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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칼럼

마을 만들기 파트4-2 ‘네’ 이야기를 들어봐! – 재해 속 사이렌의 침묵을 듣는 법 – Our Planet-TV 아마츄어 다큐 상영회 –

- 신지영

* 침묵을 듣는 그녀들, 재해 속 오디세우스들

사실, 이야기란 얼마나 부질없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삶의 모든 기반이 사라지고 피난을 결심하고, 점차 악화되기만 하는 느린 타살 속에서, 이야기한들 뭐가 달라질까? 사랑하는 사람이 되살아나지도 이전의 삶이 되돌아오지도 않는다. 더구나 우리에게 되돌아가고픈 삶이란 게 과연 있기나 했을까? 오히려 이야기가 되는 순간, 생생한 현재의 고통과 사랑은 모조리 과거의 후일담이 될 위험에 처하고 만다. 많이 기억하는 사람은 많이 고통 받은 사람이라 했던 문학평론가는 “언젠가 옛 이야기 할 때가 올 것이다”라는 말이 자신을 위로했다고 하듯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부질없고 쓸모없는 행위-이야기를 멈출 수가 없다… 대체 왜?!
<사이렌의 노래>이야기는 이러하다. 오디세우스는 뱃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정도로 아름답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듣기 위해 자신을 돛대 기둥에 묶고 부하들의 귀를 막은 뒤 항해를 시작한다. 그는 사이렌의 노래를 들었으나 살아 돌아온 유일한 사람이 된다. 그런데 카프카는 <사이렌의 침묵>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귀를 밀봉하고 돛대에 묶었지만, 사실 사이렌들은 노래하지 않았다, 침묵했다,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에게 접근했을 때 그녀들은 생각했다. 아, 저 강한 놈에게 대적하려면 침묵밖에 없다. 사이렌의 노래는 그 무엇도 뚫고 들어갈 정도로 아름답다는 소문이 퍼져 있고, 그 소문은 사이렌의 노래 보다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내면의 공포와 소문을 노래로 착각할 것이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소문에 개의치 않고 “한줌의 밀랍과 한 다발 사슬을 완벽하게 믿었고 자기가 찾은 작은 도구에 대한 순진한 기쁨에 차서(프란츠 카프카 저, 전영애 역, 『변신 시골의사』중「사이렌의 침묵」, 민음사, 2009, 204쪽, 이후 쪽수만 기입)” 사이렌을 향해 간다. 사이렌의 노래 혹은 공포로부터 오디세우스를 지켜준 것은 자신이 지닌 도구에 대한 순순한 믿음, 기쁨에 찬 결단이었다고 말하는 카프카는, 아마도 또 하나의 사이렌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으리라. 3월 11일에서 2년이 지난 지금, 고통과 상실의 순간에 못 박혀 다시금 사이렌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고통과 상실을 침묵시키려는 힘에 맞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용기가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재해가 시작된 시점에서 2년이 지났다. 여전히 방사능을 뿜어내는 후쿠시마 원전 및 원전 노동자의 고통, 저선량 피폭의 위험성, 증가하는 피난민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함구한다. 대신 피해지의 투기성 부흥·동북지방 관광을 선전하는 소리나 신오오쿠보의 반한 시위가 거리에 울려퍼지는, 기이한 소리의 시기다. 이 사이렌들은 지쳐가는 피난민/피해민들과 이젠 괜찮다고 믿고 싶은 우리들의 마음 속 어디든 달콤하고 공포스럽게 뚫고 들어간다. 그러나 동시에 ‘괜찮다’고 침묵시키는 사이렌에 맞서, 순순한 기쁨과 결단에 찬 오디세우스들이 작은 도구들을 들고 나서고 있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Our Planet-TV> 워크샵에서 카메라를 처음 손에 잡은, ‘엄마’ 카메라 액티비스트들의 탄생이다.

