 사랑하고 감싸주려 했었는데, 조금 살만하다고 저보다 못난 사람을 찾고 분홍 공주를 제 대신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생각을 하니 치가 떨릴 지경이다.
또 중학교 1학년 여자 아이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심하게 맞으며 자란 경험이 있는 이이는 그래서 그런지 절대 쉽지 않았다. 그것을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 공부방에서는 부단히 애를 써왔다. 툭하면 사람들이 저만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불안해 하고 울고 불고 하면서 있는 대로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다. 늘 편을 가르고 남을 함께 뭐라 하는 아이들 속에 들어가 있어야 마음을 놓이는 안타깝지만 나쁜 습관이 들어 교사들을 참 힘들게 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 나아지려니 싶었고, 여태 어린 아이들한테는 그런 적이 별로 없어서 설마 분홍 공주를 제 분풀이 상대로 삼으려니 하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2. 폭력이란 무엇인가?

화가 몸속에 차오르는 느낌이 생생하다. 눈앞에서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는 분홍 공주를 둘러싸고 비웃고 때리라고 부추기는 아이들 얼굴이 선명히 떠오르고, 때리는 아이들의 힘을 알고 있기에 얼마나 아프게 때렸을까를 생각하는 다시금 화가 난다. 공주가 얼마나 아프고 수치스럽고 외로웠을까를 생각하니 파랑새고 뭐고 다 요절을 내고 말겠다는 다짐이 절로 된다.
다행히 토요일 오후여서 겨우 진정이 되었다. 눈앞에 있지 않아서 겨우 마음정리를 한다.

1) 못난 것들! 왜 저도 당했으면서 저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걸까?

내 괴로움은 이거다. 아이들이 당했다고 생각했기에 그래서 외롭고 힘들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탈출과 피난을 돕듯이 공부방을 해온 것이다. 그런데 저 살만하니 다른 아이를 괴롭히고 그런다면 도대체 내가 공부방에 헌신할 까닭이 무엇인지 갑자기 분노가 치민다.
제가 맞을 때도 어떡하든 말려주려 애를 쓰고 아무리 힘들게 굴어도 행여 집에 가서 맞게 될까봐 참고 또 참아주었던 우리가 아닌가? 그런 우리가 뭐 거창한 것도 아니고 다른 아이들 때리고 욕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한 것인데, 그게 그리 어렵단 말인가? 게다가 분홍 공주를 때린 아이들 중 그 형제는 저희들 잘못 때문에 부모님과 아무래도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는 말만 하면 눈물부터 글썽거리고 본다. 그러면서 ‘공부방에서 저희들을 죽이려고 자기들 아버지에게 잘못을 일러 바친다’는 것이다. 그렇게 저희 맞는 것이 그리 두렵고 안타까운 아이들이 매일 저보다 어린 아이들은 그리 쉽게 때릴 수 있다는 사실이 기도 안찬다. “잘못했으니까 때린다”란 것이 이들 형제의 슬로건이었다. 거듭된 부탁에 최근에는 동생 아이는 “때리지는 않았어요”로 또 형 아이는 “참고 참고 또 참았는데 못 참겠는 걸 어떡해요?”로 바뀐 게 조금 나아진 점이다. 그래서 화가 나면 샌드백을 치고 때리라고 했더니 어찌나 세게 가격을 해대는지 샌드백 치는 퍽퍽 소리만 들어도 내 혈압은 팍팍 오르는 것 같다. 그렇게 분홍 공주도 때렸을 것이다.