* 표현에서 “표출”로 – 귀를 기울이면, ‘내’ 가 전하는 비디오 상영회

3월 18일에는 <Our Planet-TV> 시민 카메라 워크샵 상영회, <귀를 기울이면, ‘내’가 전하는 비디오 상영회 – 311이후 흘러넘친 시민 비디오(http://www.ourplanet-tv.org/?q=node/1544)>가 있었다. <Our Planet-TV>는 “시민이 주역이 되는 미디어로 사회를 변화시키자”를 캐치프레이즈로 한다. 911 발생 당시 인터넷에서 국가를 넘어선 정보 교환이 활발해지는데, 이런 대중지성의 활동과 힘이 모여 탄생한 단체다. 웹 스트리밍 방송(http://www.ourplanet-tv.org), 시민이나 NGO의 정보발신을 돕고 기자재를 대여하는 <미디어 카페>, <영상제작 워크숍> 등의 활동을 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일반 시민이 아는 정보의 양은 십여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민이 주역이 되어 각각 느끼는 것을 영상으로 만들어 서로 보고 듣고 의견을 교환한다면 미디어는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Our Planet-TV는 다양한 우연으로 탄생한 지구라는 혹성에서 사람들이 서로 편견 없이 정보를 교환할 날을 꿈꿉니다.”
상영작은 총 6편이었는데 참여자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남성으로 성전환한 분을 심층 인터뷰한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 남자의 맘으로 살아 왔다>(2012年/19分, TEAM on A be), 잊혀진 놀이인 흙경단 빚기를 통해 아이들의 정서적 표출이 갖는 의미를 조명한 <흑경단이 뭐지?>(2013年/15分, 工藤武宏、稗圃慶子、井川直子), 도쿄의 대표적 ‘시타마치(에도시대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서민상점가)’로 나츠메 소세키 모리 오가이 등이 살았던 거리가 관광화되는 것에 대한 상점가의 대응을 다룬 <야나카 긴자 상점가의 도전>(2013年/20分, 中山綾子、山本優子、栗原広美)도 흥미로웠지만, 특히 관심을 끈 것은 다음의 세편이었다.
이 세편은 재해 이후에 형성된 어떤 감각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당사자성을 발견하고 침묵하는 일상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감성이었다. 이들 다큐에서 그 감성은 ‘말하는 행위’가 아니라 카메라를 손에 쥐고 “듣는 행위”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피난의 마음(ヒナンのキモチ)」(2012年/9分, 井桁大介、柴田麻里、武藤知佳)은 원전 사고로 삶의 터전을 버리고 자의적 피난을 결행한 그녀들이 느끼고 변화해 온 과정을 인터뷰한다. “당장은 영향이 없다는 말은 우리의 미래를 박탈한다는 말이었어요”, “떠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저에게 실망했다고 하셨어요.”, “저는 국가가 괜찮다고 하니까 괜찮은 거라고 말하는 어머니에게 실망스러웠어요” 그런데 다큐를 보던 나는 화면 속 그녀들이 말하고 있음에도 마치 내가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 잡혔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역전이 아니라 모두가 인터뷰이가 된 듯했다. 나(우리)는 들음으로써 말하고 있었다. 사이렌의 침묵을 듣는 오디세우스처럼.
「데모할인 생겼어요.(“デモ割”うまれたよ)」(2013年/17分,ふくしまゆみこ、中村千恵、小山名保子)는 신나는 내용이었다. 가난뱅이의 반란 거리,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많았던 오기쿠보를 폭넓게 포괄하며 70년대 가정주부들의 운동이 번성했던 쓰기나미 지역에서는, 재해 이후 유닉크한 데모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데모할인’이 탄생한다. 데모할인이란 데모에 참여한 뒤 가게에 오면 맥주 한잔을 무료로 주는 이벤트다. 데모 할인에 참여한 가게주인들은 말한다. 데모 끝나면 한잔 하고 싶잖아요? 그럴 때 동네로 돌아와 마셔 주면 좋죠. 데모 참여자들은 말한다. 데모 끝나고 그냥 집에 가면 맹숭맹숭하잖아요. 집 근처에서 한잔하면서 이야기하고 좋죠. 이 활동은 <도쿄 신문> 1면에 보도되기도 했다. 데모할인을 보도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생활하는 동네에서 데모하고 그곳에서 다시 소비하고 대화하는 것. 이것이 서양과도 과거 일본의 운동과도 다르다고 느꼈어요. 지역과 생활과 데모와 대화가 함께 하지요. 데모 할인은 이후 카페, 변호사 상담 등으로 번졌고, 오키나와, 오사카, 홋카이도 등으로 확산된다. 마치 기원을 묻지 않고 확산되어가는 사이렌의 노래처럼.
「알루미늄 캔은 누구의 것?(アルミ缶は誰のもの?)」(2013年/25分, 鈴木園巳、三馬盛、小澤かおる)은 야숙 활동가 스즈키씨의 작품으로 아라카와 하천부지(荒川河川敷堀切橋下流) 야숙생활자들이 주인공이었다. 스즈키씨는 야숙자 집회나 데모에서 자주 뵈었던 분으로 이분이 보내주신 메일을 통해 상영회에 갈 수 있었다. 야숙 생활자들은 캔을 모아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 공원 등에서 야숙자를 쫓아내려는 움직임과 함께 알루미늄 캔 수집을 금지하는 자치체가 늘고 있다. 이 다큐는 “버려진 공공물을 통한 경제활동”에 대한 권리와 가치를 보여주었다. 이는 공원 등 공공공간의 공유를 주장하는 것과 닮았으면서도 보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가능한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경제활동의 가능성을 묻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30살 무렵부터 캔을 모아온 스가노씨는 자신이 이 일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한다. 캔을 줍다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때로는 돈 많은 사람들의 고독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캔 수집은 경제상황을 반영하는 바로미터다. 캔 가격은 호황기에 120엔이고 평상시는 80엔이지만, 리만 브라더스 때에는 40엔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버려진 공공물은 그 코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동 속에서 가치를 얻는 고미티니(쓰레기(고미)+코뮨, 이치무라씨의 말)였다. 야숙생활자들은 수용시설이 아닌 그 광활한 고미니티에서 살길 바라고 있었다.
이 다큐에서 내가 무엇보다 감동을 받은 것은 야숙생활자를 찍는 카메라의 밀착도였다. 캔을 수집하며 보내는 하루일상이 그 옆을 묵묵히 지키는 카메라를 통해 펼쳐졌다. 이 조용한 감동은 다큐 촬영자가 야숙 생활자와 함께한 세월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이 세월이 주는 농익은 이해가 야숙생활을 선택 가능한 하나의 삶으로서 보여주고 있었다.
 

* “네” 이야기를 들어봐!

상영회의 3부에서는 시라이시(白石草, 아워플래닛티비 액티비스트), 시모무라(下村健一, 시민 미디어 액티비스트)씨 스즈키씨(알루미늄캔은 누구의 것), 후쿠시마(데모할인 탄생했어요), 시바타씨(피난의 마음)이 참여해, <311이후 흘러넘친 시민들의 표현 – 비디오 카메라와 만난 여성들>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토크 제목이 보여주듯, 이번 상영 작품은 대부분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시라이시씨는 젊은이들이나 작가들이 주가 되었던 이전과 비교해 볼 때 큰 차이라고 했다. 취미로 하기엔 시간과 힘이 드는 카메라 작업에 왜 재해 이후 엄마들이 이렇게 많이 뛰어들고 있는 것일까?
후쿠시마씨는 재해 이후 메인 미디어에 답답함을 느끼던 찰나, 시이시씨의 글을 읽고 어쩌면 자신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피난의 기분>을 찍은 시바타씨는 재해 직후 많은 연구회와 모임이 생겼지만 메인 미디어는 이것을 전혀 전달하지 않았다. 이러한 움직임을 없는 것으로 할 수 없다, 아마도 영상이 바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참여했다고 한다. 시모무라씨는 “없었던 일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곧 다음 기록을 위한 출구가 된다고 말했다. 내가 다큐를 보면서 마치 내 자신이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들이 재해 이후 등장한 엄마 카메라 액티비스트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없었던 일로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가슴속에 품은 그녀들은 ‘한마디’ 해달라면 부끄러워하며 말하기 시작했는데, 타인을 줄곧 의식하고 있는 그 상기된 부끄러움을 통해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진폭이 전달되고 마치 내가 말하는 듯한 기분이 되곤 했다.
워크샵을 이끄는 시라이시씨는 요즘엔 워크샵을 하기 보다 ‘방치’하는데 그럴 때 더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고 경쾌하게 입을 열었다. 시모무라씨는 메인 미디어가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시민 미디어의 장점으로 ‘밀착도’를 언급하며 질문을 했다. <데모 할인>에는 데모 할인 확산을 위한 작당회의가 나온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인터뷰를 하던 후쿠시마씨는 질문자라는 본분을 잊고 작당회의에 열심히 되고 카메라는 조금 물러나며 후쿠시마까지 화면에 잡는다. 시모무라씨는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이런 순간은 메인 미디어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알루미늄캔은 누구의 것?>을 찍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깊이 밀착해 찍을 수 있었는지 물었다. 영상회에는 야숙 생활자 및 활동가가 참여하고 있었다. 스즈키씨는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그분들에게 감사를 표한 뒤, 자신은 야숙 생활자들의 데모가 아니라 일상을 찍고 싶었다고 말한다. 데모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 문을 닫으면 끝이 아니라 일용노동자로서 일본의 고도성장을 가져온 그들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분들이 집도 뚝딱 만들고 자전거도 잘 고치는 재주꾼이며, 캔 수집도 각각의 개성이 넘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평온하고 한가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매일 아침 비가 오건 덥건 춥건 바람이 불건 그들은 캔을 모은다. 마침 단 하루 촬영을 했는데, 비가 왔다고 했다. 자신과 그분들 사이의 거리감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싶어서 느슨한 거리를 두고 찍었다고 한다.
야숙생활자와 스즈키씨의 삶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감이 있을 것이었다. 스즈키씨는 그 차이를 간과하지 않지만, 야숙생활자들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 야기할 불안은 충분히 공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야숙자들의 신상이 공개됨에 따라 공원에서 쫓겨날 위험성이 커질 뿐 아니라, 최근 증가하는 야숙자들에 대한 묻지마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모사진을 찍을 때에는 야숙자들의 얼굴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러나 야숙생활자 분들에게 스즈키씨가 이러한 불안을 말했을 때, 그분들은 설혹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함께 책임을 질 문제라고 답해 주셨다고 한다.
우리는 대화를 말하고 듣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대화란 듣고 듣는 행위, 혹은 듣고 들음으로써 말하는 행위이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에 맞춰 말하지 않는다면, 나의 말은 결코 상대에게 닿을 수 없다. 말하기 이전에 듣는 행위가 존재하며, 그 듣는 행위를 통해서 말하는 것, 그것이 대화이다. 다큐와 그녀들의 말을 통해서 내가 느낀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들이 재해 이후 느낀 불안과 고통을 ‘없는 것’으로 침묵시키는 메인 미디어의 중력 앞에서 그녀들은 침묵해야 했던 소리를 듣고 그것을 들음으로써 스스로 말하고/말하게 하고 있었다. 과학기술을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으로 전유하는 행위란, 바로 그녀들의 카메라 감응법과 같은 것이리라. 메인 매체와 과학기술의 권위와 공포를 아무렇지 않게 뚫고나가 자신들의 손에 들린 작은 도구에 거는 믿음,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엄마 카메라 액티비스트들의 타자를 내포한 주체성 말이다.