2) 그런데 정말 왜 그딴 짓을 하는 것일까?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남이야 코를 흘리든 피를 흘리든 못 본 척하는 게 그리 어려운가 말이다. 물론 분홍 공주의 누런 콧물을 보는 게 즐겁지는 않다. 분홍 공주 다량의 콧물를 닦으려면 휴지가 제법 들 정도다. 교사가 성화를 부려서 겨우 코를 닦고 나면 어처구니없이 교사에게 갖다 치우라고 하는 아이니 이 분은 정말 아기 공주님이신 것이다. 그러니 애들 보기에도 좀 그렇다는 것은 알겠다.
갑자기 생각은 막 꼬리를 물고 달려가서 원시 시대에 이런 일들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하는 데까지 이른다. 분홍 공주처럼 집단의 신호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개체는 스스로도 위험에 빠지고 나아가 집단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집단은 강력한 통제 수단을 거쳐 그 개체가 집단의 신호와 바라는 바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훈련의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그렇게 발달된 것이 눈치를 주고, 눈치를 보는 행위인 것이다.
더욱이 분홍 공주처럼 다른 집단원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폭력적 자극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개체는 생물체들이 살아가는 방식에서도 일정하게 어긋나는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과장해서 말해볼 수 있다. 대를 이어 자기 종을 이어가야하는 모든 생물체들은 자기 종에게 가장 돋보일 수 있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성장시켜나간다. 그래야만 교배과정에서 적절한 매력을 내보여 합방에 들어갈 수 있고 종의 연속성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스스로가 그 과정에 어울리지 않는 개체라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면,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거의 존재 의미가 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셈이 된다. 따라서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분홍 공주는 모든 생물 종들이 걸어온 그 큰 길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셈이다.
그거야 뭐 사실 가다보면 언제나 넋 빠진 개체들이 하나, 둘씩은 있을 수 있고, 또 이들이 인류 종을 새롭고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특질들을 지니고 있느라 그리 된 것일 수도 있으니 이해를 하자면 굳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맞은 아이가 죽어라 다른 아이를 때리고 그런 일에 선동자가 되어 가담을 한다는 것은 이해를 넘어서 소화를 하기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이런 사건에서 훈계를 하면 저만 미워한다고 오히려 난리를 부리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제가 때려놓고 그래서 그 꾸지람을 하는 것인데 저만 뭐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저도 좀 심하다 싶으면 다른 아이들도 잘못했는데 왜 저만 심하게 뭐라 하냐고 억울하다는 항변을 하든가, 아니면 선생님은 피해자 아이만 예뻐한다며 교사의 불공평한 처지를 물고 늘어져 꾸지람을 무력화시키려 든다.
그러면 아이들이 연루되어 있다고 말하는 관련자를 일체 소환하여 사건의 진위를 전방위적으로 캐어 들어가는 청문회가 열리게 된다. 더불어 특정 아이만 예뻐한다는 불만에 대해서는 금방 시정하겠다고 인정을 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인 교사에게 충분히 개연성이 있을 수 있으며, 그 지엽적인 일로 전체 사건의 본질을 캐는데 혼란을 초래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신이 제기하는 문제를 교사가 순순히 시인하고 시정을 약속해야만 아이들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수 있는 심리적 기반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때 문제는 아이들이 “때려서 미안해” 정도로 자신의 행위를 축소하고 그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의미를 충분히 음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긴 가해자의 입장에서 뭐가 아쉽다고 때린 아이 마음을 헤아리고 또 헤아리겠는가? 그리고 때린 놈이 맞은 사람 마음을 이해할 수나 있는 것인지 사실 장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분홍 공주를 때린 이 아이들은 ‘제가 맞는 아이들’이지 않는가 말이다. 저도 맞는 것이 두렵고 또 두려워 집 이야기만 나오면 정말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들이다. 그래놓고 어떻게 남을 때릴 마음을 낸다는 말인가?
자기도 당했으니까 남도 당해야 한다? 남의 나라에 가면 욕부터 배운다는 것처럼 부지불식간에 부정적인 것부터 보고 배운다? 더욱이 맞고 때리는 것을 정의의 완성태로 여기는 가정에서 자라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니면 인간에게 폭력은 본질적인 것이라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인간들도 이 동물적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내 눈앞에 이 녀석들이 있다면 당장 저쪽으로 내던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절대 때리고 욕하지 말라는 것은 이들의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주문과 같다. 그러니 아이들은 묻고 또 묻는다. “나는 가만히 있고 쟤가 다 잘못해도 때리지 말라고요? 그리고 쟤는 막 나 때리고 괴롭히고 그래도 나만 때리지 말라고요? 왜요?”