* 그녀들의 ‘듣는’ 카메라, 그 끊임없는 ‘이야기’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변형시킨 카프카의 <사이렌의 침묵>은 이렇게 시작한다. “미흡한, 아니 유치한 수단도 구원에 쓰일 수 있음의 증거(204)”. 오디세우스가 사이렌들의 공포와 유혹에 대항할 수 있었던 건 미흡하고 유치한 수단인 밀랍과 밧줄을 굳건히 믿었기 때문이었다. 재해 이후 엄마들의 손에 들려진 카메라는 마치 오디세우스의 밀랍과 밧줄처럼, 여전히 지속되는 재해의 고통을 침묵시키려는 사이렌들에 맞서 전진한다. 그리고 <사이렌의 침묵>은 이렇게 끝난다. 사이렌에 얽힌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오디세우스는 워낙 꾀가 많은 사람이라 사실 사이렌들이 침묵했음을 알아챘는데 자신의 꾀를 감추기 위한 “방패”삼아 사이렌의 노래가 들리는 양 연기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210). 아무려나! 그녀들의 카메라 액티비즘이 순순한 믿음이건 꾀를 부린 연기이건 간에, 그녀들은 미디어, 즉 현대의 사이렌이 공포와 권위로 화해 다른 소리를 침묵시키는 것에 맞서 벗어나는 길을 열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이후 지속되고 있는 재해 속에서, 재해에 대한 이야기를 침묵시키고 망각시키고 일상의 중력으로 누르려는 미디어들이 마치 “침묵시키는 사이렌”처럼 거리에 울려 퍼지고 있다. 그러나 이날 영상회에서 만난 엄마 카메라 액티비스트들은 여전히 재해의 시간 속에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중력과 침묵과 망각의 힘을 뚫고 끊임없이 “들리게 하고”, 들음으로써 ‘말하게 하고’ 있다. 침묵하는 소리들의 증인이 됨으로써 이 재해의 시간성 속 슬픔과 기쁨을 사는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증인이 되는 것. 이것이 타자를 내포한 그녀들의 대화, 즉 듣기=말하기였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해 보자. 그러니까 말야, ‘네’ 이야기를 들어봐! 혹은 ‘내’ 이야기를 해봐! 그녀들의 카메라가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새로운 노래를 듣는 재해 속 오디세우스의 귀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응답 2개

  1. 낙타말하길

    덤 선배! 반가워요.
    요즘 일본은 이상한 소리들로 시끄러워 죽겠어요. 눈감고 귀를 막아버리는 게 나아요. ㅎㅎ 스즈키씨의 조용한 영상 덕에 이날은 귓구멍이 트이는 기분이었어요. 인턴제에 대한 이야기나 쌍용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들, 위클리 통해서 챙겨 읽고 있어요! 단단한 믿음과 위험한 사상의 목소리를 여기서 듣고 있지요. ^^

  2. 말하길

    이전과 달리 ‘사진’ 이미지가 없어서 네 글인줄 몰랐다. 이미지가 침묵한 곳에 단단한 믿음과 위험한 사상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구나. 잘 읽었다. 캔 가격의 변동,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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