3) 그래! 나는 왜 쬐끄만 너희들에게만 이리 엄격하고 모진 것일까?

“정 참기 힘들면 교사에게 일러도 돼. 그러면 교사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와줄게. 그러라고 교사가 있는 것이니 절대 네가 직접 때리지 말고 제발 교사에게 일러줘, 부탁이야”하는게 우리 응대다. 그렇게 사법체계는 만들어졌을 것이다. 푸코는 이렇게 폭력과 직접 응징을 양도받는 과정에서 국가와 사회가 얼마나 막강한 힘을 모으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였다.
교사들은 때리는 아이들을 문제시하며 힘과 권위를 긁어모으고 있다. 아이들은 그냥 한, 두어 대 적당히 잘못에 비추어 맞을 만큼 때리고 말 텐데, 절대 뭐 죽이거나 하는 일 없이 적당히 욕이나 좀 퍼부어주고 분풀이를 하고 말텐데 뭐한다고 비효과적으로 교사들을 찾아가 ‘고자질쟁이’라는 수모를 당해가며 귀찮게 일러야 하나고 의문의 눈길을 보낸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이러면 곤란하다”고 교사들은 난리가 난다. 하다하다 안되면 너희들이 하도 때리고 울고불고 난리를 부리고 벽이나 바닥도 발길질이나 주먹질에 남아나지도 않고 심지어는 하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해대니 사람들이 드디어 ‘파랑새라는 델 계속 그냥 두어야 하는 거야“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큰 비밀이라도 털어놓듯이 아이들을 뜯어 말린다. 그러면 아이들은 ”누가 그런 소릴 하냐“고 아우성이고 ”모두가 다 그런다“고 교사들은 맞응수를 한다. 절대 사적 복수를 허용하지 않고, 단단한 사법체계를 만들고 응징과 처벌권을 교사들이 독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상이다. 기회가 좋으니 잡아야하는 것이다.

4) 지금 바로 이 순간

바로 지금이다. 힘과 권위의 물화된 실체를 보여주려면 문제를 일으킨 녀석들을 교사와 도덕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처벌을 함으로써 다시는 다른 아이들이 준동하지 않을 수 있도록 강력한 힘의 체계를 세울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다. 그러면 대다수의 힘없고 약한 아이들은 자연히 교사의 우산 밑으로 들어오고, 비록 난동을 부리는 녀석들은 교사가 보지 않는 곳에서는 또 다른 짓을 저지를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어쨌든 눈앞에서는 조금 잠잠해질 가능성이 크다. 만약 적당한 녀석이 나타나면 한 번 더 교사의 이름으로 징계와 처벌 및 추방을 명함으로써 교사의 권위는 굳건히 확립될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그랬다. 파랑새가 유독 자잘한 사건사고가 많고 되는 꼴이 없어 보이는 것은 교사들이 교육과 행정에는 애쓰지만 입법과 사법체계를 제대로 수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로만 법이 있었지 언제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러지 말아 달라”고 주로 애원하는 것에 그친다. 겨우 불러서 잔소리나 하고, “이제는 어떻게 할 거니?” 뭐 이딴 거나 묻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사과를 하고 나면 끝이고 가끔 “그만 두라”고 말을 할 때도 있지만 차라리 그 말을 그만두는 게 더 형편에 맞는 일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교사들이 뭔 소리를 하려 들면 “네~, 네~!”하고 그냥 넘어가자는 시늉을 한다. 교사가 분에 못 이겨하면 달래듯이 조금 들어주는 척한다. 물론 한 번씩 제 딴에도 안쓰러우니 정말 내가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눈빛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저도 안 그려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 이렇게 되었다며 얼른 잔소리하고 끝내자는 투다. 아니 그렇게 네가 얼른 말이라도 하고 풀어라 하고 봐주는 아이들은 좀 나은 축에 속한다. 가끔은 그마저도 ‘시끄럽고!’하는 식으로 막나가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면 이 수모를 견디고는 교사 노릇 못해먹는다고 이번에는 우리가 난리를 부린다. 그래도 체면이란 게 있는데 제가 잘못한 일을 가지고 잘못했다고 뭐 심하게 뭐라고 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그마저도 듣기 싫다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것이다. 그 정도도 안해줄 거면 아예 파랑새도 오질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니나교 교사들도 막 따진다. 드물게 이렇게 따지다보면 교사들이 정말 짜증나게 군다고 실제로 공부방을 그만두어버리는 아이들도 나온다. ‘아차!’ 싶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러니 고민이다. 분홍 공주 일은 문제를 삼자면 얼마든지 크게 문제를 삼을 수 있고, 또 문제를 삼지 않으면 공주네 집에서 문제를 삼을 수도 있으니 고민스럽다. 이번 기회에 말썽 많은 녀석들과 얍실한 여자 아이들을 보란 듯이 혼구녕을 내면 어떨까 궁리가 많다. 아니면 정말 이 따위밖에 안 돼냐고 한껏 성질을 부리고 모두들 다시는 서로 보지 말자고 다 때려치워버릴까 생각이 미친 듯이 달린다.

5) 너는?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한참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참 나다, 아이들이 성질이 나서 죽겠다고 한 순간 용서나 한 순간의 평화 혹은 물러섬 혹은 합리의 여지를 확보하라고 그렇게 누누이 강조하던 나는 애들을 몽땅 불러 들여 하나하나 마음속에서 조져대고 있었다. 이 나쁜 것들! 이 배은망덕한 것들! 내가 어찌 가르치고 어찌 말하는지 뻔히 알면서 감히 그런 짓을 저질러? 그러고 내 사랑을 구하고 내일 내 앞에 가증스럽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나타날 테지? 이런 아이들을 위해 나는 인생을 희생하고, 뻘 짓을 하고 다녔다는 생각까지 이르고 보니 분통이 터져 어찌 할 수가 없다.
어이구 생각이 이렇게 널을 뛴다.
한 번 이렇게 생각하고 겨우 한 번 저렇게 생각한다.
아이들이 참으려고 했다는 말은 사실이다. 다만 바로 그 참아야하는 순간 참지 못했을 뿐이다. 그들은 마음이 여유롭고 남과 잘 지낼 때는 참는 것이 아니고 절로 좋게 지냈을 뿐인데, 그 때를 저는 참으려고 했다고 말을 하니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든가 아니면 내가 무언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누구는 악(惡)은 절대적으로 나쁜 것이기 보다 지금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 지금이 아니라 바로 직전이나 직후에 했어야 하는 일을 지금 함으로써 악이 된다고 하는 통찰력 있는 생각을 전해준 적이 있다.
나는?
나는 교사니까 그리고 아무 잘못한 일이 없으니까 나는 아이들을 응징해도 되는 것일까?
나이도 많고 배운 것이나 경험도 훨씬 많으니까 아이들의 잘잘못이 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판단할 수 있고, 벌을 내리고, 훈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또 여태껏 아무 고민 없이 잘도 그래왔는데 지금 와 새삼스럽게 무슨 고민을 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우스운 짓 아닐까? 내가 하고 있는 이건 뭘까?
아니면 또 늘 하던 대로 모이게 하고 서로 입장을 이야기하게 하고 서로 이해하는 눈치가 보이면 적당히 서로 합의되는 대로 벌을 가하든지 하고 그냥 넘어갈까? 늘 하던 그대로 말이다. 아니면 분홍 공주의 입장을 먼저 살펴보고 만약 그 아이 부모님이 이런 식이면 아이를 공부방에 보낼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으니 그러면 그 핑계를 대고 이번에 말썽꾸러기들을 싹 몰아내고 눈엣가시들에게 냉혹함을 보여줄까?
그래도 안되면 이따위 짓거리를 다 그만두어 버릴까?
그래서 ‘정말 인간이 싫다’란 말이 생겨났나 보다.

6) 겨우 하나를 생각한다.

다시금 드는 생각이지만 참 아이들한테는 어찌 그리 정확하게 대접을 하려고 드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한 잘못은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 아이들의 파렴치는 ‘이 따위로 자라서 뭐가 되겠어?’하는 생각으로 뿌리를 뽑으려 든다. 신문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하는 파렴치범들에게는 찍 소리도 못하면서 말이다. 아니 이런 애들이 자라서 그렇게 될까봐 미리 세상을 염려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들은 죽었다 깨나도 장관직 청문을 받으러 그 자리 곁에 가보지도 못할 텐데 말이다. 물론 앞일이야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그러지 말고 모두 꿈을 갖고 미리미리 단두리를 해두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약한 사람에게는 매정하게 굴기가 이리 쉽다는 것이 애써 떠오른다. 그 못난 것들도 분홍 공주가 약하니 떼를 지어 매정하게 굴었던 것이다. 나는 그 못난 것들이 약하고 못난 데도 불구하고 그런 짓을 저질렀다니 매정한 마음이 절로 든다. 분홍 공주가 안타까워서 그러는 마음은 실은 얼마 되지도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잘못한 아이들만 눈에 어른거릴 뿐이다. 그냥 내가 뭐랄 수 있는 잘못이 저질러졌으므로 성질을 부리고픈 마음뿐이다. ‘감히’ 뭐 이런 것이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고 피가 피를 부르는 꼴이다. 가만 보며 맞은 건 분홍 공주만 아니다. 내 말을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나도 그 순간 분홍 공주 곁에서 함께 맞고 있었다. ‘그러니 쉴 새 없이 ’감히‘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 나도 함께 맞았다.
맞아보니 수치스럽고 화가 난다. 어찌 그럴 수 있나 새삼 다시 도돌이다. 맞.았.다.
인간에게는 수치가 이리 고통스러운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존재를 다 내던져서라도 이 수치를 풀고만 싶은 마음의 혼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깨가 너무 아프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다. 내일 적당한 때가 되면 나는 나의 수치스러움을 고백할 것이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잘못 가르치는 것같은 무능감과 수치심, 아이들이 내 눈앞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내가 없는 다른 곳에서의 모습이 전혀 딴판일 것 같아 두려운 마음과 수치심, 대놓고 어린 애들한테 말을 무시당하는 것 같은 모멸감과 수치심을 낱낱이 털어놓을 작정이다. 그러면 그 모진 아이들은 또 나한테 죄책감을 이용해서 네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들지 말라고 대놓고 비웃음을 날릴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의 죄책감을 이용하고 싶어 하고, 아이들의 미안한 마음을 한껏 붙들어 내 몫을 챙기려드는 나의 얄팍함도 참 수치스럽다. 누가 들으면 웃기고 자빠졌다고 할 만한 일들이다.
그래서 이제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게 되어 버렸다. 이제 두어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 얼굴을 볼 텐데 난 뭘 어찌 할 것인지 정하지를 못했다. 겨우 뭐 하나를 집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틈에 손가락 틈새로 모래가 흘려 내려가듯 생각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냥 우울하고 무기력한 마음만 가득하다. 겨우 이것이 내가 참고 또 참아야 하는 일의 실체라니 헛웃음이 나온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 앞에 발가벗은 심정으로 홀로 설 것을 생각하니 두렵다.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란 말인가?
맞은 사람들은 이렇게 피폐해져가나 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 그 잔인함의 서곡 앞에서 나는 떨고 있다.
나도 때릴까?
못난 것의 시름이 참 깊다.

응답 2개

  1. -말하길

    정말 절절한 글. 너무나도 감동하며 읽었습니다.
    지혜롭고 현명하신 선생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2. 이정민말하길

    제가 감히 생각해보건데요ㅎ, 폭력을 경험하고 폭력 이외의 것은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경험한 것을 반복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받은 대우들이 아이들에게 폭력적이지 않은 어떤 것이 있다는 경험으로 남아, 나중에 어느 순간에 그 경험을 반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의 마음 속의 도덕 보다는 공동체의 규칙을 유지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 중 첫번째가 아닐까…. 정말 감히(경험도 없는 사람이ㅜㅠ) 생각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